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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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사실 나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황스러웠었다.

한없이 순수할거 같은 은교가 팔랑 거리며 시인의 눈앞에 나비처럼 날아다니는것을 보면서

정말 순수하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해보기도 하고

그런 어린 소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시인을 보면서

인간의 욕망이란 도대체 그 끝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하면서

스승의 글로 성공을 거두고 살면서 스승이 좋아하는 은교를 탐닉하려 하는 제자를 보면서

이건 도대체 어디가 어떻게 고리지어지는 삼각관계인건지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렇게 그 당황스러운 마음은 책을 들여다 보게 만드는 충분한 동기가 되어 주었다.

 

 

오로지 시하나만으로 그 이름을 드높인 예순아홉의 시인 이적요에게 늦되어 찾아온 사랑이란 감정은

지난날 사랑에 대해 진지하지 않았으며 스스로 자신의 욕망쯤은 다스릴 수 있다 생각한

당뇨와 온갖 합병증으로 이제 곧 죽을 처지에 놓인 그에게 내려진 형벌같은 것이 아닐까?

인간의 욕망이란것이 나이를 먹는다 해서 그에 비례해 사그라지는 것은 아닌가 보다.

뒤늦게 사랑에 눈 뜬 그는 이제 막 첫사랑의 감정에 눈뜨는 사춘기 소년 같은 감성을 보여주지만

겉으로 보이는 그는 내일이면 관속에 뉘여질지도 모를 너무도 비루한 모습이어서

그런 감성만으로는 세상으로부터의 따가운 눈총을 면할길은 없다.

 

 

소설은 영화와는 달리 첫부분에서부터 자신이 제자를 죽였음을 고백하는것으로 시작된다.

시인 이적요의 고백같은 이야기와 그의 제자 서지우의 갈등과 번뇌가 담긴 일기가 번갈아

그들이 각자 느끼고 있는 것들을 풀어내며 그들의 갈등이 고조되는 감정변화를 어필하고 있다.

또한 다른 책들과는 달리 행간의 여백을 많이 두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한번 더 생각하게 만든다.

저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혹은 시인 이적요의 고백이 어떤것인지

독자들이 오해 없이 받아들여주기를 희망하는 마음에서일까?

 

 

아무튼 처음 은교를 만나는 장면은 영화에서 그려내는 장면과 흡사하다.

이적요의 흔들의자에 놓여진 은교는 그야말로 금새 어디론가 날아가버릴듯 가녀린 모습의 처녀다.

그 순간 이적요는 은교의 모습에서 순수 그자체의 처녀를 보았기에 욕망이 눈을 뜬건지

그에게 숨겨져 있던 욕망이 불현듯 은교를 일순간 사랑하게 만든것인지 알길은 없지만

어쨌든 이 장면은 이 소설이나 영화나 적요에게는 아주 강렬하게 각인 되어 지는 장면이다.

그냥 그 장면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것만을 가슴에 담고 끝났더라면 이야기의 끝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무렵, 분명히 연애를 하고 있었고, 내게 연애란, 세계를 줄이고 줄여서 단 한 사람, 은교에게 집어 넣은 뒤, 다시 그것을 우주에 이르기까지, 신에게 이르기까지 확장시키는 경이로운 과정이었다. 그런 게 사랑이라고 불러도 좋다면, 나의 사랑은 보통명사가 아니라 세상에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고유명사였다. --- p202~203

 

 

은교가 그의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그의 곁에서 한마리 나비처럼 나풀나풀 날아다니니

한순간에 그의 욕망은 불같이 일어나 이미 오래전에 스러진 그의 욕정을 일으켜 세우기도 하고

제자와의 불온한 장면을 목격하면서 불붙여진 질투로 인해 점 점 눈이 흐려지기 시작한다.

반면 은교가 올시간이 되면 괜히 설레고 일이 없는 날엔 부러 그애의 학교 앞을 찾아가 우연을 가장하고

약속을 한 날에는 하루종일 온 신경이 은교를 만날일에만 쏠려 그는 점 점 젊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서지우, 그는 한번 결혼에 실패하고 좌절해 시인 이적요를 찾아와 그의 제자가 되기를 간청한다.

어찌 어찌 이 적요는 그의 처지가 안쓰러워 그를 끌어안게 되고 그의 궂은일을 제자가 도맡아 한다.

그렇게 이적요와 서지우 두 사람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제자와 스승 그 이상의 관계였음에도

은교로 인해 그들의 틈새가 벌어지기 시작하고 급기야 서로가 서로를 오해하고 질투하는 모습이라니

이제 열일곱의 은교가 무엇이라고 그들의 오랜 사제지간의 정이 그렇게나 무참히 부서지는 것일까?

 

 

사실 서지우에게는 스승과 제자로 묶여진 관계이외에도 세상에 알릴 수 없는 비밀이 있다.

그런데 그 비밀이라는 것이 그들을 결속의 끈으로 묶어주는 류의 것이 아니라

은교의 등장 이전에 이미 서로를 의심하고 질시하는 그런 관계에 놓이게 만든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틈새를 아무렇지 않게 날개를 팔랑이며 날아든 한마리 나비처럼 그렇게 은교가 날아와

그 날개짓 한번으로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린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들은 은교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그것을 사랑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자신을 죽일듯이 느껴지는 스승에 대한 불안으로 서지우는 일기를 쓰기 시작하고

은교에 대한 스승의 절대 있을 수 없는 욕망의 눈길을 용납치 못해 스승을 모독하는가 하면

자신 또한 스승과의 불안한 관계와 상처입은 지난날을 은교에게서 치유받으려 한다.

처음 서지우는 자신이 진정 사랑하는 스승이 타락해가는 것을 용납하지 못해 그런것이라 생각하지만

점 점 그 자신 또한 은교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고 그것이 질투에 의한 것이란 사실에서 갈등을 한다.

 

 

적요 또한 자신이 사랑하는 처녀 은교를 자신의 제자가 불순한 감정으로 추행하려 든다는 생각과

자신을 산송장으로 만들어 모욕을 준 장본인이 서지우라는 사실을 안 순간 분노에 치를 떨고

그리고 은교와 서지우와의 절대 있을 수 없는 행위를 목격하고 부인하면서 그의 살의가 극에 달해

자신의 늙은 당나귀 자동차를 이용해 서지우를 죽이려는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그런 적요의 낌새를 알라차린 서지우지만 결국 그는 스승의 계획을 알고도 결국 죽음에 이른다.

 

 

어찌보면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어린 소녀와의 관계만큼 참 이해하기 어려운 스승과 제자가 되어버린

이적요와 서지우의 죽음은 이 소설의 가장 커다란 반전이며 그들에게 내려진 형벌같은 느낌이 든다.

또한 자신의 죽음뒤 문학관이 세워진 그 시점에 고백과도 같은 일기를 공개하라는 그의 유언은

어쩌면 자신이 마지막에 품었던 욕망과 살인에 대해 세상으로부터 단죄받고 용서받고 싶었던 것일까?

그 둘을 다 읽고 그들의 본심을 알아차린 은교는 자신의 아무렇지 않은 날개짓이

두사람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었음을 이제 알았을까?

 

 

시인 이적요가 드문 드문 시를 읊으며 자신의 사랑의 감정을 이야기 할때는 왠지 서글픈 생각이 들었고

열일곱의 처녀를 대표하듯 불쑥 자신의 삶속으로 날아든 은교에게 쓴 편지를 보며 안타까웠다.

비록 늙는다는 것이 생이 그에게 준 벌이 아닐지라도 너무 늦게 찾아든 사랑이라는 감정은

그에게 다시 없을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조차 지니지 못하게 한 형벌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시인 이적요와 그의 제자 서지우의 삶을 온통 송두리째 흔들어 버린 그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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