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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진 2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5월
평점 :
프랑스 공사의 사랑으로 프랑스로 건너가 무한한 사랑을 받으며 행복할거 같은 리진이 프랑스에서의 문화속에 젖어 살아가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스스로를 잠식해가는 고뇌와 갈등속에 자아를 찾으려 애쓰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1권의 콜렝의 편지로 시작되는 책과는 대조적으로 프랑스의 문물에 대해 소상히 적은 부치지도 못하는 왕비에게로의 편지로 시작되는 리진의 이야기는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고자 애쓰는 놀아움과 갈등을 담은 조선 여인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해야겠다.
콜렝은 리진에게 제대로 프랑스말을 배우도록 하거나 프랑스 역사를 익히도록 가정교사를 들이기도 하는등 그녀가 프랑스에서 불편함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고 대외적인 각종 모임과 파티에 그녀를 동승해 데려가지만 그녀는 언제나 늘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야하는 부담감을 떨쳐낼수가 없다. 게다가 콜렝이 데려간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만난 다른 나라의 문물들이 왜 자기 나라에 있지 않고 다른나라에 있어야 하는지 받아들이지 못하는 리진은 콜렝과는 다른 입장에 놓여 있는 자신을 깨닫고 갈등하기도 한다. 또한 파티에서나 낭독회에서 알게된 모파상을 비롯한 프랑스인들과의 만남을 통해 그들 또한 고뇌하고 갈등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반가워야할 같은 조선인인 홍종우의 등장은 왠지 석연치가 않다.
프랑스에서 조선의 복식을 갖추고 조선이라는 조그만 나라를 알리기 위해 애쓰는 홍종우라는 인물은 프랑스인의 의복을 갖추고 왈츠를 추는 리진을 보면서 씁쓸한 웃음을 짓는가 하면 의외로 그녀를 조선에서부터 사랑해왔음을 고백하는등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을 보인다. 게다가 조선이라는 나라를 알리기 위해 [춘향전]이나 [심청전]을 프랑스어로 번역하는데 있어 애국심을 자극시켜 리진을 설득하려 들고 리진 또한 석연치 않지만 자신이 프랑스의 책을 번역해서 왕비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마음을 떠올리며 가슴뛰게 그일을 돕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날 또 한번의 유산을 좌절하고 마는 리진은 스스로를 다독이지 못해 새벽이면 프랑스 거리를 떠도는 몽유병에 시달리게 된다.
사랑을 손에 넣고 나면 시들해지고 마는것은 어쩔수 없는 것일까? 프랑스로 리진을 데려올때만 해도 거창한 결혼식을 올리겠다는 등의 달콤한 말을 속삭였던 콜렝은 집안 내력을 들먹이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채 자신의 업무에 충실하게 살아가는가 하면 리진 몰래 예전의 애인을 다시 만나는 등의 자유연애를 즐기며 자기 나라의 문화속에 젖어 살아가게 된다. 그러다 리진의 몽유병이 향수병이란 사실을 깨닫고 다시 함께 조선으로 휴가를 떠나게 되는데 결국 리진만 조선에 남겨둔채 떠나고 만다. 조선으로 돌아와 자신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고민하는 리진은 홍종우에게 했던 말처럼 자신의 의지를 담아 편안한 드레스 차림으로 궁에 드나드는가 하면 강연과 함께 어릴적 살았던 집에서 살아가게 되기도 한다.
사실 강연과의 애틋한 운명은 리진이 다섯살 나이에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강연에게 주어진 운명인지도 모른다. 결국 피부색도 눈동자색도 다른 멀고먼 프랑스라는 나라로 떠나버린 리진이지만 매일 그녀에게 편지를 쓰면서 이루지 못할 사랑으로 밤을 세웠을 강연의 사랑이 리진을 다시 조선으로 불러들인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프랑스 선교사였던 블랑을 도와 고아원을 짓고 그곳에서 일을 도왔던 서씨와 강연은 다시 돌아온 리진을 반갑게 맞아주는 장면에서는 그동안의 힘겨운 여정을 거쳐 이곳으로 다시 돌아온 리진에게 이제 편안한 삶을 살게 해주려는듯 보였지만 그 앞에 놓여진 운명은 그 어느때보다도 더 혹독하게 리진을 벼랑끝으로 몰아넣고 만다.
일제의 간섭이 심해지고 궁에서 맞딱드리게 된 명성왕후의 죽음이 진실을 가린채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리진은 콜렝에게 사건의 내막을 자세히 담은 편지를 남기고 결국 조선의 왕도 떠나버린 쓸쓸한 궁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그녀의 한이 서린 그 진실이 어찌어찌 구천을 맴돌다 신경숙이라는 작가를 통해 600년이라는 시간이 훨씬 넘은 21세기에 우리 앞에 생생히 살아 불려 나오게 된걸까? 조선의 궁녀였지만 신문물을 접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다 자신의 나라로 되돌아 올수 밖에 없었던 운명의 장난같은 리진이라는 한 여인의 삶을 통해 조선말의 시대상을 눈앞에 펼쳐보는것만 같은 그런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