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도 - 제3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김대현 지음 / 다산책방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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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고개를 들어 남자를 본다. 아, 세상 모든 빛깔을 모조리 녹여낸 듯 까맣고 동그란 눈은, 세상 모든 벌과 나비들이 탐하고 아낄 만큼 불그스름하고 또렷한 입술은, 세상 어떤 티끌조차도 머무르지 못할 듯 희지도 검지도 그렇다고 붉지도 않은 살굿빛 피부는,,, 여자가 , 말도 한다.' ---p13


살구빛 탱탱한 피부에 붉은 입술과 동그란 까만 눈을 가진 이 여자는 사백서른세살! 서른 세살이라고 해도 못믿을 일인데 사백하고도 서른세살이라니,,, 불현듯 자신앞에 나타나 옛말투를 쓰며 말도안되는 나이를 들먹이며 말을 걸어오는 여리디 여린 여자 앞에서 망연자실해져버린 동현은 이제 겨우 스물일곱! 400년전 이야기를 하는 홍도를 처음엔 우스개 소리로 받아들이던 동현은 점점 반신반의하는가 하면 급기야는 그런건 아무상관도 없다는듯 그냥 홍도에게 푹 빠져들어 홍도와 함께 그녀의 파란만장한 생에 동화되어간다. 동현과 함께 책을 읽는 독자들 또한 홍도의 이야기와 동현의 모습에 호기심을 갖고 빠져들게 된다. 


역사적 사실들을 마주할때면 그게 내 이야기도 아니고 너무 먼 이야기인데다 추측과 근거에 의한 애매모호한 이야기만 같아서 잘 다가오지 않는데 이렇게나 이쁘고 아리따운 여자가 몇세대를 걸쳐 살아왔던 자신의 이야기로 들려준다면 솔깃하지 않을까? 이 소설은 영생의 삶을 사는 홍도를 통해 과거의 기축옥사, 천주교박해사건, 임진왜란등의 아픈 역사를 환생과 같은 미스터리한 소재를 활용해 흥미롭게 펼쳐보이고 있다. 때마침 정여립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려했던 동현은 자신이 가진 의문들을 홍도를 통해 하나씩 풀어가고 있다. 그리고 서서히 다가오는 운명의 그림자! 마치 한편의 판타지 역사 드라마를 보는듯한 느낌마저 든다.


사람이 죽지 않고 살아가게 된다면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타의에 의해 죽고 싶어도 죽을수 없는 홍도의 삶은 한곳에 오래 정착하지도 못하는데다 때로는 남장을 해야하는등 기구하기 짝이 없다. 즐겁고 행복하게만 살수 있다면 좋겠지만 역사의 수레바퀴는 평탄한 길만 가지 않는듯 그녀의 삶 또한 매한가지! 아픈 역사와 함께 죽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홍도가 환생한 자신의 아버지를 다시 만나고, 원수와도 같았던 사람을 다시 만나고, 지금 스물일곱 영화감독 동현 앞에 나타나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홍도의 그 수많은 세월을 살아온것은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동현은 바로 수많은 역사를 앞세워 지금이라는 시간속에 서 있는 나 자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소름이 돋는다. 


'노란 빛깔에 지친 성질 급한 므은드레 무리가 하얗게 센 머리터럭(머리털)을 흩날리고, 산들바람에 들뜨인 앵도나무가 잎사귀 밑에 숨기고 숨기다 못해 나 몰라라 해버린 앵도알이 붉게 여물고, 고샅길 담장위 기와마다 저도 꽃인양 바위솔이 요리조리 피어나던 그즈음이었다.'---p21 


이 책의 특징중 하나는 지금은 쓰지 않는 구어체를 쓴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 느낌이 뒤쳐진다거나 구닥다리같지 않으며 감을 잡아 읽어야하지만 눈치껏 이해하고 읽으면 읽는 맛을 주는 글이다. 홍도의 이야기를 들을량이면 이미 오래전에 사라져버린 우리의 옛언어를 알아야한다. 므은드레, 아래아를 쓴 앵도, 개야미, 하외욤등등, 뜻을 알고보면 입에 붙어 한번쯤 발음해보고 싶어진다. 이렇듯 우리 옛 언어는 참 이쁘고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하지만 이제는 점점 사라져가는 우리 옛문체의 아름다움을 혼불문학상을 빌어 이어가려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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