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가의 문장은 끝이 날듯 날듯 끊이지 않는 수다를 떠는듯한 만담같은 느낌이 들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작가의 다른 어느 소설들보다 그의 역량이 최고로 발휘된 책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재밌는 책이다. 이소룡을 사랑한 한남자의 이소룡이 되고 싶었던 웃을래야 웃을 수 없는 기가막히고 코가막힌 이야기가 그가 살아온 시대상황과 맞물려 참으로 리얼하고도 흥미진진하게 펼쳐지고 있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는 화자는 가끔 자신의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섞어 가면서 삼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해 기탄없이 허심탄회하게 혹은 회상하는듯 그렇게 써내려 가고 있는데 어쩐지 무어라고 딱 꼬집어 정의 내릴 수 없는 삼촌의 삶을 다큐를 보여주는듯 그렇게 주절이 주절이 늘어 놓고 있다. 화자에 의해 삼촌이 때로는 너무 순진무구해서 세파에 휩쓸리는 연약함을 보이지만 하지만 때로는 자신의 고집을 꺽지 않고 꿈을 향해 전진하는 모습에서 호기로움을 느끼며 정의로운 사람을 위해 대신 희생하는 모습에서는 경외심이 들기까지 한다. 삼촌의 삶이 어쩌면 그렇게나 파란만장할까?
삼촌의 삶은 서자로 태어나 할머니의 손에 의해 자라면서 시작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할머니의 죽음으로 의지가지가 없어진 삼촌은 아버지의 이름 석자만 가지고 본가로 찾아온 그날부터 삼촌은 또다시 눈치밥을 먹으며 사는 신세가 되었으며 자신에게 몸을 주고 아이까지 임신한 한 여자로 인해 삼촌의 삶은 또다시 타지로 내몰리는 신세가 되고 만다. 화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분명 삼촌은 이소룡을 신봉해 그의 무술을 혼자 연마하며 어느정도 무술인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무도인으로써 아무하고나 싸우지 않으며 약한자를 괴롭히지도 않고 또 자신의 본분을 다하려 애쓰는 순수한 사람으로 비쳐지는데 어쩌면 그의 삶은 그렇게 그를 궁지로 내모는 것인지 한번은 좋을수도 있을일인데 그에겐 그런 운조차 없다.
삼촌에게 무술을 배우던 화자와 낙천적인 친구 종태와의 이야기 또한 삼촌 이야기만으로 지루해질 수 있는 이야기의 흐름에 분위기를 전환 시켜주는 역할을 하면서 그 시절 그들의 삶의 단면과 성장기의 순박하고 무지한 촌놈들의 생활 모습이 흥미진진함을 준다. 이제 막 육체적 제2성장의 시기에 들어서 코밑 수염이 거뭇거뭇하게 나기 시작한 남자 아이들의 여선생님을 흠모해 짓궂게 행동하는 이야기들은 어느 영화에서나 흔히 등장하는 이야기지만 화자의 오해가 불러온 친구 종태의 미래는 또 왜 그렇게 순탄치 않은것인지 죄책감을 느끼는 화자만큼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는 한다.
머리에 갓쓰고 다니는 같은 성씨들이 모여살던 집성촌에서의 조금은 폐쇠적일 수 있는 동천이라는 마을은 언제까지나 도시화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렇게 그들의 삶을 유지해갈듯 하지만 세상의 변화의 바람은 동천이라는 그 마을에까지 미쳐 제각각의 삶이 변화되는 모습을 가장 극심하게 보여주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화자의 형은 개천에서 용난 격으로 도심의 이름있는 대학의 법대에 진학을 하고 수순을 밟듯 고시공부을 하는가 하면 화자 또한 형처럼 뛰어난 수재는 아니지만 어찌 어찌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하지만 순박하고 낙천적이던 친구 종태는 어쩐 일인지 건달이 되어 감옥에 수감되기까지 하는 생을 살아가는데 사람의 한치 앞은 아무도 모른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그러는 동안 서울로 올라간 삼촌은 짜장면집 배달부로 일하며 우연한 기회에 홍콩에서의 이소룡 대역 오디션을 위해 홍콩으로 가는 배를 타기는 하지만 홍콩은 눈앞에서 스쳐 지나오기만 할뿐이고 동천으로 돌아온 삼촌은 다시 경찰에 잡혀 불순분자로 분류되어 삼청교육대로 끌려가 혹독한 시간을 견뎌 무사히 살아 돌아오지만 마을 또한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어 자신들의 영역다툼이 심한 건달을의 세상에 발을 들이게 되고 그곳에서 자신이 학창시절 제자로 삼았던 종태와 맞짱까지 뜨는 지경에 이른다.
어떻게 된일인지 지금 삼촌은 으악새로 단역배우를 하고 있다고 하는 화자의 이야기를 들으니 다음편이 궁금해진다. 그렇게 이소룡을 흠모해 이소룡의 대역에 도전해보겠다는 야멸찬 꿈을 꾸었다가 한순간 물거품이 되어 버린 그가 어떻게 영화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을까? 그리고 삶속에 한번씩 등장하며 삼촌의 애를 태우며 삼촌이 처음 연정을 품었던 영화배우 원정과는 또 어떤 만남을 가지게 될지도 기대되며 별다른 특별할거 없는 화자의 생은 또 어떤 모습으로 흘러갈지, 친구 종태는 또 어떻게 살아갈지 다음편이 몹시 궁금하기만 하다.
이 소설은 60년대를 시작으로 아마도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시대상황을 배경으로 삼촌의 삶을 통해 사람의 생이 얼마나 파란만장할 수 있는지를 구구절절이 풀어 내고 있는듯 하다. 그 시대를 어느정도 겪어온 사람들이라면 시대상황이나 갖가지 이야기들에 크게 공감할 수 있을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