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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리케의 여정
소냐 나자리오 지음, 하정임 옮김, 돈 바트레티 사진 / 다른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눈물의 버스'
'사람 잡아 먹는 기차'
중앙 아메리카의 버려진 어린 아이들이 그리워하는 엄마를 찾아가기 위해
꼭 겪어야하는 것들에게 붙여진 이름들!
왜 그녀들은 그렇게 어린 아이를 버려두고 그 먼나라로 떠나야만 했을까?
아직은 엄마를 너무나도 절실히 원하는 아이들에겐
가혹한 형벌과도 같은 일을 꼭 해야만 하는 이유가 무얼까?
만나고 싶어도 쉽게 만나러 갈 수 도 없으며
만나러 오지도 않는 엄마가 아무리 좋은 것들을 아이들에게
보내준다고 한들 염마곁에 있고 싶은 아이들의 마음을
대신할 수는 없음을 모르는걸까?
점점 마약에 빠지며 망가져 가면서 엄마 곁에만 있다면
하는 바램으로 엄마를 만나기위해 몇번이고 눈물의 버스를 타는
엔리케와 고통과 좌절의 아픔을 함께 느끼며
이 책속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을 후회했다.
험난한 가시밭길을 달려 가는것만 같이
끝없는 고통속으로 빨려 들어 가는 것만 같은 느낌에
책을 읽으며 몇번이나 손에서 책을 놓고 싶었다.
이런 나처럼 엔리케도 아니 그런 환경에 처한 그 아이들도
잠시 자신이 하려고 하는 일을 중단하고 싶을 때가 없었을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리케가 간절히 원하는 엄마와의 해후를 위해
다시 눈물의 버스를 몇번이나 타고 사람 잡아 먹는 기차를 오르는 것처럼
나도 꼭 그 소망을 이루길 원하는 간절한 바램때문에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한다.
어서 이 고통의 노정이 끝나고 엄마를 만나기를 바라는
그런 간절한 맘으로 다시 책장을 넘긴다.
엔리케보다 더 고통을 당하는 더 어린 아이들
더많은 좌절과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몸이 불구가 되기까지 하는
그 아이들을 돌아 보며 자신이 처한 환경이 그래도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이 정말 아이러니 그 자체다.
그렇게 같은 고통속에 던져진 주제에 더한 고통을 당한 자를 보고
다행이라 여길 정도로 엔리케에게도 그 아이들에게도
엄마를 향해 달려간다는 더 큰 희망이 있기 때문이었을까?
엄마를 만날 수 있다는 확신은 갖지 못한 처지이면서도
그렇게 희망이 되고 힘이 되고 용기가 될 수 있는 그 '엄마'란 존재인 나는
달려가 그 아이를 꼭 안아 데려오고 싶은 아주 간절한 심정이었다.
아니 너무나 육체적 고통이 심하고 정신적으로도 불안한 어린 소년들을 볼때는
그노정을 중단 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었다.
차라리 엄마를 만날 수 있을까하는 희망을 머나먼 미래에 두더라도
현재 자신의 삶에 충실하기를 몇번이나 생각했다.
이런 내 맘을 알아 채기라도 한걸까?
오악사카와 베라크루스의 기찻길의 친절한 사람들은
작은 빵 꾸러미를 던져 주어 그 아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엔리케와 같은 사람들을 도와 그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들이
꼭 내 맘을 대신해 주는 것만 같아 참 위안이 되었다.
그렇게 엔리케가 드디어 엄마와의 통화가 이어진 날,
엔리케와 나는 함께 목이 메인다.
'오전 10시. 엄마가 그를 두고 떠난 지 11년이 지나서 .
122일동안 일곱번의 헛된 시도 끝에,
19,310킬로미터를 달려온 엔리케가 뒷좌석에서 튀어나와
빛바랜 빨간 나무 계단을 올라가, 이동식 집의 하얀문을
활짝 밀어 젖혔다. ' p234
드디어 엄마를 만나 그렇게 간절히 원하던 '엄마 곁에' 있게 되지만
그들을 갈라 놓은 세월만큼 그들에겐 알지 못하는 벽이 생겨 났다.
둘은 만나기를 간절히 원한 만큼 또한 서로가 너무 달라 한동안
참 많은 갈등으로 고통 스러워하고
또한 엔리케가 두고온 여인이 딸을 낳았지만 그들을 두고 떠났던
그들의 엄마처럼 그녀 또한 딸을 두고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는
똑같은 잘못을 저지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너무도 가슴 아프고
너무도 답답하기만 하다.
도저히 살아 갈 수 없는 나라여서 더 낳은 삶을 위해 아이를 두고
그렇게 돈을 벌어 아이들에게 좋은 것을 사 보내고
돈을 보내지만 더 낳아 지는 것이 무어란 말인가?
쳇바퀴 돌듯 그렇게 아이들에게도 자신과 같은 길을 걷게 만드는
그 사람들이 참으로 안타깝기만하다.
'그는 11년전 엄마가 떠났던 바로 그 현관 앞에 서 있었다. 'p71
바로 이렇게 그들과 그들의 아이들은 같은 곳에서 작별을 하고
같은 곳에서 엄마를 찾으러 가는일을 되풀이한다.
참으로 서글프고 애달프고 참담하기만 하다.
엄마를 만나기 위한 소망의 길이지만 너무나 고통스러운
그들의 여정은 여정이 아니라 노정이라 해야 맞지 않을까?
별점: 혹 고통의 노정을 바라보며 자신의 삶을 통찰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별 다섯!
그러나 그냥 모르고서도 착하게 자신의 처지에 대해 행복을 느끼면서 사는 사람에게는 별셋!
그렇게 권하고 싶지는 않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책이라 여긴다.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천로역정이란 책이 생각난다.
지금도 있을까? 천국문에 가기까지의 노정! 물론 그 내용은 하나두 기억에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