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러운 문체로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보게하는 [비밀정원]

비밀 정원 - 제4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혜영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10월

시대극을 볼때면 같은 시대를 살아온 사람에게는 무척 울컥하는 공감대가 형성이 되겠지만 그 시대를 전혀 모르는 지금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몹시 궁금한 생각이 든다. 박물관에 놓인 유물을 보는 기분이 드는 걸까? 혹은 너무 고리타분해서 지루해할까, 아니면 뭔가 신비로운 경험을 하듯 눈을 반짝이며 보게 될까? 어느쪽이든 지금의 아이들에게 우리는 우리의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 그런면에 있어서 이 혼불문학상 수상작인 [비밀의 정원]은 미션을 잘 수행하고 있는 소설이다. 

뭔가 굉장한 비밀을 가지고 있을것만 같은 제목의 이 소설은 애절하고 비극적인 사랑과 출생에 관한 비밀이 얽혀진 그렇고그런 이야기로 그 시대적 배경때문인지 이야기나 문체들이 옛날스럽게 여겨진다. 한 가문의 삶이 엮어져 내려오는 노관이라는 집의 배경 또한 이야기의 흐름을 무척 느리게 진행시키는데 그 공간이 주는 느낌이 왠지 참 친근하다. 노관을 중심으로 이요라는 인물이 들려주는 집안의 이야기들은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되어 지켜보는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저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인물일뿐 이야기의 중심인물이 되지는 않는다. 

한참동안 노관을 떠나 있다가 다시 돌아온 '나'가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어머니와 함께 병원을 오가며 몇마디의 말을 나누었던 아버지의 죽음, 남편과 큰 아들을 먼저 떠나 보내고 집안의 모든 사람들을 수족처럼 부리던 할머니의 죽음, 집에서 드문불출하는 어머니, 매일 열심히 천주학당엘 다니는 묘자 아주머니, 어느날 노관에 등장한 요정같은 한소녀로부터 받게 되는 편지, 그리고 한참만에 집으로 돌아온 율이 삼촌의 이야기가 차례 차례 진행이 되면서 노관의 역사속에 서서히 스며들게 되는데 역시나 관조자같은 느낌의 주인공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요정처럼 등장한 정체를 알 수 없는 테레사라는 소녀의 편지는 어딘지 참 동화스러우면서도 미스터리한 느낌을 주는데 편지가 점점 막바지에 이르게 되면서 자신의 탄생의 비밀을 들려주어 노관과 그 소녀가 어떤 관계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왠지 따로 떼어 놓아도 한편의 이야기책이 될법한 편지들이다. 자신이 잠자는 숲속의 미녀라도 되는듯이 어느 한 시점을 향해 달려가며 토해 놓은 편지를 이요는 어떤 시각으로 읽어 내려가고 있었을까? 이 소설의 독특한 점은 그런것에 대한 가타부타 이야기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저 책을 읽는 독자를 위한 첨삭처럼 쓰여진 편지라고 해야할까?

소설에서의 가장 매력적인 인물이면서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으로 비극의 주인공이 된 율 삼촌! 어떤 연유에서인지 할머니와 척을 지고 한참이나 집을 떠나 멀리 서방의 세계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율 삼촌은 역시 뭔가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자신의 서재에 틀어박혀 책을 읽는다던가 일정 시간에 차를 마시며 형수와 담소를 나눈다던가 하는 분위기가 세련된듯 하지만 어딘지 참 위태하게 여겨지는데 율삼촌을 찾아온 손교수를 통해 엄마와 율삼촌의 관계를 알게 된 이요는 결코 알은체를 하지 않는다. 마을 아낙네들에게서 듣게 되는 노관에 대한 이야기들 또한 이요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들려주기 위한 수군거림이다.

어쩌면 이 소설은 옛시대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어 '나'라는 주인공 아닌 주인공을 내세워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야기속에 푹 빠져들기보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라는 인물의 주변을 멤도는것 같은 느낌을 받는건지도,,, 마치 내가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듯이 말이다. 누군가로 부터 몰래 듣게 되는 소문과 소녀의 편지등으로 어머니와 율삼촌과의 진실을 추측해가는 과정이 참 흥미로우며 노관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려니 어디선가 한번쯤은 본 듯한 옛드라마 한편을 다시 보는듯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