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조건없이 받게 된 돈의 정체를 캐다.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 ㅣ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5년 6월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은 모방범을 처음 만나면서 푹 빠지게 되었는데 

그녀의 사회문제를 미스터리 추리소설로 만들어 내는 방식이 참 탁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우리말 제목이 영 귀에 와닿지가 않아서 원제를 보니 '베드로의 장례'라는 제목이다. 

물론 '베드로의 장례'도 그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하니 우리말 제목이나 원제나 그게 그거랄까?

그러니 그냥 소설에나 치중해서 읽자 하고 덤벼든 860여페이지의 대장정이 생각외로 금새 끝난다. 이런 무더위에 시간 떼우기 정말 좋은 책이다. 

스기무라, 그는 대기업의 막내딸과 결혼을 하고 장인의 회사에 말단사원으로 일하게 된다. 

대기업의 사위라 하면 뭔가 한가닥 거머쥘거 같지만 스기무라는 그냥 남들 눈치를 받는 일개 사원! 편집장과 함께 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버스 납치사건에 휘말리게 되는데 버스를 납치한 사람은 허약해 보이는 노인이지만 그가 든 권총의 위력 앞에 모두 속수무책! 하지만 그는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들과 여러가지 대화를 나누면서 위자료 이야기를 꺼내게 되고 사람들은 그가 범죄자라는 사실을 잊은듯 그의 계략에 말려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버스 기사와 다리가 불편한 할머니를 내려준 범인의 요구조건은 어떤 세사람을 불러 오는것!

경찰특공대의 투입으로 버스 납치사건은 범인의 자살로 끝이 나고 사건이 종결되는듯 하지만

얼마후 버스기사를 비롯해 그당시 피해자였던 사람들에게는 정말로 얼마간의 위자료가 배달이 된다. 스기무라와 피해자 일당들은 다시 한자리에 모여 이 돈을 받을것인지 말것인지를 갈등하게 되고 그 노인의 진짜 정체와 그가 불러달라 했던 세사람의 배후를 캐기 시작하는데 사람들에게 사기행각을 벌여 돈을 받아 챙기는 다단계회사가 얽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피라미드, 다단계라고 하면 우리나라에도 만연한적이 있어 누구나 한번쯤은 접한적이 있을듯 하다. 어떤 힘의 작용때문인지 한번 빠져들게 되면 헤어나오지 못하고 사기를 치게 되는 그 사람들! 하지만 결국 자신의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에게 피해를 입히게 되고 말았다는 자책감에 어떻게든 범죄행위를 세상에 까발리고 다만 얼마라도 보상을 하고 죽으려 했던 범인의 실상에 사기판매가 우리의 삶속에 얼마나 뿌리깊게 침투해 있는지를 절실히 깨닫게 되는 이야기다. 

스기무라가 범인의 행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고 알게 되는 갖가지 사실들과 버스인질이 되어야했던 사람들이 사건 이후 돈을 받고 갈등하게 되는 이야기가 무척 생생하게 전해지는데다 스기무라의 개인적인 방황을 깨닫게 되는 등 꽤나 장황한 이야기들이 펼쳐져 잘못하면 책을 읽다가 길을 잃을수도 있지만 이 사회의 여러 다양한 구성원들을 만나게 되는 흥미진진한 소설임에는 틀림이 없다. 

사실 베드로는 예수의 수제자지만 단 한번 예수를 부인하고 목숨을 건지게 된 일로 인해 결국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음에 이르는 방법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려 했다고 한다. 베드로의 장례와 소설의 연결고리를 찾아보려해도 뭔가 가닥이 잘 잡히지 않지만 다단계 사기를 행하던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자살을 하거나 이 노인처럼 얼마간의 보상을 하고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자 했던 것과 닮아 있는듯도 하다. 

그런데 정말 내게 이런 아무런 조건도 없는 돈을 준다고 하면 나는 어떤 기분이 될까?

그리고 정말로 그 위자료를 받게 된다면 또 어떻게 행동하게 될까?

사건의 피해자로 받게 되는 돈이라지만 그 출처가 분명치 않은 돈을 받는다는건 찝찝하면서도 

덥석 받고 입을 싹 닦어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것도 사실이다. 

인간의 내면을 좀 더 깊게 파고 들어 나를 들여다 보게하는 미야베 미유키!

아마도 다음은 진짜 탐정이 된 스기무라가 활약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