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네 집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은 누구나 하나쯤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추억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아름다운 첫사랑이건 끔찍했던 이별의 기억이건 세월이 지나고 나면 모두가 추억으로 남아

문득 문득 추억의 장소나 추억의 그 사람이 궁금해질때가 있다.

혹여 그 어디 근처에라도 가게 되면 괜히 추억의 장소를 더듬어 보게 되고

우연히라도 추억속에 존재하던 사람을 만나게 되면 아련했던 추억이 빛바래 지기도 한다.

 

이 소설은 이미 고인이 되신 박완서 작가의 자전적 첫사랑 이야기란다.

그 처럼 박완서 선생님의 글은 전란의 시대를 거쳐온 사회상과 감정 표현이 섬세하고

무척 수다스러워서 왠지 그녀의 이야기를 코 앞에서 듣고 있는것만 같은 그런 느낌을 받는다.

어느순간은 문득 그 시대를 뜨겁게 달구었던 자유부인이라는 소설이 떠오르기도 한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이제는 옛 추억밖에 남지 않은 그 여자는 어느날 후배네 집들이를 간 동네가

아주 오래전 자신이 살았던 동네라는 것을 떠올리고 그때 첫사랑이었던 그 남자네집을 찾게 된다.

 

그리고 시작되는 그녀의 첫사랑 이야기는 뭐 그렇게 달뜨지도 오글거리지도 않은 순수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이 시들해질 때쯤 그녀는 은행원을 만나 그와 결혼을 하기에 이르는데

손한번 잡아 보지 못했을 정도로 순결을 지켜주었던 그녀를 잃은 그남자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

그런것도 모른채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간다며 그 남자에게 청첩장을 내민 그녀는 참으로 모질다.

부자집으로 시집을 가는 줄 알고 있던 그녀의 신혼은 그녀의 생각만큼 달콤하지 않았으며

매달 얼마간의 생활비를 받아 써야하는 월급쟁이 주부가 되고는 답답증에 시달리기도 하는 그녀는

어쩌면 순수했던 첫사랑을 버리고 간 그 죄를 받는지도 모를일이다.

 

그녀의 시집살이는 철철이 맛깔스러운 음식을 장만하느라 외상을 져야하는 쪼들린 살림과

생각지도 못한 박수무당이라는 복병으로 인해 껄끄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좋게도 작용한다.

꼼꼼하기가 자린고비 저리가라 할 정도의 은행원 남편은 그런 아내의 속사정은 나몰라라 하고

어찌되었건 매달 주는 생활비로 지혜롭게 알뜰 살뜰 살아보라 하니 참으로 답답하기만 하다.

하지만 살림을 살아가다보면 그만큼 지혜가 느는 법이라고 그녀 또한 장을 보는 요령을 익혀

더이상 외상을 지지 않아도 되었으며 우연히 그남자의 누나를 만나 사랑의 불씨가 고개를 내민다.

 

우연히 만나게 된 첫사랑 그 남자와 급작스럽게 시작된 바람은 거칠것이 없었으며

어느날은 그남자에게 이미 한번 버린몸을 줘버릴 생각까지 하지만 그날 약속이 깨어지고

그 남자가 갑작스럽게 뇌수술을 하고 눈이 멀어버리는 지경에 이르는데

어찌 보면 이미 남의 여자가 된 그녀를 탐한 그남자에게 내려진 벌인것만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보통의 소설에는 남자들이 바람을 피워 문제가 되곤 하는데 박완서 그녀는 참으로 솔직했다.

또 어느 하루 아직도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장님이 된 그 남자와 마주 하게 되지만

이제 그만 투정 부리는 어린아이처럼 굴지 말고 철 좀 들라고 따끔히 충고하는 그녀는 정말 철들었다.

 

이 소설에는 전란이 휩쓸고간 그때에 미군부대에서 돈을 번다는 것은 몸을 파는것과 같이 취급이 되어

가족을 부양하느라 돈 벌기에만 급급했던 그녀는 아무일 없이 그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녀의 뒤를 이어 그 자리로 소개해 들어가게 된 시집과 이웃이었던 춘희는 갈보가 되었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지만 이런 경우엔 사람이 환경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중요한듯 하다.

어쨌거나 춘희의 삶이 점 점 망가지는 모습을 보며 그녀는 괜히 죄책감을 느끼곤 하는데

나중에 미국으로 건너가 살게 된 춘희의 신세한탄 같고 만담같은 전화 통화를 들을때는

세상은 참 요지경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첫사랑 그 남자를 만난 이야기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그림으로 남아지게 된다.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건 드라마처럼 펼쳐지는 인생살이에 있어

파란을 일으킬수도 있었을 첫사랑이 아름답게 남겨질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고 박완서 선생님의 첫사랑 이야기는 참으로 순수하고 아름답기가 이를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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