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기보다는 에세이같은 시들이
요즘은 대세인듯하다.

뭔가 뚝뚝 끊어지는 듯하면서도
또 어딘지 이어지는것 같은
서글픈 느낌이 드는 시.

긴급 폐쇄의 팻말에 코시국을 공감하고,
개소리를 시끄러워하더니
개를 키우며 흥얼거리게된
옆집 여자의 이야기에 인간의 간사함을 느끼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 알림이 온 홈캠에 오싹했다가
바람에 펄럭이는 햇살이 돌아다닌다는 싯구에
따스함을 느끼게 되고
햇빛을 색종이처럼 접으며 논다는 싯구에서는
어느 책방의 스테인드글라스창으로 들던
여러색깔의 햇살 그림자가 떠오르고
망해가는게 특권이라는 말에 서글퍼지고...

시를 읽으며 혼자의 느낌과 다르게 혹은 비슷하게
시인과의 인터뷰를 읽으며
또 뭔가 새로운 느낌이 드는 책.

특권

펜스 앞에 서 있었다.
현수막을 보고 있었다.

긴급 폐쇄라고 적혀 있었다.
공원 바깥에도 산책로는 있으니까
갈 수 있는 바깥이 아직 좀 더 있었다.

친구가 자기 허벅지를 손바닥으로 때리고 있었다.
10월인데 아직도 모기가 있다면서.

이렇게 태연해도 되는 거냐고
나는 물었다.

태연만이라도 해봐야 하지 않겠냐며
친구는 웃었다.

길에 누군가의 조각상이 있었다.
그 위에서 미끄럼틀을 타고
침을 뱉는 아이들이 있었다.

우리 집 개가 죽었을 때
이제 개소리 안 난다며 기뻐하다
미안해했던 옆집 여자.

그 여자네 집에서 어느 날부턴가
개소리 들려왔을 때
참 듣기 좋다고 꼭 말해주고 싶었는데.

이제 옆집 여자는 소리를 지르지 않고
자주 흥얼거린다.
개가 여자의 허밍에 맞춰 노래를 한다.

동작을 감지했다고
홈캠이 알림을 보냈다. 앱을 켜보면
집에는 아무도 없고

방에 들어온 햇빛만 펄럭이며 움직이고 있었다.
햇빛이 집 안을 너무 자주 걸어 다녔다.

방에 들어온 햇빛을
색종이처럼 접으며 논 적이 있었다.

반복해서 접으면 유리병에 모아둘 수 있었다.
모으다보면 왠지 소원을 빌어야 할 것만 같았지만.

망해가는 것도 특권이라는 말을
친구는 들었다.
그 말이 도움이 되었다 했다.
아무것도 빌지 않기로 했다.
그게 우리의 소원이기로 했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구겨진 영수증을 꺼냈다.
친구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햇빛 한 장을 꺼냈다.

걷다가 쓰레기통이 나온다면 버리기로 했다.
없다면 집에까지 잘 가져가서 버리기로 했다.

나는 집에 돌아와 개를 씻긴다.
털에 물이 닿을 때마다 개는 바들바들 떤다.
비명을 지른다. 물이 자기를 죽이기라도 할 것처럼.

따뜻해. 괜찮아. 그냥 물이야.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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