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보다 깊은 잠 2
박범신 지음 / 세계사 / 2000년 7월
품절


소주는 비정해. 너무 투명해 마치 독기가 가득 고여 있는 것 같거든.-49쪽

흘러간 노래는 언제 어디서 부르든지 눈물과 만나고 지분내나는 사랑과 만나고 손수건 흔들며 풀래폼 모서리에 홀로 남아 우는, 저기 저 30년대 식의 애잔한 이별과도 만났다.-66쪽

평생 한 여자를 잊지 못하는 사람을 혹 보았습니까?
오래 전 그런 경향을 가졌던 사람들도 있었다더군요. 하지만 냉정한 역사관을 갖고 살펴보면 그런 경향의 사람들이 이끌던 시대는 역사적으로 고통의 연속이었어요.-1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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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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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손님>을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고 하니 M양이 뜨아해 한다.
아 진짜 이럴 땐 승부욕 발동한다니까.

어릴 때 엄마가 아빠 몰래 계몽사에서 나온 120권 전집을 들여놓은 적이 있었는데
우리 집 삼남매는 하루가 멀다하고 누가 더 많이 읽었는지 체크를 하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언제나 꼴찌였던 불쌍한 나.
내가 승부욕에 불타서 한 권 더 읽을 때 언니와 동생은 어디 가서 놀다오면 좋으련만
그들도 그 시간에 한 권 더 읽으니 언제나 1,2,3위는 요지부동.
짜증이 난 나는 또다시 눈물바람. ㅠㅠ
"나는 꼼꼼하게 읽어서 그래." 라며 항변을 해보지만 돌아오는 건 콧방귀 뿐.

어쨌든 이제는 다 컸는데, M양한테까지 질 수는 없는 법. (알고 보니 M양도 읽지 않았지만...)
헌책방에서 발견한 김에 들고 와서 휘리릭 읽어버렸다.

어머나, 그런데 왜 나는 '손님'이란 단어 하나 때문에
이 소설이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같은 수줍은 사랑이야기라고 생각했었을까.
그의 <오래된 정원>이 아직까지도 마음에 담겨 있기 때문이었나.  
읽다 보니 이건 한국전쟁을 둘러싼 한 마을 사람들의 사상적 갈등이 주요 테마다.
아니, 다시 말하면 그 사상적 갈등 때문에 몹쓸 짓을 저지른 류요한 장로의
'영혼이 되어서라도 고향산천에 찾아가 죄를 씻으리'가 주요 테마.
그래서 '불편한 진실'도 많다.
누가 내 코에 철사로 코뚜레를 꿰어놓은 것처럼 불편하고
발목에 쇠사슬이라도 묶어놓은 듯 잠자리가 편치 않다.
내가 최악의 악몽으로 꼽는 건 전쟁이 나서 피난 가다 가족들이랑 헤어지는 꿈인데,
<손님>을 읽고 나면 눈도 감지 못하고 악몽을 꾼 것처럼 온몸이 노곤하다.
그만큼 사실적으로 썼다는 얘긴가.

그래도 내 취향은 <손님>보다는 <오래 된 정원>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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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밝혀졌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엮음 / 민음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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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해도 부러운 커플이 있다.
요 전까지만 해도 <서재 결혼시키기>의 앤 패디먼 부부가 그랬는데
이제는 조너선 사프란 포어와 니콜 크라우스 커플이다.
심지어 뒷쪽 책 날개엔 둘의 책 광고가 나란히....
니콜, 언제 신간을 내신 건가요. <남자, 방으로 들어간다> 사 봐야겠네.
이렇게 나 같은 사람 낚으려고 책 광고도 함께 하는 거겠죠. 

앗, 그런데 지금 막 알라딘의 저자 정보에서 확인한, 니콜 그라우스에 대해 몰랐던 사실 세 가지!

 1. 니콜이 조너선보다 3살 연상.
2. 10대 시절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에 반해서 문학에 빠지기 시작.
3. <사랑의 역사>보다 <남자, 방으로 들어간다>가 더 먼저. (왜 우리나라에선 늦게 번역된 거지?)

어쨌거나 둘은 옥스퍼드에서 만나서 지금 한창 "뉴욕 최고의 문학커플".
지금도 뉴욕 어디에선가 한창 꿑같은 광휘를 내뿜고 계신 건 아니신지.

 
게다가 이 여자 니콜, 어딘지 모르게 고저스한 분위기.
 


그에 비하면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공부 잘 햇을 것 같은 모범생 스타일.
그는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에서
"니콜, 내 아름다운 여신 당신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라는 헌사를 바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번 책의 헌사는 조금 바뀌었구나.

"꾸밈없이 그리고 불가능하게
나의 가족을 위해"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그의 전작이 훨씬 더 좋다.
특히 뉴욕시의 여섯 번째 구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환상적이었거든요. 

어쨌거나,
이렇게 새 책이 기다려지는 작가들이 자꾸 늘어가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다.
나만 아는 비밀장소에 질 좋은 수제 쿠키를 숨겨놓은 기분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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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밝혀졌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엮음 / 민음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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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당신의 글에 대해서 언급하자면, [세계의 시작은 자주 온다]는 정말 고귀한 시작이었어요.-43쪽

그러나 아내는 그에게 첫사랑이자 유일한 사랑이었고, 조그만 슈테틀 출신들은 으레 첫사랑이자 유일한 사랑을 용서해 주는 법이었으므로, 그는 억지로라도 이해하려 했다. 아니면 이해하는 척했다.-68쪽

"러시아 작가들 중에는 최고급 작가들이 많이 있죠, 그렇지요?" "오, 물론이죠. 셀 수도 없죠." "톨스토이도 있고, 그렇죠?" 그는 <전쟁>이랑 그리고 또 <평화>도 썼지요. 둘 다 최고급 작품이죠. 또 내가 틀리지 않다면 글을 써서 노벨 평화상도 탔죠."-107쪽

우주 비행사가 우주 공간에서 본다면,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이 빛나는 작은 점으로 보일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빛이 아니라, 빛으로 잘못 보기 쉬운 백열광, 수 세대에 걸쳐 어둠을 뚫고 우주 비행사의 눈까지 쏟아진 꿀 같은 성교의 광휘였다.
150년쯤 지나 그 백열광을 발한 연인들이 그 후로 죽 영원히 누워 있게 된 후, 우주 공간에서 대도시들이 보이게 될 것이다. 그 도시들은 1년 내내 빛을 발할 것이다. 더 작은 도시들도 보이기는 하겠지만, 꽤 힘들게 찾아야 할 것이다. 슈테틀은 사실상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커플들 하나하나도 눈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백열광은 수많은 사랑이 모두 합해져서 탄생한다. 부탄가스로 붙인 라이터처럼 불꽃을 튀기는 신혼부부와 십 대들, 빠르고 밝게 타오르는 남자 커플들, 수 시간에 걸쳐 은근히 다채로운 빛을 발하는 여자 커플들, 축제에서 파는 부싯돌 장난감 같은 난교 파티, 아이를 가지려는 부질없는 노력을 계속하면서, 눈길을 거둔 후에도 밝은 빛이 눈에 남기는 잔상처럼 땅 위에 자신들의 좌절된 이미지를 불태우는 커플들. -144쪽

어떤 날 밤, 어떤 장소들은 좀 더 밝다. 밸런타인 데이의 뉴욕이나 성 패트릭의 날을 맞은 더블린은 똑바로 바라보기도 힘들 지경이다. 오래된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 예루살렘은 하누카를 맞는 여드레 동안 매일 촛불처럼 빛난다. 트라킴브로드 같은 작은 마을이 우주 공간에서 보이는 날, 폴란드-우크라이나의 하늘을 성적 에너지로 충만시킬 정도의 전압이 발생하는 날은 1년 중 트라킴데이 하루뿐이다. 우리 여기 있어요. 1804년의 백열광은 150년 후 그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 여기 있어요, 살아 있다고요.-145쪽

이런 게 사랑이야. 브로드는 생각했다. 그렇지 않아? 그 사람이 없다는 게 마음 쓰이고 다른 무엇보다도 그가 없는 것이 더 싫다는 것. 함께 있는 게 좋다는 것보다 훨씬 더 심하게 말이지.-184쪽

집시 소녀는 나무에 연애편지를 새겨 넣어, 숲을 그에게 보내는 쪽지로 채웠다.-346쪽

문명화된 인간성의 절벽에서 발을 헛디뎌 순수한 동물적 광희 속으로 낙하할 때, 영원과도 같은 7초로 절정 없이 끝났던 2700번의 행위 이상을 보충했을 때, 더는 억제할 수 없는 홍수처럼 조샤에게로 넘칠 때, 방출해서 소모해 버리기보다 통제하여 활용할 수만 있었다면 독일군은 상대도 안 되었을 정도로 강력한 성적인 빛을 우주 속에 내뿜을 때, 폭탄이 결혼 침대 위에 떨어져 새신부의 떨고 있는 육체와 자신 사이에 박혀 트라킴브로드를 소멸시켜 버리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바위투성이 협곡의 바닥에 닿았을 때, 7초간의 폭격이 끝난 후 조샤의 눈물로 축축해지고 자신의 정액으로 흠뻑 젖은 베개에 머리를 내려놓았을 때, 자신이 죽은 것이 아니라 사랑에 빠졌음을 알았다.-380쪽

그 모든 일을 하고, 훨씬 더 많은 일을 하고,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일까지 했는데, 결코 나를 사랑했던 건 아니야. 그게 사랑이란다.-3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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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독서일기 범우 한국 문예 신서 79
장정일 지음 / 범우사 / 199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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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장정일의 독서일기 중 1993년 1월부터 1994년 10월까지의 것.
왠지 꾸준히 애독자(?)가 있는 것 같아서 궁금했는데 헌책방에서 발견한 김에 들고 왔다.

그런데 정말로 독서일기다.
"대구 가는 기차 속에서 000을 읽다" 로 시작되는 것도 많다.
어떤 날의 일기는 그냥 심플하게 "제주도에 오다"로 시작하고 끝난다.
독서 외의 이야기는 단순히 그것 뿐이다, 어디 가고 어디에 왔는데 무엇을 읽었다....
이 사람은 잠자고 밥먹고 똥누고 나서는 책 읽는 것 밖에 할 일이 없나 싶게 독서양이 방대하다.
단순히 "많이" 읽는 게 아니라 "깊이" 읽고 있어서 부럽다.
아는 게 많으니 쓰고 싶어 죽겠는 모습이 눈에 보여서 얄밉다.
궁금도 하다. 그는 속독을 할까, 정독을 할까. 
나는 그의 책을 화장실에 두고 하루에 하루치의 일기를 읽었다.
하룻동안 이 책만 읽으라면 지루할 텐데, 그의 일기 쓰는 템포에 맞춰 하루씩 읽다 보면 지루하지 않게 읽힌다. 

 

그런데 다 읽고 나면 돈 쓸 일이 많아진다.


1. 밀란 쿤데라의 <이별의 왈츠>, 
    쿤데라의 소설에는 엎치락뒤치락 희극적인 면모가 있다는데 그 희극적 면모가 궁금하다.
    그의 <농담>을 사놓고 다른 이에게 선물하는 바람에 한 번도 그의 책을 읽은 적이 없기도 하고. 

2. 미르치아 엘리아데의 <만툴리사 거리>,
    세라헤자다가 다시 '천일야화'를 펼치는 듯하다는데, 과연 정말?

3. 루이스 S.코저의 <살롱 카페 아카데미>,
    커피하우스와 지식사회의 발생 사이의 연관관계가 궁금하다.
    배명훈 연작소설 <타워>에서도 커피하우스(커피숍?)가 꽤 큰 지식의 축이었는데, 
    나는 그냥 다 필요없고 최고로 맛있는 커피를 파는 홍대 뒷골목의 'by 은'에서 
    헌책 무더기 쌓아놓고 읽으며 어줍짢은 지식소녀(?) 흉내라도 내고 싶다.

4. 다자이 오사무의 <귀향>,   
    얼마 전 읽은 <빙점>에서는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을 들먹거리더니 이번엔 <귀향>.
    이건 필시 다자이 오사무를 어서 읽으라는 신의 계시로 느껴지네.
    비일본인의 눈으로 보면 섬뜩하다는, 그의 단편 <참새>를 읽고 싶기도 하고. 


5. 스티븐 킹의 <스탠 바이 미>,
    얼마나 대단한 소설이길래, 죽어라 노력해도 심실풀이로 쓴 이 소설을 따라잡지 못하는 작가들더러
    넥타이 공장이나 차려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을까. 
    안 대단하기만 해 봐라. 특히 중편 <타락>과 <무서운 동심>, 두고 보겠다.
 
6. F. 사강의 <어떤 미소>,
    사춘기 소녀 도미니크가 어떻게 '나를 잃어'가며 '둘이서 하나'가 되는 사랑을 하는지 궁금하다.
    그런데 그의 연인 뤽크가 유부남이라고? 돌로 쳐 죽일 놈.

7. 김신용의 <고백>,
    <퐁네프의 다리>처럼 부랑자를 다룬 소설이라는데, 
    장정일은 이를 장 주네의 <도둑일기>, 윌리엄 케네디의 <억새인간>에 버금간다고 비교해 놓았다. 
    어머나, 다들 안 읽은 것뿐이라 비교 그래프가 머리에서 안 그려진다. 분하다. 
    그러므로 8번째와 9번째는....

8. 장 주네의 <도둑일기>

9. 윌리엄 케네디의 <억새인간>

10. 카프카의 <단식광대>,
      단순히 '굶는 것'을 즐기던 광대가 점점 '내 입에 맞는 음식이 없기 때문에' 굶는다며 허세를 부리기 시작할 때
      그 모습이 독재자와 얼마나 닮았는지 확인해 보고 싶다.

11. 이범선의 <표구된 휴지>,
      장정일은 이것을 '국보급 소설'로 꼽았다. 
     '소박한 황토색 서정의 작가'라며 이범선을 묘사했다.
      왜 이렇게 사람들은 '서정'에 빛깔을 붙이기를 좋아할까.
     '비단결 같은 서정의 눈물방울'로 묘사되는 한수산은 참 좋은데, 황토색 서정도 나는 좋아할까?
      어쨌건 이범선의 이 소설집 중 <국보>에 나오는 진로 소주병에 주목. 
      소주 온더락이라도 만들어 두고 홀짝이면서 읽어야겠다.

12.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아우라>,
      장정일은 이 소설에 '섬광문학'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부여한다.
      섬광문학... 탐미문학만큼 매혹적인 이름이다.

13. 이진우의 <적들의 사회>,
     문단의 희생자와 결혼의 희생자, 이 중 누가 더 억울한지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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