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레이스키, 끝없는 방랑 푸른도서관 53
문영숙 지음 / 푸른책들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나는 사실 우리의 근대사를 다룬 역사소설을 부러 찾아 읽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주 오래전 역사를 다룬 책들과는 다르게 읽어 내려가기 힘들 정도로 가슴이 아픈 이야기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 책 또한 일본의 지배를 받던 때에 국경을 넘어 러시아 곳곳에 자리잡은 우리 한민족인 까레이스키의 고난과 역경과 끝없을 방랑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내내 그들과 같은 분하고 억울함에 치를 떨고 고통스러운 날들에 대해 눈물을 흘리며 읽게 되는 책이다.

 

1924년 소련 신한촌에서 까레이스키로 태어난 동화가 화자가 되어 자신의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통해 까레이스키의 험난한 역사를 피를 토하듯 이야기하고 있다. 일본은 러시아에 패해 물러갔지만 일본의 앞잡이로 오해받은 까레이스키는 1937년 강제 이주 명령을 받게되고 정착지였던 신한촌의 모든것을 놓아둔 채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오르게 된다.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나무를 덧대어 틈새로 들어오는 시베리아의 차가운 바람을 막아내지 못하는 열차를 타고 목적지도 모른채 실려가는 까레이스키의 고통은 이제 막 시작이다.

 

화장실도 없이 오랜 시간을 주먹밥과 말린 음식으로만 버텨야 하는 그들은 점 점 추위와 병에 못이겨 하나둘 죽어가고 만삭이었던 엄마는 아이를 낳다 아이와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 그런데다 그들을 제대로 묻어주지도 못한채 언 땅위에 눈으로 덮고 떠나야 하는 동화의 심장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만큼 책을 읽는 나 또한 그 비참함에 두주먹이 불끈 쥐어질 정도다. 분노를 참지 못해 이대로 더이상 갈 수 없다고 사람들을 하나둘 불러 모으다 친구와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고 만 오빠의 고통을 보는 일도 힘에 겨운데 40여일만의 고난 끝에 자신들을 내려놓은 곳은 눈으로 덮여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

 

하지만 역시 고려인의 피가 흐르는 그들에게 포기란 있을수 없는일, 눈을 치우고 갈대를 엮어 머물수 있는 지하동굴을 만들어 겨울을 나는가 하면 눈이 녹아 봄이 되자 꽁꽁 숨겨둔 씨앗을 뿌려 벼농사를 짓기에 이른다. 소금이 많은 땅이지만 벼농사를 짓던 까레이스키에게 그런것은 아무런 장애가 될 수 없다. 우슈토배에 정착해 가면서 오빠와 할아버지 마저 잃고 말았지만 기차에서 인연이 된 독립운동을 했던 태석이 오빠와 엄마처럼 자신을 돌아보주던 함흥댁 아주머니와 같은 분들을 의지해가며 서로 힘을 모아 척박한 땅을 개척해 나가고 행방을 모르는 아버지를 찾는 일을 포기 하지 못하는 동화를 보며 의지의 한국인이라는 단어가 괜히 생긴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사실 먼 타국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까레이스키와 같은 우리 민족의 이야기들은 우리가 들어주고 보듬어 주어야할 이야기들이지만 이런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그들을 책임져주지 못하는 현실에 분개하게 되고 지금 이렇게 편안하게 살고 있는 내가 한없이 부끄러워지면서 맘조차 편지 않게 책을 읽게 된다. 아직도 그들이 그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한채 방랑자의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도저히 납득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의 독립운동으로 인해 우리가 이만큼 살아갈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될때 그들과 아픔을 나누고 공유함으로써 그들이 우리와 같은 한민족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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