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세스 바리 - 제2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정윤 지음 / 다산책방 / 2012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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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보려 딸을 낳다 낳다 일곱번째로 또 딸이 태어나 버림받아졌던 바리데기에 대한 이야기는 기억이 나는데 그 다음이 어땠는지 영 가물가물하다. 아무튼 그런 바리데기의 신화를 모티브로 몇몇 소설들을 읽어보면 바리데기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듯 하다. 신화속의 바리도 그랬나? 아무튼 이 책속의 바리는 간절히 죽기를 원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인도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처음엔 죽은 사람의 영혼을 좋은 곳으로 인도한다는 그런 의미로 이해했다. 아마도 누군가를 죽인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이기에는 어딘지 영 내키지가 않았는가 보다.


 

연탄공장 사모에게서 일곱번째 딸을 받아낸 산파는 자신에게 그 딸을 버리라 한다. 그리고 그 딸을 데려다 자신의 고향으로 내려가 오래전 친구 토끼와 함께 바리를 키운다. 그렇게 시작된 바리의 이야기와 기차가 다니며 부흥했던 마을이 노선 폐지로 인해 쇠락해가는 과정과 함께 한 사람들의 삶의 다양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오락가락 하는 이야기 구조가 조금 혼란스러울수도 있지만 산파와 토끼의 파란만장한 삶과 바리와 나나진과 청하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어느새 이야기속에 푹 빠져들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하나도 온전한 것이 없는 바리의 생활환경 때문인지 바리는 모든것에 처연히 대처하는 그런 캐릭터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이 책 표지속에 등장하는 그녀의 표정처럼!


 

고향으로 도망을 온 산파는 친구 토끼와 함께 바리를 애지중지하며 키우게 되는데 그렇게 소원하던 아기였으니 얼마나 이쁘고 사랑스러웠을까? 하지만 부유한 집안에서 모자란거 없이 자랐던 산파의 교육은 바리를 응석받이로만 만든다. 그 반면 토끼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는 바리에게 글도 배우게 하고 책도 읽게 하고 안되는건 안된다고 똑부러지게 가르친다. 친구였지만 너무 다른 환경때문에 서로 달리 살아온 산파와 토끼는 늘그막에 다시 만나 바리를 키우며 알콩달콩 재밌게 살아갈거 같지만 그렇지 못하다. 아직도 서로의 의견이 사사건건 충돌을 해 둘은 다시 말도 안하는 사이가 되고 산파가 암에 걸려 죽기전까지도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산파는 늘 바리에게 너무 사랑받는 토끼가 싫었으며 토끼는 바리를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하는 산파가 못마땅했다.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청하는 바리에게 청혼을 하고 둘 사이에는 아기가 생긴다. 함께 살 집을 마련하고 주위 사람들의 축복속에서 살림을 장만하고 데이트를 즐기며 행복해하는 바리에게 어딘지 불안불안한 긴장감이 감도는데 결국 바리가 관여한 죽음의 비밀을 눈치 챈 토끼 할머니로 인해 청하에게 커다란 불운이 닥치게 된다. 바리와 청하가 처음으로 같이 살 집에서 하룻밤을 보냈을 뿐인데,,, 이제 막 자라나고 있는 배속의 아기를 위해 하늘색 신발을 사고 처음으로 새벽일을 나가는 청하에게 맛을 보장할수 없지만 손수 지은 한끼 식사를 마련했을뿐인데,,, 청하의 갑작스런 사고로 한동안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청하가 오르내리던 굴뚝을 매일 찾아가는 바리의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우리는 삶의 어느순간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 될때가 있다. 그럴때 죽을수 있게 해주는 것이 정말 옳은 것일까? 병들고 지쳐 더 이상 살 희망이 없는데도 약으로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안락사를 허용해야하느냐 마느냐의 이야기가 의견이 분분했던것처럼 사람의 생명이란 누군가가 함부로 거두어 갈 수 없는 것이란 생각을 한다. 하지만 죽지못해 산다며 정말 너무도 죽고 싶어 하는 누군가를 죽음으로 인도하는 바리는 어쩌면 우리가 고민만하고 있는 것들을 대신 해결해주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섣불리 죽고 싶다는 심정이 들때 혹시 누군가가 갈비뼈를 스윽 누르는 느낌이 든다면 그건 바로 바리가 찾아왔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간절히 원하지 않는다면 그 손길은 부드럽게 그 누군가를 위로해주고 토닥여주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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