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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 듯 저물지 않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7년 12월
평점 :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은 늘 기대를 하게 된다. 지루한 겨울을 잊을 수 있게 만들어 줄 소설, 이번엔 어떤 이야기들로 책읽는 즐거움을 줄까?
독특하다. 이야기의 시작은 주인공 미노루가 읽고 있는 소설이다. 문장이 중간에서 뚝 끊어져 이게 뭔가 싶었는데 알고보니 책을 읽던 도중에 누군가 찾아오거나 해서 책읽기가 중단된 상태! 그가 읽고 있는 소설은 러시아첩보스릴러! 책을 읽고 있는 미노루는 한량의 중년 남자로 아이도 있고 아이스크림가게도 하고 있지만 책속에 빠져 현실의 삶을 등한시하는 느낌을 준다. 동시에 진행되는 두개의 소설이 어느개 진짜인지 오락가락하게 만드는 딱 그 상태라고 해야겠다.
일본 소설이나 외국소설들은 등장인물들이 많으면 이름들이 익숙치가 않아 이야기의 끈을 자꾸 놓치게 된다. 이번 소설에는 러시아 소설속 캐릭터의 이름들까지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그런데 이야기를 읽다보면 작가가 붙인 이름들보다는 내맘대로 캐릭터들을 기억하게 되고 나름 이야기를 퍼즐맞추듯 맞춰가면서 읽어가게 되는 묘미가 있다. 어떻게 보면 현실의 삶에 적당히 대처하고 되는대로 편하게만 살아가려 드는 책읽기에 푹빠져 있는 미노루라는 캐릭터가 남얘기 같지가 않아서 자꾸 빠져들게 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일상을 살아가는 일보다 책읽기에 더 빠져 있는 이 미노루라는 캐릭터에 동화되어 그가 읽는 러시아 첩보스릴러 이야기에 더 집중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에쿠니 가오리는 그런걸 노리고 이런 소설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책읽는 일에 더 빠져있는 어느 독자를 주인공으로 삼아 소설과 소설을 병행시켜 그 경계를 허물어 버리려는 작전! 소설과 현실을 모호하게 살아가는 미노루의 삶속에 독자를 끌어 들이는 작전!
소설속에는 역시나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속에 등장하는 친구, 형제, 부부, 아이, 이웃등등! 그들과 미노루의 일상이 지금 나의 삶과 한 공간인것 같은 그런 느낌을 주는 소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