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학창 시절에 한번 듣고는 그 노래가 어찌나 처량맞고 구슬프던지 내내 잊지 못하고 기억하던 노래가 있다. ‘막막한 광야를 달리는 인생아 너는 무엇을 찾으려 왔느냐!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 라는 노래인데 시작부터 끝까지 낮게 읊조리며 부르던 그 멜로디와 가사가 어찌나 가슴에 스르륵 스며들던지! 김훈의 신작 소설 ‘공터에서‘ 를 읽다보니 그 노래가 다시 생각이 났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마동수. 피난민으로 이곳 저곳을 떠돌며 살던 그의 삶은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낳고도 내내 부평초 같이 살다가 결국 병에 걸려 죽게 된다. 그의 장남 마장세는 월남 파병에서 훈장을 받지만 사람을 죽게 했다는 죄책감에 훈장을 숨긴채 타국에서 삶의 터전을 잡는다. 그의 차남 마차세가 마침 군에서 휴가를 나오고 병든 아버지가 잠든 사이 애인을 만나러 외출을 나갔다가 임종을 지켜보지 못하고 만다.




아버지 마동수의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암흑같은 시기를 보낸 시절의 이야기가 펼쳐지게 되고 피난길에 내려와 마동수를 만나게 되는 어머니의 이야기와 장남 마장세와 마차세의 이야기가 하나둘 번갈아 등장하게 되는데 마치 일가족의 삶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가 썰물처럼 빠져 나가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는다. 결코 행복했던 적은 한번도 없었던 것처럼 그들은 대책없고 알길없는 생이라는 파도에 어쩜 그렇게 이리 저리 휩쓸리며 살아가는지...




20세기 한국 현대사를 살아낸 아버지와 아들들이 모두 이들 같지는 않겠지만 어쩐지 그들의 삶의 무게는 나 몰라라 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닌양 내 안에 깊숙히 파고든다. 김훈의 소설은 사실 그저 하하호호 하며 읽을 수 있는 글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굴곡진 그들의 삶을 이리도 적나라하고 생생하게 풀어 놓을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된다. 마치 자신의 가족사를 풀어 놓는 것처럼!




책 표지를 벗기니 검은 표지가 등장해 소설의 무게감을 더하는 느낌이다. 20세기의 세상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낸 모든 사람들에게 평안과 행복이 깃들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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