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인공적인 색이 전혀 없었잖아? 자연에 있는 색밖에 몰랐으니까 꽃이라든지 초록의 색이 훨씬 선명하게 느껴졌겠지. 다쳤을 때 흘리는 피도 지금보다 훨씬 강렬하게 느껴졌을 거야..."-10쪽
진짜로 보이기만 하면 돼. 진짜가 진짜로 보이느냐 하면 그건 그렇지 않거든. 가부키에서 쓰는 칼이나 기모노도 과장되어 있지. 무대에서 봤을 때 진짜처럼 보이면 되는 거야. 그러고 보니 친구 중에 모형을 제작하는 녀석이 있는데, 프라모델도 데포르메된 거랃라. 진짜 차를 정확하게 축소해서 만들어도 차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거야. 우리가 보는 차는 앞이나 옆에서 보는 차잖니? 그런데 프라모델을 만들 때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형태가 되지. 실제로 하늘에서 차를 내려다보면, 우리가 평소에 보고 차라고 생각하는 모습하고 다르게 보이거든.그래서 평소에 보는 이미지에 가깝게 차체 높이와 길이 비율을 바꾼다더라.-103쪽
여행의 좋은 점은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 하루가 평소의 어수선하고 분주한 그 하루와 같은 24시간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게다가 예전에 살던 동네에는 또 독특한 시간이 흐르게 마련이다. 기억 속에 있는 시간의 흐름으로 차츰 끌려들어간다.-234쪽
뉴욕에서 살거나 혹은 뉴욕을 방문한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오스터도 뉴욕을 무작정 걷는 것에 대해 애정어린 감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 소설에서 그는 "뉴욕은 무궁무진한 공간, 끝없이 발길을 옮겨야 하는 미로다"라고 표현한다.-48쪽
그러나 바야흐로 시간은 흘렀다. 이제는 일생일대의 운명적인 사랑이 배신을 당한다 해도, 일단 먹을 거 다 먹고 잘 거 다 자야 하는 그런 무기력의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56쪽
바그너저 자신도 가끔 망상에 빠질 때가 있지만,그런 충동은 느껴보지 못했습니다.숲과 들을 바라봐도 이내 싫증이 나고새의 날개 따위도 부러울 것 같지 않네요.하지만 이 책 저 책, 이 쪽 저 쪽 읽어가는정신의 즐거움은 얼마나 다른지요!긴 겨울밤이 은혜롭고 아름다우며,축복받은 생기가 온몸을 따사롭게 해줍니다.아아! 그때 귀한 양피지 책이라도 펼쳐놓으면천국이 온통 제게로 내려온 기분이랍니다.-68쪽
세이타로는 별난 욕심이 있는 아이다. 매년 많은 군고구마 장수들이 일제히 빙수 장수로 바뀌는 초여름이면 가장 먼저 달려가서 땀도 안 나는데 아이스크림을 사먹는다. 아이스크림이 없을 때는 대신 빙수라도 사먹었다. 그리고 나서 의기양양하게 돌아온다.-35쪽
자신의 흐릿한 의식을 뚜렷한 의식에 호소하여 동시에 돌이켜보려하는 것은 제임스가 말한 바와 같이 어둠을 파악하기 위해 촛불을 켜거나 팽이의 운동을 관찰하기 위해 돌고 있는 팽이를 멈춰 세우는 것과 같은 것으로, 그렇게 되면 평생 잠들 수 없게 되는 것이다.-75쪽
'나는 난파한 배의 조각들이 바다 위에 떠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파편조각들 중 어떤 것들은 한데 모여 한참 동안 한곳에 몰려 있다. 그러나 곧 폭풍이 와서 그들을 사방으로 흩어지게 한다. 그러면 이제 이 세상에서 서로 만나는일은 없을 것이다. 인간의 운명도 그와 같은 것이다. 다만 거대한 난파의 광경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을 뿐이다.'-25쪽
오오, 차라리 이 지구에 감춰진 저 두려운 보복을 몰랐었더라면! 사랑을 갖고 나면 영원히 고독하게 되나니! 한 번 믿은 다음에 영원히 절망해야 하다니! 이 무서운 고문에 비하면 인간의 손으로 만든 어떠한 고문의 도구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77쪽
"왜냐구요? 마리아, 어린 아이에게 왜 태어났는지 물어 보십시오. 꽃에게 왜 피어 있는지 물어 보십시오. 태양에게 왜 빛나는지 물어보십시오.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사랑하는 겁니다..."-1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