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에서는 작고 강한 출판사를 응원합니다.

상반기에 열 곳의 출판사를 선정하여 구간, 신간 구매하시는 독자에게 쿠폰과 적립금을 지원해드리고,

분기마다 두 종의 책을 선정하여 스페셜 북펀드로 독자에게 홍보를 하고,

알라딘에서 일정 부수를 구입하여 전국 각지의 작은 도서관에 책을 보내려고 합니다.

 

관련하여 열 곳의 출판사 가운데 매월 한 곳을 선정하여 '이 출판사를 응원합니다'라는 이벤트를 진행합니다.

큰 출판사처럼 많은 헤택을 드리진 못하지만 여러분의 응원 댓글, 알라딘의 10문 10답 인터뷰 등을 통해

깊이 있게 소통하고자 합니다. 아래 주소에서 이벤트 내용을 보실 수 있으니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이벤트 페이지 주소

http://www.aladin.co.kr/events/wevent_book.aspx?pn=2013_publish_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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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문 10답은 애초 100문 100답으로 진행할 생각이었으나,

대개 5명 이하인 출판사의 업무 마비를 우려하여

10문 10답으로 핵심만 간추렸습니다.

10문 10답을 살펴보시고 더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댓글을 남겨주세요.

출판사에서 성심과 성의를 다해 답글을 달아주실 겁니다.

또 압니까. 깜짝 선물을 드릴지.

그럼, 각설하고 10문 10답 내용을 공개합니다.

 

 

1. 출판사 이름이 ‘난장’입니다. 무슨 뜻인가요?
난장은 ‘亂場’입니다. 흔히 ‘난장판’의 그 난장으로 쓰이기도 하는데, “조선시대에 과거를 보는 마당에서 선비들이 떠들어대는 판”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과거 시험장의 웅성거림, 혹은 그런 웅성거림이 공개적으로 아무런 제재 없이 진행되는 마당인 거죠.
  저희는 이런 ‘亂場’ 속의 웅성거림이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agora)나 근대 서양의 공론장(public sphere)을 가득 채웠던 그 웅성거림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웅성거림은 어떤 자격 있는 자에게만, 그러니까 허락받은 사람에게만 가능한 웅성거림이어서는 안 될 겁니다. 누구나 평등하게 발언할 때 나올 수 있는 그런 웅성거림(웅성거림의 민주주의)이라고나 할까요? 이런 판을 만들어보고자 이름을 ‘亂場’으로 정했습니다(더 자세한 내용은 저희의 블로그[http://blog.naver.com/virilio73/80054724598]를 참조해주세요).

 

2. 출판사 모토가 ‘동시대의 사유, 사유의 동시대성’인데요. 말이 어렵습니다. 쉽게 풀어주신다면.
언어적 장벽이나 정보 부족이나 저작권 문제 등의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에게 잘 안 알려진 ‘동시대인들’의 사유를 발빠르게 소개한다는 취지가 ‘동시대의 사유’라는 표현에 담겨 있고, 비록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는 않지만 ‘지금 여기’의 문제를 고민할 수 있게 도와주는 사상가들(사유들)을 소개한다는 취지가 ‘사유의 동시애성’이라는 표현에 담겨 있습니다. 가령 조르조 아감벤이나 곧 나올 로베르토 에스포지토 같은 현대 이탈리아 사상가들의 작업을 소개하는 게 ‘동시대의 사유’라면, 사후 30여 년이 지났으나 오늘날의 ‘신자유주의’를 그 누구보다 더 냉철하게 분석한 미셸 푸코의 작업을 소개하는 게 ‘사유의 동시대성’이죠.

 

3. 첫 책이 하워드 진의 <권력을 이긴 사람들>입니다. 출판사의 첫 책으로 결정한 이유가 무엇인지요.(몇몇 독자들은 첫 책이 제일 쉬웠고 갈수록 책이 어려워졌다는 평을 하기도 합니다만.)
미국이라는, 한국과 떼래야 뗄 수 없는 나라의 역사에 대해서 가장 균형 잡히고 비판적인 논의를 펼치고 있는 학자가 하워드 진인데, 동료인 노암 촘스키보다 국내 독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아서 늘 아쉬워했던 저자입니다. <권력을 이긴 사람들>이 출간된 2008년은 마침 이명박 정부가 앞선 노무현 정부와는 달리 조지 W. 부시와 ‘끈적끈적한’ 관계를 과시하고, 퇴임을 앞둔 부시 정부의 공과(특히 대외정책)에 대해 얘기가 오가던 시점이었습니다. 책의 모든 내용이 그런 건 아니지만, 진은 부시 정부 8년의 주요 사건들에 대해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국내 언론을 통해서는 알 수 없는 내용들이었죠. 게다가 알려지지 않은 우리 주변의 영웅들, 정부의 폭력에 굴복하지 않은 대중의 진정한 힘을 보여준다는 점도 좋았고요. 책의 원제가 “A Power Governments Cannot Suppress”입니다.

 

4. 지금까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출판사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할 도서가 푸코의 콜레주드프랑스 강의일 텐데요. 이 시리즈에 대해서 자랑을 해주신다면.
푸코와 그의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자체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으니 일단 논외로 하고요, 저희 작업에만 국한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프랑스에서 푸코로 박사학위를 받고 온 국내 연구자들은 의의로 적습니다. 5명도 안 되죠. 그 중 가장 의욕적으로 푸코를 소개해오신 심세광 선생님이 별도의 작업팀을 꾸려 번역 작업 전반을 총괄해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꼭 이 시리즈에만 국한된 건 아닌데, 저희는 푸코의 모국어로 쓰여진 프랑스어판 이외에 입수 가능한 한 모든 언어의 판본을 번역시 적극적으로 참조하고 있습니다. 주로 독일어판, 영어판, 이탈리아어판, 일본어판 등입니다. 원본이 같은데 다른 나라의 판본과 대조하는 게 뭐 중요하냐,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이렇게 상이한 판본을 비교 대조하다 보면 일단 오역이 줄고 오타나 오식, 혹은 관련 서지사항 정보 같은 기타 원고상의 오류도 바로 잡을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시리즈처럼 저자 사후에 별도의 편집자들이 개입한 시리즈라면 더욱더 이런 비교 대조 작업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한국어판에서는 프랑스판의 오류, 특히 각 강의의 편집자들이 잘못 알려준 서지사항이 모두 바로 잡혀 있습니다. 유일한 문제는 작업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독자들의 독촉 전화를 자주 받아야 한다는…… ㅠ.ㅠ
 
5. 주로 현대 정치철학자들의 책, 그들의 이론에 관한 책을 내셨습니다. 최근 가장 주목하는 정치철학자가 있다면. 누구인지, 이유는 무엇인지 함께 들려주세요.
프랑코 베라르디 ‘비포’와 로베르토 에스포지토입니다. 둘 다 이탈리아의 사상가들이죠. 19세기에 맑스는 당대의 혁명적 사상이 “독일의 철학, 영국의 경제학, 프랑스의 정치학”을 자양분으로 삼고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을 이렇게 비틀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혁명적 사상은 “프랑스의 철학, 미국의 경제학, 이탈리아의 정치학”을 자양분으로 삼는다고 말이죠. 제가 보기에 ‘비포’와 에스포지토는 오늘날의 이 ‘이탈리아 정치학’을 대표하는 (당연히 유일하지는 않지만 가장 통찰력 있는) 사상가들입니다.
  일단 ‘비포’는 국내 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진 안토니오 네그리의 동지로서 이탈리아의 ‘1977년 운동’에 가담한 활동가입니다. 정부의 탄압을 피해 프랑스로 가서는 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 등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들과 다양한 인연을 맺기도 하죠. ‘비포’는 이에 대한 기억을 책으로 내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비포’는 풍부한 정치 경험과 이론적 기반을 바탕으로 현대 자본주의 사회(‘비포’의 표현을 쓰면 ‘기호자본주의’)의 굴레를 벗어날 새로운 정치학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특히 철학에 근거한 다른 이탈리아 사상가들과는 달리 미디어 이론의 관점에서 그런 작업을 행하고 있죠. 그런 점에서도 아주 독특하고 흥미로운 사람입니다.
  에스포지토 역시 국내 독자들에게는 낯선 사상가일 텐데, 제가 알기로 푸코가 미완으로 남겨둔 ‘생명정치’ 개념을 가장 포괄적으로 연구하는 사상가입니다. 특히 에스포지토의 ‘비오스’(Bios) 3부작은 <호모 사케르>로 유명한 조르조 아감벤의 생명정치 해석이나, ‘제국’ 3부작으로 유명한 안토니오 네그리의 생명정치 해석과는 또 다른 해석을 보여주며 논의를 풍부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간단히 촌평하자면 이렇습니다. 아감벤이 ‘부정적’으로 생명정치 개념을 쓴다면, 네그리는 ‘장미빛’처럼 생명정치를 묘사하는 경향이 있죠. 에스포지토는 이처럼 상이하게 이해되는 생명정치 개념의 불확실성을 균형 있게 탐구하고 있습니다. 저는 에스포지토의 해석이 그 과정에서 독창성을 얻었다고 생각하는데, 단지 에스포지토가 아감벤과 네그리 사이에서 중용의 길을 걷는 듯한 것처럼 보일 뿐일지라도 그 함의는 만만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 이거 에스포지토 참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곧 책으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6. 5년 동안 20여 종의 책을 내셨습니다. 많다고도 적자고도 할 수 없는 출간 종수인데요. 올해 나올 난장의 책들을 소개해주신다면.
상반기에는 오는 6월에 방한할 ‘비포’의 책, 그리고 계속 마무리가 지연됐던 푸코의 콜레주드프랑스 강의(<정신의학의 권력>, <비정상인들>,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작업이 출간될 예정입니다. 하반기에는 에스포지토의 ‘비오스’ 3부작 중 적어도 첫째 권이 출간될 수 있을 듯하고요, 그 외에도 조르주 바타이유의 <주권>(‘저주의 몫’ 3부)이 선보일 예정입니다. 또한 저희가 야심차게 준비 중인 사상가 평전 시리즈(‘이 사람을 보라’) 중 프랑수아 도스의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 뱅상 카우프만의 <기 드보르> 등도 준비 중입니다.

 

7. 출판사를 이끌어 오시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있다면?
많죠. 저희 같은 소규모 출판사들이 겪는 어려움은 당연하고 …… 음, 독자들이 책 값 비싸다고 항의할 때? 힘들다기보다는 좀 섭섭하죠. 사실 저희가 번역해 출판한 책들 중 원서보다 비싼 책은 없거든요. 번역서이니 당연히 저자 인세에다가 번역자 인세가 덧붙여지지 않습니까? 이와 연관된 건데, 나름 야심차게 준비한 국내물 기획들이 빛을 못 볼 때? <현대 정치철학의 모험>이나 ‘비평과 에세이’ 시리즈(<장치란 무엇인가?/장치학을 위한 서론>) 등이 그렇죠. 해외 저자들보다 국내 저자들을 소개한다는 취지로 준비한 기획들이었는데 아쉬울 따름입니다. 더 아쉬운 건 어느 정도 독자들의 반응이 있다고 판단되면 바로 작업에 들어갈 후속작업들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잠정적으로 중단됐죠. 곧 심기일전해서 재시도할 작정입니다.

 

8. 대표님께서는 비평고원 활동을 비롯해 여러 학술서의 번역도 해오셨는데요. 편집자, 출판사 대표, 연구자, 번역자 등 여러 일을 함께하면서 갈등이나 어려운 점은 없으신지요. 반대로 즐거움이 있다면 함께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어려웠던 점은 욕심이 비해 능력이 없었다는 것? 즐거움은 다양한 분야, 다양한 국적의 연구자들과 (온라인에서든 오프라인에서든) 친구가 됐다는 것? 사실 저희 모토(“동시대의 사유, 사유의 동시대성”)에 충실하려며 어떤 방식으로든 꾸준히 공부하고 글을 써야 현실 감각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인데 …… 무지 후회하고 있습니다. ㅠ.ㅠ 당분간 출판사 대표, 편집자 일에만 전념할 생각입니다.

 

9. 10년 후, 난장 출판사의 모습을 그려본다면.
10년 후에는 이런 질문에 확신을 가지고 비전을 밝힐 수 있는 출판사가 되어 있으면 좋겠습니다. ^^;;

 

10. 알라딘 작은 출판사, 작은 도서관 지원 사업에 대해 한 말씀 전해주시고, 함께 선정된 다른 아홉 군데 출판사에 응원의 메시지 부탁드립니다.
참신한 시도 같습니다. 앞으로 더 확대되고 오래 지속됐으면 좋겠어요. 사실 저희가 이번에 선정된 게 좀 뻘쭘해서 다른 출판사들도 더 많이 소개됐으면 하고 바라고 있습니다. 다른 아홉 군데 출판사분들, 언제 술이나 한 잔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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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belt 2013-04-10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콜레드주프랑스 심세광 선생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한탄(?)하신대로 앞으로 번역될 콜레드주프랑스를 기다리는 독자입니다 화이팅!

보노보노 2013-04-13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사의 모토에 어울리는 책들을 꾸준히 펴내고 있어서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궁금한 점이 있는데 난장에서 출판하는 책들의 표지는 무언가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 같은데
때로 '이건 뭐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많습니다.
표지디자인의 기준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

봄덕 2013-05-04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장을 응원합니다.^^
 

 

 

결혼을 앞둔 청춘남녀를 위한 <스님의 주례사>, 자녀를 키우는 부모를 위한 <엄마 수업> 등 국민 멘토로 활약하는 법륜 스님의 신작 <쟁점을 파하라>.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번에는 한국 사회를 둘러싼 다양한 갈등을 2012 대선이라는 국민 축제의 장을 통해 어떻게 풀어내고 조화롭게 만들어갈 것인가를 논한다. 남북평화를 바탕으로 한 동북아공동체, 경제민주화와 복지 문제 등 커다란 구조의 문제부터 청년과 비정규직, 여성과 육아 문제 같이 많은 국민이 체감하는 삶 영역의 문제까지. 즉문즉설로 잘 알려진 선명한 논리와 문제의 핵심을 돌파하는 직설로 오늘 한국사회의 현실을 돌아보고 내일 우리가 마주할 미래를 제안한다.

 

한겨레출판사의 도움으로 이번 책의 큰 맥락을 살펴볼 수 있는 서문을 사전 공개합니다. 왼쪽 표지를 누르시면 예약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들어가며

1987년 민주화 이후 지난 25년 동안 우리 사회가 많이 변했다. 하지만 그 변화가 현재의 국가운영 시스템에 충분히 반영되어 있지는 않다. 그리고 앞으로 25년을 내다봤을 때 현재의 국가운영 시스템이 부족한 점이 많다. 과거 25년 동안 경험한 것에서 필요한 부분을 반영하고, 앞으로 25년간 변화할 것을 예측해서 새로운 국가운영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필요하면 헌법 개정이라도 해서 새로운 국가혁신의 방향을 잡아야 한다.
  대한민국은 국가로서의 대한민국-Korea가 있고, 국민으로서의 대한민국-Korean이 있는데, 국가는 좀더 발전해야 하고, 국민은 좀더 행복해야 한다. 국가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통일을 해야 하고, 국민이 행복하려면 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 이것이 시대적 과제이다.
  국가 발전을 위해서는 우선 국가의 기반이 안정되어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남북 간 대결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지금의 분단 상태로는 국가가 더 발전하기 어렵다. 통일한국이 아닌 분단한국으로는 미·중의 경쟁이 치열해져 가는 국제정세 속에서 비전을 찾기 어렵다. 분단이 유지된다면 남과 북은 미·중의 하위변수가 되어 대립하고 갈등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통일이 국가발전의 핵심 키워드이다. 평화와 통일이 국가발전의 기본 방향이다.
  국민이 더 행복해지기 위한 조건도 살펴보자. 첫째, 국민의 정치적 자유가 더 확대되어야 한다. 지도자를 뽑는 시민의 권리는 확보했지만 선거 때만 잠시일 뿐이다. 일상적인 시민의 권리가 좀더 확보되려면 적어도 직접민주주의적인 요소가 더 많이 반영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지방분권이 강화되어서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자기 지역의 문제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국민의 다양한 요구가 국정에 제대로 반영되려면 다양한 국민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도록 다당제적인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 일상적으로 지역이나 계급·계층의 요구가 반영될 수 있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다양한 정당이 국회에서 일상적으로 정치행위를 해야 한다. 국민의 다양한 요구를 통합해내는 정치행위가 일상적으로 이루어져야 국민의 요구가 좀더 충분하게 정치에 반영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국민이 경제적으로 안정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성장이 더 되어야 한다. 성장이 정체 국면으로 가고 있는데, 통일이 성장의 새로운 동력이다. 북한 개발에 드는 비용을 투자의 개념으로 바라본다면 마치 미국의 서부개척처럼 더 큰 한국을 만드는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중국이 아직 더 성장할 테니 이를 활용하면 우리가 여기서 조금 더 성장할 수 있다.
지난 100년간 우리나라는 서구 문명을 모방하는 시스템이었는데, 모방으로는 이제 더 이상 발전하기 어렵다. 이것을 뚫고 나갈 창의력이 중요한데, 창의력이 결국 우리의 경제력을 한 번 더 성장시킬 동력이 될 것이다. 여기에는 창의적인 인재를 기르기 위한 교육이 굉장히 중요하다.
  또 하나, 예전에는 성장의 떡고물이 일반 국민에게도 좀 떨어졌는데 지금은 안 떨어진다. 그래서 분배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우리가 자본주의를 선택하고 있는 한, 개인이 경쟁을 통해 자기 기량을 최대로 발전시켜나가는 방식이 기본 골격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국가가 이 경쟁의 룰을 공정하게 만들고 관리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 국가가 이것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룰의 운용이 가진 자에게 유리하게 되는 것은 큰 문제이다. 정부가 공정성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공정하기만 하면 되느냐, 그렇지 않다. 아예 경쟁에 참여하지 못하는 약자가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나 장애인, 환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층에 대한 안전망이 충분히 구축되어야 한다. 이 문제가 복지이다. 그래서 새로운 사회는 공정과 복지가 함께 가야 한다.
  결국 세금을 거두는 조세정책과 세금을 쓰는 재정정책을 통해서 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운영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이것이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을 풀기 위해서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 ‘나를 따르라’는 방식의 성장시대 리더십도, 단결투쟁을 외치는 민주화시대의 리더십도 이 문제를 풀기 어렵다. 이제는 국민의 다양한 요구를 합리적으로 통합해내는 ‘통합의 리더십’이 중요하다. 이 통합의 리더십만이 국내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요구를 통합해내고 남북 간의 갈등과 대립도 통합하고 미·중의 이익균형점 역시 적절히 통합해낼 수 있다. 이를 통해 통일과 양극화 해소도 이룰 수 있다.
  이런 새로운 세상을 위해서 우리 모두 함께 진지하게, 어느 편인가의 문제, 누가 이기느냐의 문제를 넘어서, 우리 국가가 발전할 수 있도록, 우리 국민이 행복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자. 우리 국민은 안정을 요구하는 국민도 많고 변화를 요구하는 국민도 많다. 꼭 변화만이 옳은 것도 아니고 안정만이 옳은 것도 아니다. 이걸 함께 이끌어가는 게 필요하다. 정치권에서부터 경쟁할 때는 경쟁하더라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 서로 대화를 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만들어간다면 우리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오래전부터 사회적 쟁점들, 서로 싸우고 풀지 못하는 문제들, 서로 상처받고 손해를 보면서도 풀지 못하는 현안들에 대해 그 해법의 실마리를 찾아보는 이야기를 엮어보고자 했다. 내 주장이 모두 옳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방식으로 토론의 장을 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책을 펴낸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하는 핵심 동력인 국민 대통합의 리더십을 열고자 하는 이들에게 작은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기 바란다. 

 

- 2012년 11월, 법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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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을 만나는 방법은 간단하다. 책을 보면 된다. 어지간히 성실한 독자가 아니라면 책으로 나오는 그의 글을 다 읽기에도 숨이 벅찰 테니, 책 이외의 공간에서 그를 마주하는 일은 오히려 사치스럽다. 그래서인지 한국 사회의 주요 저자이면서도 그에 대한 서점의 인터뷰는 한 차례도 없었다. 그저 글에 집중하시도록 배려하는 게 나았을까. 서면으로 진행한 인터뷰이지만, 그의 일상, 읽기와 쓰기 그리고 대선을 앞둔 최근의 생각까지 차례로 살펴보면, 그를 귀찮게 해서라도 이런 자리에 불러내는 게 의미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재미는 충분한 일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 뿌듯하다. 믿지 못하시겠다면, 속는 셈 치고 첫 질문과 답변까지만이라도 읽어보시기 바란다.

 

이 인터뷰는 인물과사상사의 도움으로 진행되었으며, 단독 인터뷰를 기념(?)하여 강준만 저작을 모아 이벤트도 마련했다. 도서를 한 권이라도 사면 고급 플래너를, 운 좋아 당첨이 되면 강준만 교수 친필 사인본을 받을 수 있으니 한번 살펴보시기 바란다.

 

강준만 저작전 바로 가기

http://www.aladin.co.kr/events/wevent_detail_book.aspx?pn=121108_kangjm

 

 

강준만의 일상


보통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말씀해주세요.

전엔 주로 밤에 일을 하는 올빼미족이었습니다만, 언제부턴가 체력 저하를 느끼면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학교 강의, 책 읽기, 글쓰기 등이 저의 주요 생활입니다만, 매일 거르지 않고 개근하는 게 저녁 먹기 전 집 근처 헬스클럽에 나가 운동하는 것이죠. 일단 목표는 식스팩 만들기입니다만, 나이가 먹은 탓인지 예전처럼 근육이 잘 붙질 않습니다. 대학 시절 학교 앞 육체미체육관(70년대 초반엔 주로 이렇게 불렸습니다)에서 운동할 땐 조금만 해도 근육이 만들어지곤 했는데, 세월이 무섭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서 출퇴근 하는데, 왕복 1시간 거리입니다. 가는 길에 덕진공원의 호수가 있어 걷는 코스가 그야말로 환상적입니다. 매일 축복받은 삶이라고 느낄 정도죠. 

 

공식적으로는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사용하지 않으시는 걸로 아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핸드폰 쓴 것도 올해부터인데, 특별한 이유를 말씀드릴 필요가 있을까요? ^^ 전 솔직히 언론이 유명인사들의 한두 줄 트위터 메시지를 정치 뉴스로 다루곤 하는 게 영 못마땅합니다. 주요 용도가 자극적인 센세이셔널리즘이라고 보기 때문이죠. 일종의 ‘갈등 상업주의’라고나 할까요?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제 생각일 뿐이죠. 아마도 제 아날로그 감성의 한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학기에 맡고 계신 수업의 이름과 내용을 알려주세요.

이번 학기는 모두 ‘국제’네요. 국제커뮤니케이션, 글로벌미디어론, 국제커뮤니케이션 연구(대학원) 세 과목입니다. 문화간 커뮤니케이션(intercultural communication) 중심으로 강의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무역의존도가 가장 높은 국가인 한국이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는 길은 왕성한 해외지향성이라고 보기 때문에, 한국이 ‘문화간 커뮤니케이션’ 연구의 메카가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래서 이번 학기부터는 학생들의 리포트를 책으로 내기로 했습니다. 책을 낸다는 데 의미를 두는 게 아니라, 콘텐츠로 승부를 보겠다는 마음으로 야심작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벌써 일부 학생들은 책에 실을 정도의 품질을 기하기 위해 리포트를 서너번 고쳐쓰고 있는 중이죠. 방학중에 제가 편집 작업을 해서 내년 개강일에 학생들이 책을 받아볼 수 있게끔 하려고 합니다. 전 독보적인 책이 되어야 한다고 학생들을 괴롭히고 있는데, 나중에 책 나오면 행여 학부 학생들이 쓴 책이라고 깔보지 마시고 질을 평가해주시기 바랍니다. 바깥 세계를 보는 눈은 학생들의 눈이 더 정확하다는 게 제 소신이거든요.

 

대중문화에 관심이 많으시고 관련 저작도 내셨는데 좋아하는 가수나 배우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영화나 드라마를 즐기시는지. 음악은 어떤 장르를 좋아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더불어 최근에 본 기억나는 작품이 있다면 함께 알려주시길.

한꺼번에 답을 드리겠습니다. 넓은 의미의 대중문화로 보자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는 자연·동물 다큐입니다. 영화, 드라마, 가요의 취향은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있다기보다는 주제 중심이죠. ‘찌질이’라고 흉볼까 염려됩니다만, 러브 스토리, 그것도 가슴 저미는 실연(失戀)이나 비련(悲戀)이 좋습니다. 

 

가사 분담을 어떻게 하시나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외모의 느낌은 집안일 전혀 안 하실 것 같습니다.(웃음)

매일 아침 집 나갈 때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것 하나만큼은 완벽하게 합니다. 아내가 커피 생각난다고 말하면 즉시 뛰쳐나가 사올 정도의 실천은 늘 하고 있습니다. 단지 그것 뿐이라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요.

 

특별한 일이 없다면 전주에서 생활하신다고 들었는데, 전주에서 추천할 만한 맛집이나 꼭 들러보면 좋겠다 싶은 곳을 추천해주신다면.

제 단골 국수집을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만, 찾기가 매우 어려운 작은 집이라서. 전주 하면 많은 분들이 꼭 한옥마을을 들러보시죠. 인사동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는 게 타 지역에서 오신 분들의 한결같은 감상평이더군요.

 

 

강준만의 읽기와 쓰기

 

집필을 위한 기획이나 구상은 주로 어떤 때에 떠올리시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생각을 이어가시는지 궁금합니다.

지금 제가 집필하고 있는 책의 주제는 세계적인 미디어업계의 거물들에 관한 인물론입니다. 인물 중심으로 글로벌 미디어들을 탐구해보는 거죠. 예컨대, 페이스북에 대해 아무리 이야기해봐야 재미없고 딱딱한 이야기가 되고 맙니다. 하지만 마크 주커버그 중심으로 풀어가면 아주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되는 거죠. 주커버그 뿐만 아니라 처음에 페이스북을 같이 시작한 더스틴 모스코비츠와 에두아르도 새버린이 유대인이라는 사실, 이게 아주 좋은 분석의 소재가 됩니다. 구글도 구글 이야기만 하면 재미없는 IT 이야기일 뿐이지만, 구글 3인방인 세르게이 브린-래리 페이지-에릭 슈미츠 중심으로 풀어가면 구글의 정체성과 본질이 보입니다.
  제가 왜 이 책을 쓰게 되었나 하고 생각해봤더니, 이유가 복합적이더라구요. 학교에서 하는 강의의 내실을 기하기 위해, 아날로그 인간이지만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욱 디지털 문화에 대해 많이 알아야 한다는 자기계발 욕구, 스스로 탐구하면서 느끼는 재미 등등. 집필을 위한 기획이나 구상의 한 사례로 말씀드리는 겁니다. 무슨 장기 계획이 있다기보다는 주로 이런 식으로 해나가는 것 같아요. 제가 최근에 낸 <교양영어사전>도 지난해 교환교수로 미국에 1년간 머무르면서 떠오른 생각이었구요.  

 

‘엄청나다’는 표현이 궁색할 정도로 많은 글을 써오셨고 또 쓰고 계십니다. 하루에 한 글자도 쓰지 않는 날이 1년에 며칠 정도 되십니까. 더불어 글을 주로 어느 시간대에 쓰시는지 알려주신다면.

하루에 한 글자도 쓰지 않는 날이 의외로 많습니다. ‘발동 걸린다’는 말이 있는데, 일단 준비 작업 끝나면 그때부터 발동 걸려서 써대는 식이죠. 집에선 소파에 누워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책을 읽습니다. 텔레비전 켜 놓구요. 전 휴식이라고 생각하지요. 재미있는 장면이나 이야기 나오면 텔레비전 보고, 아니면 다시 책으로 눈을 돌리고. 책 읽으면서 제 책을 위해 써먹을 거리들을 그때그때 챙겨놓는 식이지요. 옆에 노트를 준비해놓고 키워드 중심으로 어디에 무슨 내용이 있다는 걸 표시해둡니다. 그리고 그걸 컴퓨터에 입력해놓지요. 이렇게 준비가 다 끝나면 본격적인 글쓰기 작업에 들어가는 식입니다. 예전엔 밤에 글을 많이 썼습니다만, 요즘엔 늦어도 밤 1시엔 자고 오전 7-8시 사이에 일어납니다.

 

장서 구입이나 자료 구입에 어느 정도 비용을 쓰시는지, 그리고 서가 관리는 어떤 방식으로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공간 문제 때문에 예전에 비해 많이 줄였습니다. 월 100만 원? 서가 관리의 한계를 자주 절감하곤 합니다. 시간이 너무 들어가니 제대로 못한다는 뜻이지요. 디지털 시대에 내가 이래도 되나? 이거 미친 짓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지만, ‘취미’로 생각하면서 스스로 정당화하곤 하지요.

 

독서를 하실 때에는 밑줄을 긋거나 메모를 남기기도 하시나요? 읽으면서 그리고 읽고 나서 내용과 생각을 정리하는 방법이 궁금합니다.

어느 책이건 책 끝에 하얀 여백이 한두장 있습니다. 제 책들은 대부분 그곳이 지저분합니다. 키워드 중심으로 어디에 무엇이 있다는 걸 다 표시해두기 때문이죠. 노트에 따로 적었더라도 나중을 위해 책 뒤 여백에 그걸 일일이 표기해두곤 합니다. 밑줄 긋는 건 물론 그때그때 떠오른 생각을 책 여기저기에 써두곤 하죠. 책을 곱게 모시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문학과 비문학, 집필에 필요한 독서와 (이런 게 가능하다면) 취미로서의 독서의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요.

모든 독서의 취미화를 추구하지요. 재미없거나 별거 아니다 싶은 부분은 속독하곤 합니다. 그러나 취미로서의 독서를 말씀하신 뜻은 그게 아닌 것 같은데, 실은 소설 잘 안 읽습니다. 스타일리스트가 될 수 없는 제 한계라고 생각하지요.

 

혹시 전자책을 보신 적이 있나요? 활용하신다면 어떤 점이 편리한지 혹은 불편한지 느낌을 알려주시고, 사용하지 않으신다면 사용하실 계획은 없으신지 알려주세요.

작년에 미국에 있으면서 아마존 골수 팬이 되었는데, 킨들을 쓸까 말까 하다가 한국의 전자책 진도가 더딜 걸로 생각해 결국 종이책을 부여잡고 말았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종이책보다 전자책이 더 많이 팔리고 있다지만, 우린 시간이 좀 더 걸리겠죠? 국내에서 대세가 기울어 불편하게 되면 ‘전향’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까지 펴낸 작품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책을 하나 꼽아주신다면 그리고 (뻔한 질문이지만) 무인도에 단 한 권의 책만 가져가야 한다면, 어떤 책을 챙기실 건지.

‘애착’의 개념 정의가 문제네요. 다 애착이 간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좀 진한 느낌으로 말한다면 애착이 가는 책은 없는 것 같아요. 아직도 애착을 느낄 만한 책을 쓰지 못한 것 같은 느낌, 아니 어쩌면 영원히 쓰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구요. 책을 실용적으로 대하는 발상 때문인 것도 같고,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을 가장 곤혹스럽게 생각하는 기질 때문인 것도 같고 잘 모르겠네요. 무인도에 단 한 권의 책만 가져가야 한다면, 무슨 책이건 불쏘시개로 쓰기에 유리한 두꺼운 책? ^^

 

 

 


 

 

 

 

 

 

 

 

 

 

 

 

그리고 강준만의 생각

가장 좋아하는 정치인 그리고 작가를 한국, 해외로 나눠서 꼽아주신다면.

왜 이런 질문을 곤혹스럽게 생각할까? 스스로 물었지요. 인간을 불완전한 존재로 보는 인간관 때문인 것 같아요. 이 사람은 이런 점, 저 사람은 저런 점이 좋고, 전 늘 이런 식이지, 종합해서 누구냐고 물으면 늘 말문이 막히곤 합니다. 연애만 그렇게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죠.

 

월간 <인물과 사상>은 ‘저널룩’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고, 인물 인터뷰 형식에서도 새로운 시도로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선생님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몸 같은 잡지인데, <인물과 사상>의 사회적 역할과 의미에 대해 그간의 흐름을 간략히 짚어주시고 이후의 전망도 들려주신다면.

제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네요. 다만, 이번 대선 관련해서 여러 정치인과 논객들 말씀하시는 걸 보면서 새삼 ‘인물과 사상’ 생각을 했지요. “아니 저 분은 자신이 예전에 했던 말을 기억 못하는 걸까?”  라고 생각했던 적이 여러 번 있었지요. 예컨대, 늘 정당을 쓰레기처럼 여기는 발언을 수도 없이 했던 분이 ‘무소속’을 무슨 죄악인 양 여기면서 ‘정당 민주주의’의 수호신처럼 행세하시는 걸 보고서 쓴 웃음을 짓곤 했지요. 그런데 어떤 인물에 대해서건 우리 사회엔 종합적인 인물 평론이 없어요. 전 ‘인물과 사상’을 통해 그런 일을 하자는 뜻이 강했거든요. 그런데 결국엔 시장 논리에 밀려 예전처럼 왕성하게 지속되진 못했지요. 한동안 ‘인물과 사상’을 좋아해준 독자들의 생각은 좀 달랐던 것 같아요. 카타르시스 효과를 우선시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죠. 그래서 그 효과가 떨어지는 인물론엔 비교적 관심이 없었고요. 하지만 월간 [인물과 사상]을 통해 지속적으로 그 일을 다시 왕성하게 해보고 싶네요. 

 

소위 논객의 시대가 끝났다, 는 말들이 많지만, 여전히 선생님과 격론을 펼친 논객들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그 판에서는 한 발짝 물러나 계신 느낌인데요. 관련한 시대 상황의 변화에 대한 생각 그리고 개인적인 소회를 들려주신다면.

실은 한 발짝이 아니라 두어 발짝 물러나 있지요. 제가 <안철수의 힘>이라는 책에서 소개한 “멘토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탄 멘티들”이라는 논지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이 되겠네요. ‘멘토’ 대신 ‘논객’이란 말을 넣어도 무방한데, 이런 내용이었지요.
  “나는 일부 정치적 멘토들의 경우엔 겉으론 리더인 것 같지만 실은 편가르기 구도의 졸(卒)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멘티들이 멘토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타 있다는 것이다. 물론 멘토들은 멘티들에게 진한 감동과 더불어 행동을 하게끔 자극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마저 멘토가 프레젠테이션(presentation)을 잘했다는 것을 의미할 뿐, 멘티들은 이미 듣고 싶은 메시지를 자신이 갖고 있었다는 걸 잊어선 안된다. 멘티들은 멘토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보내다가도 멘토가 자신이 애초에 갖고 있었던 구도나 틀을 넘어서는 발언을 하게 되면 하루 아침에 무시무시한 적으로 돌변해 돌을 던질 수 있다.”
  이건 제 경험담이지요. 논객은 치어리더라는 것이지요. 물론 그 역할도 소중하긴 한데, 전 제가 치어리더였다는 걸 깨닫고선 흥미를 잃었지요. 다만 논객의 의미를 넓게 잡는다면, 이젠 좀 다른 방식으로 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지요. 예컨대, “멘토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탄 멘티들”이라는 논지도 저의 다른 방식의 논객 역할일 수도 있다는 거지요. 

 

<김대중 죽이기>와 <노무현 죽이기>의 출간과 두 대통령의 당선으로 “강준만이 죽이면 그 정치인은 산다.”는 말이 떠돌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안철수의 힘>인데요. 대선에 대한 분석과 평가 그리고 전망의 방식이 달라진 까닭은 무엇일까요.

이 또한 “멘토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탄 멘티들”이라는 논지의 연장선상에서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이른바 ‘시대정신’이라는 말을 쓰는 분들마다 각기 다른 의미로 말씀을 하시니 혼란스럽긴 합니다만, 어떤 특별한 시대적 상황은 정치인이건 지식인이건 한 개인이나 집단의 통제 밖에 놓여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이론으로 풀 수 있는 것도 아니지요. “한국정치, 이대론 안된다”는 대전제에 만인이 동의하면서도 그것이 개탄의 수준을 넘어섰던 적이 있었던가요? 그 수준을 넘어선 것처럼 보였던 시도도 없진 않았지만, 그건 정략이나 한풀이를 앞세웠던 탓에 실패로 돌아갔구요. 이런 시대적 상황이 안철수를 만들고 키운 게 아닐까요? 그런 시대적 상황을 무엇으로 보느냐 하는 해석의 차이가 존재하는 가운데, 저는 그걸 시대정신으로 보는 쪽에 선 것일 뿐이지요.

 

 


 

 

 

 

 

 

 

 

 

 

 

 

<안철수의 힘>에서 안철수를 지지하는 세 가지 이유를 증오시대의 종결자, 공정국가 실천자, 패러다임의 변환자로 꼽으셨는데요. 그때는 안철수 후보가 아직 출마를 선언하기 전인데, 선거 운동이 시작된 지금 시점에서도 그 생각이 유효하신지요?

김지하 시인 말씀이 떠오르네요. 김 시인께선 ‘지난 7월에는 안철수 후보가 가장 자질이 뛰어나다고 했는데 지금도 그런가’라는 질문에 “그때는 잘 몰랐다”며 “정작 후보가 돼서 하는 걸 보니 근 열흘 동안 아무것도…, 깡통이야”라고 비난했다지요. 그러면서 “무식하단 뜻이 아니다”라면서 “처음엔 뭐 있는 줄 알았는데 아직 어린애”라고도 했다는 말씀 말입니다. 저는 김 시인의 말씀을 존중합니다만, 내심 “아 이렇게 보는 눈이 다를 수 있구나!”하고 좀 놀랐지요.
  하지만 ‘깡통’이니 ‘어린애’니 하는 말에 너무 주목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실제로 출마 선언 이후의 안철수에 대해 실망한 분들도 적지 않을 것인 바, 그런 분들의 생각을 좀 거칠게나마 대변하신 걸로 볼 수 있겠지요. 그런데 제가 볼 때에 그런 분들은 안철수에게 확실하게 ‘준비된’ 무언가가 있기를 바랐던 거 같아요. 전 그게 엄청난 과욕이자 착각이라고 보는 거구요.
  맞아요. 안철수는 어린애지요. 우리는 보통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론을 말할 때 “어린애 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그러지요. 그런 점에서 안철수가 어린애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지요. 그런데 이상론엔 두가지가 있지요. 실현이 불가능한 이상과 실현이 어려운 이상이지요. 정치의 정상화는 후자지 전자는 아닙니다. 모든 국민이 원하는, 엄청난 빽이 있는 이상입니다. 실망을 한 분들은 팔짱 낀 자세로 그 이상으로 가는 일정표를 평가해보겠다는 자세였던 것 같아요. 전 그런 자세가 모든 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보는 데에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전 안철수 후보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 하고 있다는 데에 놀라는 쪽이지요. 조국 교수가 평소 말하곤 하던 ‘정치적 근육’이 만만치 않다는 걸 보면서 앞으로 국민과 같이 더불어 해나갈 수 있는 일이 많다는 쪽에 기대를 거는 편이지요. 안 후보 비판 가운데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게 많은지 아실른지 모르겠네요. 예컨대, 준수한 용모를 가진 어느 신문 논설위원님은 각종 방송토론회에 단골로 출연하시면서 안 후보의 ‘청와대 이전’ 검토를 최대의 망발이라며 줄기차게 공격하시던데 그 분은 신문도 안 읽나봐요. 청와대를 ‘후진국형 권위주의 공간’으로 규정하면서 확 뒤집어 바꿀 것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얼마나 높았는데, 그땐 잠자코 계시다가 이제 와서 그러시는지.

 

대선을 앞두고 2013년 체제 등 새로운 시대를 구상하고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오늘 한국의 시대정신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승자 독식으로 인해 악화된 내부 갈등 비용을 줄여야 합니다. 안철수를 지지하건 반대하건, 설사 그가 대통령직 도전에 실패하더라도, 그가 던진 메시지에 우리 모두 계속 주목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는 "우리 정치권은 승자 독식이 반복되기 때문에 결국 증오의 악순환에 빠진다"며 "여(與)나 야(野) 누가 이기면 국민의 절반이 절망한다"고 말했지요. 또 그는 “상대방을 지지하는 국민 절반을 적으로 돌리고, 국민을 반으로 갈라 놓는, 낡은 프레임과 낡은 체제로는 아무런 사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말했지요. 전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오늘 한국의 시대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대선을 코앞에 둔 지금 유권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아무리 잘못된 관행일 망정 익숙한 것과의 결별에 따르기 마련인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용기와 패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용기와 패기를 치기(稚氣)로 돌리면 일순간 마음은 편해지겠지만, 우리 대한민국이 그렇게 안주하길 바라진 않겠지요? 지도자에 대한 신뢰 못지 않게 우리의 국민적 역량에 대한 신뢰를 가지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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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알라딘 인문MD 박태근입니다. 지난 2010년 1월에 시작한 알라딘 인문학스터디가 3년 여의 시간 위에서 한 호흡 쉬어가려 합니다. 그간 25개의 주제에 100여 개의 강좌를 열었고 대략 10000여 명의 독자 분들께서 함께해주셨습니다. 저는 가끔 온라인 서점 MD로 일하며 자랑할 만한 일이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아마도 가장 많은 독자를 현장에서 만난 MD일 텐데 여기에서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하곤 합니다.

 

강의 당일에는 어김 없이 야근과 여러 사정으로 강연회에 참석하기 어렵다는 문자메시지가 쏟아지지만, 시작한 지 한 시간이 되어서도 열심히 달려오시는 여러 분의 모습을 보면서 늘 감사하고 또 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좀더 여유로운 시간에 풍성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좋으련만, 늦은 밤에야 마치는 강연 시간 때문에 그 흔한 뒷풀이도 몇 차례 나누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인문학스터디가 이어져온 건 모두 여러분 덕분입니다. 이제서야 여러분의 목소리를 들려드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너무 늦었지만, 우리에겐 새로운 시즌 2가 있으니, 슬퍼하기보다는 함께 웃으며 시즌 1을 마치려 합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가르치는 이의 되새김]


"인문학스터디는 살아 있는 도서관이다." _장동석(12기, 살아있는 도서관을 만나다))

너무 속보이나요. 그러나 어디서 이런 분들의 삶과 독서 인생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한 분 한 분 만나는 분들이 뿜어내는 책과 독서를 향한,

그리고 삶을 향한 애정과 열정을 달리 무엇을 표현할 수 있을까요.

또 어떤 분들이 인문학 스터디를 빛내 주실지....

더 많은 살아 있는 도서관들이 인문학 스터디를 빛내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인문학스터디는 물이다." _김태완(8기, 조선 왕의 공부)
 
물은 모든 생명체가 삶을 이루어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요소이지만 우리는 평소에는 그 존재가치를 잘 모른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고 땅속으로 스며들어 나무를 싹 틔우고 물고기가 헤엄치게 하고 짐승이 마시게 한다. 

 

"인문학 스터디는 호젓한 숲길을 혼자서 오래 걸은 다음 열린 광장에서 갖는 즐거운 만남이지요." _안인희(7기, 처음 만나는 북유럽 신화)
 
하루 일과를 끝내고 조금 지쳐서 오신 분도, 멀리서 달려와준 분도 있고, 학생도 있고 나이드신 분도 있고,

사연은 여러가지지만 모두가 반가운 분들이었어요. 상상 속에서 만나던 독자를 현실에서 만나는 시간이었으니까요.
인문학 자체가 과거와와 만남을 포함할 수밖에 없고, 책도 결국은 만남의 한 방식이지요.

낯선 이름이 줄줄이 나오는 낯선 신화를 놓고 현실에서 만나는 일이 낯설면서도 어딘지 친숙한 느낌을 주었죠.
여름비가 내리는 밤에 초롱초롱한 눈길들과 만난 것은 지금 생각해도 즐거운 일이었어요.

우리 모두 이야기가 필요한 사람들이겠지요. 옛날이야기와, 또 직접 만나 서로 이야기하는 일도요.

 

"인문학스터디는 맞선이다." _안대회(3기, 키워드 한국문화)

저자가 최근에 책으로 펼쳐놓은 주제를 놓고 독자와 직접 얼굴 마주보고 떠벌리고 힘주어 설득하는 자리였다.

독자가 청중이 되어 저자의 주장과 생각에 어느 정도 공감했는지를 눈빛으로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맞선보는 설레임이 있는 행사다.


"인문학스터디는 여행이다" _정병설(3기, 키워드 한국문화)

새로운 경험과 지식을 통해 자기를 더 많이 알아가는 과정이며 결국 돌아올 것이면서도 떠나고 싶은 것이기 때문이다.

 

"인문학스터디는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이다." _로쟈 이현우(9기,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
다시 찾아보니 '인문학스터디 9기' 주제가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이었다. 그래서 지젝의 구호를 골랐다. 무엇이 불가능한가? 자본주의의 극복이 불가능하고, 사람사는 세상의 도래가 불가능하고, 제대로 살아보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 보인다. 현실이고 물정이다. 인문학스터디는 이 현실에 대한 부정이고 물정에 대한 거부다. 쉬운 일이라면 이런 공부는 시작도 안 했을 것이다. 오히려 희망이 없다는 게 든든한 배경이다. 가진 게 없으면 털릴 것도 없는 것처럼. 오히려 불가능은 우리의 자본이다. 불가능한 것으로 가능성을 빚어내는 것이 우리의 연금술이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거라면 시작도 안 했다. 그리고 시작한 일은 끝까지 간다. '인문학스터디'가 잠시 쉬었다가 종주해주길 바란다. 더디 가도 우린 갈 데까지 가는 스타일이다.   

 

"인문학스터디는 묵정밭에 핀 장다리꼿이다." _최성각(4기, 우리 시대 생태와 환경책)

 

"인문학스터디는 경계없는 도서관이다." _엄기호(15기, 인문학의 눈으로 본 우리 삶의 꼬라지)



 

[배우는 이의 되새김]

 

"인문학스터디는 시원한 우물이다."
무언가라고 느껴지는 삶의 갈증을 해소해주는 스터디이기 때문이다.

 

"인문학스터디는 '박태근MD의 아이' 이다."

이유는요,

물론 맨 처음에 누가 기획하고 만든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인문학 스터디 강좌를 들으러 가면 항상 와 계시고,

(다른 이벤트에 다른 MD분들도 다 오시는지는 모르겠지만, 3년간 일주일에 한 번 꾸준히 온다는게 쉽지 않죠!)

덕분에 인문학 스터디 강의를 다 들으셨으니 가장 혼연일체가 되어계신 분이 박MD님이 아니실까 해서요. :)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2기도 어서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인문학 스터디는 지층의 수직절개면이다." 
현대인의 바쁜 일상사에서 우리는 표면에 드러난 것만 보고 세상을 판단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 삶이 그렇게 표면적인 것만은 아니며, 역사의 퇴적으로 이루어진 깊은 지층으로 형성되어 온 것이지요.
그 퇴적물이 곧 인간의 역사이며 철학이고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생의 인간은 그 위에 새로운 지층을 형성해 나가는 과정 중에 있고,

인문학의 깊이와 높이 그리고 넓이를 확장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인문학 스터디는 그 두터운 지층의 단면을 꿰뚤어 통찰하는 과정입니다.
굴착기 역할을 해 주신 알라딘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인문학스터디는 항상 깨어 있으라는 주문이다."

인문학의 본령인 사람을, 그리고 지금 여기의 현실을 인지하고 있을 것.

이것을 알라딘 인문학스터디는 놓치지 않게 해줬다고 생각합니다.

참석하지 못해도 스터디 제목과 발제로 쓰인 책만 보아도,

생활에 쫓겨 등지기 쉬운 많은 것들에 조금이나마 예민해질 수 있었습니다.

혼곤한 의식 속에서도 작은 빛을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인문학스터디는 내공충전이다."

일주일에 한번은 온전히 나를 위한 충전의 시간을 보내는 기쁨과,

인문학을 통한 삶의 내공이 함께 쌓이는 유익함도 가질 수 있어 문장을 완성해 보았습니다.

매번 좋은 자리 마련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인문학스터디는 담장 안에 갇혔던 사고의 외출이다."

 

"인문학스터디는 노후 삶의 여유이다."
인문학스터디는 그동안 생업을 벗어나
다른 세계를 느껴볼 여유를 갖게 해 주었읍니다

"인문학스터디는 바쁜 삶 속에서 인문학을 배울 수 있는 알찬 기회이다."

 

"인문학스터디는 삶을 살아가는 지침서이다."
한국의 교육은 인문학, 역사, 세계사, 미술사, 철학 등의 학문을 경시하고,

대신 학문의 요약본이나 텍스트북을 통해 외우고 암기하는 단답형의 교육 환경에서 자랐지요.
두꺼운 고전을 읽고 스스로 생각하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거나, 토론하는 것,

혹은, 이러한 인문학 서적에서 삶의 지혜를 찾고 문제를 해결하는 등은 전혀 경험해보지 않았을 겁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학 졸업 후 사회에 나가서도 자신의 길을 만들어 나가지 못하고,

안정적으로 보이는 직장과 직업을 찾아 전전긍긍 하다가,
정년 퇴직후엔 또 무엇을 할지 몰라 프랜차이즈 등 누군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에 들어가고 싶어합니다.

설명이 너무 길었네요..
암튼, 삶의 해답을 찾고 혜안을 가질 수 있는 것이 바로, 인문학

사실, 인문학을 스터디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참 안타깝습니다.


"인문학스터디는 심장과 뇌를 움직이게 하는 자극제이다."

 

"인문학 스터디는 나와 타자의 관계를 분석하는 집단지성의 지혜를 디딤돌로 삶아 삶의 방향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인문한 스터디는 콩나물이다"
책을 읽고, 스터디에 참석할 때마다 제 지식도, 마음도, 시선도 쑥쑥 자라나게 하는-

 

"인문학스터디는 아메리카노이다."
매일 마시는 아메리카노 같아서요.
맨 처음 들었던 인문학 스터디가 생각납니다.
퇴근하고 가느라 종종 지각도 하고,
참석하지 못한 수업들도 많지만...

인문학 스터디 시즌2도 기대하겠습니다.  
 
"인문학 스터디는 새로운 숨이 트이는 시간이다."
일단 듣고 싶은 강좌를 신청은 해뒀는데, 퇴근 후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가는 게 영 쉽지가 않은데
막상 가서 강의를 들으면 머릿속에 공기가 통하는 것처럼 새롭게 숨이 좀 트이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어요.

 

"인문학스터디는 일상의 배후이다."

 

"인문학스터디는 사추기(?)에 만난 든든한 벗이다."

서른아홉, 삶의 반환점을 같이 돈~

 

"인문학 스터디는 내 삶의 도돌이표다."
그저 지나쳤던 시간들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합니다.

단지 한템포 쉬어가는 쉼표가 아니라

이미 지나온 시간들도 의미있게 곱씹도록 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강좌인 것 같습니다.^^

 

"인문학스터디는 오아시스다."

획일적이고 바쁜척하며 돌아가는 일상에서, 자유를 향한 타는 목마름에 허덕일때 그 마른 목젖을 적셔주던 인문학스터디
인간임을 잊어가는 사막과같이 메마른 나날속에서 인문학스터디는 다시한번 생명의 불꽃을 지펴주는 오아시스와 같았습니다.
희망의 샘물이 마르지 않기를 기원하며 충분한 휴식기를 거치시기를 바랍니다.

 

"인문학스터디는 내 대학 생활의 일부이다."
알라딘 인문학스터디는 대학교에 입학하고 한참 인문학에 대한 갈증을 느낄 때,

저의 갈증을 해소시켜 준 일종의 학교 밖 학교였습니다.
매 기수 강의마다 참여하진 못했지만, 인문학스터디 강의 안내 메일을 받을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고나 할까요?

그런 지적인 설레임이 있었고, 어느 정도 강의 수준에 대한 믿음도 있었습니다.

알라딘 인문학스터디를 통해서 알게 된 저자분들도 꽤 많고,

그 분들의 다른 저작들을 읽으면서 나름의 공부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 이런 기회를 접하게 해 주신 알라딘을 비롯, 인문 MD 박태근 님께 감사드립니다.

언젠간 꼭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었는데, 이렇게라도 기회가 되어서 다행입니다.

종강 특별 강좌에 참여하게 된다면, 간단하게 대화라도 나누어보고 싶네요.


"인문학스터디는 괴짜친구이다."
이유는.. 인문학이라는 것이 공학을 하는 저에게는 약간은 동경의 대상이라는 점과

인문학스터디를 통해 보지 못했던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되면서 많이 깨닫게 되고,

또한 그로 인해 제 인생이 조금씩 변화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변의 괴짜친구들을 접했을 때의 그런 동경과 변화의 그런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저는 그렇게 적고 싶습니다.

시즌 1동안 고생하셨습니다. 덕분에 유익하고 좋은 시간들을 가지게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인문학스터디는 휴식이다."
일상에 쫓기어 살다가 잠시잠깐 저녁녘에 잠시 잊고있던 책장에 꽂아둔 오래된 책을 펼쳐보았을 때의 그 느낌. 

휴식이란 느낌이었어요.


"인문학스터디는 내장산 전나무 숲길이다."

예전에 내장산 전나무 숲길을 걸으면서 상쾌함과 여유로움을 느꼈고

또 자연을 보면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았는데요,

인문학스터디도 내장산 전나무 숲길처럼 제 지친 생활에 상쾌함과 여유로움을 주고,

인문학으로 나 자신을 반추하게 해주었습니다.

시즌 1이 끝나고 더 나은 시즌 2가 곧 시작될 거라고 믿습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고맙습니다.


"인문학스터디는 가끔 멈춰서서 들여다보는 나침반이다."

 

"인문학스터디는 현미경이다."

모르고 살던 것도, 모르고 싶었던 삶의 단면, 세계의 모습도 보게 만들어줬으니까.
박태근 MD님,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덕분에 삶과 마음이 풍요로운 시간들이였습니다.
잊지 못할 소중한 시간이였습니다.

또 좋은 자리에서 뵙게 되길 바라겠습니다.

 

"인문학스터디는 나의 쉼표다."

 

"인문학스터디는 연결고리이다."
일상에 젖어 항상 익숙한 것만 찾게 되는 저에게 인문학스터디를 통해서 새롭고 다양한 내용을 알게 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스터디에서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강사님들의 다른 책이나 추천해 준 책들을 찾아보며

또 다른 소소한 재미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올해 우연히 이 스터디를 알게 되어서 정말 행운이었던 거 같고, 내년에도 기대하겠습니다.

 

"인문학스터디는 어두운 밤, 길을 잃은 나그네에게 길을 밝혀주는 등불이다."
때로는 사정상 많은 좋은 시간들을 놓쳐버렸지만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들이 있어서 무척이나 유익했습니다.

몰랐던 것을 알았을 때의 기쁨, 내가 외면했던 세계들, 그런 것들을 접할 수 있는 인문학스터디는

앞으로도 제게 좋은 만남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인문학스터디가 앞으로도 더욱 발전되길, 많은 사람들이 그 좋은 만남을 갖게 되길 바래봅니다.
올 일년 무척 애쓰셨습니다.
깊어가는 가을 행복하시고 다시 만날 인문학스터디를 기대하겠습니다.
종강 특별강좌도 무척이나 기대가 되는 군요^^
 
"인문학스터디는 타인과 세상에 대한 관심이다."

 

"인문학스터디는 아쉬운 엿보기다."
가끔 시간을 따져보고, 책도 사서 기다려보지만, 자꾸 다른 일이 생겨서 참석하기 어렵네요.
책만 이리저리 굴려 볼 따름입니다. 좋은 강연 기획하고 운영하신, 긴 시간 고생하셨습니다.
시즌 2. 기대하고 기다리겠습니다.

 
"인문학스터디는 치유다."
치료가 아닌 치유.. 전체성과 완정성을 통합해 본연의 '나'로 돌아가는 행위가 '치유'인 것이죠.
제대로 참석도 안하면서 제 멋대로 생각해보았고요..
마무리는 시간을 꼭 낼 생각입니다.
 

"인문학스터디는 둥글게 모여 앉아 이로운 이야기를 하는 곳이다."
 
"인문학 스터디는 플러스 입니다."
이과생 적인 표현^^; 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제게는 지식의 플러스, 추억의 플러스, 독서량의 플러스 등
너무 도움만 받았거든요.


"인문학스터디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비티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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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입자 힉스로 추정되는 입자가 발견되어 화제인데요. 여기저기서 우주의 비밀을 풀 인류 최고의 발견이라고 하는데, 도무지 이게 뭔지 모르겠다는 푸념도 들리고, 과학 분야 담당자로서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테지만, 저 역시 이 발견이 제 삶을 어떻게 바꿀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는 형편이라, 마친 나온 <물리학을 낳은 위대한 질문들>에 있는 '신의 입자란 무엇인가' 한 꼭지를 전해드리는 걸로 대신할까 합니다. 복잡하지도, 길지도 않고 핵심만 딱 간추린 내용이니 어디 가서 빠지지 않고 이야기를 알아들을 정도로는 충분할 겁니다. 이 책은 물리학의 주요 개념 스무 가지를 이런 방식으로 설명하는데, 입문서로 맞춤하니 이번 기회에 살펴보셔도 좋겠습니다. 자, 이제 '신의 입자'가 무엇인지 알아보지요. 

 

 

 

신의 입자란 무엇인가?
힉스 보존과 대형 강입자 충돌기(LHC), 그리고 질량의 근원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레온 레더만(Leon Lederman)이 말했다. "그것이 신(神)과 무관하다는 것은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 정작 놀라운 것은 그 입자가 아직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우주의 모든 비밀이 소립자에 숨겨져 있다고 믿는 물리학자들에게는 레더만의 말이 짓궂은 농담처럼 들릴 것이고, 과학이 삶의 의미까지 밝혀줄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별로 유쾌하지 않은 독설처럼 들릴 것이다.


안타깝게도 신의 입자(God particle)는 우주의 모든 것을 말해 주지 않았으며, 삶의 의미를 밝혀주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힉스 보존(Higgs boson)을 찾아야 할 이유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 입자가 발견되면 입자물리학의 표준 모형(standard model)은 마지막 퍼즐 조각이 끼워지면서 완전한 체계를 갖추게 된다. 힉스 입자가 정말로 존재한다면 우리는 우주의 근본적 성질 중 상당 부분을 밝힌 것이 되고, 모든 물질들이 지금과 같은 질량을 갖게 된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만일 이런 입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입자물리학은 출발점으로 되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 드라마는 스위스를 무대로 펼쳐지고 있다. 제네바에 위치한 유럽 공동 원자핵 연구소(European Organization for Nuclear Research, 이하 CERN이라 한다.)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입자 가속기가 운영되고 있는데, 물리학자들은 이 거대한 장치가 표준 모형 이론의 진위 여부를 판가름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형 강입자 충돌기(Large Hadron Collider, 이하 LHC라 한다.)로 불리는 이 입자 가속기 속에서 양성자들끼리 거의 빛의 속도로 충돌하면 힉스 보존이 튀어나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전 세계의 물리학자들은 피터 힉스(Peter W. Higgs)가 1964년에 제안했던 가설에 어떤 판정이 내려질지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힉스 보존의 탄생

피터 힉스의 제안은 매우 간단하다. 그는 모든 입자들이 갖고 있는 질량의 근원을 추적하다가, 어떤 장(場, field)이 존재하여 입자들에게 질량을 부여한다는 가설을 내세웠다. 이것은 기존의 중력장이나 전기장이 아닌 새로운 장으로서, 빅뱅 후 우주가 식으면서 형성되어 특정한 입자들의 운동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그런데 질량이 큰 물체일수록 움직이기가 어려우므로 힉스는 이 장이 입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근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힉스는 이 논문을 <피직스 레터(Physics Letters)>라는 학술지에 제출했으나, 심사위원이 "현실적인 물리학과 다소 거리가 있다."는 이유로 게재를 거절했다. 그래서 힉스는 논문의 일부를 수정하여 다음과 같이 구체적인 예견을 내놓았다. "핵자들을 서로 단단하게 결합시키는 힘 속에서 이 장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지만, 아직 발견된 사례는 없다." 그 무렵에 스티븐 와인버그(Steven Weinberg)와 압더스 살람(Abdus Salaam)은 전자기력과 약한 핵력을 하나로 통일시키는 연구를 막 시작하고 있었다.
  전자기력과 약한 핵력은 신기하게도 비슷한 점이 많았다. 전자기력을 양자 역학 버전으로 서술한 이론은 양자 전기 역학이고, 방사능의 형태와 태양의 핵융합 등은 약력 이론(weak force theory)으로 설명되는데, 이들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비슷한 특성을 공유하고 있었다(19장 자연에서 가장 강한 힘은 무엇인가? 참조). 와인버그와 살람은 연구를 거듭한 끝에 두 힘이 정말로 하나의 근원에서 탄생했음을 증명했고, 여기에는 '약전자기이론(electroweak theory)'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러나 이 이론은 하나의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약전자기 이론이 맞으려면 W 보존과 Z 보존이라는 매개 입자가 존재해야 하는데(보존은 힘을 만들어내는 입자의 총칭이다.), 그때까지 단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입자물리학의 동물원에는 생전 본적도 없는 생소한 명단이 추가되었다.
  더욱 곤란한 것은 W 보존과 Z 보존이 질량을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전자기력의 경우에는 빛의 입자인 광자가 힘을 매개하는데, 보존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광자는 질량을 갖고 있지 않다. 만일 광자와 W, Z 보존이 통일된 이론에서 같은 역할을 한다면 이들 사이에는 어떤 대칭성이 존재해야 한다. 그런데 광자는 질량이 없고 W 보존과 Z 보존은 질량을 갖고 있다. 그래서 물리학자들은 무언가가 이들 사이의 대칭성을 붕괴시켰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이것은 양팔저울의 균형을 세심하게 맞춰 놓은 후 한쪽 접시에 작은 조각을 얹으면 균형이 붕괴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렇다면 접시에 올라간 조각은 과연 무엇인가? 무엇이 이들 사이의 대칭을 붕괴시켰는가? 피터 힉스가 그 대답으로 제시한 것이 바로 힉스 장(Higgs field)이었다.
  1967년에 와인버그와 살람은 약전자기 이론에 힉스 장을 도입했다. 그리고 1983년에 CERN에서 실험을 하던 중 약전자기 이론에서 예견되었던 W 보존과 Z 보존이 실제로 발견되었다. 그야말로 입자물리학의 여정에 마지막 후렴구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단 한 가지 문제점은 힉스 장의 존재 여부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힉스 장을 찾아서

힉스 장을 표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직관적으로 이해하려면 주름이 잡힌 골판지를 떠올리는 것이 가장 쉽다. 손가락을 골판지 위에 대고 주름이 난 직선 방향을 따라 이동하면 아무런 저항도 느껴지지 않는다(골판지와의 마찰은 무시하자.). 그러나 방향을 90도 돌려서 주름의 수직 방향으로 이동하면 어떤 저항이 느껴질 것이다. 즉, 이전보다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 골판지를 힉스 장에 비유했을 때 W 보존과 Z 보존은 바로 이런 방향을 따라 움직이고 있다. 광자는 힉스 장에 난 홈을 따라 움직이는 반면, W 보존과 Z 보존은 움직일 때마다 홈과 부딪치기 때문에 어떤 저항을 느끼게 되고, 그 결과가 질량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 정도면 꽤 그럴듯한 아이디어이다. 하지만 학계에 수용되려면 증거가 있어야 한다. 방향성을 가진 힉스 장이 전 우주에 깔려있는데 광자는 그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W 보존과 Z 보존만이 힉스 장을 느끼기 때문에 질량을 갖는다.- 이 가설을 증명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힉스 장에 대응되는 입자가 실험실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물리학에 등장하는 모든 장은 그에 대응하는 입자를 갖고 있다. 전기장의 입자는 광자이고 중력장의 입자는 중력자이며(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강한 핵력에 대응되는 입자는 글루온이다. 따라서 힉스 장이 정말로 존재하여 W, Z 보존에 질량을 부여하고 있다면 그에 대응하는 입자, 즉 힉스 보존이 존재할 것이다. 이런 식의 유추가 과연 먹혀 들어갈 것인가?
  사실 물리학자들은 입자물리학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는다. 물론 어떤 면에서는 입자물리학이 커다란 성공을 거둔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입자물리학은 수많은 입자의 존재를 성공적으로 예견했으며(힉스 입자는 예외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입자를 발견할 수 있는 환경까지 거의 정확하게 예견해 왔다. 물리학자들은 입자의 에너지를 언급할 때 '전자볼트(electronvolt, eV)'라는 단위를 사용한다. 예를 들어 전자 하나가 9볼트짜리 배터리를 통과하면서 얻는 운동에너지는 9전자볼트(eV)이다. 와인버그와 살람은 CERN의 연구원들에게 "90기가전자볼트(GeV)의 에너지로 입자들을 충돌시키면 W와 Z 보존을 발견할 수 있다."고 예견했다.
  표준 모형은 모든 것을 예견하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물리학자들은 이론 물리학에 등장하는 26개의 기본 상수들이 왜 하필 지금과 같은 값을 가져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아직도 밝히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부 입자는 어떤 에너지에서 관측될지 알 수가 없어서 무작정 시행착오를 반복해야 했다. 예를 들어 쿼크의 일종인 꼭대기 쿼크는 그 존재가 이론적으로 예견되고 거의 20년이 지나서야 가까스로 발견되었다. 그 주된 이유는 꼭대기 쿼크가 어느 정도의 에너지 수준에서 발견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관측된 결과는 170기가전자볼트였다.). 안타깝게도 힉스 보존 역시 이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런 입자가 분명히 존재하긴 하는 것 같은데, 어디서 찾아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물리학자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자신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를 바라면서 입자 가속기의 덩치를 점점 키워가고 있다.


충돌과 포획

입자 가속기를 이용한 충돌 실험은 언뜻 볼 때 필사적인 마구잡이 사냥 같지만 사실은 매우 계획적이고 정교한 작업이다. 사실 입자물리학의 역사는 충돌 실험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니스트 러더퍼드도 충돌 실험을 통해 원자핵을 최초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톰슨이 제안했던 '건포도가 박힌 푸딩' 모형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1909년에 그 유명한 산란 실험을 실행했다. 러더퍼드는 얇은 금 박막에 알파 복사선(헬륨 원자의 핵)을 빠른 속도로 발사했는데, 실험 결과 대부분의 알파 입자들은 박막을 그냥 통과했고 일부는 왔던 방향으로 크게 되튀어나왔다. 이로부터 그는 원자의 중심부에 양전하가 밀집되어 있으며, 이것이 원자 질량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바로 '핵물리학'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 후로 물리학자들은 핵의 내부 구조를 탐사하기 위해 더욱 큰 입자 가속기를 꾸준히 만들어 왔고, 그 결정체가 바로 CERN에 있는 LHC이다. 이 가속기는 '힉스 보존을 발견해 줄 강력한 후보'로 언론에 자주 언급되었지만, 이런 목적으로 건설된 가속기는 LHC가 처음이 아니다. 물리학자들은 힉스 보존이 어느 에너지 수준에서 발견될지 알 수 없었으므로(표준 모형 이론은 약 96기가전자볼트를 권장했다.) 여러 해 동안 시행착오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가속기의 규모가 커지면서 희망도 점점 부풀었으나, 힉스 보존은 좀처럼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힉스 보존을 발견할 목적으로 처음 건설된 입자 가속기는 CERN에 있는 대형 전자-양전자 충돌기(Large Electron Positron collider, 이하 LEP라 한다.)이다, 둘레 27킬로미터짜리 원형 터널로 이루어진 LEP는 전자와 양전자를 거의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시킬 수 있다. 터널 안에는 4,600개의 자석이 설치되어 있어서 입자의 길을 유도하는데, 전체 구조가 스위스 쥐라(Jura) 산맥의 기슭을 지나 프랑스까지 걸쳐있을 만큼 방대하다. 그 속에서 전자와 양전자는 원형 궤도를 따라 서로 반대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 자석이 유도하는 길을 따라 거의 빛의 속도로 달리던 전자와 양전자가 정면으로 부딪치면 충돌의 여파로 수많은 입자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 주변에는 4개의 초대형 감지기가 설치되어 있어서(하나의 크기가 웬만한 집과 맞먹는다.). 쏟아져 나온 입자의 궤적을 기록하고 있다. LEP가 한 번 가동되면 실험이 몇 시간 동안 계속되는데, 그 사이에 매 초마다 2,200만 번의 충돌이 일어난다. 가동이 끝나면 과학자들은 감지기에 기록된 데이터를 수집하여 전자-양전자의 충돌 효과를 분석한다.


힉스 입자를 흘끗 보다

1989년에 가동을 시작한 LEP는 45기가전자볼트의 출력으로 입자를 가속시킬 수 있었다. 이 정도면 Z 보존을 발견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후에 가속기의 출력을 보완하여 W 보존까지 생성시키는데 성공했고, 가동을 멈추던 무렵에는 출력이 209기가전자볼트까지 향상되었다. 그런데 가동이 중단되기 직전인 2000년 9월에 힉스 보존과 비슷한 입자가 발견되어 전 세계 물리학자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이 발견은 115기가전자볼트 근처에서 이뤄졌는데, 이 정도면 표준모형의 예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값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데이터의 양이 너무 적어서 통계적인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때 내려진 결론은 아인슈타인의 질량-에너지 등가 원리, 즉 E=mc2에 입각한 힉스 보존의 에너지가 114기가전자볼트 이상이라는 것이었다.
  힉스 보존의 질량은 꼭대기 쿼크 및 W 보존의 질량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과학자들은 힉스 보존의 질량이 가질 수 있는 상한값과 하한값을 꾸준히 추적하여 탐색 영역을 좁혀 왔다. 최근에 W 보존의 질량으로부터 추정된 힉스 보존의 질량은 대략 153기가전자볼트 근처이며, 이 입자를 찾으려는 경쟁은 지금도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2009년에 페르미 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2010년 말까지 힉스 보존이 발견될 확률은 50퍼센트 정도'라고 했다. 이 경쟁에서 가장 유리한 고지에 있는 사람은 LHC를 운용하는 연구원들이다. LHC는 지금까지 인류가 만든 모든 기계들 중 출력이 가장 큰 초대형 장비로서, LEP가 놓여있던 지하 터널에 설치되어 있다(LEP는 2000년에 철거되었다.). 이곳을 지나는 양성자와 반양성자는 광속의 99.9999991퍼센트까지 가속된 후 14테라전자볼트(14TeV=14,000GeV)의 에너지로 충돌하게 된다. 이렇게 보면 엄청난 에너지인 것 같지만, 입자 빔의 굵기가 수천 분의 1밀리미터에 불과하기 때문에 사실 그다지 큰 양은 아니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이 가속기가 예기치 못한 대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다며 가동을 반대하고 있다.


힉스 입자의 흔적

초대칭(supersymmetry, susy) 힉스 입자들은 LHC의 감지기 안에서 다양한 흔적을 만들어낼 것이다. 이 흔적들은 특정 에너지에서 존재하는 입자를 나타내며 이들은 다시 여러 개의 입자로 붕괴된다. 감지기에 힉스 입자만 나타나도록 설계되어 있다면 아주 쉽게 찾을 수 있겠지만, 온갖 입자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난리통 속에서 특정 입자를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힉스 입자를 놓치는 것도 문제지만 엉뚱한 입자를 힉스 입자로 오인해도 큰 혼란이 빚어진다.
  미국에서 가장 큰 입자 가속기인 페르미 연구소의 테바트론(Tevatron)도 힉스 입자를 발견해 줄 후보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또한 LEP가 얻은 데이터 속에 이미 힉스 입자가 포함되어 있는데, 과학자들이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입자 가속기에서 초대칭의 흔적이 발견된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이다. CERN의 연구원들도 LHC가 초대칭의 증거를 발견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것이 발견된다면 입자물리학은 또 한 번의 혁명적인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사실 힉스 입자가 발견된다고 해도 질량의 근원은 여전히 미지로 남을 것이다. 입자들이 왜 하필 지금과 같은 질량을 갖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꼭대기 쿼크의 질량은 전자의 정지 질량의 100만 배가 넘는데, 그 이유를 설명해 주는 이론은 아직 발표된 적이 없다. 힉스 보존은 약력과 질량의 상호 관계를 밝혀 주겠지만, 쿼크의 질량이 그토록 큰 이유까지 설명해 주진 않는다. 더욱 신기한 것은 양성자 안에 있는 쿼크의 질량과 쿼크들을 결합시켜 주는 에너지를 모두 더한 값이 양성자의 질량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입자물리학자들은 전자의 질량을 아직도 이론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입자 가속기 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건 간에 '신의 입자'는 그 이름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할 것 같다. 그 존재를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물론 짜릿한 경험이겠지만, 그와 함께 신의 입자의 이론적 토대가 처음 기대했던 것만큼 단단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깨닫게 될 것이다.

 

 

 

 

 

 

 

 

 

 

 

 

위 글은 <물리학을 낳은 위대한 질문들>의 '8장. 신의 입자란 무엇인가?' 전문입니다. 도움 주신 휴먼 사이언스 출판사에 감사 말씀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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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 young 2012-07-14 0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 읽었습니다 감사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