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꽃을 안다는건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길가다 무심코 바라보게 되는 잡초 하나에도 온 마음이 빼앗기듯 그렇게 관심을 가져야 알 수 있는 것들, 헤르만 헤세는 그렇게 숲과 나무와 꽃과 새등의 자연에 온마음을 기울이고 빼앗겼던 사람!

<헤르만헤세의 나무들>
헤세의 나무에 대한 경외심과 무한한 사랑은 ‘나무들‘이라는 첫번째 글에서 미리 선전포고 받게 된다. 밤나무, 플라터너스, 복숭아나무, 자작나무, 함박꽃나무, 단풍나무등등 온갖 종류의 나무들이 등장하고 그에 못지 않은 다양한 꽃과 새등의 동물까지 아우르면서 인간의 삶과 자연이 한데 어우러진 글이 가득하다.

우리가 슬픔 속에 삶을 더는 잘 견딜 수 없을 때 한그루나무는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조용히 해봐! 조용히 하렴!나를 봐봐! 삶은 쉽지 않단다. 하지만 어렵지도 않아. 그런건 다 애들 생각이야. 네 안에 깃든 신이 말하게 해봐. 그럼 그런 애들 같은 생각은 침묵할 거야. 넌 너의 길이 어머니와 고향에서 너를 멀리 데려간다고 두려워하지. 하지만 모든 발걸음 모든 하루가 너를 어머니에게 도로 데려간단다. 고향은 이곳이나 저곳이 아니야. 고향은 어떤 곳도 아닌 네 안에 깃들어 있어,

한그루 나무를 보며 느끼는 것들은 정말 각양각색이겠지만 그동안 보고 듣고 느끼면서도 깨닫지 못했던 내 안의 어떤것들을 일깨워 주고 전혀 새로운 것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헤세의 문장들! 한그루 혹은 함께 어우러져 자라는 나무들이 그동안 그렇게 내게 말을 건네고 있었는데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참 아쉽고 안타까워진다. 헤세의 문장을 만나고 그제서야 깨닫게 되는 나무에 대한 생각들!

<봄밤>
바람은 밤나무에서
잠에 취해 깃털을 펼치고,
뾰쪽한 지붕들에선
어스름과 달빛 흘러 떨어진다.

모든 샘물은 서늘하게 혼잣말로
뒤엉킨 이야기 졸졸거리고,
열시 종소리 열을 지어
장엄하게 울릴 채비를 한다.

정원에선 엿보는 이도 없이
달빛받은 나무들이 졸고,
둥근 우듬지들을 통해
아름다운 꿈의 숨소리 깊이 속삭인다.

나는 연주로 따스해진 바이올린을
망설이며 손에서 내려놓고,
멀리 푸르른 땅을 놀라 바라보며
꿈꾸고 그리워하고 침묵한다.

P35/헤르만헤세

봄밤이 이런 느낌이었던가? 헤세의 문장과 함께 드문드문 시를 읽으며 미처 알지 못했던 봄밤의 감각을 불러와보게 된다.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들과 감각까지 깨워주는 시 한편에 잠시 내가 알고 있던 그 봄밤의 기억을 떠올려 회상하게 만든다.

밤나무가 심겨지지 않은 가로수를 보며 밤나무를 그리워하고 아쉬워하고 뿌리와 가지가 튀어나온 숲길을 걸으며 온갖 상상력을 동원하고 나아가 자신의 안에 잠재되어 있는 감각까지 깨운다. 밤새 불어닥친 바람데 부러져버린 복숭아 나무를 안타까워하며 복숭아 꽃까지를 화병에 꽂고 그림으로 그리기까지 했던 지난 추억을 더듬는다. 나무와 가장 친근한 새도 잊지 않고 문장속에 등장시키고 자신의 후손에게까지 이야기를 남기는가 하면 젊은 시절을 회상하다 결국 나이듦에 따를 수 밖에 없음을 이야기한다.

​문득문득 나무가 자라고 새들이 지저귀고 온갖 꽃들이 피고 지는 숲에 가고 싶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다면 해세의 문장이 가득한 이 책 한권으로 만나보기를! 헤세의 문장만으로도 내가 그 작은 오솔길을 걷고 있거나 혹은 숲속 나무와 꽃들을 바라보고 있는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하지만 시와 혹은 문장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아름다운 삽화들이 헤르만 헤세의 글을 만나는 시간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헤세의 글을 읽다보면 한그루의 나무 혹은 정원, 숲속을 단한번의 산책이 아닌 걷고 또 걷고 바라보고 관찰하면서 쓴 글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게 된다. 헤르만 헤세가 이토록 자연에 관심을 기울였던 사람이라는 사실에 그동안 그의 시와 글들이 아름답게 스며드는 이유 또한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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