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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잠 속에 비 내리는데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6년 5월
평점 :
서른살의 이외수가 종종 등장한다. 많아야 서른여덟 정도? 이제 막 서른이 될까말까한 대학 7학년생의 가난한 이외수. 이틀에 한 번 20원어치 번데기로 단백질을 보충하고, 또 이틀에 한 번 삶은 감자 20원어치로 겨우겨우 허기를 떼우던 가난뱅이. 머리엔 언제나 이가 득시글거리지만, 자신의 더러운 옷을 새하얗게 빨아준 고마운 여자에게 온마음을 줘버린 따뜻한 사내. 월세 천원짜리 골방에서 담요라도 한 장 걸치고 자는 걸 호사로 생각했던 어린(?) 이외수가 무척이나 반갑다. 평소에 그의 얼음밥 이론에 깊이 공감하고 있던 터라 빈티가 뚝뚝 묻어나오는 그의 글이 존경스럽다. 지렁이, 콩나물, 도라지에서조차 글을 뽑아내는 재주가 경탄스럽다.
마누라가 이쁘면 처가집 말뚝에도 절을 한다던데, 나는 이외수가 좋으니 그의 친구 최돈선의 책에도 넙죽 절을 해야겠다. 한 가지 아쉬운 건, 구판을 구하기가 힘들다는 것. 헌책방에서라도 꼭 구해야겠다. 책의 주인이 밑줄을 그었던 흔적이 남은 책이라면 더욱 좋겠다.
마음에 들었던 구절 몇 개.
1. 비는 당신이 고등학교 시절 한 번도 말 붙이지 못하고 애태우던 여자애의 음성. 아니면 당신이 밤을 새워 쓰던 편지의 활자들이 이제야 다시 그대 주변으로 돌아와 떨어지는 소리다.
2. 두보가 말했던가. 강물이 푸르니 새 더욱 희어 보인다고.
3. 그 중에서도 겨울에 헤어지기가 가장 가슴 아프고 어려웠었다. 만 병의 독주를 마셔도 그리움은 지워지지 않고 카랑카랑한 하늘에 박혀 있는 별들처럼 더욱 선명해져서 으스스 몸서리가 쳐질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