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하게 고칠 수 있는 병으로 입원한 환자는 건강한 사람보다 더 행복해 보인다.-96쪽
내가 좋아하는 어느 불문학자의 글에서 읽은 건데 불란서 사람들은 해가 지고 사물의 윤곽이 흐려질 무렵을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이라고 한대. 멋있지? 집에서 기르는 친숙한 개가 늑대처럼 낯설어 보이는 섬뜩한 시간이라는 뜻이라나 봐. 나는 그 반대야. 낯설고 적대적이던 사물들이 거짓말처럼 부드럽고 친숙해지는 게 바로 이 시간이야. 그렇게 반대로 생각해도 나는 그 말이 좋아.-97쪽
"...너한테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의사가 환자한테 바른말을 못하는 고민에 대해서 넌 어떻게 생각하니? 이를테면 조기 발견 못한 암으로 시한부인 환자에게 외국 같으면 당연히 당사자에게 알릴 것을 우리는 보호자에게 먼저 통고를 하고 보호자는 거의가 다 환자에게는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하고...... 다들 왜 그렇게 속이려 드는지 모르겠어. 그것도 사랑의 이름으로. 생각해 봐. 사람이란 거의 다 속아 사는 거 아니니? 사랑에 속고, 시대에 속고, 이상에 속고...... 일생 속아 산 것도 분한데 죽을 때까지 기만을 당해야 옳겠냐?..."-141쪽
전혀 살릴 가망이 없다고 말하는 명의보다 책임지고 살려놓겠다는 돌팔이를 더 믿고 싶어하는 부정(父情)의 진정성을 G지 않고 어쩔 것인가.-148쪽
"찢어지는 명함이야." "무슨 뜻이야?" "요샌 안 찢어지는 질긴 명함도 많잖아. 생각나면 한 번 들러. 찢어버리고 싶어도 할 수 없구."-284쪽
"야, 의학적으로 말구, 정서적 문화적으루다 말야. 가족이나 친척, 친구와의 관계가 백인들보다 흉허물이 없고 끈끈하기 때문이란 생각 안 드니. 한방에 얼마든지 끼어 잘 수 있잖아. 방이 하나밖에 없는 집에서도 모처럼 집에 온 손님 날 저물면 으레 자고 가라고 붙들 수 있는 배짱이 어디서 나왔겠냐. 한방에서 여러 식구가 끼어 잘 수 있는 문화에서 나온 것 같지 않니?"-2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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