소로우의 일기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윤규상 옮김 / 도솔 / 2003년 7월
품절


그리고 우리 귀에 익숙한 여름의 폭염. 역설적으로 '침묵의 소리'라고 할 수 있지만 오히려 혼란 중의 혼란이라 부르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19쪽

진정한 여가를 즐기는 이는 영혼의 밭을 갈 시간을 갖는다.-30쪽

훌륭한 문장은 어쩌다 우연히 쓰여지지 않는다. 글에는 어떠한 속임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쓴 최상의 작품은 그의 인격의 최상을 나타낸다. 모든 문장은 오랜 시련의 결과이다. 속표지에서 책 마지막 장에 이르기까지 책 속에는 저자의 인품이 속속들이 배어 있다.-56쪽

대단히 능률적인 노동자는 하루를 일에 치여 보내는 법이 없다. 오히려 어슬렁어슬렁 일하는 그는 안락하고 한가하다. 해가 지기 전까지는 쉴 여유가 많을 것이다.-70쪽

여행자! 나는 이 말을 사랑한다. 여행자는 여행자라는 이유만으로 존경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 우리의 인생을 가장 잘 상징하는 말이 '여행' 아니겠는가. 개인의 역사란 결국 요약하면 '어디'에서 '어디'를 향해 가는 것 아니겠는가. 나는 여행자 중에서도 특히 밤에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흥미를 느낀다. -98쪽

사람들은 지진이 났을 때보다 독창적인 사고를 접할 때 더 당황한다.-140쪽

만일 당신이 작가라면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각오로 글을 써야 한다. 남은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네 영혼에 맡겨진 순간순간을 잘 활용하라. 영감의 잔을 최후의 한 방울가지 비워라. 영감의 잔을 비우는 일이 너무 지나치지 않을까 하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세월이 흐른 뒤 후회하게 될 것이다. 봄은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 -152쪽

만일 생각을 양이 아닌 질로 판단해 볼 수 있다면 불면의 하룻밤이 긴 여행보다 더 많은 생각을 낳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158쪽

마음속이 뜨거울 때 글을 써라. 농부가 소의 멍에에 구멍을 뚫으려면 화로에 달군 쇠로 재빨리 멍이로 쓸 나무를 지져야 한다. 일각이라도 지체하면 쇠로 나무를 뚫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달궈진 쇠는 즉각 사용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생각을 기록하는일을 뒤로 미루는 작가는 식은 쇠로 멍에에 구멍을 내려는 사람과 같다. 그런 작가는 독자의 마음을 태울 수 없다.-161쪽

사람은 자신의 자연적인 천성을 망칠 정도로 너무 선하거나 마음씨 고운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회를 위해서도 그렇다. 악한 사람들은 때때로 자신들이 얼마나 악한가를 보여주기 때문에 오히려 이로울 수 있다. 그러나 선량한 사람들은 당신과 자기 자신을 중개하려고 부단히 애쓸 뿐이다.-253쪽

1854년 8월 9일 수요일
보스턴으로 갔다.
<월든>이 출간되었다. 양딱총나무의 열매. 노란빛이 도는 납세공품. -272쪽

나는 혼자 있을 때 가장 잘 자란다.-339쪽

한 달 전쯤 우체국에서 귀가 약간 먼 아벨 브룩스 씨가 나에게 접근해서는 모든 사람이 들을 만한 큰 소리로 말했다. "이봐, 자네 모임은 꽤 큰 모임이지, 안 그래?"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어리둥절한 채로 "그렇겠지요, 약간." 하고 대답했다. "스튜워트가 거기 일원이지. 콜리에도 그들 중의 하나고, 에머슨, 그리고 내 집에서 하숙하는 풀시퍼도 있고 말이야. 내 생각으로는 채닝도 거기에 간다고 알고 있네." "산책 좋아하는 사람들 말이군요." "그레, 자네들도 단체 아닌가? 모두 숲에 가지, 안 그래?" "아저씨 숲 어딘가에 무슨 문제라도?" 내가 물었다. "아니, 뭐 그런 걱정은 별로 하지 않아. 나는 자네 패거리들이 그런대로 현명한 측들이라고 믿으니까. 상식은 있잖은가." 등등.
샌번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 그는 자기가 처음 읍에 와서 브룩수 씨 집에 하숙을 정하고서 브룩스 씨에게 읍에 어떤 종파가 있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자 브룩스 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었다. "셋이 있어. 유니테리언파와 정통파와, 그리고 월든 호수파."-352쪽

일반적으로 개인적 경험을 소중히 간직한, 대다수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글이 가장 큰 흥미를 일으킨다. 지구 끝까지 여행해 본 사람의 글이 아니라 가장 심원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의 글이 말이다.-378쪽

숲에서 살던 당시에 나는 아주 형편없는 옷차림을 했다. 모자, 바지, 부츠, 고무신, 장갑을 다 팔아보아야 4페니도 채 받을 수 없었다. 나는 그때 내 골든 양복바지 끝이 너덜너덜했던 것처럼 모든 사람이 바지에 술 장식을 달 만한 여유를 가질 수는 없는 것이라고 그 아일랜드인에게 말해 주었다.-3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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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 외 지음 / 보성출판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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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술'인데 어떻게 안 읽어요.
게다가 이외수며 이문구며 피천득이며 신경림이며 박두진이며 조지훈이며 변영로며 등등등
술 좋아한다는 문인들이 술에 대해 쓴 에세이라니, 읽기 전부터 소주 한 잔 들이키고 싶은 심정.
나는 술도 좋고 풍류도 좋고 술에 대한 책도 좋구나아아.

단, 옛날 책이어서 그런지 (나는 헌책방에서 샀다)
군데군데 여자가 술을 마시면 보기 안 좋다는 둥 어쩌구 하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건 아니지만 가끔 옛날 책은 이런 경우가 많더라.
하긴 쇼펜하우어도 그의 인생론에서 여자는 우둔하다는 얘기를 몇 페이지에 걸쳐 했으니.

......라고 생각하며 책 뒤를 살펴보니 어라랏 그렇게 옛날 책도 아니다. 1991년 책인데.
가격이 3800원으로 찍혀 있어서 되게 옛날 책인 줄 알았더니.
내가 교복 입고 날아다니던 시절, 여권 신장은 그야말로 눈부셨구나.

지금 이 책은 판형이 바뀌어 12000원이다.
아, 세월은 돈만큼 무서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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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 외 지음 / 보성출판사 / 2008년 8월
품절


술에 취하면 프랑스인은 덮어놓고 춤을 추고 독일인은 함부로 노래를 부르고 싶어하며 영국인은 자꾸만 먹고 싶어하는 습성이 돋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이탈리아인은 쉴새없이 자랑을 늘어놓고 미국인은 오로지 연설에 열을 올리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이외수 <술을 멀리하며>-9쪽

술이 사람을 말하고, 술이 사람을 이야기한 글이라면 나는 아직도 수주의 [명정 40년]을 뛰어넘는 저술이 없으리라고 믿는다.
-이문구 <떠날 사람과의 마지막 잔>-111쪽

만경창파 내다보니 수천 배가 이승에서 돌아온다. 저 앞에 짚을 덮어 쓰고 오는 사람은 무슨 배인가?
그 배는 이승에서 부자로 악하게 타작을 하는데 가난한 사람이 짚을 달라자 짚 한 단을 내집어 던졌다.
저기 저 배는 무슨 배인가?
그 배는 부모 앞에서 눈의 희뜩희뜩 혀를 툭툭 차고, 이웃 노인이 무라 해도 눈을 희뜩희뜩 혀를 툭툭 차더니 저승에 들어와서는 눈알을 빼어차고 혀를 빼어 입에 물고, 억만지옥으로 들어가는 배다.
저기 저 배는 무슨 배인가?
남의 중신 가는 누나, 억지로 겁탈해서 저승에 들어올 때 큰 톱을 옆구리에 걸어 가지고, 독사지옥으로 들어가는 배다.
저기 저 배는 무슨 배인가?
그 배는 이승에서 술장사할 때 물을 타서 멀겋게 걸렀기로, 술찌꺼기를 입에 물고 지옥으로 들어가는 배다.
첫번째로 짚을 덮어쓰고 지옥으로 들어가는 배는 가난한 소작인에게 가혹하게 한 죄로 끌려오는 악덕 지주고,
두번째로 눈알을 빼어 차고 혀를 입에 물고 오는 사람은 부모와 어른에 불손한 죄로 끌려오는 불효자고,
세번째 배는 강간죄로 끌려오고,
네번째 배는 술장사할 때 물을 타서 판 사람이 지옥으로 끌려가고 있다.
-서정범 <사내의 씨>-119쪽

음주에는 무릇 18의 계단이 있다.
1.부주...술을 아주 못 먹진 않으나 안 먹는 사람.
2.외주...술을 마시긴 마시나 술을 겁내는 사람.
3.민주...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도 않으나 취하는 것을 민망하게 여기는 사람.
4.은주...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도 않고 취할 줄도 알지만 돈이 아쉬워서 혼자 숨어 마시는 사람.
5.상주...마실 줄 알고 좋아도 하면서 무슨 잇속이 있을 때만 술을 내는 사람.
6.색주...성생활을 위하여 술을 마시는 사람.
7.수주...잠이 안 와서 술을 먹는 사람.
8.반주...밥맛을 돕기 위해서 마시는 사람.
9.학주...술의 진경을 배우는 사람.
10.애주...술의 취미를 맛보는 사람.
11.기주...술의 진미에 반한 사람.
12.탐주...술의 진경을 체득한 사람.
13.폭주...주도를 수련하는 사람.
14.장주...주도 삼매에 든 사람.
15.석주...술을 아끼고 인정을 아끼는 사람.
16.낙주...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 술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는 사람.
17.관주...술을 보고 즐거워하되 이미 마실 수는 없는 사람.
18.폐주(열반주)...술로 말미암아 다른 술 세상으로 떠나게 된 사람.
-조지훈 <주도유단>-133쪽

술병은 우리 식탁 위의 태양.
그의 양광은 감홍색 술.
우리는 그의 위성들
그의 도움 없이는 부추김 없이는
우리만으로는 빛나지 못하리.
환락과 환희는 끝도 없어라.
그가 삐잉 일순회하면
우리는 그의 차광으로 따라 빛나리.
(영국의 희극작가 R.B.셰리든의 주덕송)
-변영로 <나의 음주변>-154쪽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저녁상의 반주, 그것이 가져올 위안을 생각하기 때문에 흔히 많은 사람의 하루의 긴 노동은 보다 쉽게 수행되는 것이 아닌가?
-김진섭 <주찬>-234쪽

인생은 짧다.
그러나 술잔을 비울 시간은 아직 충분하다.
-노르웨이 속담-2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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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 구운몽 최인훈 전집 1
최인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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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것은, 1995년에 발행된 3판 5쇄본.
무려 5가지 버전의 서문이 들어있다.

1961년판 서문,
친구 이명준의 진혼을 위하여 쓴 1973년판 서문,
일역판 서문,
1976년 전집판 서문,
그리고 마지막으로 1989년판 서문.

서문만 봐도 역사가 한눈에 주르륵 꿰어진다.
개정이 될 때마다 한자어는 비한자어로 바꾸어지고
세로쓰기는 가로쓰기로 바뀌었다.

광장은 어떤 면에서 보면 <출발 비디오 여행> 같은 책이다.
왜, 그런 느낌 있잖은가. 출발 비디오 여행에서 
너무나도 자세하게 줄거리 듣고 분석까지 듣다 보면, 
정작 극장에서는 보기가 싫어지는 것.
이건 뭐 본 것도 아니고 안 본 것도 아닌데 왠지 돈 주고 보려니 그건 쫌 아까운 느낌? 

광장은 수능시험 준비하던 고3때 요약본으로 읽었던 것 같다.
아니, 결말 부분만 문제집 여기저기에 많이 실렸던가?
이건 중요한 작품이니 주인공의 의도가 무언지 꼭 알아야 한다며
선생님들이 줄거리를 소상히도 알려줬던 기억...
그래. 광장이 굉장히 큰 문학사적 가치를 가진다 해도
왠지 돈 주고 사서 읽기는 아까운 느낌이었다.

그러던 것이 얼마 전 김용규의 <철학 카페에서 문학 읽기>를 독파하고 나선,
그.래.도. 꼭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아아앙. 잘한 일이었어.
주인공 명준이 남으로 갈래 북으로 갈래 딴 나라로 갈래 갈팡질팡하다가
그냥 바다로 퐁당 빠져버린단 줄거리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 앞뒤로 얽힌 서사가 기가 막히다.

역시나 다시 한 번 "고전은 읽을 가치가 있다"는 진리를 깨닫게 된 시간.
5가지 버전의 서문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도 꽤나 가슴 벅차다.
뭐야. 책 한 권에 뭐 이렇게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냔 말이다.
헌책방에 들르길 잘했군,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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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 구운몽 최인훈 전집 1
최인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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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는 버릇을 가지라, 신에 가까워지리라.-41쪽

윗목에 놓인 책장에 마주선다. 한번 죽 훑어본다. 얼른 뽑아보고 싶은 책이 없다. 4백 권 남짓한 책들. 선집이나 총서, 사전류가 아니고 보면, 한 책씩 사서는 꼬박 마지막 장까지 읽고 꽂아놓고 하여 채워진 책장은 한때 그에게는 모든 것이었다. 월간 잡지가 한 권도 끼지 않았다는 게 자랑이다. 그때그때, 입맛이 당긴 책을 사서 보면, 자연 그 다음에 골라야 할 책이 알아지게 마련이다. 벽 한쪽을 절반쯤 차지하고 있는 이 책장을 보고 있으면, 그 책들을 사던 앞뒷일이며, 그렇게 옮아간 그의 마음의 나그네길이, 임자인 그에게는 선히 떠오르는 것이고, 한권 한권은 그대로 고갯마루 말뚝이다.-43쪽

선(禪) 같은 데서 비법을 주고받을 때, 스승이 뚱딴지 같은 물음을 불쑥 던지면, 뛰어난 제자가 마찬가지 헛소리 같은 사설로 받아넘겨서, 두 사람 사이에 홀아비 사정을 홀아비가 안 빙그레 웃음으로 마음이 마음을 알아, 깨달음의 주고받음이 이루어지는, 옛 우리네 마음놀이의 저 기합술 같은 수작의 생김새는 아마 이런 것이라 싶게, 태식의 한마디는 명준의 가슴에서 대뜸 울려오던, 그런 일이 있다. 그 후 그들은 툭하면, 고독해서 그러는 거야, 엉뚱한 데다 그 말을 쓰곤 했는데, 버스 꽁무니를 바싹 따라가는 자전거 선수이든, 로터리에서 교통 정리하는 순경의 경우든, 국산 기관포로 강냉이를 튀기는 아저씨의 경우든, 모조리 그럴싸한 데는 놀라고 만다.-45쪽

이런 늦은 때 무렵에 상큼하니 낯을 쳐들고, 눈이 초롱초롱한 강아지 모습이 또 때에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하긴 사람 같으면 이부자리가 있으니까, 자다 일어났다는 걸 알 수도 있겠지만, 강아지고 보면 그렇지도 못했고, 사람은 부스스한 옷매무시나 벙벙한 낯빛으로, 자다 깬 사람은 알 수 있는 법이지만, 잠옷이 없는 이 짐승은 그것도 아니고, 어느 모로 뜯어보아도 자다 깬 사람이 가지는 그 흐트러진 낌새는 찾을 수 없다. -47쪽

입 밖에 내지 않았으면 아무렇지 않았을 일도, 한 번 말이 되어 나와버리면 허물어버릴 수 없는 담을 쌓고 만다.-134쪽

어떤 사람이 어떤 사회에 들어 있다는 것은 풀어서 말하면, 그 사회 속의 어떤 사람과 맺어져 있다는 말이라면, 맺어질 아무도 없는 사회의, 어디다 뿌리를 박을 것인가. 더구나 그 사회 자체에 대한 믿음조차 잃어버린 지금에.-1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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