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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세 시, 그곳으로부터 - 서울의 풍경과 오래된 집을 찾아 떠나는 예술 산보
최예선 지음, 정구원 그림 / 지식너머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요즘은 여행서들이 참 많이 쏟아져 나온다. 한가지 테마를 가지고 전국 각지를 다니는 테마도서들도 많고 또는 한 나라만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그런 여행서들도 참 많다. 그런데 이 책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옛사람들을 서울 어느 거리에서 어느 집에서 어느골목에서 그렇게 하나둘 만나고 헤어지는 이야기를 하며 그들과 함께 산보하듯 여행하게 만드는 책이다. 그래서인지 고즈넉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 그 느낌이 전혀 싫지 않다.
일년에 한번씩을 꽃구경 단풍구경을 하게 되는 창덕궁을 저자의 시선과 발길과 느낌을 따라 걷다 보면 내가 갔던 그 창덕궁이 전혀 새롭게 다가오게 된다. 오래전 창덕궁에 불이 났던 그 때의 궁궐이 재건되면서 벽화를 그리게 된 여섯화사의 일화를 그들과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끌어 내고 있어 그 시간속으로 빠져드는 느낌마저 든다. 책속의 사진은 비록 자그마하지만 이야기가 주는 느낌때문인지 오히려 아련하고 애틋한 그런 기분에 빠져들게 되는 구성이다.
건축가 구원씨의 발자취를 따라 종로를 서성이게 되는 이야기도 무척 흥미롭다. 누군가와의 약속이 어그러져 종로 일대를 걸으며 2005년 산책로가 된 청계천을 지나가며 오래전 서울 중심가를 활보하던 소설가 구보씨를 떠올리게 된다. 소설속 주인공처럼 자신 또한 이십대에 종 종 버스를 타고 서울을 종점까지 가보던 일을 떠올리며 그렇게 서울 거리를 서성거리게 된다. 그리고 구보씨를 따라 화신상회를 나와 무작정 전차를 타고 조선은행에서 내려 미쓰코시 백화점을 지나 조선은행을 끼고 히세가와 끝 경성부청을 향해 걷게 된다.
이렇듯 이 책은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들 혹은 소설속 인물까지 끌어와 지금은 이름도 낯선 옛 서울 거리를 무작정 걷게 만드는가 하면 그때의 일화를 들여주어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게다가 그시대의 인물들과 인터뷰를 하는가 하면 그때의 장소가 지금의 모습으로 변화되어 오기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주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하는듯한 느낌마저 주는 책이다.
이미 죽은이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혹자는 좀 으스스한 생각을 할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윤동주, 전혜린, 박경리, 기형도등등의 예술인들은 이미 그들의 작품속에서도 만나 오고 있던 사람들이라 낯설지가 않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삶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서울의 옛풍경을 더듬어 함께 한보를 하다 보면 그들의 생전 모습을 만나게 되기도 하고 혹은 그들이 남긴 필적이나 작품들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비록 이미 지나온 시간이지만 그들의 시간위에 그들의 공간위에 지금 우리가 서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이 책은 한 사람 한사람의 예술인들을 누군가의 발자취에 따라 만나러 간다는 기분으로 읽게 된다. 때로는 윤동주와 전혜린처럼, 때로는 기형도와 박경리처럼, 때로는 박완서와 박수근처럼 지금 내가 살아오고 살아가고 있는 이 도시를 바라다 보며 사유하고 공감하고 아파하며 서울을 옛풍경을 산책하게 되는 이 책, 그 느낌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