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로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을, 《내 심장을 쏴라》로 제5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후 《7년의 밤》 《28》 《종의 기원》 등을 연달아 펴내며 꾸준한 작품 활동을 이어온 정유정의 신작 《진이, 지니》가 은행나무출판사에서 출간됐다. 정유정작가의 글에 흠뻑빠져 읽던때가 엊그제 같은데 3년만에 장편소설을 출간했다는 반가운 소식에 얼른 책을 펼쳐보게 된다. 진이 지니! 두개의 똑같은 발음으로 불리는 이름이 가진 의미가 무엇일까?

주인공 진이는 침팬지 사육사이며 보조연구원이다. 진이는 왐바 캠프를 마치고 떠나던 날 밤, 예상치 못한 폭우와 함께 비를 피하러 들어간 곳에서 불법 포획된 보노보와 마주치게 된다. 창살너머 보노보에게 달콤한 파인애플과 다정한 인사를 건네고도 신고하거나 구하지 않고 그냥 달아난 그 일이 그녀의 삶을 변화시키고 마는데 그런 그녀앞에 다시 나타나게 된 보노보에게 자신의 이름과 같은 발음을 가진 지니로 이름짓게 되면서 그녀는 운명의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한편 해야할 일도 그렇다고 하고 싶은 것도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다 결국 집에서 쫓겨나 노숙자 신세가 된 김민주,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잠을 청하려 불법 침입한 정자에서의 하룻밤이 그에게는 생각지 못한 날들로 다가오게 된다.

자신이 인간이 아닌 보노보의 육체에 들어와 있음을 알고 당황하게 되는 진이와 자신이 관심을 가졌던 다정한 그녀라면서 다가오는 보노보앞에 당황하게 되는 김민주, 두사람의 이야기가 번갈아 전개되는 방식과 단문의 문장들이 긴박감을 주며 영혼과 육체가 넘나드는 소재는 한편의 미스터리 판타지 드라마를 방불케 한다. 어째서 보노보의 몸속에 자신의 영혼이 갇히게 되었는지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자신이 모른척했던 보노보와의 인연을 떠올리며 자신의 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진이는 어느순간 자신이 지니의 램프에 갇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지니의 과거를 달리고 있음을 알게 된다. 반신반의 하면서도 어째서인지 지니에게 길들여지고 있는 김민주는 점점 지니가 진이임을 인정하게 되고 그녀를 돕는 일에 최선을 다하게 된다 .

그녀는 내게 삶이 죽음의 반대말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삶은 유예된 죽음이라는 진실을 일깨웠다. 내게 허락된 잠깐의 시간이 지나면 내가 존재하지 않는 영원의 시간이 온다는 걸 가르쳐줬다. 그때가 오기전까지 살아야할 것이다. 그것이 삶을 가진 자에게 내려진 운명의 명령이다.
에필로그 p367

자신의 몸으로 돌아가기 위해 애쓰던 지니안의 진이는 지니의 램프안에서 보노보의 행복했던 과거와 철장에 갇혀 한국으로 오기까지의 과정을 간접체험하게 되면서 서서히 자신의 영혼이 보노보와 동화되어 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죽음의 문턱에서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자신의 영혼을 돌려보내지 않는다면 지니의 몸으로 살아 갈 수 있겠지만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지니를 또 한번 구하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된다. 엄마와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리며 자신의 생이 다했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진이! 그런 과정을 모두 지켜보게 되는 김민주는 다정한 그녀가 다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말없이 진이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일로 대신한다.

보노보의 몸에 갇혀 지니의 삶을 인정하고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진이와 그를 지켜보며 이해해주는 민주가 따뜻한 감동을 준다. 동물과의 혼연일체의 상황을 통해 삶과 죽음의 커다란 의미를 깨닫게 만드는 작가의 놀라운 이야기에 감탄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죽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생의 끄트머리에 도착한 순간 죽음을 잘 받아들이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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