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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독서일기 ㅣ 범우 한국 문예 신서 79
장정일 지음 / 범우사 / 199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장정일의 독서일기 중 1993년 1월부터 1994년 10월까지의 것.
왠지 꾸준히 애독자(?)가 있는 것 같아서 궁금했는데 헌책방에서 발견한 김에 들고 왔다.
그런데 정말로 독서일기다.
"대구 가는 기차 속에서 000을 읽다" 로 시작되는 것도 많다.
어떤 날의 일기는 그냥 심플하게 "제주도에 오다"로 시작하고 끝난다.
독서 외의 이야기는 단순히 그것 뿐이다, 어디 가고 어디에 왔는데 무엇을 읽었다....
이 사람은 잠자고 밥먹고 똥누고 나서는 책 읽는 것 밖에 할 일이 없나 싶게 독서양이 방대하다.
단순히 "많이" 읽는 게 아니라 "깊이" 읽고 있어서 부럽다.
아는 게 많으니 쓰고 싶어 죽겠는 모습이 눈에 보여서 얄밉다.
궁금도 하다. 그는 속독을 할까, 정독을 할까.
나는 그의 책을 화장실에 두고 하루에 하루치의 일기를 읽었다.
하룻동안 이 책만 읽으라면 지루할 텐데, 그의 일기 쓰는 템포에 맞춰 하루씩 읽다 보면 지루하지 않게 읽힌다.
그런데 다 읽고 나면 돈 쓸 일이 많아진다.
1. 밀란 쿤데라의 <이별의 왈츠>,
쿤데라의 소설에는 엎치락뒤치락 희극적인 면모가 있다는데 그 희극적 면모가 궁금하다.
그의 <농담>을 사놓고 다른 이에게 선물하는 바람에 한 번도 그의 책을 읽은 적이 없기도 하고.
2. 미르치아 엘리아데의 <만툴리사 거리>,
세라헤자다가 다시 '천일야화'를 펼치는 듯하다는데, 과연 정말?
3. 루이스 S.코저의 <살롱 카페 아카데미>,
커피하우스와 지식사회의 발생 사이의 연관관계가 궁금하다.
배명훈 연작소설 <타워>에서도 커피하우스(커피숍?)가 꽤 큰 지식의 축이었는데,
나는 그냥 다 필요없고 최고로 맛있는 커피를 파는 홍대 뒷골목의 'by 은'에서
헌책 무더기 쌓아놓고 읽으며 어줍짢은 지식소녀(?) 흉내라도 내고 싶다.
4. 다자이 오사무의 <귀향>,
얼마 전 읽은 <빙점>에서는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을 들먹거리더니 이번엔 <귀향>.
이건 필시 다자이 오사무를 어서 읽으라는 신의 계시로 느껴지네.
비일본인의 눈으로 보면 섬뜩하다는, 그의 단편 <참새>를 읽고 싶기도 하고.
5. 스티븐 킹의 <스탠 바이 미>,
얼마나 대단한 소설이길래, 죽어라 노력해도 심실풀이로 쓴 이 소설을 따라잡지 못하는 작가들더러
넥타이 공장이나 차려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을까.
안 대단하기만 해 봐라. 특히 중편 <타락>과 <무서운 동심>, 두고 보겠다.
6. F. 사강의 <어떤 미소>,
사춘기 소녀 도미니크가 어떻게 '나를 잃어'가며 '둘이서 하나'가 되는 사랑을 하는지 궁금하다.
그런데 그의 연인 뤽크가 유부남이라고? 돌로 쳐 죽일 놈.
7. 김신용의 <고백>,
<퐁네프의 다리>처럼 부랑자를 다룬 소설이라는데,
장정일은 이를 장 주네의 <도둑일기>, 윌리엄 케네디의 <억새인간>에 버금간다고 비교해 놓았다.
어머나, 다들 안 읽은 것뿐이라 비교 그래프가 머리에서 안 그려진다. 분하다.
그러므로 8번째와 9번째는....
8. 장 주네의 <도둑일기>
9. 윌리엄 케네디의 <억새인간>
10. 카프카의 <단식광대>,
단순히 '굶는 것'을 즐기던 광대가 점점 '내 입에 맞는 음식이 없기 때문에' 굶는다며 허세를 부리기 시작할 때
그 모습이 독재자와 얼마나 닮았는지 확인해 보고 싶다.
11. 이범선의 <표구된 휴지>,
장정일은 이것을 '국보급 소설'로 꼽았다.
'소박한 황토색 서정의 작가'라며 이범선을 묘사했다.
왜 이렇게 사람들은 '서정'에 빛깔을 붙이기를 좋아할까.
'비단결 같은 서정의 눈물방울'로 묘사되는 한수산은 참 좋은데, 황토색 서정도 나는 좋아할까?
어쨌건 이범선의 이 소설집 중 <국보>에 나오는 진로 소주병에 주목.
소주 온더락이라도 만들어 두고 홀짝이면서 읽어야겠다.
12.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아우라>,
장정일은 이 소설에 '섬광문학'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부여한다.
섬광문학... 탐미문학만큼 매혹적인 이름이다.
13. 이진우의 <적들의 사회>,
문단의 희생자와 결혼의 희생자, 이 중 누가 더 억울한지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