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집의 장녀다. 사실 장녀로 자라본 사람들은 안다. 장녀의 책임감이 얼마나 큰지! 그래서 어려서는 나도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시대에 진정 든든한 쎈언니들이 있다!

책표지부터도 쎄다. 살짝 형광빛이 도는 초록에 단정한듯 턱선이 뾰족한 언니! 나 어려서 이런 언니가 내게도 있었더라면 나도 언니에게 응석을 좀 부려봤을텐데! 한국일보 인기 연재물이었던 ‘김지은의 삶도 인터뷰‘중에서 세상과 이 사회에서 좀 다르게 사는걸로 맞서오던 여성들의 삶의 이야기를 선별하여 담은 인터뷰집이다.

잘나가던 카피라이터를 그만두고 뜬금없이 책방을 차린 쎈언니 최인아를 비롯 성폭력사건의 피해자로 17년을 싸운 최아룡, 진정 페미니스트의 전사가 된 이나영, 용산참사를 시작으로 현장을 기록하고 다큐로 남기며 세상에 부당한 일들을 알리는 김일란, 서울대 총여학생회장으로 활약하다가 서울 구로공단에 여공으로 취업해 노동운동을 한 이진순, 장애가 있는 동생과 함께 살아가며 장애인 비장애인 구분이 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혜영! 운명의 여자를 만나 남편과 이혼하고 여자와 사는 김인선, 거리의 어머니가 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청와대 대변인이된 고민정, 기자의 삶을 떠나 가난한 화가가 된 김미경, 이름처럼 세상을 밝힌 박세리, 내일을 사는 곽정은! 총 열두명의 언니를 만나게 된다.

‘최근 몇 년을 보내며 본 문구 중 마음에 남은 게 있다. ‘언니가 있다‘는 말이다. 당신 혼자가 아니라는 의미다. 그 언니는 비빌 언덕일 수도 있고,
나를 잡아주는 위로의 손일 수도 있고, 게으르고 나태해진 나를 등 떠미는 채찍일 수도 있다. 이 교수와 얘기하면서 그 문구가 퍼뜩 떠올랐다. 아마든든해서일 거다. 이 ‘쎈‘ 언니가 우리 옆에 있어서.‘

진정 센 언니들을 만나면서 든 생각은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라는 자괴감이 아니다. ‘이렇게 든든한 언니들이 있으니 이제 혼자 끙끙대지 않아도 되겠다, 이 언니들이라면 뭐라도 같이 할 수 있겠다, 언니들에게 당장 달려가 나도 끼워 달라고 해야겠다!‘ 등등의 그동안 엄마로, 아내로, 여자로 살면서 표현하지 못했던 억눌렸던 감정들이 위로받는 느낌이다.

​장애인 동생과 함께 살아가는 언니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 또한 그동안 어떤 편견에 사로잡혀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게 누군가가 가족과 떨어져 산속 외딴 곳에서 낯모르는 사람들과 살아야한다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장애인 비장애인이 극명하게 구분되는 이런 세상에서 사는 우리의 삶을 과연 정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어려운 시기를 견디고 극복하고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인정하는 센언니 박세리를 이 책에서 만나니 더 반갑다. 골프를 하게 된 계기를 듣고 보니 뭉클했고 세계를 빛내리라는 의미의 이름처럼 진짜 세계를 빛낸 그녀의 골프인생은 진정 다른것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의지의 승리다. 하지만 삶에는 밸런스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된것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라 해야겠다. 이제라도 박세리 언니가 자신을 위한 즐거운 시간을 누리며 살고 있기를!


가장 중요한 사람은 나예요. 내가 존재하지 않으면 다 끝나요. 돈도, 명예도 다 소용없는거죠. 나는 후회하지 않아요. 지금 행복하니까!

남편과 이혼하고 여자와 사는 김인선언니의 이 한마디에 참 공감한다. 언니들의 성장과 상처 그리고 그 상처를 극복하고 자신만의 투지로 의연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삶을 인터뷰로 끌어낸 저자에게도 박수를 보낸다.이제는 어디가서 이렇게 외칠 수 있을듯하다. ‘나도 언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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