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농담
박완서 지음 / 실천문학사 / 2000년 10월
구판절판


확실하게 고칠 수 있는 병으로 입원한 환자는 건강한 사람보다 더 행복해 보인다.-96쪽

내가 좋아하는 어느 불문학자의 글에서 읽은 건데 불란서 사람들은 해가 지고 사물의 윤곽이 흐려질 무렵을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이라고 한대. 멋있지? 집에서 기르는 친숙한 개가 늑대처럼 낯설어 보이는 섬뜩한 시간이라는 뜻이라나 봐. 나는 그 반대야. 낯설고 적대적이던 사물들이 거짓말처럼 부드럽고 친숙해지는 게 바로 이 시간이야. 그렇게 반대로 생각해도 나는 그 말이 좋아.-97쪽

"...너한테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의사가 환자한테 바른말을 못하는 고민에 대해서 넌 어떻게 생각하니? 이를테면 조기 발견 못한 암으로 시한부인 환자에게 외국 같으면 당연히 당사자에게 알릴 것을 우리는 보호자에게 먼저 통고를 하고 보호자는 거의가 다 환자에게는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하고...... 다들 왜 그렇게 속이려 드는지 모르겠어. 그것도 사랑의 이름으로. 생각해 봐. 사람이란 거의 다 속아 사는 거 아니니? 사랑에 속고, 시대에 속고, 이상에 속고...... 일생 속아 산 것도 분한데 죽을 때까지 기만을 당해야 옳겠냐?..."-141쪽

전혀 살릴 가망이 없다고 말하는 명의보다 책임지고 살려놓겠다는 돌팔이를 더 믿고 싶어하는 부정(父情)의 진정성을 “G지 않고 어쩔 것인가.-148쪽

"찢어지는 명함이야."
"무슨 뜻이야?"
"요샌 안 찢어지는 질긴 명함도 많잖아. 생각나면 한 번 들러. 찢어버리고 싶어도 할 수 없구."-284쪽

"야, 의학적으로 말구, 정서적 문화적으루다 말야. 가족이나 친척, 친구와의 관계가 백인들보다 흉허물이 없고 끈끈하기 때문이란 생각 안 드니. 한방에 얼마든지 끼어 잘 수 있잖아. 방이 하나밖에 없는 집에서도 모처럼 집에 온 손님 날 저물면 으레 자고 가라고 붙들 수 있는 배짱이 어디서 나왔겠냐. 한방에서 여러 식구가 끼어 잘 수 있는 문화에서 나온 것 같지 않니?"-2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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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초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8
한수산 지음 / 민음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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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먹먹할 정도로 아름다운 책이다.

유용주가 그의 산문집에서 "비단결 같은 서정의 눈물방울"이라고 찬사를 했던 감성의 작가 한수산의 부초. 꼭 읽어보리라 체크해뒀는데, 다자이 오사무의 <여자의 결투>를 읽고 나니 맨 뒤에 한수산의 취재일기가 들어있다. 다자이의 흔적을 좇아 이리저리 헤매는 한수산의 모습이 어쩐지 부초를 연상시키더라니. 괄호 안에 한자가 써 있는 것도 아니어서 처음엔 부초가 뭔가 했는데 책 아래 영어로 써 있는 걸 보고야 알았다. 'Floating weeds'. 이렇게 완벽한 제목이 또 있을까. 짧게는 열흘에서 길게는 열닷새마다 한 번씩 이리저리 떠다녀야 하는 서커스단원들의 모습이 이렇게 완벽하게 표현될 수 있을까. 그런데 다 읽고 보니 부초는 서커스단원들의 모습뿐만이 아니었다. 우리네 모습도 부초, 그 자체다.

갈보가 서커스를 보러 오면 갈보들이 구경꾼이지만, 서커스단원들이 갈보집에 가면 서커스단원들이 구경꾼이다. 그들은 서로가 구경꾼이 되기도 하고 곡예사가 되기도 한다. "손님이 따로 없다 뿐이지 분 바르고 옷 갈아입고 재주 피며 살기는 마찬가지"다. 서커스단 천막 안에만 무대가 있는 게 아니다. 하늘이 천막이고 발을 붙이면 그곳이 무대다. 줄 타다 떨어져 죽으나, 공 굴리다 깔려 죽으나, 교통사고로 죽으나, 과로해서 죽으나, 그게 다 마찬가지였던 거다. 우리는 서커스단원들을 보며 '그래도 내가 걔들 처지보단 낫네'라며 자위할지 모르지만, 내일은 내가 그들의 곡예사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왜 모르고 살까. 떠돌고 또 떠돌지만 인생의 진실을 먼저 알아차린 건 그들이니, 그들이 인생의 선배다.

문장 하나하나가 수려한 건 이루 말할 수 없다. 일부러 눈물을 빼는 것 같진 않은데 읽다 보면 눈물이 난다. 특히 내 눈물은 '개새끼'라는 단어에서 최고조에 달했다. 통 굴리는 여자의 아들 '석이'의 대사다. 

"나도 다 알지만 따라가는 거야. 엄마가 가라니깐 공부하러 가는 거야. 이담에 엄마 찾으러 올 거야. 꼭 그래야 한대. 안 그러면 개새끼래, 광호 형이 그랬어."

'엄마 없는 하늘 아래'나 '엄마 찾아 삼만리'가 이보다 더 아릿할까. 가슴이 저며서 읽고 읽고 또 읽었다. 태어날 때부터 아빠 없이 엄마랑 서커스단에서 자라서 세상의 쓴물을 다 맛본 일곱살 어린애가 '개새끼'라는데, 그 버릇없는 말투가 그 어떤 최루성 영화보다 더 가슴을 적셔온다.

하명과 지혜의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도, 난쟁이 병신 칠룡이의 효심도, 수전증이 있는 마술사 윤재의 죽음도, 그 어느 것 하나 슬프지 않은 게 없다. 서정적인 문체가 그 슬픔을 억누르는 듯 하면서도 결국엔 폭발하게 만드는 묘한 힘을 가졌다. 문학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가 이런 거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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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초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8
한수산 지음 / 민음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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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이 떨어져내리며 한순간에 허옇게 드러난 잿빛 하늘이 그의 앞에 펼쳐져 있었다.
"어따. 그러고 보니 하늘 한번 넓네."
멀리 봄빛이 스민 하늘, 잘 갈린 칼날처럼 푸른빛이 돋아나는 겨울 하늘을 바라보는 덕보의 눈이 가느다랗게 좁아들어간다. 하늘이 저런 빛일 땐 고향에서 두엄을 내곤 했는데...... 보리밭에도, 비탈진 고추밭 자리에도. -18쪽

"참, 아편하던 사람이 그걸 안 하면 몸이 열네 군데가 아프다면서요?"-182쪽

"엄마는 어쩌고. 난 아무보고도 어머니 안 할 거다."
"어머니라고 해야 한다. 난 엄마고 그분은 어머니다. 그래야 잘난 남자 돼."
"그럼 엄마가 둘이야? 훌륭한 사람은 엄마가 둘이래야 돼?"
"그럼, 그럼."
"거짓말 마, 나도 다 들었어. 광호 형이 그러는데 난 거기 가면 맨날 얻어맞는대. 나도 다 안단 말야."
"엄마 말을 들어야지. 광호가 그까짓 게 뭘 아니?"
"나도 다 알지만 따라가는 거야. 엄마가 가라니깐 공부하러 가는 거야. 이담에 엄마 찾으러 꼭 올 거야. 꼭 그래야 한대. 안 그러면 개새끼래, 광호 형이 그랬어."-223쪽

그렇다. 하명은 벌떡 일어섰다. 아저씨도 칠룡이도 지혜도...... 우리는 손님들 앞에서 관객이었다. 그렇지만 우릴 구경하던 손님들도 천막을 나가면 거기선 곡예사야.-284쪽

칠룡아, 네가 피에로 하는 걸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 줄 아냐. 가만히 보면 단체에 들어와서 처음 무대에 설 때엔 누구나 피에로부터 시작해, 그렇지? 그런데, 늙어서 재주 못하게 될 때 곡예사는 또 피에로를 하더구나. 이제 생각해 보면, 우리 한 세상 왔다 가는 것도 손님들이 실없이 웃으며 온갖 바보짓이나 골라하는 네 꼴을 보고 앉았다가 옷 털고 돌아가는 거나 마찬가지가 아니겠냐.-311쪽

"난 우리만 무대 위에 있고 남들은 다 구경꾼이라고 생각했었지. 그래서 외로웠던 거야. 그건 잘못이야. 그게 아니야. 갈보가 구경오면 그게 구경꾼이지만 우리가 갈보집에 가면 그땐 우리가 구경꾼이잖아. 난 이제 알 수 있을 것 같아. 사람들이란 저마다 있는 힘을 다해서 살아간다는 거야. 못난 놈도 제 딴에는 자기가 가진 거 남김없이 다 털어서 살고 있다는 걸 이제야 알겠어. 그래...... 이 세상바닥도 써커스바닥이나 똑같아. 손님이 따로없다 뿐이지 분 바르고 옷 갈아입고 재주 피며 살기는 마찬가지란 생각이야. 어디로 가게 될지 아직은 정처가 없다만......"-312쪽

"어디엘 가 있든 내가 디디고 있는 땅이 무대가 아니겠어. 하늘이 천막이지. 시퍼렇게 살아 있는 목숨 가지고 어디든 발을 붙여 볼란다. 어느 동네든 실수해서 떨어지면 죽고 다치기는 매일반일 테니까."-312쪽

"호랑나빌 보면 그해 좋을 징조라던데, 올해 처음 호랑나비를 봤네."-33쪽

사라져가는 것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의 얼굴이 아니라 뒷모습만을 보았기 때문이리라.-100쪽

"아저씬 고향이 함경도라 그러셨지요?"
"두만강변이지."
"그런데도 아저씬 어떻게 이북 사투리를 전연 안 쓰시데요."
"이 사람아, 열다섯에 집 나와서 만주땅부터 팔도강산 안 돌아다닌 데가 없는데 사투리가 입에 붙어 있겠나."
"허긴 그럴 법도 하네요."
"그런데 말일세 이사한 건 사람의 입맛이라는 거야. 말은 다 잊어버리는데도 입맛은 남아 있거든. 그쪽에선 한겨울이면 동치미에 냉면을 말아먹는데 그 맛을 이 나이가 되도록 잊질 못하니 희한한 일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보면 사람 사는 이치라는 것도 참 묘한 거야."-120쪽

"지혜가 다칠 때 전 깨달았어요. 천막 속의 우리랑 구경하는 남들이랑 어떻게 다른 건지 알 수 있었어요. 우리는 죽어가면서라도 곡예를 보여주어야 하는 이 바닥에서 한 걸음도 물러설 수가 없지만 그렇지만 저들은 우리를 바라보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모두들 천막을 떠나 사회로 나가고 싶어 하지. 그것도 네 말처럼 결국 구경하는 쪽에 앉고 싶어서야."
"곡예사라는 게 뭡니까. 사실 줄 위에서 사람은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그게 원칙이에요. 그런데 이건 구경꾼이 가진 원칙이죠. 그러나 줄 위에서도 사람은 떨어지지 않는다는 거 이건 곡예사의 진실입니다. 곡예사는 몸으로 이 가능과 불가능을 뛰어넘어야 하나 봐요."-141~1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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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결투 - 일본 현대문학 대표작가 에센스 소설
다자이 오사무 지음, 노재명 옮김 / 하늘연못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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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무릇 소설이라는 게 작가의 허구적 창작물이거늘, 다자이의 소설에서는 아무리 안 그러려고 해도 절벽 위의 그가 떠오른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나에겐 절벽 위에서 정부와 함께 바다 속으로 뛰어드는 그의 모습만이 선연하다. 첨벙, 첨벙, 첨벙, 첨벙.... 네 번의 자살 시도 끝에 가까스로 죽음에 성공한 다자이. 그건 죽음에 대한 '성공'일까, 삶에 대한 '실패'일까. 난 아무래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래서 그의 소설이 더 각별하게 다가오는 건 어쩔 수 없다. 후광효과 한 번 확실하다.

책에 나온 다섯 개의 소설 중 <광대의 절규>엔 실제로 여자와 함께 물에 뛰어들었다가 실패(삶에는 성공)한 그의 모습이 보인다. 요양원에서 호기롭게 친구들과 웃고 떠들지만, 그게 더 쓸쓸해 뵌다.

"안심이 되더군. 지금 바다로 뛰어들면 어떤 것도 문제될리가 없었지. 빚도 학업도 고향도 후회도 마르크시즘도. 그리고 친구도 숲도 꽃도 이제 아무래도 좋은 거였지. 그걸 깨달았을 때 나는 저 바위 위에서 웃었다. 안심이 되어서 말야."

그런 자조적인 태도는 그가 '바다로 막 흘러들어가려는 강물의 상태'였기 때문이리라. 장편소설 <쓰가루>의 다음 구절은 그 나이 때의 다자이 모습을 그대로 투영해 준다.

"강이라는 것은 바다로 흘러들기 직전에 기묘하게도 주저하는 모습을 보인다. 마치 역류라도 하려는 듯이 물의 흐름이 둔해진다. 나는 강물의 느린 흐름을 바라보며 방심했다. 다른 비유를 들어 말한다면 내 청춘도 강에서 바다로 흘러들기 직전이었다."

단편 <걸식 학생>에서는 또 이렇게 외쳐댄다. "천 개의 지식보다도 하나의 행동!"

그가 바다 위에 몸을 던진 건 천 개의 지식보다도 더 중대한 하나의 행동이었을까? 아아, 시종일관 우울해 미치겠다. 아무리 안 그러려고 해도 다자이의 죽음만 자꾸 더 강렬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아무리 '천 개의 지식보다 하나의 행동'이라 해도 차마 죽음이라는 행동을 따라할 수 없는 현실 속의 나는, 그저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을 찾아 여행이라도 해봐야겠다고 다짐한다. 나는 아직 강물일까, 벌써 바다일까, 아니면 다자이처럼 강물에서 바다로 흘러들기 직전일까.

기어이 그에게서 옮은 우울함은 책 마지막에 소설가 한수산이 쓴 <내 취재노트 속의 다자이 오사무>에 이르러 절정의 아름다움이 되고 말았다. 슬픔과 아름다움은 상통한다더니, 그 말 맞긴 한가보다.

마침, 얼마 전 유용주가 자신의 산문집에서 한수산의 <부초>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걸 보고, 인터넷으로 그의 책을 주문해 놓은 참이었다. 한 달 전만 해도 한수산의 존재조차 몰랐었는데, 이렇게 다자이의 소설에서도 그의 묵직함을 느끼다니, 왠지 기분 좋은 우연이다. 한수산은 일본에서 다자이의 흔적을 찾는 여행을 한다. 마을 유지였던 다자이의 커다란 집이, 한수산이 찾아갔을 때는 '사양관'이라는 여관으로 변모했던 모양이다. 그 여관엔 다자이의 유년시절과 한숨과 아름다움과, 그리고 죽음의 그림자가 흔적으로 남아 있을 터. 하지만 지금은 문학박물관으로 용도변경했다고 하니, 다자이와 다른 시대 같은 공간에서 잠이 드는 호사는 포기해야겠다. 

아, 한수산도 궁금해했던 건데 나도 궁금한 것 한 가지. 일본의 독자들에게 다자이는 애정과 경멸을 함께 받는다던데 정말일까? 다자이 오사무를 좋아하면서 창피해했다는, 한수산이 만난 여자배우처럼? 한 다리 건너 아는 재일교포한테 건너건너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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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결투 - 일본 현대문학 대표작가 에센스 소설
다자이 오사무 지음, 노재명 옮김 / 하늘연못 / 2005년 7월
절판


작자가 피로할 때는 작품 묘사 역시 사람을 꾸중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화를 심하게 내기도 합니다. 이는 신랄한 묘사로 이어집니다. <여자의 결투>-23쪽

배를 타고 고향을 떠나는 이주민들에게 목적지인 타향이 갑자기 두려워지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알지도 못하는 타향에 가기보다는 고향 바다에 몸을 던지는 경우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여자의 결투>-47쪽

"존경한다면 안심하고 어리광을 부릴 수 있다" <여자의 결투>-69쪽

19세기 파리의 문인들 사이에는 우둔한 작가들을 일컬어서 '날씨거사'라고 부르며 경멸하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그 가엾고도 어리석은 작가는 살롱에서 쓸 만한 말은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날씨에 관한 몇 마디 말만을 나눌 뿐이라는 의미에서 이런 명칭이 생겼을 것이다. <걸식 학생>-73쪽

"바이런은 수영을 하고 있을 때에는 자신이 절름발이라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좋았다고 하죠. 그래서 그는 물 속에 있는 순간을 좋아했던 거지요. 정말로 물 속에서는 신발은 필요하지 않죠. 윗도리도 불필요해. 빈부귀천의 구분이 없는 것이죠." <걸식 학생>-85쪽

"천 개의 지식보다도 하나의 행동!" <걸식 학생>-98쪽

아아! 작가는 자신의 모습을 전부 드러내서는 안 된다. 그건 작가의 패배를 의미한다. 아름다운 감정으로 작가들은 나쁜 문학을 만든다. 나는 세 번 이 말을 반복한다. 그리고 납득한다. <광대의 절규>-224쪽

강이라는 것은 바다로 흘러들기 직전에 기묘하게도 주저하는 모습을 보인다. 마치 역류라도 하려는 듯이 물의 흐름이 둔해진다. 나는 강물의 느린 흐름을 바라보며 방심했다. 다른 비유를 들어 말한다면 내 청춘도 강에서 바다로 흘러들기 직전이었다. <쓰가루>-241쪽

"전쟁터에서 가장 즐거웠던 일은 무엇이던가?"
"아아 그건 배급 맥주를 컵에 따라 한잔 들이킬 때입니다. 조금씩 들이키다가 도중에 컵을 입술에서 떼어내 잠시 여유를 취하려고 했습니다만, 아무리 해도 컵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떤 방법을 써도 컵을 입술에서 떼어낼 수 없었습니다." <쓰가루>-260쪽

"언니와 동생, 자매가 있었다지."
나는 문득 옛날 이야기가 생각났다. 언니와 동생이 어머니로부터 같은 분량의 솔방울을 받았다고 한다. 그걸로 밥을 지으라는 어머니의 명령이 주어졌다. 신중한 성격의 동생은 솔방울을 하나씩 아궁이에 집어넣으면서 불을 피웠다. 결국 동생은 된장국은커녕 밥도 지을 수가 없었다. 언니는 과감한 성격이었다. 어머니가 준 솔방울을 아궁이에 한번에 넣고 불을 지피자 쉽게 밥을 지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나중에 솔방울은 숯불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그 불로 된장국까지 만들 수가 있었다. <쓰가루>-3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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