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집
박완서 지음, 이철원 그림 / 열림원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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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남자네집]과 [그여자네집]을 읽으며 푸근하고 편안한 문체에 반해 버린 박완서 선생님의 새책, 정말 좋다.

하얀 바탕에 화사한 노란집이 어딘지 신비스러운 느낌마저 드는건 설레이는 기분 탓일까?

이미 작고하신지 2년이나 지나고 있건만 작가도 없이 어디서 새로운 글이 튀어 나온것일까?

박완서님 살아 생전 아치울 노란집에서 틈틈이 쓰신 글들이 노란집을 벗어나 세상으로의 소풍을 나왔다.

 

산골집이라는 이야기를 해서 서울과는 아주 먼 거리의 한적한 그런 시골을 떠올렸는데

서울과 그리 멀지 않은 자연그대로의 소박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구리시 아치울이라는 마을이란다.

나 또한 서울 도심, 성냥곽 같은 쳔편일률적인 아파트를 벗어나고 싶어 이궁리 저궁리를 하는데

의외로 가까운곳에 시골스러운 마을이 존재한다는 자체가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이제 마땅한 자리를 마련했으니 소풍 나온 노란집의 이야기에 귀기울여볼까?

 

'마나님이 툇마루에 나 앉은 것은 밖에서 나는 어떤 기척 때문이었다. 분명히 소리도 아닌 것이 냄새도 아닌 것이 불러 낸것 같은데 밖은 텅 비어 있었다. 겨우내 방 속 깊이 들어오던 햇빛이 창호지 문밖으로 밀려나면서 툇마루에서 맹렬히 꼼지락대고 있을뿐,스멀 스멀 살갗을 갈질이던 기척은 바로 저거였구나, 봄기운이었다.' ---p15

 

 

어느 시골 한적한 마을, 한가로운 시골집 마나님과 영감님의 봄 아지랭이 일렁이는 마당!

봄기운에 마나님과 영감님은 동상이몽에 젖어 있지만 그마저도 소통으로 여겨지는건 노부부의 연륜때문일까?

굴비를 혼자 다 먹어 치우고도 마나님이 왜 토라졌는지를 모르는 영감님을 그렇게 만든건 다른 누구도 아닌 마나님!

동부인하며 나들이를 가면서 뒷짐만 지고 가는 영감님 옆에서 짐을 들고 가면서도 방긋거리는 마나님이라니

문득 늘 앞쪽에서 뒷짐지고 걷는 위엄있는 아빠 뒤를 무거운 짐 들고 졸졸 따라 걷던 친정엄마의 모습이 겹쳐진다.

그래도 자식들 다 떠나보내고 한가로운 농사일에 서로 마주 앉아 막걸리를 대작하며

마나님 얼굴보고 죽기를 꿈꾸고 처량맞은 영감님이 안쓰러워 하루 더 살다 가기를 꿈구는 사랑이야기에 훈훈함을 느낀다.  

 

자라오면서 고이 간직해온 박완서님만의 추억이나 미담, 험담 할거 없이 하나하나 풀어내고 있는 노란집!

어릴적 자신에게만 미소를 보여주셨던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이제 그리움으로 쌓여가고 있고

사탕이 먹고 싶어 엄마 지갑에 손댄 이야기와 같은 작가님의 치부를 거리낌 없이 내 보이고 있다.

사춘기 시절 친구들과 로맨스 소설을 돌려가며 읽었다는 이야기는 내 이야기 같기만 하고

읽고 싶은 책이 생기면 밤을 세워가며 문학에 대한 갈증을 풀었다는 이야기에는 문학소녀였을 작가님을 그려보게 된다.

 

또한 정치 사회 문화 교육 전반에 걸친 세상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노란집!

책읽을 시간도 없는 아이들에게 책읽기를 강요하는 지금의 교육현실을 안타까이 여기고

손주들 손에 이끌려 지옥같은 어지러운 게임장속에서 벗어나 한가로운 시냇가에 발담그는 천국을 맛보게 하고

산후 우울증에 시달리며 고생한 이야기를 들으니 우리와 다르지 않은 모성을 지닌 엄마라는 동지애가 발동하다.

미처 다 마치지 못한 학교에 대한 이야기나 일제강점기와 육이오 전쟁을 동시에 겪어낸 그야말로 살아있는 역사였던 박완서님!

 

커피와 우거지를 동시에 신봉하는 내 몸의 이중성이 가소롭기도 하지만 대견하기도 하다. 그만하면 새천년이 나에게 허락한 시간도 허위단심 적응할 수 있을거 같아서이다 내가 불안해하는건 새 천년이 안라 내 몸의 칠십대였던 것이다. 시간, 지나는 형체도 마디도 없으면서 우리 몸엔 어김없이 마디를 긋고 지나가는구나, ---p193

 

씨도 뿌리지 않았는데도 봄이면 온갖 꽃들이 앞다투어 피는 노란집의 화단을 바라보며

애물단지가 되었다가 파란 하늘을 담은 멋진 테이블로 재탄생한 후배가 맡기고 간 장독테이블 위에서

박완서님의 생전의 모습을 그리며 그 파란 하늘을 이리저리 감상하고 싶다.

이제는 저 멀리 가고 안계시는 박완서님이 그리워 삶의 끝자락을 남겨두고 가신 노란집에 소풍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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