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표지가 참 사랑스럽다. 연한 파스텔톤의 책 표지와 백석시인의 날리는듯한 저 머리모양새와 부드럽고 온화한 미소가 어쩜 이리도 잘 어울리는걸까? 우리가 흔히 쓰지 않은 언어로 쓰여져 잘 못알아 먹는 시지만 옛구어체로 혹은 시골스러운 문체로 쓰인 시 또한 그 못지 않게 푸근하고 정감돌고 무언가 아늑한 그리움 같은것들이 자꾸 밀려드는 느낌이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p12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의 이 시집을 대표하는 이 시 한편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낭만적인 사랑을 하는 사람인지 단번에 알 수 있다. 자신의 사랑을 한없이 내려 쌓이는 눈으로 표현을 하고 오지 않을 나타샤를 기약없이 기다리면서도 오리라고 굳게 믿고 나타샤와의 일탈을 꿈꾸면서도 세상에게는 지고 싶지 않은 그의 싱싱한 젊음과 아름다운 순정을 엿보게 되는듯 하다. 게다가 말도 아니고 망아지도 아닌 흰 당나귀를 도대체 그는 어떻게 이렇게 소박하게 자신의 시속에 앉혀 놓은 것일까?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스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 p51 '흰 바람벽이 있어' 중에서 ---


그는 정말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한채로 사랑을 하며 살았나보다. 하늘이 이 세상을 애초에 그렇게 만들었다고 합리화를 시킬 정도로 자신의 슬픔과 외로움과 쓸쓸함이 가득한 사랑을 인정받고 싶었나보다. 좁은 방안에 있으려니 차가운 물에 무랑 배추를 씻는 어머니도 떠오르고 어여쁜 사랑하는 사람도 떠오르고 어린것도 떠오르면서 온갖 그리운것들이 그의 쓸쓸한 마음을 달래주려는듯 그렇게 떠오르고 있나보다. 인간은 누구나 고독한 존재다. 내게도 흰 바람벽이 있다면 어떤 그리운 것들이 나의 쓸쓸함을 외로움을 슬픔을 달래주려 떠오르게 될까?


백석의 시를 읽다보면 한번에 술술 읽히는 시는 아니다. 우리가 익히 쓰는 용어들이 아닌 생소한 단어와 많이 다른 형태의 문체를 사용하고 있어 정말 아주 천천히 천천히 낭독해 주어야 한다. 한편 두편 시를 읽어내다 보면 어느새 그의 시가 가진 특수한 문체가 눈에 익게 되어 어느새 한편의 그림을 떠올리게 되듯 그렇게 읽어 내려가게 되는데 그것이 점 점 시를 읽는 맛을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어떤 사물이나 동물 혹은 장소에 대한 그의 시적 표현속에는 옛사람들과의 조우도 있고 한편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도 있다. 


시를 읽다보면 디퍽디퍽, 사물사물, 덕신덕신, 츠렁츠렁, 쩌락쩌락, 까알까알, 쇠리쇠리, 쌀랑쌀랑 등 그가 쓰는 이런 표현들이 참 신선하고 흥미롭게 재미나기까지 해서 자꾸 발음해보고 싶어지기도 하고 '즐거웁기도' 혹은 '맑어진다' 와 같이 우리가 흔히 쓰지 않는 표현들이 왜 이렇게나 정감이 가고 쉼표도 마침표도 없는 시가 어찌 이리도 마음을 편안하게 다독여주는것만 같은지 ...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심심한것은 무엇인가

.

.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그지없


--- p169 국수 중에서 ---


그의 시는 이처럼 살틀하고 친하고 그지없고 고담하고 소박하기 이를데 없기에 그래서 더 친근하게 여겨지는건지도 모르겠다. 시집의 뒤편에 실린 백석시인의 사진과 그의 출생과 성장 그리고 그가 사랑했던 여인에 대한 이야기는 그의 시를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어주고 남북분단으로 북에 머물러 창작활동을 중단하게 된 이야기는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금치 못하게 한다. 이제서야 그는 그의 시를 사랑해주는 나타샤를 만날 수 있게 되었는데 그는 지금 어느 하늘쯤에서  또다시 쓸쓸하고 외롭고 슬픈 마음을 다독이고 있는것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