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여인들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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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세요,

그러지요,

네!

 

매일 우리는 많은 물음표를 단 질문들을 받는다. 그때 우리는 저렇듯 간단하고 명료하게 그리고 상대방의 요구에 순응하는 답을 하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그냥 한번에 응해도 될 일들을 우리는 이리저리 굴리고 튕기며 얼마간 애를 태우다 결국 그러마고 말하고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신경숙 작가의 소설을 접할때면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결코 가벼이 읽을수 없는 알게 모르게 촉촉히 젖어 들어 어느새 흠뻑 젖어 버리게 하는 안개속을 걷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각각의 소설속에는 왠지 서글프고 처참하기까지 한 귀머거리 고양이나 그 이름을 어디서 그렇게 알게 알게 되었을까 싶을 정도로 끊임없이 열거되는 화초들의 이름이나 가장 행복한 순간 베란다로 뛰어 내리는등의 아주 충격적인 존재까지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냥 행복하고 즐겁고 아름다운 것들이 될수도 있는 소재들이 왜 그녀의 손에 닿으면 이토록 처절하고 아프고 슬퍼지는지,,,

 

[그가 지금 풀숲에서]의 이야기속 남자의 아내는 정말 독특한 병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왼손외계인증후군이라니? 이건 또 어느 외계에서 온 병이란 말인가? 아마도 이런 병이란 모두 심리적인것에 기인하는듯, 평소에 억눌려 있던 그녀의 감정들이 병이 되어 유독 잘 사용하지 않는 그녀의 왼손으로 그녀의 숨겨둔 감정을 표현하게 하는건지도 모르겠다. 문득 평소 억누르고 아닌척하며 살며 이런 이상한 병을 만들고 있는건 아닌지 생각하게 만든다. 한번쯤 아내의 왼손 저림과 이상행동에 대해 따뜻한 걱정의 말 한마디를 나누었더라면 아무도 없는 적막한 풀숲에 누워 죽어가며 절규하듯 누군가를 부르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를일!

 

그래도 [어두워진후에]의 남자는 이 책의 단편들 속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인듯 하다. 아무 이유도 물음도 없이 자신의 요구를 그냥 '네 그러세요' 하며 받아주는 여자를 만나 절간을 구경하고 버스를 타고 밥을 얻어먹고 잠까지 자고도 염치없이 버스비를 요구하며 그렇게 살인자로 인해 무참히 죽임을 당한 상황에서 도망쳐 악몽에 시달리던 그가 그녀의 집 우물속에 모든걸 토해 놓으며 또 다른 삶의 희망을 찾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모르는 여인들]의 두 여인이 주고 받았던 노트는 어쩌면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절실히 필요로 하는 노트인지도 모를일이다. 처음엔 그저 서로의 의무를 다하듯 그렇게 아무 감정없이 주고 받던 대화가 점 점 감정이 실리고 온기가 돌며 서로의 고민을 나누는 그런 사이로까지 발전이 된다. 그녀의 글속에는 남편을 챙기고 아이를 잘 돌보고자 하며 자신의 가족의 행복을 위해 참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하지만 그녀와 소통하던 이는 남편도 아이도 아닌 처음엔 아무 연이 없던 가정부! 단한권의 노트가 그들을 얼마나 끈끈하게 묶어 놓았는지를 사람과 사람의 소통이 얼마나 큰힘을 가졌는지를 느끼게 해주는 이야기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때로는 책속의 이름 모를 여인들속에 끼어 있기도 했으며 때로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 보기도 했다. 그 어느 편이든 내게는 지금 내  남편과 아이들과 나아가 이웃과 세상과 잘 소통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 되었다. 마음까지 나누지는 못하더라도 서로 안부를 묻고 아프면 왜 아픈지를 묻고 무언가를 요구하면 그저 한번쯤은 흔쾌히 응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 보는건 어떨까? 그리고 대부분의 단편들이 열린 결말이어서 그 다음 이야기를 독자들 나름 상상해볼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아 여운을 준다.

 

인간이 저지르는 숱한 오류와 뜻밖의 강인함과 숨어 있는 아름다움을 향한 말 걸기이기도 한 나의 작품들이 가능하면 슬픔에 빠진 사람들 곁에 오랫동안 놓여 있기를 바란다. --- p283신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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