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관 살인사건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8
오구리 무시타로 지음, 강원주 옮김 / 이상미디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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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책일수록 환영받는 소설이 있다. 미스터리 스릴러나 추리소설이 그런 류에 속하는데 이 책은 일본 추리소설 사상 3대 기서중 하나로 유명한 작품이지만 결코 만만하게 읽을 수 있는 그런 류의 책은 아니다.

흑사관 살인사건을 읽기 전에 일단 흑사관의 정체를 알아야한다. 어쩌면 종교적인 지식도 좀 많이 갖춘다면 더 좋겠고 중세유럽을 배경으로 한 문학적 학식과 시문에 능하다면 이 소설을 읽는데 더 큰 즐거움이 있을듯 하다. 고문을 읽는데 어려움이 없어야 충분히 즐길 수 있으며 괴테의 파우스트를 정독하는 수준의 사람들에게 필독서로 읽힐법한 미스터리 추리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그만큼 이 소설은 그냥 재마삼아 읽기에 도전하려다가는 큰 코 다친다는 이야기다. 이 책의 표현을 빌자면 어려운 산하나를 정복하는 수준의 책읽기가 되는 소설이니까! 중도 하차한다해도 어쩔 수 없겠지만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만큼 마법처럼 일어나는 기이한 사건과 장황한 지식을 늘어놓는 노리미즈의 추리력에 점점 빨려 들어가 책장을 자꾸 넘기게 된다.

흑사관은 중세유럽에서 흑사병으로 죽은 사람들을 묻었다는 프로방스의 요새와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처럼 외관도 내부도 기괴한 그림과 조각, 갑주와 무기류들로 장식되어져 있는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이다. 희귀본 서적들이 가득한 도서실, 약품실, 그리고 카리용실, 벽난로 아래 비밀통로와 무덤등 딱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날 법한 배경을 가진 화려하면서도 음울한 기운이 넘치는 곳이다. 흑사관의 주인인 후리야기 가문에 대를 이어져 벌어지는 기괴한 사건들을 탐정 노리미즈의 현란한 지식의 대방출을 토대로 검사 하제쿠라와 마치 셜록홈즈의 왓슨 같은 존재인 구마시로 수사국장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최선의 지식을 동원해 사건을 풀어내고 있다. 아니 추리하려 애쓰지만 결국 사건의 주체에게 끌려가고 마는 이들의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사건 현장의 서술적 표현이 많은데 자칫 어렵게 느껴질수 있는 이야기에 이해를 돕는데 한몫하는 삽화가 볼만하다.

흑사관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지자 노리미즈는 흑사관의 배경에 대한 지식을 늘어 놓는다. 또한 사건의 배경이 된 흑사관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온갖 추리가 시작되는데 그는 눈에 보이는것이거나 아니거나 들리는 소리까지 건물안의 모든 것들에게 관심을 두고 만나는 사람들을 자극하는 이야기를 서슴없이 한다. 사건 현장의 느낌만으로 그 현장을 재현해 보는 듯한 그의 추리력은 정말 놀랍지만 너무 많은 학문적 지식을 듣기에는 솔직히 좀 난체하는 느낌에 거부감도 든다. 해서 검사인 하제쿠라는 중간중간 그의 장황한 견해를 핵심 정리해주며 눈에 보이는대로 믿는 다소 현실적이고 다급한 수사국장 구마시로는 답답한 공기를 틔어주는 역할을 한다.

어찌어찌 읽다보면 고문으로 쓰인 한권의 서양사를 독파한 듯한 느낌까지 들게하는 이 책, 좀 더 이해하게 쉬운 문장으로 다시 번역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램이 드는데 어쨌거나 남들은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고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정황만으로 사건의 피해자를 추리하는 능력을 지닌 탐정 노리미즈의 추리력에 매혹된다면 끝까지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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