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숭례문 화재의 책임을 지고 문화재청장 직에서 사임한 이후 나는 참회하는 마음에서 일체의 사회적 활동을 자제하고 학생들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해 왔다. 그런 지 1년이 지난 지금, 아무래도 나의 본업은 문화유산에 대한 글쓰기에 있다는 생각에서 이제 국보 순례 길에 나서게 됐고, 그 첫 번째 이야기는 당연히 숭례문이 되었다."

2009년 4월 1일 조선일보에 연재를 시작한 '유홍준의 국보순례", 지난 2년 동안 연재한 100회분을 모아 같은 이름의 책으로 정리했다. 본문을 보강하고, 특히 이미지를 시원하게 한 면에 배치해 일종의 도록 역할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올해 <답사기> 시즌 2로 돌아온 유홍준의 연이은 책이 무척 반갑다. 이 책의 서문과 본문 한 꼭지를 먼저 소개한다. 올 여름 문화유산에 흠뻑 빠져보시길 바란다. 현재 예약판매 중, 8월 2일 출간 예정.

 

‘나라의 보물’을 순례하는 마음

<유홍준의 국보순례>는 문화재로 지정된 국보, 보물만이 아니라 ‘나라의 보물을 순례하는 마음’으로 쓴 글이다. 우리 마음속에 간직할 기념비적인 유물들을 하나씩 찾아가는 명작 해설이며, 우리들이 잊어서는 안 되는 명품들의 뒷이야기를 소개한 책이다.
전체를 놓고 보면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1>의 낱낱 장면을 유물 중심으로 이야기한 것이다. 그러나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1>은 통사라는 틀을 벗어날 수 없고 미술사적 사항 이외의 이야기들이 들어갈 여지가 없다.
  이에 반해 <유홍준의 국보순례>는 순례자의 느긋한 여유가 허용된다. 객관적 사실을 명확히 제공한다는 데는 차이가 없지만 시대와 장르를 넘나들면서 때로는 에세이 풍으로, 때로는 재미있는 이야기로 전개할 수도 있다.
  명작 해설이란 결국 간결한 대중적 글쓰기에 다름 아닌데 이게 보통 힘겨운 것이 아니다. 본래 짧고 쉽고 간단하게 쓰는 것이 더 어렵다. 대중적인 해설이란 전문적 지식을 대중의 눈높이로 낮추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전문 지식을 대중들도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풀어내어 눈높이를 높이는 것이다. 피겨스케이팅에 비유하자면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1>은 선수권대회의 지정 종목이고 <유홍준의 국보순례>는 갈라쇼 같은 것이다.
  이 책은 2009년 4월부터 조선일보에 매주 목요일마다 기고한 ‘유홍준의 국보순례’의 2년치, 100회분을 묶은 것이다. 신문에 연재할 땐 반드시 200자 원고지 5.2매에 맞추어야만 했다. 그러나 책으로 엮으면서 각 해설을 책의 판형에 맞춰 약간 늘려 쓰고 유물에 따라서는 세 쪽 또는 네 쪽을 할애하기도 했다.
  해설 맞은편에는 가능한 한 가장 좋은 유물사진을 실었다. 본래 미술사 책은 글 못지않게 사진이 중요하다. 사진만으로도 저자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것이 미술사 책이다. 그런 의미에서 외국인들도 즐길 수 있도록 유물사진에 영문을 병기하였다. 특히 이번 책에서는 해외문화재를 많이 다루었다. 일본의 경우는 아직도 찾아갈 곳이 많지만 미국과 유럽에 있는 중요한 유물들은 미술관별로 대략 일별해본 셈이다.
  책이 나오게 되니 누구보다도 조선일보 문화부 식구들과 변용식 발행인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이 일어난다. 가끔 내게 왜 ‘유홍준의 국보순례’를 조선일보에 연재하냐고 묻는 분들이 있다. 그것은 조선일보가 내게 원고청탁을 했기 때문이다. 이 지면은 상당한 연륜과 권위를 갖고 있다. 나 이전에는 유명한 ‘이규태 칼럼’이 있었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문일평 선생의 ‘화하만필(花下漫筆)’도 있었다. 나로선 영광된 지면을 제공받은 것이다.
  글, 사진, 편집 모두에서 까다롭기로 ‘악명’ 높은 내 책을 기꺼이 맡아준 눌와의 김효형 대표, 변함없이 나를 도와주는 명지대 문화유산자료실의 김자우ㆍ김혜정 연구원, 신문에 글이 나가면 미세한 잘못을 지적해주었던 독자분들께도 깊은 감사의 뜻을 보낸다.
  나의 ‘국보순례’가 언제까지 이어질 지에 대해서는 생각한 바가 없다. 나라에서 국보로 지정한 유물만도 400점이 넘으니 아직도 갈 길이 한참 남았다. 또 어느 정도 순례를 마치면 두 번째 책으로 엮어 독자 여러분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 2011년 7월 유홍준

 


연담 김명국의 죽음의 자화상


화가에게 있어서 술은 간혹 창작의 촉매제였다. 취옹(醉翁)이라는 호를 즐겨 사용한 17세기 인조 연간의 연담(蓮潭) 김명국(金命國)은 정말로 취필(醉筆)을 많이 남겼다. 사람들은 그를 주광(酒狂)이라고 불렀고, 실제로 그는 술을 마시지 않고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영남의 한 스님이 지옥도를 그려달라고 할 때 그는 술부터 사오라고 했다.
  그리고 번번이 술에 취하지 않아 그릴 수 없다며 술을 요구하였다. 그러다 마침내 그림이 완성되었다고 하여 스님이 찾아가 보니 염라대왕 아래서 벌 받는 사람들을 모두 중으로 그려놓은 것이었다. 스님이 화를 내며 비단 폭을 물어내라고 하자 연담은 껄껄 웃으며 술을 더 받아오면 고쳐주겠노라고 했다. 스님이 술을 사오자 연담은 술을 들이키고는 중 머리에는 머리카락을 그려 넣고 옷에는 채색을 입혀 순식간에 일반 백성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남태응의 증언에 의하면 연담은 술을 마시지 않고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지만 술에 취하면 또 취해서 그릴 수 없어 다만 욕취미취지간(慾醉未醉之間), 즉 취하고는 싶으나 아직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만 명작이 나올 수 있었다고 했다. 연담의 명작으로는 취필이 분명한 <달마도>가 있다. 그러나 내가 가장 연담다운 작품으로 생각하는 것은 〈죽음의 자화상〉이다. 상복(喪服)을 입은 채 지팡이를 비껴 잡고 어디론가 떠나가는 자의 뒷모습을 그린 것인데 그림 위쪽에 마구 흘려 쓴 화제(畫題)를 보면 저승으로 가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을 만드는데 將無能作有
그림으로 그렸으면 그만이지 무슨 말을 덧붙이랴 畵貌己傳言
세상엔 시인이 많고도 많다지만 世上多騷A客
그 누가 흩어진 나의 영혼을 불러주리오. 誰招已散魂

동서고금에 자화상은 많고도 많다. 그러나 죽음의 자화상, 그것도 저승으로 표표히 떠나는 그림은 달리 찾아볼 수 없다. 연담에게 술은 창작의 촉매제이자 삶과 죽음을 초탈한 경지로 들어가게 한 묘약이었나 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근 조선왕조실록 열일곱 번째 책을 출간한 박시백 화백을 만났다. 실록이란 엄청난 기록을 만화로 옮기는 작업 자체도 대단하거니와 지난 10여 년 동안 꼼짝 않고 하나의 작업에 집중해왔다는 사실도 놀랍다. 스무 권 완간을 눈앞에(지난 세월에 비하면 정말 눈앞이다) 둔 지금, 그가 어디에서 시작해 어디쯤 와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디로 나아갈지 짚어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의외로) 알라딘에서 진행하는 첫 인터뷰라 독자분들께서 궁금해할 만한 질문들을 하나둘 묻고 듣다 보니 분량이 만만치 않다. 다행인 건 박시백 화백이 이날 유독 즐겁고 신나게 자기 이야기를 풀어냈다는 점이다. 일과를 물으며 시작한 이야기는 조선사 전체에 대한 그의 생각으로 이어진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작은 이야기도 서로의 생각이 오고가며 쌓이면 하나의 역사가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싶다. 자, 그럼 시작해보자.

-------------  

그간 알라딘과 인터뷰가 없었습니다. 처음인 데다 이후 완간 때까지는 놓아드려야 할 듯싶어 오늘 작정하고 이것저것 여쭤보겠습니다. 이렇게 한 권을 마치고 나면 한 달 정도 휴식을 갖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이 시간을 잘 지내야 하는데, 정말 어이없이 한 달이 그냥 지나가곤 해요. 쉬면서 다음 권을 위해 워밍업을 해야 하는데 말처럼 쉽질 않아요. 책이 나오면 오랜만에 소주 한 잔 나누자는 사람들도 있고,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면 한 달이 어영부영 지나가거든요. 그래서 10권 때까지는 보름만 쉬고 바로 다음 권 작업에 들어가곤 했는데, 이젠 긴장이 풀어져서 쉬엄쉬엄 지내고 있어요.

1년에 두 권씩 꾸준히 써내려면 나름의 흐름이 있을 듯합니다. 하루 일과를 어떻게 보내시나요.

매일 하는 일이 모여 한 권을 만드는 거니, 전체적인 과정을 말씀드려도 괜찮겠지요? 일단 실록 공부를 시작하는데, 보통 3개월 정도가 걸립니다. 특히 세종실록이나 영조실록은 재위기간도 길고 관련 기사도 많아서 실록 공부에 훨씬 많은 공을 들였어요. 어쨌든 이 기간 동안에는 다른 건 안 하고 실록에 푹 빠집니다. 간간히 참고도서도 보는데, 이건 1할 정도밖에 되지 않아요. 한 차례 공부를 마치면 정리한 자료로 요약본을 만들어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앞뒤가 뒤섞여서 금방 읽은 내용도 잊어버리기 쉽거든요. 책 뒤에 붙은 연표보다 상세한 형태의 자료를 만든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걸 보면서 큰 흐름을 잡고 구성을 시작하는데, 얼개가 나오면 콘티를 짜고, 다음에는 그림 작업이죠. 보통 펜선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 교정 작업을 하는데, 이후에 컬러링을 거치면 한 권이 나오는 거죠. 이렇게 6개월 과정을 마치면 잠시 쉴 틈을 얻습니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선생님께서는 한겨레에서 만평 작가로 활동하다 돌연 자리를 박차고 나와 조선왕조실록이란 큰 기획을 시작하셨는데요. 조선사에서 실록을 선택한 부분은 충분히 예상이 가능한데, 그 이전에 왜 조선을 택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우연한 일이라 매력이 없는 답변이 될 듯한데요. 만평이라는 게 시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우리나라 정치 환경이라는 게 계속 반복돼왔잖아요. 국회에서 여야가 멱살 잡는 장면, 이런 게 1년에 몇 번씩 나오는데 그렇다고 그냥 지나칠 수도 없는 노릇이란 말이죠. 설, 추석 같은 명절도 1년에 두 번씩 꼬박꼬박 돌아오는데, 이런 소재도 놓치지 않고 다뤄줘야 하고요. 이걸 몇 년 반복하다 돌아보니 몇 년 더 했다가는 만화적 에너지가 고갈될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스스로 그런 평가를 내렸다면, 한겨레에 남아 있는 일이 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닐뿐더러, 아직 새로운 시작을 할 힘이 있을 때 살 길을 찾자는 생각이었어요. 만화가로서 아직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은 일 가운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이런 고민을 하다가 교양만화가 밥벌이 삼기에 괜찮겠다 싶었어요.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군요. 전형적인 성공담 분위기인데요. 말씀하신 우연한 일이란 건 뭐죠?

아, 그래서 뭘 가지고 할까 고민을 했죠. 애초에 조선사는 관심 영역이 아니었어요. 오히려 현대사 쪽이었죠. 그런데 그때 <왕과 비>라는 사극 드라마를 보게 되었는데 제가 배경지식이 너무 없고 무식하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래서 도서관에서 관련된 책을 찾아보는데, 이게 재미난 거예요. 게다가 쓴 사람들마다 관점뿐 아니라 아예 팩트가 다른 거예요. 황당했죠. 아, 우연은 다음 이야기인데요. 때마침 국역 조선왕조실록 CD를 30만원인가 40만원인가, 하여튼 특가로 판다는 광고가 한겨레에 나온 거예요. 그때 아, 이거다 싶었죠. 읽어보기도 전에, 해보자고 마음을 먹은 거예요. 일단 하면 무조건 잘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혹시 다른 사람이 먼저 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했지만요.(웃음)

선생님의 40대를 통째로 앗아간(?) 조선왕조실록과의 만남이군요. 잠깐 곁다리 질문인데 만평 작가로 활동하게 된 계기는 뭔가요?

만화가로서 애초에 극화를 하고 싶었어요. 그때가 서른 즈음이었는데 몇 차례 응모했다가 떨어지고, 도서관에서 다른 공부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마침 한겨레에서 만평 작가를 모집하는 거예요. 만평이라고는 대학 시절에 몇 번 그려본 거 말고는 경험이 없었는데, 그냥 하고 싶은 거예요. 밍기적거리다 마감 전날에야 밤을 새면서 작업을 시작했는데, 어이없게 합격이 되었어요.

어째 이야기가 다시 전형적인 성공담으로 넘어가는 듯한데요.(웃음)

아, 그게 아니고 아마 박재동 선생님 눈에 뭐가 씌인 게 분명해요. 저는 완전 아마추어였는데, 함께 경쟁했던 친구들은 경험도 있고 잘 했거든요. 박재동 선생님이 실수하신 거죠. (웃음) 아마 가능성을 좀더 보지 않았나 싶어요. 1년 정도 하다가 아무래도 스토리가 있는 게 잘 맞겠다 싶어서 다른 지면을 얻었죠. 호흡도 맞았고 호응도 괜찮았어요. 그때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에 대한 연습을 한 듯해요. 그런데 전 프로 근성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프로 근성이 부족하다니, 무슨 말씀이죠?

대부분 만화가들은 1판에서 문제가 있으면 2판에서 수정을 하곤 하는데, 저는 그걸 참 싫어했어요. 틀리지만 않으면 그냥 가는 거예요. 프로 근성이 없는 거죠. (웃음) 물론 마감을 앞두고는 엄청나게 집중해서 작업을 마무리하죠. 아마 조선왕조실록을 이렇게 공들여 작업했으면 훨씬 질 높은 작품이 나왔을 거예요. 아무래도 호흡이 다르니까요. 조선왕조실록은 큰 흐름 속에서 편하게 흘러가는 지점이 있거든요. 

 

 

그럼에도 실록을 읽어내는 과정은 육체노동에 가까울 듯합니다. 아직 세 권이 남아 있지만, 실록을 처음부터 끝까지 ‘몸으로’ 읽어본 사람으로서 실록의 가치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요.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죠. 조선뿐 아니라 동양에서의 역사기록에 대한 기본 입장은 객관성과 공정성을 최대한 살리는 데 있거든요. 최고 권력자인 왕조차도 기록에 접근할 수 없었으니까요. 우선 이런 역사 정신과 이를 실천하기 위한 제도가 대단하다는 생각이에요. 물론 실록도 사람이 기록하는 거니까 사관이나 당파에 영향을 안 받을 수는 없죠. 그럼에도 실록에는 어전회의나 왕과 신하들 사이의 토론, 상소문 같은 게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어요. 이런 자료에 기초해 진실에 다가설 여지가 있는 거죠. 예를 들어 선조실록은 광해군 집권 시기에 나왔으니 북인 계열의 입장이 반영되어 율곡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에서 서술을 했겠죠. 그런데 율곡이 올린 만언소라든가 다른 대신들과 나눈 토론 내용도 그대로 기록되어 있거든요. 이런 걸 함께 보면 당파의 농간을 넘어 그 인물 본연의 모습에 상당 수준 다가설 수 있어요.

그러니까 실록이 ‘기록’이라는 애초의 목적을 제대로 구현했기 때문에, 하나의 기록물 안에서 균형 잡힌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는 거군요.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요. 기록이 많은 주요 인물이야 이런 방법이 가능하지만 소소한 인물들은 당대 사관이 나쁜 놈이라고 해버리면 그렇게 평가가 고착되기 쉬운 면도 있거든요. 이런 부분에서는 제 책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하여튼 이런 부분은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당시를 마치 현장중계 하듯이 생생하게 살려놓은 기록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오늘 있었던 사건을 9시 뉴스나 신문으로 보는데, 평범한 사건 기사들은 팩트에 충실하지만 내밀한 정책 결정 과정 같은 내용을 보면 왕왕 팩트 자체도 언론사의 입장에 따라 다르게 말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이런 현실과 비교해보면 실록은 정말 있는 그대로를 기록했다고 생각하고, 이런 면에서 위대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럼 ‘의미와 가치’에서 조금 벗어나, 제대로 보는 방법이랄까요, 이런 맥락에서 말씀을 해주신다면요.

제가 당대 사건들을 평가함에 있어서 어떤 기준을 가지고 해석하고 논평하는지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를 말씀드릴 수 있는데요. 하나는 현대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거고, 다른 하나는 당대의 관점에서 평가해보는 일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동안의 역사 기록을 보면 어떤 권위 있는 평가가 한 번 내려지면 이것이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그대로 이어지거든요. 후세 역사가들은 다시 그것에 기초해서 이야기하고요. 예컨대 조광조는 현령과를 주장했는데 이게 추천제잖아요. 과거를 통해서 인재를 뽑는 게 아니라 덕망 있는 사람들을 추천받아 임용해야 한다는 거죠. 만약 정책으로 채택이 되었다면 이후에 그야말로 정치적 인사가 횡행할 수밖에 없는 내용인데 이런 부분에 대한 비판은 당대에는 별로 없었죠. 그러면 비현실적인 주장으로 폄하해버릴 것인가 하면 그건 또 그렇지 않아서 당대에 열혈 사림 열혈 청년 들의 시대상의 요구라는 게 있다는 거죠. 훈구파들이 장악하고 있는 틀을 깰 여지가 있으니까요. 이것에 기초해서 나름 새 세상을 건설하자는 사림들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되었으니 이런 면들을 함께 봐야 한다는 것이죠. 설명이 좀 됐는지 모르겠네요. 다시 정리하면 아까 말씀드렸듯이 당대의 가치, 현재의 눈으로 보는 가치를 잘 조화해서 봐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조광조 말씀하신 김에 인물 이야기로 넘어가보겠습니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조조록에서 대략 천여 명의 인물이 주요하게 다뤄지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단일 만화로는 최다 인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웃음) 그런데 이 사람들이 안에서는 의리(義理)를 얘기하다가 밖에만 나오면 바로 계산기를 두드린단 말이죠. 다들 너무 정치적인 거예요.
 
그렇죠.

아마 독자들이 이런 면에 공감하는 부분도 있을 듯합니다. 일전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걸 떠올려보면 이런 인물들을 다채롭게 표현하는 데 있어서 주요 인물 같은 경우에는 지금 현실에서 비슷한 사람을 떠올려서 그려보기도 한다고 말씀하셨던 것 같은데요.

네, 그랬던 적이 있죠.

결국 인물들이 얼마나 다채롭고 재미있게 구현되느냐가 중요할 텐데요. 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는지 혹은 그간의 경험에서 체득한 나름의 방법론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딱히 없는 것 같아요. 다만 평가를 하다 보면 저 자신도 표현의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어릴 때 이야기한국사라는 열 몇 권짜리 책이 있었는데, 야사 위주였지만 학교에서 그걸 보고 조선사에 대한 지식을 얻었어요. 그리고 철들기 전까지 꽤 오랫동안 제 역사 지식을 담보해줬거든요. 제 책도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생들이 몇 번씩 봤다는 이야기가 꽤 있는데 자칫 고정관념을 심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말씀하셨듯이 한 권에 많은 사람들이 등장을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팩트에 근거해서 자기의견을 내게 하는 정도의 단역으로 처리가 되고, 주인공에 준하는 인물들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을까 내지는 이때는 어떤 생각에서 그런 행동을 했을까를 아무래도 더 신경 써서 연구를 하게 되죠. 그런데 아까 정확하게 말씀하셨는데 제 책이 기본적으로 정치사이고 정치인들의 일을 다루다 보니 개별 사건이나 사안에 대한 입장 표명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고 봐요. 자기 자신뿐 아니라 당파의 정치적인 명운이나 이해관계, 이런 것들이 연결되어 있으니까, 이 사람이 어떤 때에 아주 멋있는 말을 하거나 훌륭한 행동을 한다고 해도 그냥 멋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밑에 깔린 의도는 당연히 정치적이라고 봐야겠지요. 다만 정말 당리당략에 따라가는 사람이 있고 소수지만 정말 공익과 대의에 충직한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니까 그런 사람들의 행동까지 그렇게 보는 건 지나칠 수 있을 겁니다.

결국 여기에서의 기준은 해석하고 쓰는 사람일 수밖에 없겠군요.

그런 면이 있죠. 이런 갈등 상황에 대해 항상 고민하지만 마땅한 답은 없는 것 같아요. 다만 그동안 알려진 일반적인 평, 이것에 매몰되지 않는다는 게 거의 유일한 원칙인 거 같아요. 황희나  유성룡에 대한 묘사는 이런 나름의 원칙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겠어요. 황희는 흔히 청렴하고 두루뭉술한 인물로 알려졌는데 실록에 묘사된 황희는 여느 관리 못지않게 부패하기도 했고 이쪽도 옳고 저쪽도 옳다는 식의 사람이 아니라 자기 주장이 분명한 사람이더라고요. 유성룡은 흔히 이순신의 후원자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순신이 실제 곤경에 처해 목숨까지 위협받을 때는 선조의 주장에 부화뇌동하여 이순신을 배신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런 분명한 기록들이 있는데 야사에 기반하거나 인물 본인의 기록(유성룡의 경우 <징비록>)에만 의존하여 엉뚱하게 소개되어 온 것이죠.

궁금했던 건데, 혹시 앞에 나온 1권에서 16권까지 종종 펼쳐보시나요?

10권까지는 그랬었는데 10권 이후에는 나온 것도 겨우 한 번 봐요. (웃음) 너무 보기 싫어요. 이제 17권도 일단 재쇄 찍을 때 손봐야 하니 어쨌든 한 번은 봐야겠지만 말이죠. 앉아서 보지 않고 화장실을 이용해서 며칠에 걸려 보죠. 그렇게 보면 다음에는 거의 안 보는 거죠.

제가 질문을 드린 까닭이, 1권이 이미 10년 전이잖아요. 10년 전의 박시백이라는 사람이 10년 전의 한국사회에서 조선 개국을 바라본 거란 말이죠. 10년이 지났잖아요. 박시백도 변했고 한국사회도 변했고요.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거나 이런 건 중요하지 않은 듯한데요. 어쨌든 변화가 있는데 지금 보면 생각이 달라졌다거나, 다르게 그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지 궁금합니다.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다만 표현이나 유머코드랄지, 전개방식에 있어서 약간의 변화는 있을 수도 있는데, 큰 줄기에 대한 평가는 여전한 것 같아요. 

 



이번 17권도 역시 재미있게 봤습니다. 많은 독자 분들이 17권이 나오기 전부터 걱정을 하셨는데요. 막바지로 오면서 실록은 부실해지고 영, 정조 시대처럼 드라마틱한 사건들이나, 역사의 결절점 같은 게 없다고 생각하신 듯합니다. 그런데 막상 17권을 보니 정순왕후를 전면에 배치하고 새로운 해석을 덧붙이면서 걱정과 우려를 어느 정도 해소하신 듯합니다.

아, 그런가요. 그럼 다행이네요.

정순대비에 대한 일방적인 평가나 견해를 넘어서 다채롭게 여러 면을 보여주시려고 노력하신 것 같은데 이런 의구심들이 이미 있었는지 아니면 순조실록에 들어가기 전에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는데, 실록을 읽는 과정에서 새롭게 발견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일단 제 만화의 장점이 이거라고 생각해요. 조선왕조실록을 조선 개국에서부터 죽 봐왔기 때문에 동일한 발언이든 동일한 사건이든 맥락 속에서 잘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가령 정순대비도 그 파트만 툭 떼어놓고 보면 해석이 많이 달라지겠지만 전사를 잘 보면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거죠. 그런데 반대로 그 뒤까지도 잘 살펴보고 그리면 더 좋은데 제가 게을러서 그건 안 되는 거예요. (웃음) 가령 정조실록을 그릴 때 순조까지 공부한 상태에서 그리면 이후의 일까지 고려하면서 더 균형 있게 잘 그려갈 수 있다는 거죠. 애초에 시작을 그렇게 해서 바꾸기가 쉽질 않네요.

기왕에 정조 이야기가 나왔으니 최근 몇 년 사이 18세기를 중심으로 일어난 대중의 관심과 다양한 역사적 평가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그동안에 영, 정조 시대에 대한 여러 가지 평이나 해석이 정조에 대한 판타지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해요. 영, 정조시대에 실학 등 문예부흥기라고 표현될 만큼 큰 변혁이 일어났는데 이건 당시 전 세계적 흐름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이거든요. 정조 시대에 정약용의 거중기 등 여러 기술 부분의 발전을 예로 들어 당시 신기술의 적극적인 수용 등 특별한 분위기가 조성되었을 거란 생각이 있는데, 저는 좀 다르게 봐요. 조선은 굉장히 고루한 시대였지만 백성을 이롭게 하는 새로운 기술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열려 있었거든요. 가령 일본이나 중국에 가보면 수차를 이용해서 논농사를 짓더라,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을까를 항상 생각해요. 중국은 땅이 넓고 불편하니까 수레를 사용해요, 이걸 보고는 우리 산길의 불편함을 극복하기 위해 수레를 쓸 수 없을까 하는 이야기를 매년 논의하거든요. 어쨌든 임란 이후에 여러 기술이 도입되고 특히 청나라를 통한 서양문물들이 영, 정조 시기에 많이 들어오죠. 이런 분위기가 잘 유지되었다면 자의적인 자본주의적 발전이 가능했겠지만 결국에는 둘 다 그야말로 성리학에 기반한 유학군주인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거든요. 그들이 설계했던 세상 역시 그러하고요. 그런데 이런 부분은 잘 안 보는 듯해요. 신비화된 면들이 많은 거죠. 후기에도 썼지만 영조 50년, 정조 20여 년을 합하면 거의 100년이거든요. 아무리 옛날이라도 이 정도 기간이면 세상을 바꿀 수 있어요. 영, 정조 이후 탄력을 받아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바로 세도정치로 들어서면서 결국 마지막으로 간 거죠.

순조가 왕으로서의 기본 업무는 성실하게 수행하면서도 그 외에 시대적 과제라든지 이런 것들에 적극적으로 부응하지 않았다는 평가를 하면서 다음 페이지에 정조가 위엄 있게 나와서 시대적 과업은 무엇이고 이건 이렇게 해결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장면을 대비해서 보여주시잖아요. 조금 전에 언급을 하셨는데 순조 당대에 순조가 역사적으로 떠맡았어야 할 혹은 적극적으로 부응했어야 할 시대적 과업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그것을 얘기하려면 정조시대에도 마찬가지로 정조의 그런 판단이 과연 옳은 것이었나, 짚고 넘어가야 하는데 과히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큰 시대적 흐름에서 본다면 정조도 세계사적인 변화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 속에서 조선의 가야 할 길을 살필 정도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과정은 선조 때 이후 계속 반복된 거죠. 물론 사후적인 평가이고 우리는 조선이 망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안 망하려면 그 당시 이렇게는 했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거니까, 당시 사람들에게 비슷한 수준의 기준을 들이댄다는 건 과도한 측면이 있죠. 당대 상황을 감안하면 정조가 척신들에 의한 정치를 바로 잡고 사대부 정치를 복원하고자 한 건 정조의 경험으로서는 당연한 결정이었고, 그가 이를 위해 굉장히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정조도 신하들을 장악하려고 하는데, 그게 100퍼센트 이루어질 수는 없는 거잖아요. 예를 들면 이여절 사건도 정조 때거든요. 유사한 사건들이 꽤 있어요. 조선이라는 사회가 갖는 성격상 사대부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백성들에 대해서는 말로는 소중하다고 하지만 사실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 거죠. 그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크게 사건이 안 되면 대충 이 정도로 하고 넘어가는 분위기가 있었고 백성들도 아마 그랬을 거예요. 백성들은 나의 처지는 늘 이러니까 정말 죽을 정도가 아니면 대개 태평성대구나 하고 생각하며 살았을 것 같아요, 팔자니까. 이런 면에서 보면 순조가 시대적인 큰 흐름까지 읽어내지 못한 건 사실이지만, 조선사가 이미 마주하고 있는 문제들은 계속 있었던 거라는 말이죠. 가령 영조 때 균역법을 설치했는데, 이게 당시로서는 해결책이지만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내죠. 이미 토지 상당수가 일부 계층에 집중되어버렸고, 양민들의 수는 줄어들고, 그들에게 대부분의 세금이 떠맡겨진 상황에서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내지 않으면 도저히 해결이 안 될, 조선 중기에 이 정도에 와 있었다는 거예요. 조선 초처럼 다 국유화시키는 등의 혁명적인 조치가 아니고서는 어찌할 수 없을 만큼 가 있었단 말이죠. 순조가 관리들의 기강을 잡고 백성들을 위해 애를 썼으면 백성들 삶이 조금은 나아졌겠지만 조선사 전체로 보면 크게 흐름이 뒤바뀔 정도는 아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순조가 30대 후반, 상당히 젊은 나이에 왕위를 물려주잖아요. 그런데 아들 효명세자가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죠. 순조 입장에서 엄청 짜증났을 것 같더라고요. 나름 맡은 바 일을 정리하고 편하게 지내볼까 했는데 시대가 허락하지 않았으니까요. 물론 순조는 또 주어진 상황에 순응해서 주어진 일을 소화하죠. 그런데 순조가 왜 일찍 왕위를 물려줬는지에 대해서 설명이 부족한 듯합니다.

저도 책에 쓴 이상을 말하기가 어려운 게 중반 이후로 기록이 협소해요. 물론 여기에도 저의 해석은 들어가는 거죠. 협소하다는 것은 그만큼 적극적인 정치를 하지 않았다는 말이니까요. 왜냐하면 실록이라는 특성상 중요한 사안을 놓고 신하들한테 의견을 묻고 결정을 내리는 과정은 다 기록이 되거든요. 달리 보면 김조순 일파의 정치가 이미 어느 정도 힘을 얻어가고 있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병(病)이 있는데, 사람이 자꾸 아프면 짜증나잖아요. (웃음) 이것도 중요한 요인이었을 것 같고 또 한 가지는 많은 사람들이 추측하는 것처럼 이미 자신의 영역 자체가 협소하고 장인 김조순에 의한 시스템이 다 구축된 조건에서 정말 자기가 뚜렷하게 해야 하는. 왕으로서의 결심이나 의지가 없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그만큼 왕으로서의 책무와 관련해서 본다면 좀 무책임한 거죠.

마지막 꼭지가 이양선의 출현이고 마지막 장면은 외세의 쓰나미가 몰려올 거라는 예상인데요. 텅 빈 들판과 바다에서 조선과 외세에 대한 공간적 뉘앙스를 느꼈습니다. 영정조 시대에 대한 평가는 앞서 말씀해주셨는데요.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영정조 이후가 아니라 이미 조선이라는 나라 자체가 하강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영정조 시대를 조선의 전성기로 보지 않아요. 조선은 임진왜란 이후부터 하강했다고 생각해요. 임진왜란 때 이미 망해서 새로운 틀을 찾았어야 했는데 성리학이라고 하는 기본 이념을 어떻게 하지 못함으로 인해서 계속 그 체제로 간 거잖아요. 조선후기에 성리학이라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말뿐인 제도의 의미만 남았고요. 이에 기초해서 세상을 어떻게 하겠다가 아니라 집권을 위한, 사대부의 계속적인 집권을 위한 이데올로기 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요. 백성을 얘기하지만 돌아서면 자기 땅을 넓히려고 하고 자기 당파 이익을 위해 애쓰고 이런 것 말고는 없었으니까요. 이후에 효종 같은 경우 무언가 해보려고 했지만 이미 당파들이 장악한 상황이었고요. 숙종도 돌파하려고 했지만 왕권을 강화하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이 보이지 않았던 거죠. 전체적으로는 하강인데 중간에 살짝 기울기가 줄어드는, 그렇지만 전체적으로는 하강하는 그런 느낌이라고 봐요. 순조 때 와서 갑자기 그렇게 된 건 아닌데, 다만 순조, 현종, 철종으로 이어지며 세도정치가 60여 년이나 지속되면서 하강을 가속화시킨 측면은 있겠죠. 순조는 무리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변화보다는 현상유지를 위해 노력했지만 대세의 하락은 어찌 못하니까 점점 하락한 건 틀림없는 것 같아요.

 

 

17권에서 빠져나와서 정리하는 질문 몇 가지 드리겠습니다. 최근 한국사회 분위기를 보면 뭔가 적극적인 모습이 드러나는 듯합니다. 선생님께서 보시기에 요즘 사회 분위기와 맞물리는 조선 시기는 어느 왕인지 궁금합니다.

그런 것 없어요.

다인 건가요? (웃음)

옛날에는 50년에 바뀌던 게 지금은 5년 만에 바뀌잖아요. 조선이 500년 가까이 지배를 했는데 사람들의 DNA 속에 스며들지 않은 듯해요. 요즘 사람들의 스타일을 보면 조선과는 거의 정반대거든요. 오히려 고구려 시대의 유목민을 보는 것 같잖아요. 도전적이고 역동적이고 겁이 없고요. 다이나믹 코리아라 얘기하는데 그런 에너지가 너무 신기한 거 같아요. 조선은 답답할 정도로 옛것을 고수하는 분위기였거든요. 조선사회는 개혁하기가 쉽지 않은 게 새로운 문제가 생겨서 하나의 개혁방안이 나오고 자리 잡는 데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요. 대동법만 해도 100년이 걸리잖아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기본 이념 자체가 옛것은 소중한 것이다, 이거예요. 옛 조상들이 만든 법은 그때 충분히 논의해서 만든 훌륭한 법이고, 어떤 법이든 약간의 문제는 있을 수밖에 없다. 옛날사람들이라고 그걸 몰랐겠냐. 가급적이면 새로운 걸 만들지 말고 기존의 법을 잘 지켜야 한다는 의견이 항상 힘을 얻어 개혁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계속 묻히는 거죠. 정말 심해지기 전에는 계속 옛 법대로 가다가 더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요만큼 고쳐요. 진짜. 너무 답답한 세상이죠. 아 짜증나. (웃음)

지금까지 등장한 수많은 인물 가운데 애착이 간다고 할지 아니면 강렬하게 남아 있다고 할지 그런 인물이 있을까요. 물론 세종과 이순신에 대해서는 수차례 언급하셨지만요.

여러 사람 말해도 되겠죠? (웃음) 세종대왕과 이순신 같은 경우는 불세출의 인물이라 생각해요. 우선 세종은 왕으로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신기하고 당시 조선으로서 대단한 복이었다고 생각해요. 세계정치사에서 일국의 지도자로서 이 정도로 천재인 사람이 있을까요? 나 진짜 궁금해. (웃음) 너무너무 천재였다, 천재인데 부지런하기까지 하고, 마인드까지 좋아요. 나라를 근사하게 이끌고 백성들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려 하고, 너무너무 대단한 왕이에요. 이순신도 당대에 그가 보여준 애국적인 태도가 너무나 경이롭잖아요. 그런데 아무리 애국하는 마음이 있어도 장수로서 빼어나지 못하면 말짱 꽝이잖아요. 그런데 장수로서도 너무 너무 빼어나잖아요. 너무너무 창의적인 거죠. 이순신도 그야말로 천재예요. 전쟁에 있어서 본능적으로 어떻게 싸워야 할지를 아는, 그러면서도 가장 기본에 충실한, 그야말로 지피지기하고 주어진 조건을 최대한 유리하게 활용하는 능력. 이런 모든 면에서 그야말로 모법적인 빼어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궁금한 건 이 두 사람 빼고인데요.(웃음)

조선 초반의 주인공 이성계와 정도전인데요. 이성계 이야기를 많이 안했었는데 상당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이성계는 이룩한 결과에 비해 저평가된 인물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해요. 고려는 자주국가였는데 이성계가 하면서 완전 사대국가로 바뀌어버렸다는 통념들이 있잖아요. 이성계로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는 해석이라고 봐요. 왜냐하면 이미 고려 말에 신흥사대부들의 사고 자체가 성리학 중심이었거든요. 당시 성리학이 아무리 개혁적이었다손 치더라도 기본적으로 중국을 높이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가령 조선건국에 실패해서 정몽주가 집권했다한들 아마 마찬가지였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성계는 무장이었음에도 최고의 인텔리들을 수하로 거느리고 건국을 하잖아요. 지도력에 있어서 굉장히 독특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유형의 인물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자기가 잘하는 건 자기가 밀고 나가고 자기가 잘 모르는 부분은 정도전 같은 사람들에게 과감하게 맡기고, 그러면서도 큰 줄기는 자기가 잡고 있고. 여러 면에서 매력적인 인물 같아요. 그리고 정도전은 말할 필요도 없고요.

역시 인물 이야기가 재미나네요. 혹시 나중에 ‘평전’ 같은 걸 써보고 싶은 사람은 없을까요?

중종 때 정광필이란 사람인데, 나중에 평전 같은 걸 써보고 싶은 인물이에요. 재상의 역할에 가장 합당하고 충실한 인물이 아니었나 싶어요. 보통 명재상이라면 황희를 얘기하는데, 물론 기본 재능이 뛰어나지만 세종시대라고 하는 너무나 좋은 시대를 만난 데다, 이런 저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세종의 전폭적인 신임이라고 하는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었거든요. 정광필은 중종이라는 아주 독특한 왕을 만나서 한번도 제 뜻을 펴지 못한 사람인데요. 만약 중종이 제대로 된 나라의 설계도를 가지고 정광필을 알아봤다면 굉장히 괜찮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정광필은 조광조의 비현실적인 면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지적하면서도 조광조로 대표되는 신진들의 목소리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을 요구하거든요. 또 중종이 조광조를 제거할 때는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나중에 남곤이 집권했을 때는 그의 독재와 전횡에 대해서 제동을 걸고요. 어찌 보면 왕의 최종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게 재상일 거예요. 그러니까 맞는 건 맞다, 아닌 건 아니다 말하는 게 중요한 덕목인데, 이런 면에서 자기가 위험하더라도 현실적이고 옳은 판단을 내리고 의견을 적극적으로 드러낸 그야말로 재상으로서의 덕목을 다 갖춘 사람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아쉽게도 중종이 좀 모자라서 제대로 활용을 못하죠.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만화이기도 하지만, 대표적인 역사교양서기도 한데요. 그래서 선생님을 역사필자로 봐도 크게 무리가 없을 듯합니다. 조선사 이외에 다른 시대랄지 혹은 다른 지역이나 나라의 역사랄지 관심을 갖고 계신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젊었으면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게 많았을 것 같은데 이거 끝나면 나이가 50줄이고 하기 싫을 것 같아서, 하게 될지 안하게 되지 모르겠어요. 관심이야 두루 있죠. 현대사, 중국사도 재미있고 유럽사도 재미있고요. 하지만 아마 대부분 거의 안하지 않겠나, 현재의 생각으로는 그렇습니다. 역사에서 빨리 벗어나서 사람들이 알아봐주건 아니건 간에 본연의 만화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만화 얘기가 나와서 질문을 드리는데 요새 웹툰 많이 보잖아요. 많은 직장인들의 출근 후 일상이 되었는데요. 즐겨보시는 혹은 찾아보시는 요즘의 만화가 있는지.

몇 년 전까지 제가 정말 잘 보는 편이었거든요. 예전에 <와탕카>, <애욕전선 이상없다> 등 몇몇 만화는 제법 챙겨봤고요. 그런데 <이끼> 정도까지는 보고 이후에는 별로 안 본 것 같아요. 그것 참 이상해요. 갑자기 안 보기 시작하니 안 봐지던데. 만화도 그래요. 제가 만화책을 워낙 좋아해서 집에 책도 많은데 예전에 제가 정말 좋아하던 책이 몇 권 있어요. 1~2년에 한 번씩 반복해서 보곤 했는데 이것도 어느 순간 안 보기 시작하니 안 보게 되더라고요. 최근에 재미있게 본 것은 <강철의 연금술사>인데 뒷부분이 약간 약하긴 하지만 재미있게 봤어요. 가족들은 요즘 <도로헤도로>에 빠져 있어요. 저도 봐야 하는데 보면 시간을 많이 빼앗길 것 같아 일단 안보고 있어요.

 

그럼 요즘 만화 말고 지금까지 보신 만화 중에 인상 깊은 작품은 뭐가 있을까요?

우리나라 만화로는 고우영 선생님 작품 두루 다 좋아해요, 모든 게 다 재미있어요. 워낙 빼어나시니까. <삼국지>, <십팔사략>, 옛날 꼬맹이 때 나를 매료시켰던 <대야망>, 그 다음에 이두호 선생님의 <임꺽정>인데, 일단 그림이 너무너무 멋있어요. 그 외에도 허영만 선생님 작품, 이희재 선생님 작품 등등 많습니다. 일본 만화로서는 <기생수>인데요. 참 좋아해요. 한 열 번은 본 거 같아요. 그야말로 1년에 한 번씩 보던 건데 최근 3년 동안은 안 보고 있습니다. 제 책 완간하면 봐야지요. (웃음)

최근 몇 년 '교양만화‘라는 장르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데요. 휴머니스트 출판사도 교양만화라는 카테고리를 만들려 노력하는 출판사고요. 올 초에 <기획회의>에서도 이런 만화에 대해 평가하고 다룬 기획 기사가 있었는데요. 평가는 엇갈리는 듯합니다. 박시백, 김태권 등의 대표적인 교양만화 작가들이 있는데, 이걸 일종의 흐름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 몇몇 작가들의 돌출된 작품으로 보는 사람도 있거든요. 선생님 생각이 궁금합니다.

만화라는 매체가 일단 학생들에게 친숙하죠. 그래서 만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재가공해서 표현할 수가 있는 거잖아요. 그런 면에서 교양만화라는 것은 한 장르로 자리를 잡고 커나가지 않겠나 하는 생각은 들어요. 다만 문제는 그동안에 학습만화라는 이름으로 폄하되면서 문제가 됐던 게 글을 쓴 사람은 만화적 센스가 없고 만화를 그리는 사람은 내용에 대한 해석능력이 좀 부족하고 이러면서 제자리를 못 잡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만화가들이 조금만 더 노력하면 얼마든지 접근이 가능하고, 예전같이 글 그림 개별 작가 체제로 간다고 해도 아직은 분화가 미흡하지만 지식을 만화식으로 가공해서 콘텐츠화할 수 있는 스토리 작가와 이에 맞춰 그림을 잘 그리는 작가가 결합이 되면 확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림 잘 그리는 친구들이 워낙 많으니까 출판사들이 잘 기획해서 멍석을 깔아주면 좋은 것들이 많이 나올 거예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고정 독자, 대기 독자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꾸준히 시리즈를 쌓아오면서 그런 독자들이 늘고 있고요. 많은 독자들이 1권부터 16권까지 수차례 보거나 다 읽은 독자들이거든요. 그런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과 아직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의 세계에 들어오지 못한, 이번 17권에서 박시백의 조조록을 만나게 될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 부탁드릴게요.

일단 그동안 제 책을 보아온 독자들한테는 너무너무 고맙죠. 이게 한두 권짜리가 아니고 그야말로 장편인데 독자들의 호응이 없었다면 출판사도 힘이 빠졌을 테고 저도 힘이 빠졌을 테고 지금까지 못 왔을 가능성이 높잖아요. 그분들이 책을 사주고 평을 해주고 이런 것들로 인해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기 때문에 너무 고맙고 진짜 지금까지 오게 한 동력이죠. 하여간 마지막까지 그분들의 기대에 크게 어긋나지 않게 열심히 해야겠다, 이런 정도밖에 할 말이 없네요. 새로운 독자들에게는 그런 말을 하고 싶어요. 가끔 평들을 보면 그림이 되게 마음에 안 들어서 책을 안 본다는 말이 있는데,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림이 많이 떨어지죠, 떨어져도 열심히 그리면 되는데 아시다시피 1년에 두 권이라는 기한이 있어서 쉽질 않습니다. 출판사가 기다려줄 수 있어서 1년에 한 권씩 냈으면 좀 명품이 나오지 않았겠나 싶기도 해요. 내용도 더 충실하고 공부도 더 알차게 되어 있는 상태에서 그림도 아무래도 이것저것 신경을 많이 쓰면 꽤 괜찮은 시리즈가 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쨌든 현실이 그렇지가 않으니까 1년에 최소한 2권은 그려야 한다는 암묵적이 계획이 있거든요. 거기에 맞추다보니까 그림에 소홀하거나 그런 점은 있어요. 그런 면을 감안하면 만화로서는 부족함이 많은 만화지만 조선사에 대한 역사서, 소개서, 조선정치사를 다룬 책으로는 꽤 괜찮은 책이다, 라고 건방지지만 자부합니다. 역사서라고 하는 것은 저자의 평이나 주관적인 해석에 상당히 좌우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갖고 있는데 문제는 그것이 얼마만큼 자료에 기초해서 설득력과 근거를 갖는가 하는 게 중요한 평가 기준인데요. 물론 제 책도 오류나 과도한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하여튼 많이 노력한, 그리고 실록의 기록에 상당히 접근한 꽤 쓸 만한 역사책이다, 라고 얘기할 수 있을 거 같네요. 아. 건방지다고 해야 하나. (웃음)

마지막으로, 후속권 작업에 대해 여쭤보겠습니다. 18권이 헌종, 철종. 19, 20권이 고종인데 19권은 흥선대원군에 집중해서 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조금 달라질 수도 있는데 조선왕조실록은 원래 철종실록으로 끝나잖아요. 고종실록을 들여다보니까 역시 편집주간에 해당하는 자가 일본인이고 엄밀하게 말하면 조선왕조실록이라고 하기에 무리라는 측면이 있긴 있어요. 그런데 어차피 그 이전에도 사실 그런 집권당파적 시각에 기초해서 내용이 걸러진 왕조들이 꽤 있기 때문에, 일본인이 개입했다고 해도 잘 읽어낸다면 역시 의미 있는 기록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쨌든 조선인 사관들이 주로 기록을 했을 테고 다만 편집자들에 의해서 자신들이 곤란한 부분들은 빼거나 일부 고쳐 쓰거나 했을 수는 있겠죠. 그럼에도 다른 참고자료들과 비교해보면 여전히 가장 유용한 텍스트가 아니겠나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문제는 조선왕조실록이기 때문에 조선왕조가 끝난 이후로는 의미가 없다고 봐요. 그래서 이걸 1905년으로 볼지 1910년으로 볼지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고민이 더 필요할 듯해요. 어쨌든 조선이 망하는 것으로 20권이 끝난다.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 

이 인터뷰는 지난 6월 9일, 17권 순조실록이 출간되자마자 홍대 근처 정글북까페에서 진행했다. 옛날 얘기를 조금 덧붙이자면, 박시백 화백은 내가 처음 만든 책에 일러스트 작업을 해준 오랜 인연이다. 편집자와 저자에서 MD와 저자로 바뀐 상황은 조금 어색했지만 이내 따뜻하고 여유로운 웃음으로 이야기를 풀어주셔서 너무나 고마운 마음이다. 인터뷰 정리에 한 달이 걸렸다. 게으름 탓이기도 하지만 역사적 사실과 흐름에 대한 확인도 한몫했다. 혹시라도 사실 관계에 문제가 있다면 전적으로 내 탓이다.

지루한 장마에 지루한 인터뷰가 아니길 기대하며, 반가운 소식 하나 전해드린다. 지금까지 한 번도 독자와의 만남을 갖지 않은 박시백 화백이 장마 끝 맥주파티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긴 인터뷰를 모두 읽으신 분이라면 함께하고 싶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음 주소에 댓글로 신청할 수 있다. http://blog.aladin.co.kr/culture/4919469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화키드 2011-07-15 0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교양만화를 좋아하는 1인입니다. 만화가 상상력을 제한한다거나 책읽기 능력을 떨어뜨린다고 폄하하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더욱 의심하게 되는 인터뷰네요! 지난한 작업 과정에, 지식+흥미가 넘치는 대단한 결과물에 박수를 보냅니다.

인문MD 바갈라딘 2011-07-15 13:07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만화키드의 자세 계속 지켜가시길...

마노아 2011-07-15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다음 권도 차분하게 기다릴게요.
아, 그런데 마지막 초록색 글은 '헌종'을 '현종'이라고 쓰셨네요.

인문MD 바갈라딘 2011-07-15 16:55   좋아요 0 | URL
앗, 정순헌철고순인데... 고맙습니다. 무리한 시각에 올리다 보니 실수가... 나머지 세 권은 이전 권보다 조금씩 빠르게 나올 예정이랍니다.

pena 2011-07-15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ㅁ@~!박시백님의 새로운 모습에 놀라우면서도 교양만화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키신듯~!!!!

인문MD 바갈라딘 2011-07-15 17:34   좋아요 0 | URL
더욱 새로운 모습은 만나고 싶다면 맥주파티에 신청을~~ ^^

외국소설/예술MD 2011-07-15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기생수가 최고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인문MD 바갈라딘 2011-07-15 17:35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본문에는 빠졌지만, 저 얘기 나올 때, 저도 애장판을 갖고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선생님께서는 모든 판본을 다 갖고 계시다고... OTL...

시끌북스 2011-07-22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문MD님도 그럼 이와아키 하토시 외에도 미노루 후루야의 만화들도 좋아하시나요? 미노루 후루야도 이와아키 하토시만큼이나, 정신분석이 발달할 수 밖에 없는 현대인들의 사고를 적나라하게 펼쳐준다는 데 매력있더라구요.

인문MD 바갈라딘 2011-07-30 09:02   좋아요 0 | URL
네, <심해어> 무척 재미나게 봤습니다. 열심히 찾아보는 편은 아닌데, 주변에서 추천하면 읽어보는 편입니다. 미노루 후루야는 북디자이너 민진기 실장 덕에 알게 된 작가. ^^

ahlkan 2011-08-25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만화 정말 대단합니다! 이책으로 역사공부했으면 싶구요. 그리고
이 책보면 우리나라가 지금 왜 이모냥인가 알수잇습니다. 뭐 전통이라 이러는갑다 싶죠 ㅋㅋㅋ
대작입니다!!

인문MD 바갈라딘 2011-08-26 11:38   좋아요 0 | URL
동의, 동감, 공감 등등...

멜헝 2012-01-23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만화는 역사를 정말 좋아하는 제게 역사교과서와 같은 책입니다
기본적으로 이책을 읽고 그다음 다른 책들과 참고자료를 접해가며 제머리에 정리해요ㅎㅎ
사실 1905년 또는 1910년으로 끝낸다 하셨는데 너무 아쉽네요
순종 승하까지 하길 기대했었는데

정윤서 2016-01-26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만화 정말 좋은 것 같아요! 경기도 교육청에서 실행하는 행사의 교재에 위의 그림을 사용해도 될까요?
 

   
 

한때는 과학자였으나 지금은 영화를 만드는 랜디 올슨은 그의 삶 자체가 '하나의 유쾌한 이야기'다. 마흔 즈음 인생의 경로를 과감하게 바꾼 그의 인생역정도 그렇지만, 그가 만든 영화들도 모두 비범하면서도 개성 넘치는 작품들이며, 이 책 또한 예외가 아니다. 과학계와 영화판을 넘나드는 숱한 예제들로 때론 과학자들을 우스꽝스럽게 조롱하고, 때론 신랄하게 비꼬면서도, 과학에 대한 더없이 깊은 애정으로 가득 차 있다. 지적인 유머와 가슴을 울리는 통찰력이 담뿍 담긴 이 책은 과학을 즐기는 법을 가츠려주는 '내밀한 과학애정고백서'라고나 할까? 이 책은 손에 쥔 당신은 정말 운이 좋다!(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Don be such a scientist!" 이 책의 원제다. 어떤 과학자가 되지 말고 다른 어떤 과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일까. 하버드에서 스티븐 제이 굴드 밑에서 배우고 뉴햄프셔대학에서 해양생물학 교수로 일하다 지금은 할리우드에 진출한 독특한 이력의 '과학자' 랜디 올슨. 그는 머리로만 소통하는 과학자들의 잘못과 한계를 지적하며 머리, 가슴, 복부 그리고 성기에 이르는 네 개의 기관, 즉 논리, 감정, 유머, 본능을 연속하여 함께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머릿속에 든 정리된 지식은 고여 있는 물과 같기에, 이를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흐르는 물로 바꿔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올 4월 <말문 트인 과학자>란 제목으로 한국에 소개된 그의 책이 슬슬 잊히는 게 두려워(황우석 사건을 생각하면 정말 두렵다) 출판사의 도움으로 저자와의 인터뷰를 시도했다. 여전히 과학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랜디 올슨, 그의 말대로라면 커뮤니케이션의 중요함은 몇 번이고 강조해도 모자라다. 

 

*알라딘 단독 이벤트로 해당 기간 동안 <말문 트인 과학자>를 구매하신 분 가운데 다섯 분께 <얼간이들의 무리> DVD를 드립니다. http://www.aladin.co.kr/events/wevent_detail_book.aspx?pn=110712_jung 

*인터뷰 진행과 번역은 출판사 정은문고에서 도움주셨습니다. 바쁜 와중에 애써주신 출판사 관계자 여러분과, 한국어판 책을 든 귀여운 사진을 보내준 랜디 올슨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2008년부터 미국 각지의 대학을 돌며 <얼간이들의 무리(Flock of Dodos)>, <시즐(Sizzle)>의 상영과 과학 토크쇼를 결합한 ‘The sizzling Dodos College Tour’를 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과학 토크 투어’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며, 주 목표는 무엇인가요?

'과학 토크 투어'는 나의 두 번째 장편영화 <시즐>이 개봉된 2008년부터 시작했고, 지금까지 우리는 100군데도 넘는 대학과 박물관, 그리고 과학 기관들을 방문했어요. 이 행사의 주 목표는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에 대해 진중한 토론을 할 수 있는 2~3일 간의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죠.
  방문 첫째 날 밤에는 주로 <얼간이들의 무리>를 상영한 후, <말문 트인 과학자>의 내용에 대한 강연과 사인회를 갖습니다. 그리고 둘째 날 밤에 <시즐>을 상영하고, 매 상영회 이후엔 공개토론을 진행하죠. 멤버들은 나를 포함한 2~3명의 교수들로 구성되는데, 주로 커뮤니케이션, 저널리즘, 영화, 진화론(<얼간이들의 무리> 테마에 맞게), 기후학(<시즐> 테마에 맞게) 전공자들이에요. 낮에는 점심식사와 함께 학생들과 교수들로 이루어진 소규모 토론들이 진행되고요. 참으로 흥미로운 시간이 아닐 수 없죠! 



‘과학 토크 투어’에서 만난 대학생(예비 과학도)들의 반응이 궁금하네요. 그들은 당신 얘기의 어떤 점에 반응을 보이나요? 혹시 그들도 나이 든 교수님들처럼 ‘재미있는 과학’에 반발하지는 않나요?

가장 큰 반응은 주로 캠퍼스를 떠나고 난 이후에 발생하죠. 방문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사람들은 내가 떠난 후에도 며칠 혹은 몇 주 동안 토론을 이어간다고 해요. 학생들에게 '커뮤니케이션이 얼마나 중요하고 탐구가치가 높은 주제인가'를 전달하려는 의지를 갖춘 교수들에게 좋은 기회가 된 달까. 대부분의 캠퍼스에선 우리가 당겨 놓은 작은 불씨는 우리가 재차 방문할 때까지 활활 타오르는데, 동 캐롤라이나 대학, 윌리엄과 매리, 그리고 오는 9월 다시 방문하게 될 코넬 대학 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우리는 다시 방문하는 수많은 곳에서 예전에 멈췄던 토론에 바로 시동이 걸리는 현상을 종종 목격하곤 합니다. 



당신이 이야기한, 과학과 대중의 거리를 좁힌 인물들로 꼽는 스티븐 제이 굴드나 칼 세이건은 사실 엄청난 사람들이죠. 우리가 그들을 모범(혹은 역할모델)으로 삼을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특히 스티븐 제이 굴드는 휴머니티를 기가 막히게 활용하는 커뮤니케이션의 달인이에요. 책에서 '자극과 충족'의 원리에 대해 언급했는데, 충족 부분은 당연히 과학에 대한 내용이겠지만, 자극 부분은 휴머니티를 활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 생각합니다.
  굴드는 역사, 예술, 오페라, 건축, 정치 등 워낙 다방면에 조예가 깊었기 때문에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과학의 내용과 비유할 수 있는 휴머니티적 요소를 귀신처럼 찾아낸 과학자입니다. 그의 저명한 에세이 가운데 하나에서 안정화 도태의 역학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야구선수의 타율과 비교한 적이 있어요.(이는 내가 음양의 조화를 평생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죠) 또한 상대성장 등 어려운 주제를 다룰 때는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던 초창기의 미키 마우스가 점점 더 귀여운 아이의 모습으로 변해간 것과 비교해 설명하기도 했죠. 결국 휴머니티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 굴드를 저명한 과학자로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과학도들은 학교에서 필수적으로 수강해야 하는 휴머니티(교양) 과목들에 대해 불평하면 안 됩니다. 그 지식은 훗날 대중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정말 빛을 발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죠. 



요즘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등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이런 소통 방식의 증가가 당신이 기대한 것처럼 과학자와 대중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방법으로 작용할 수 있을까요?

과학자들 또한 그런 미디어들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블로그 때는 다소 적응 속도가 느렸지만, 이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때는 훨씬 더 빨리 적응했어요. 문제는 그 미디어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에 달린 거죠.
  책에서 블로그에 올라오는 온갖 부정적인 발언들을 꼬집은 걸 기억하나요? 물론 과학은 부정에서 출발합니다. 하지만 필터를 거치지 않는 부정은 혐오의 대상이 되기 일쑤거든요. 나는 이것을 과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프랑켄슈타인'이라고 부릅니다.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할 요소가 아닐 수 없죠. 대중은 항상 긍정의 편에 서지만, 필터를 거치지 않는 긍정이 때론 비판적 사고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균형을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요.  



혹시 당신도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는 몇 년 전 ‘황우석 사건’이 있었습니다. 과학자가 잘못된 정보를 제공해 많은 사람들이 큰 기대를 품었다 그것이 실망으로 돌아온 사건이었죠. 과학자의 윤리를 얘기하기 이전에, 과학자가 대중과 소통하고자 할 때 이런 위험성은 늘 존재할 수 있지 않나요? 

물론 황우석 박사 사건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전 세계 과학계에 경종을 울린 사건이었으니까요. 나는 대중에게 과학을 효과적으로 알리고 홍보하는 것은 적극 찬성합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의 연구에 대한 평가 자체가 미디어 중심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많은 대학과 연구소 들이 점점 더 미디어에 주목하는 게 사실입니다. 그것을 통해 대중과 의사소통 하는 한편, 연구기금도 마련하니까요. 그것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미디어를 통해 큰 성공을 만들려 하고, 그것을 성공의 잣대로 삼는다면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죠. 대중에게 더 다가가기 위해 '과학의 위한 연구'보다는 '대중이 관심 있는 연구'에만 치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곡물을 병들게 하는 해충에 대한 연구보다는 별 의미 없는 '인간이 키스를 하는 이유' 같은 공허한 연구에 더 치중할 수 있거든요.
  대중은 전문적인 과학자가 아니기에 결코 과학적 연구에 대한 의제를 지정할 수 없어요. 그것은 당연히 과학자들의 몫이며,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대중과 의사소통해야 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이제 ‘성공한’ 영화감독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럼에도 당신 글을 읽다 보면 여전히 ‘과학자’로서의 자부심이 읽혀요. 당신에게 ‘과학자’라는 이력은 어떤 의미인가요?

세상의 모든 이치를 알기 위해서 과학은 너무나도 중요한 학문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알지도 못하는 병을 앓다 죽었어요. 그리곤 이를 그저 운명이라 받아들였죠. 하지만 오늘날은 어떤가요? 병을 얻을 땐 분명한 이유가 있으며,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 또한 이유가 있습니다. 산이 그냥 뜨거운 용암을 분출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지질학의 원리를 대입하면, 예측 가능한 현상입니다.
  세상만사가 결코 마구잡이로 일어나는 게 아니란 사실을 통해, 자연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은 감소하고 그만큼 우리의 삶도 평온해 질 수 있습니다. 그 중심에 과학이 있으며, 때문에 언제나 순수한 형태로 존재해야만 합니다. 이를 위해 과학자들의 지지보다는 비과학자들의 지지가 훨씬 더 필요하며, 그 지지를 얻기 위해선 반드시 '말문 트인 과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책을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이기도 하고요. 

랜디 올슨 트위터 @RandyO_HeadDodo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알라딘 인문, 역사, 사회, 과학 분야에서는 

'한발 앞서 만나는 인문교양 신간'이란 이벤트를 상시 진행합니다.

매주 담당 MD가 10권 이내의 책을 소개하는 공간이자

예리한 관찰과 정확한 판단으로 누구보다 먼저 좋은 책을 알아보시는

독자께 조금이나마 혜택을 드리고자 마련한 자리입니다. 

 

매주 월요일 새로운 책으로 페이지가 바뀌고

도서별 구매자 선착순 50분께 다음 수요일에 적립금 1000원을 드립니다.

여러분의 독서 생활(혹은 도서 구매)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기대합니다.

이벤트 페이지 주소는 http://www.aladin.co.kr/events/wevent_book.aspx?pn=100805_newinmun 입니다.


1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암 : 만병의 황제의 역사
싯다르타 무케르지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11년 7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내일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11년 07월 12일에 저장

암은 일그러진 욕망의 자화상, 곧 나라는 깨달음
추첨 민주주의- 선거를 넘어 추첨으로 일구는 직접 정치
어니스트 칼렌바크 & 마이클 필립스 지음, 손우정.이지문 옮김 / 이매진 / 2011년 6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2011년 07월 12일에 저장
절판
상상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선거를 넘어선 민주주의의 상상력
암살이라는 스캔들
나이토 치즈코 지음, 고영란 외 옮김 / 역사비평사 / 2011년 7월
18,500원 → 16,650원(10%할인) / 마일리지 92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0월 15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1년 07월 12일에 저장

이야기가 굳어지는 과정에서 발견한, 이야기를 암살해야 할 까닭
담배의 사회문화사- 정부 권력과 담배 회사는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켰나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1년 6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2011년 07월 12일에 저장
절판

여러분, 흡연보다 이 책이 더 재미납니다(잘 알지도 못하면서)


1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노벨상에 이그노벨상이 있고, 아카데미상에 골든라즈베리상이 있다면 SERI CEO 여름휴가 추천도서에는 Sorry CEO 여름휴가 추천도서가 있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 일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의미를 발견한다면 당연히 의미의 확대재생산을 위해 세를 불리고 힘을 모아볼 작정입니다. 그나저나 앞에 언급한 두 개의 상은 모두 노벨상과 아카데미상 보다 먼저 발표한다는데, 내년에는 분발해야겠습니다.(작년 Sorry CEO 추천도서 서재 글 가운데)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벌써 일년'이란 말이 새삼스럽네요. 어제 오전 SERI CEO 추천도서가 발표되었지요. 올해는 먼저 발표할까 했는데 그래도 주인공 자리는 SERI에 양보하는 게 도리다 싶어 하루 늦게 목록을 소개합니다. 올해부터는 격을 높여 서재 글에 그치지 않고 SERI에 필적할 규모의 정식 이벤트를 준비했습니다. 음, 정식 이벤트라 함은 증정품과 경품이 있다는 말이지요. 더불어 알라딘 추천도서 외에 여러 선생님들께 추천도서를 받아 목록에 힘을 더했습니다. 선정 기준과 방법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알라딘 등록 기준 출간일이 2010년 7월에서 2011년 6월 사이일 것. 단, 개정판 등 새롭게 등록된 도서는 후보로 인정한다.
2. 세상을 바꾸는 힘, 돈과 자본 제대로 알기, 이 땅에서 노동자로 산다는 것, 마음의 평안 찾기, 한국형 CEO 맞춤 교과서. 이상 다섯 가지 주제에 각 4권씩 20종을 선정한다.
3. 분야를 막론하고 해당 주제에 적합한 도서를 각 20종씩 총 100종 1차 선별 후 심사 과정을 거쳐 최종 20종을 확정한다.
4. 알라딘 추천도서 외에 외부 인사에게 추천을 받는다. 4명이 각 4권씩 추천하며, 이 경우에는 각 1종씩 1번에서 규정한 출간일을 벗어날 수 있는 예외를 허용한다.

이벤트 페이지 주소 : http://www.aladin.co.kr/events/wevent_book.aspx?pn=110627_sorryceo 

한편 SERI는 올해도 경제경영 분야와 인문 분야로 나눠 각각 10종, 7종을 추천했는데요. 우선 한국 CEO의 독서 화두 설문을 살펴보지요. 결과는 아래와 같습니다. 

삶의 지혜 획득 31.9%  /  시대 트렌드 포착 25.6%  /  경영 아이디어 발굴 20.8%
마음의 평안과 위안 찾기 13.1%  /  전문적 교양지식 습득 8.1%  / 기타 0.5% 

이 설문은 지난 2008년까지 비슷하게 진행하다가 2009년 경제 위기를 맞아 불황 타개와 관련한 설문이 늘었고, 작년에는 '자연, 인간, 사회와의 공존'같은 다소 생뚱맞은 설문들이 들어갔다가, 올해에 2008년까지 진행하던 설문 구성으로 돌아간 모습입니다. 변화가 두드러지는 지점은 '전문적 교양지식 습득'인데요. 작년 18.1%에서 올해 8.1%로 급락했습니다. 1, 2, 3위는 동일한 설문 구성이었던 2005년에서 2008년까지와 비슷한 결과입니다. '전문적 교양지식 습득'을 책보다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신 건지, 아니면 아예 그런 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신 건지 알 수 없지만, 열심히 습득하시길 권합니다. 

올해 경제경영 추천도서는 핫 타이틀보다는 일정하게 탄탄한 내용을 담보하는, 다양한 주제의 책들로 구성을 한 듯보입니다. 미친듯이 팔릴 책은 눈에 띄지 않지만 전체 구성으로 봤을 때는 수긍할 만합니다. 중국과 아프리카 등 신흥 시장을 다루려는 의도는 공감하는데 추천도서에 오른 책이 해당 분야의 대표작인지는 의문입니다. 짐 콜린스도 낡은 느낌을 지울 수 없고요. <보이지 않는 고릴라>, <디퍼런트>,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적절한 추천이라는 생각.

인문으로 넘어오면 SERI의 고민이 한층 깊어지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목록의 다변화를 꾀하기 위해 인문 분야를 열었는데 이게 맥락을 잡아서 도서 선정하기가 쉽지가 않으니까요. 저도 Sorry CEO 추천도서 선정 작업에서 교양서 고르는 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넣어도 되고 안 넣어도 되는 책이 너무 많아서 어떤 지점을 근거로 삼을 건지 스스로도 불명확한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개별 도서의 특색이 하나의 줄기로 엮이지 않아서 독서 흐름을 만들기엔 아쉬움이 있습니다. 재미난 건 인문 도서라 할 수 있는 <전을 범하다>, <사회적 원자>, <철학이 필요한 시간>은 알라딘에서 모두 편집장의 선택으로 다룬 책이라는 점.

아, 잡설이 길었습니다. 그럼 2011년 Sorry CEO 추천도서 목록을 공개하겠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힘 - 돈이 아니어도 세상은 좋아질 수 있습니다] 

 

 

 

 

 

 

 

  

 

부제 그대로입니다. 자본권력과 국가권력을 넘어서기 위한 힘을 모으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 틀마저 뛰어넘는 상상력이 있잖아요. 누군가는 노래를 만들고 누군가는 티셔츠를 만들고... 더불어 우리는 마음이 동하면 바로 움직일 수 있는 가벼운 몸과 열린 마음이 있으니 '감시와 처벌'의 시선조차 따라오지 못할 속도로 힘을 모으고 나눌 수 있습니다. 때론 즐겁게, 때론 묵직하게 전하는 '세상을 바꾸는 힘'을 내 몸으로 겪고 내 안에 쌓아가길 바랍니다.

 

[돈과 자본 제대로 알기 - 무조건 좋다고요? 이유나 알고 좋아합시다]  

 

 

 

 

 

 

 

 

이 주제는 인문학스터디에서 다뤄보려고 이리저리 궁글리던 내용인데요. 홍기빈 선생은 <권력자본론>, <자본주의>, <돈의 본성>으로 이어지는 번역 작업을 통해 권력-자본-화폐의 구조를 우선 번역으로나마 전하고 싶었다는 후문입니다. 책세상 비타악티바 시리즈로 <자본주의>를 내셨지만 총체적으로 문제를 다룬 저작은 아니니까요. 휴버먼의 말처럼 "자본주의건 사회주의건, 그것이 맞서 싸워야 하는 상대이든 애써 추구해야할 대상이든, 우선은 그 본질과 그것을 둘러싼 진실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시기이고 또 반갑게 그런 책들이 줄기차게 나오는 최근입니다. 난이도는 3-1-4-2 정도 되겠네요.

 

[이 땅에서 노동자로 산다는 것 - 꼭 걸어서 내려가겠습니다! 우리, 지금 만나러 갑니다!]   

 

 

 

 

 

 

 

 

따로 설명드리지 않아도 될 주제입니다. Sorry CEO 추천도서의 핵심이라 생각하고요. 이번에 나온 <소금꽃나무>(한정 특별판)은 여러모로 의미가 깊습니다. 연대와 지지를 보내던 분들이 출판사에 함께하자고 제안했고, 출판사도 애초의 고민을 실천할 힘을 얻어 이야기가 확산되는 데에 중심을 잡아주고 있습니다.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와 <영혼이라도 팔아 취직하고 싶다>는 제목이 감각적인데 지금 현실의 취업과 노동 문제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마지막으로 <너희는 고립되었다>는 저자이기도 한 송경동 시인이 직접 책을 들고와 판매를 부탁하신 기륭전자 투쟁 사진집입니다. 출판사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수급 등에 어려움이 있지만 알라딘도 연대의 의미로 동의했고, 안타깝게도 알라딘에서만 판매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평안 찾기 - 당신의 여유가 모두를 행복하게 할 수 있습니다]    

 

 

 

 

 

 

 

 

잘 쉬어야 일도 잘 할 수 있다는 덕담은 인사치레에 불과한 우리 현실이죠. 대통령께서도 휴가를 제대로 쓰지 않으시며 불철주야 국가 대업에 애쓰시는데 감히 저희가 휴가를 마음대로 쓸 수가 있나요. <휴식-행복의 중심>은 근면하기로는 한국인 못지않게 유명한 독일 사람들을 감탄시키고 '쉬고 하자!'는 유행어를 만들어낸 책입니다. 노동에 관한 한 프랑스보다 독일에 가까운 우리 문화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겁니다. <심야 치유 식당>도 비슷한 조언을 합니다. 많은 문제가 '너무 열심히 살기 때문에' 생긴다고 말하며 대학 선배처럼 친근하게 고민을 들어줍니다. <에고로부터의 자유>는 굳이 영성이나 명상에 관심이 없더라도 나를 옭아매는 자아를 한 번쯤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볼 기회를 전해줄 겁니다. 마지막 <회사 우울증>은 사실 제목만 보고 많이 알려지겠다 싶었는데 소리 없이 묻힌 책입니다. "왜 회사만 가면 우울할까?"라는 표지의 카피가 읽어볼 충분한 이유를 전할 거라 생각합니다. 굳이 한 권 더 얹고 싶은데요. 경영 담론이 노동자의 휴가 문화를 어떤 식으로 조장하고 이끌었는지를 조목조목 살펴본 <잃어버린 10일>을 권합니다. 사회학 논문이라 만만치 않지만 시선과 분석 모두 신선합니다.

 

[한국형 CEO 맞춤 교양서 - 이 정도는 아셔야 CEO 소리(Sorry) 듣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가장 많이 고민한 목록입니다. 수십 권의 책이 왔다갔다하면서 겨우 하나둘 제자리를 찾아 하나의 조합을 만들었습니다. <물건 이야기>는 사회과학에 가까운데 분류는 경제경영으로 잡힌 책입니다. 원료 추출에서 생산, 유통, 소비, 폐기까지 말 그대로 상품이 겪는 일생을 집요하게 추적하는데, 책상머리에 앉아 서류만 보고 결정하고 지시하는 적지 않은 CEO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전할 거라 생각합니다. 이어지는 두 권은 역사성 문제인데요. 아무래도 한국 재벌은 대개 세습으로 경영권이 이어지다 보니 사회문화적 맥락과 기업의 역사적 가치와 역할에 대해서 크게 신경쓰지 않는 듯합니다. 저 두 권 정도면 기본기는 갖출 수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대통령의 오판>은 리더의 결정적 실수가 어떤 파국을 초래하는지를, 미국 역사에서 찾아내 보여주는 책입니다. 그들이 소중한 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더나 현실 사회에서 중요한 건 분명한 사실이니까요. 그에 합당한 책임감을 가져주길 기대하면서 골랐습니다.

 

[경제학자 선대인 추천도서

   

 

 

 

 

 

 

 

경제학자답게 관련 도서 중심으로 추천해주셨습니다. 이로써 전체적이 균형이 잡힌 듯합니다.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각각의 추천사를 차례로 전합니다. 

<삼성을 생각한다> : 전무후무한 시대의 증언.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양심이 있다면 이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합니다
<폴트 라인> : 미국발 경제위기의 근원을 가장 명쾌하면서도 체계적으로 분석한 책
<한국 IT 산업의 멸망> : 잘 나가던 한국 IT산업이 흔들리는 이유의 근저에 재벌과 정부관료들의 기득권 구조가 있음을 적나라하게 설명한 수작
<하우스 푸어> : 지난해에 나온 책이지만 2011년 하반기부터 다시 화두가 될, 그리고 향후 5년 이상 지속될 문제에 대해 예견한 책  


[법학자 김두식 추천도서

 

 

 

 

 

 

 

 

바쁜 와중에도 늘 이슈를 놓치지 않고 꾸준히 주목할 도서들을 챙겨 읽는 애독가의 면모가 드러나는 목록입니다. 특히 인물에 관한 책을 집중적으로 추천해주셨네요. 작년 인터뷰 때도 <김대중 자서전>을 추천해주신 기억이 있어 연결이 되네요.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각각의 추천사를 차례로 전합니다. <이타적 인간의 출현>은 <이기적 원숭이와 이타적 인간>과 함께 읽어도 좋겠습니다.
 

<문재인의 운명> : 자신만의 목소리, 이야기가 담긴 살아있는 책. 최근 읽은 어떤 책보다도 재미있었다
<인권변론 한 시대> : 1970~1980년대 역사 속에 몸을 던진 인권 변호사의 담담한 회고. 드물게 솔직하다
<이타적 인간의 출현> : 경제학자로는 흔치 않게 <사이언스>에 논문을 게재한 저자는 게임이론을 통해서 이타성을 설명한다. 인간이란 무엇인지를 새로운 관점에서 보게 해주는 흥미로운 책
<이완용 평전> : 누구나 쉽게 욕하지만 사실은 아는 것이 거의 없는 사람에 관한 책. 국권상실의 가장 큰 책임은 대신들이 아니라 왕에게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준다 


[한겨레 고명섭 기자 추천도서]  

 

 

 

 

 

 

 

 

고명섭 기자께서는 예상대로 묵직한 인문서 중심으로 추천을 해주셨습니다. 네 권이 책이 번갈아가며 당대와 역사를 오가는 게 재미나네요. 상당히 진지하고 섬세하신 분인데 네 개의 추천사에 모두 느낌표를 꽝꽝 찍어놓으신 것도 눈에 띕니다. 강력한 추천의 의지랄까, 이런 게 느껴지지 않나요?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 민주주의의 기원으로 찾아가 '데모스의 힘'을 발견해내는 정치철학적 사유의 모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 마침내 원전 번역서로 만나게 된 서구 비판정신의 뿌리, 역사서술의 모범!
<정치가 우선한다> : 이념에 짓눌리지 않는 진보연합 정치를 통해 복지국가를 만든 서구 사민주의의 투쟁과 승리!
<축의 시대> : 기원전 6세기 전후 동서양 문명벨트에서 일제히 일어난 사유의 혁명 과정을 답사하는 인문학적 수학여행!  


[금태섭 변호사 추천도서]  



 


 

 

 

 

 

 

김두식, 조국에 이어 글 잘 쓰고 잘 생기고 등등, 법조계의 엄친아 3인방을 구성하는 금태섭 변호사의 추천 도서입니다. 워낙 문학을 좋아하고 언젠가 소설을 쓰겠다는 꿈을 갖고 있어서인지 유일하게 문학 작품을 하나 추천해주셨네요. <내 청춘의 감옥>은 80년대 기억물의 새로운 지형을 연 의미 있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이번 기회에 더 많은 분들이 만날 수 있길 기대합니다.

<평생 독서 계획> : 최고의 독서 안내서. 다 읽지 못 해도 좋다. 저자가 소개하는 133권의 책 제목만 봐도 뿌듯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 젊은 세대의 생각, 느낌, 그리고 좌절과 희망을 그들 자신의 말로 들려주는 책
<형사 실프와 평행 우주의 인생들> : 흥미진진한 소설 한편을 읽고 덤으로 물리학에 대해서 아는 척할 수 있게 해주는 책
<내 청춘의 감옥> : 인터넷에서 다운 받은 오늘의 유머를 들고 와서 웃음을 강요하는 상사에게 진정한 유머, 가슴이 따뜻해지는 웃음이 무엇인지 힌트를 주고 싶을 때 권할 만한 책
 

 

이렇게 알라딘 추천도서 20종에 외부 인사 추천도서 16종을 더해 2011년 Sorry CEO 추천도서는 36종으로 정리합니다. 작년에 많은 관심을 보내주시어 올해에 더 의미 있는 행사로 발돋움할 수 있었습니다.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말씀 전합니다. 더불어 귀한 시간 내주시며 애써 추천도서를 고르고 추천평까지 보내주신 네 분 선생님께도 감사를 전함과 동시에 묘한 동지애를 가져봅니다.  

올해에는 여러분이 만들어주시는 목록을 모아볼까 합니다. 이벤트 페이지에 댓글로 여러분의 목록을 남겨주시면 우리의 목소리가 공명하고 퍼져나가는 데에 큰 힘이 될 겁니다. 적극적인 참여 부탁드립니다. 

목록 때문에 고심한 며칠이 지나고 이렇게 글을 올리고 나니 뿌듯하면서도 불안하고, 마음이 꽉 차면서도 허전합니다. 내년에 더 나은 목록으로 찾아뵙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뜨거운 지지와 냉철한 비판이 필요합니다. 언제나 곁에서 지켜주시리라 믿으며 2011년 Sorry CEO 추천도서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아, 시작합니다! 

이벤트 페이지 주소 : http://www.aladin.co.kr/events/wevent_book.aspx?pn=110627_sorryceo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상원 2011-07-07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일인시위> 유상원입니다. 소중하게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문MD 바갈라딘 2011-07-18 10:02   좋아요 0 | URL
좋은 책 전해주셔서 제가 고맙습니다. 꾸벅.

soulmate 2011-07-17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상당히 흥미롭네요. 읽어봐야겠습니다.

인문MD 바갈라딘 2011-07-18 10:03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몰아서 읽어보면 환골탈태도 가능할 거라 기대합니다. ^^

YK 2011-07-18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전 정말 이런 센스가 너무 좋아요!! ㅎㅎㅎㅎ

인문MD 바갈라딘 2011-07-18 16:17   좋아요 0 | URL
저 역시 이런 댓글이 너무 좋답니다... ^^

ellefson 2011-08-08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orry CEO라고 쓰신걸 보고 오타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군요 ㅎㅎㅎ 센스 쩔어요!! ㅋㅋ

인문MD 바갈라딘 2011-08-09 11:55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이름값에 걸맞는 활약을 해야 할 텐데, 내년에는 보다 재미나게 해봐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