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을 만나는 방법은 간단하다. 책을 보면 된다. 어지간히 성실한 독자가 아니라면 책으로 나오는 그의 글을 다 읽기에도 숨이 벅찰 테니, 책 이외의 공간에서 그를 마주하는 일은 오히려 사치스럽다. 그래서인지 한국 사회의 주요 저자이면서도 그에 대한 서점의 인터뷰는 한 차례도 없었다. 그저 글에 집중하시도록 배려하는 게 나았을까. 서면으로 진행한 인터뷰이지만, 그의 일상, 읽기와 쓰기 그리고 대선을 앞둔 최근의 생각까지 차례로 살펴보면, 그를 귀찮게 해서라도 이런 자리에 불러내는 게 의미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재미는 충분한 일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 뿌듯하다. 믿지 못하시겠다면, 속는 셈 치고 첫 질문과 답변까지만이라도 읽어보시기 바란다.

 

이 인터뷰는 인물과사상사의 도움으로 진행되었으며, 단독 인터뷰를 기념(?)하여 강준만 저작을 모아 이벤트도 마련했다. 도서를 한 권이라도 사면 고급 플래너를, 운 좋아 당첨이 되면 강준만 교수 친필 사인본을 받을 수 있으니 한번 살펴보시기 바란다.

 

강준만 저작전 바로 가기

http://www.aladin.co.kr/events/wevent_detail_book.aspx?pn=121108_kangjm

 

 

강준만의 일상


보통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말씀해주세요.

전엔 주로 밤에 일을 하는 올빼미족이었습니다만, 언제부턴가 체력 저하를 느끼면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학교 강의, 책 읽기, 글쓰기 등이 저의 주요 생활입니다만, 매일 거르지 않고 개근하는 게 저녁 먹기 전 집 근처 헬스클럽에 나가 운동하는 것이죠. 일단 목표는 식스팩 만들기입니다만, 나이가 먹은 탓인지 예전처럼 근육이 잘 붙질 않습니다. 대학 시절 학교 앞 육체미체육관(70년대 초반엔 주로 이렇게 불렸습니다)에서 운동할 땐 조금만 해도 근육이 만들어지곤 했는데, 세월이 무섭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서 출퇴근 하는데, 왕복 1시간 거리입니다. 가는 길에 덕진공원의 호수가 있어 걷는 코스가 그야말로 환상적입니다. 매일 축복받은 삶이라고 느낄 정도죠. 

 

공식적으로는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사용하지 않으시는 걸로 아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핸드폰 쓴 것도 올해부터인데, 특별한 이유를 말씀드릴 필요가 있을까요? ^^ 전 솔직히 언론이 유명인사들의 한두 줄 트위터 메시지를 정치 뉴스로 다루곤 하는 게 영 못마땅합니다. 주요 용도가 자극적인 센세이셔널리즘이라고 보기 때문이죠. 일종의 ‘갈등 상업주의’라고나 할까요?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제 생각일 뿐이죠. 아마도 제 아날로그 감성의 한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학기에 맡고 계신 수업의 이름과 내용을 알려주세요.

이번 학기는 모두 ‘국제’네요. 국제커뮤니케이션, 글로벌미디어론, 국제커뮤니케이션 연구(대학원) 세 과목입니다. 문화간 커뮤니케이션(intercultural communication) 중심으로 강의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무역의존도가 가장 높은 국가인 한국이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는 길은 왕성한 해외지향성이라고 보기 때문에, 한국이 ‘문화간 커뮤니케이션’ 연구의 메카가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래서 이번 학기부터는 학생들의 리포트를 책으로 내기로 했습니다. 책을 낸다는 데 의미를 두는 게 아니라, 콘텐츠로 승부를 보겠다는 마음으로 야심작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벌써 일부 학생들은 책에 실을 정도의 품질을 기하기 위해 리포트를 서너번 고쳐쓰고 있는 중이죠. 방학중에 제가 편집 작업을 해서 내년 개강일에 학생들이 책을 받아볼 수 있게끔 하려고 합니다. 전 독보적인 책이 되어야 한다고 학생들을 괴롭히고 있는데, 나중에 책 나오면 행여 학부 학생들이 쓴 책이라고 깔보지 마시고 질을 평가해주시기 바랍니다. 바깥 세계를 보는 눈은 학생들의 눈이 더 정확하다는 게 제 소신이거든요.

 

대중문화에 관심이 많으시고 관련 저작도 내셨는데 좋아하는 가수나 배우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영화나 드라마를 즐기시는지. 음악은 어떤 장르를 좋아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더불어 최근에 본 기억나는 작품이 있다면 함께 알려주시길.

한꺼번에 답을 드리겠습니다. 넓은 의미의 대중문화로 보자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는 자연·동물 다큐입니다. 영화, 드라마, 가요의 취향은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있다기보다는 주제 중심이죠. ‘찌질이’라고 흉볼까 염려됩니다만, 러브 스토리, 그것도 가슴 저미는 실연(失戀)이나 비련(悲戀)이 좋습니다. 

 

가사 분담을 어떻게 하시나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외모의 느낌은 집안일 전혀 안 하실 것 같습니다.(웃음)

매일 아침 집 나갈 때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것 하나만큼은 완벽하게 합니다. 아내가 커피 생각난다고 말하면 즉시 뛰쳐나가 사올 정도의 실천은 늘 하고 있습니다. 단지 그것 뿐이라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요.

 

특별한 일이 없다면 전주에서 생활하신다고 들었는데, 전주에서 추천할 만한 맛집이나 꼭 들러보면 좋겠다 싶은 곳을 추천해주신다면.

제 단골 국수집을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만, 찾기가 매우 어려운 작은 집이라서. 전주 하면 많은 분들이 꼭 한옥마을을 들러보시죠. 인사동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는 게 타 지역에서 오신 분들의 한결같은 감상평이더군요.

 

 

강준만의 읽기와 쓰기

 

집필을 위한 기획이나 구상은 주로 어떤 때에 떠올리시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생각을 이어가시는지 궁금합니다.

지금 제가 집필하고 있는 책의 주제는 세계적인 미디어업계의 거물들에 관한 인물론입니다. 인물 중심으로 글로벌 미디어들을 탐구해보는 거죠. 예컨대, 페이스북에 대해 아무리 이야기해봐야 재미없고 딱딱한 이야기가 되고 맙니다. 하지만 마크 주커버그 중심으로 풀어가면 아주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되는 거죠. 주커버그 뿐만 아니라 처음에 페이스북을 같이 시작한 더스틴 모스코비츠와 에두아르도 새버린이 유대인이라는 사실, 이게 아주 좋은 분석의 소재가 됩니다. 구글도 구글 이야기만 하면 재미없는 IT 이야기일 뿐이지만, 구글 3인방인 세르게이 브린-래리 페이지-에릭 슈미츠 중심으로 풀어가면 구글의 정체성과 본질이 보입니다.
  제가 왜 이 책을 쓰게 되었나 하고 생각해봤더니, 이유가 복합적이더라구요. 학교에서 하는 강의의 내실을 기하기 위해, 아날로그 인간이지만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욱 디지털 문화에 대해 많이 알아야 한다는 자기계발 욕구, 스스로 탐구하면서 느끼는 재미 등등. 집필을 위한 기획이나 구상의 한 사례로 말씀드리는 겁니다. 무슨 장기 계획이 있다기보다는 주로 이런 식으로 해나가는 것 같아요. 제가 최근에 낸 <교양영어사전>도 지난해 교환교수로 미국에 1년간 머무르면서 떠오른 생각이었구요.  

 

‘엄청나다’는 표현이 궁색할 정도로 많은 글을 써오셨고 또 쓰고 계십니다. 하루에 한 글자도 쓰지 않는 날이 1년에 며칠 정도 되십니까. 더불어 글을 주로 어느 시간대에 쓰시는지 알려주신다면.

하루에 한 글자도 쓰지 않는 날이 의외로 많습니다. ‘발동 걸린다’는 말이 있는데, 일단 준비 작업 끝나면 그때부터 발동 걸려서 써대는 식이죠. 집에선 소파에 누워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책을 읽습니다. 텔레비전 켜 놓구요. 전 휴식이라고 생각하지요. 재미있는 장면이나 이야기 나오면 텔레비전 보고, 아니면 다시 책으로 눈을 돌리고. 책 읽으면서 제 책을 위해 써먹을 거리들을 그때그때 챙겨놓는 식이지요. 옆에 노트를 준비해놓고 키워드 중심으로 어디에 무슨 내용이 있다는 걸 표시해둡니다. 그리고 그걸 컴퓨터에 입력해놓지요. 이렇게 준비가 다 끝나면 본격적인 글쓰기 작업에 들어가는 식입니다. 예전엔 밤에 글을 많이 썼습니다만, 요즘엔 늦어도 밤 1시엔 자고 오전 7-8시 사이에 일어납니다.

 

장서 구입이나 자료 구입에 어느 정도 비용을 쓰시는지, 그리고 서가 관리는 어떤 방식으로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공간 문제 때문에 예전에 비해 많이 줄였습니다. 월 100만 원? 서가 관리의 한계를 자주 절감하곤 합니다. 시간이 너무 들어가니 제대로 못한다는 뜻이지요. 디지털 시대에 내가 이래도 되나? 이거 미친 짓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지만, ‘취미’로 생각하면서 스스로 정당화하곤 하지요.

 

독서를 하실 때에는 밑줄을 긋거나 메모를 남기기도 하시나요? 읽으면서 그리고 읽고 나서 내용과 생각을 정리하는 방법이 궁금합니다.

어느 책이건 책 끝에 하얀 여백이 한두장 있습니다. 제 책들은 대부분 그곳이 지저분합니다. 키워드 중심으로 어디에 무엇이 있다는 걸 다 표시해두기 때문이죠. 노트에 따로 적었더라도 나중을 위해 책 뒤 여백에 그걸 일일이 표기해두곤 합니다. 밑줄 긋는 건 물론 그때그때 떠오른 생각을 책 여기저기에 써두곤 하죠. 책을 곱게 모시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문학과 비문학, 집필에 필요한 독서와 (이런 게 가능하다면) 취미로서의 독서의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요.

모든 독서의 취미화를 추구하지요. 재미없거나 별거 아니다 싶은 부분은 속독하곤 합니다. 그러나 취미로서의 독서를 말씀하신 뜻은 그게 아닌 것 같은데, 실은 소설 잘 안 읽습니다. 스타일리스트가 될 수 없는 제 한계라고 생각하지요.

 

혹시 전자책을 보신 적이 있나요? 활용하신다면 어떤 점이 편리한지 혹은 불편한지 느낌을 알려주시고, 사용하지 않으신다면 사용하실 계획은 없으신지 알려주세요.

작년에 미국에 있으면서 아마존 골수 팬이 되었는데, 킨들을 쓸까 말까 하다가 한국의 전자책 진도가 더딜 걸로 생각해 결국 종이책을 부여잡고 말았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종이책보다 전자책이 더 많이 팔리고 있다지만, 우린 시간이 좀 더 걸리겠죠? 국내에서 대세가 기울어 불편하게 되면 ‘전향’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까지 펴낸 작품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책을 하나 꼽아주신다면 그리고 (뻔한 질문이지만) 무인도에 단 한 권의 책만 가져가야 한다면, 어떤 책을 챙기실 건지.

‘애착’의 개념 정의가 문제네요. 다 애착이 간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좀 진한 느낌으로 말한다면 애착이 가는 책은 없는 것 같아요. 아직도 애착을 느낄 만한 책을 쓰지 못한 것 같은 느낌, 아니 어쩌면 영원히 쓰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구요. 책을 실용적으로 대하는 발상 때문인 것도 같고,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을 가장 곤혹스럽게 생각하는 기질 때문인 것도 같고 잘 모르겠네요. 무인도에 단 한 권의 책만 가져가야 한다면, 무슨 책이건 불쏘시개로 쓰기에 유리한 두꺼운 책? ^^

 

 

 


 

 

 

 

 

 

 

 

 

 

 

 

그리고 강준만의 생각

가장 좋아하는 정치인 그리고 작가를 한국, 해외로 나눠서 꼽아주신다면.

왜 이런 질문을 곤혹스럽게 생각할까? 스스로 물었지요. 인간을 불완전한 존재로 보는 인간관 때문인 것 같아요. 이 사람은 이런 점, 저 사람은 저런 점이 좋고, 전 늘 이런 식이지, 종합해서 누구냐고 물으면 늘 말문이 막히곤 합니다. 연애만 그렇게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죠.

 

월간 <인물과 사상>은 ‘저널룩’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고, 인물 인터뷰 형식에서도 새로운 시도로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선생님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몸 같은 잡지인데, <인물과 사상>의 사회적 역할과 의미에 대해 그간의 흐름을 간략히 짚어주시고 이후의 전망도 들려주신다면.

제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네요. 다만, 이번 대선 관련해서 여러 정치인과 논객들 말씀하시는 걸 보면서 새삼 ‘인물과 사상’ 생각을 했지요. “아니 저 분은 자신이 예전에 했던 말을 기억 못하는 걸까?”  라고 생각했던 적이 여러 번 있었지요. 예컨대, 늘 정당을 쓰레기처럼 여기는 발언을 수도 없이 했던 분이 ‘무소속’을 무슨 죄악인 양 여기면서 ‘정당 민주주의’의 수호신처럼 행세하시는 걸 보고서 쓴 웃음을 짓곤 했지요. 그런데 어떤 인물에 대해서건 우리 사회엔 종합적인 인물 평론이 없어요. 전 ‘인물과 사상’을 통해 그런 일을 하자는 뜻이 강했거든요. 그런데 결국엔 시장 논리에 밀려 예전처럼 왕성하게 지속되진 못했지요. 한동안 ‘인물과 사상’을 좋아해준 독자들의 생각은 좀 달랐던 것 같아요. 카타르시스 효과를 우선시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죠. 그래서 그 효과가 떨어지는 인물론엔 비교적 관심이 없었고요. 하지만 월간 [인물과 사상]을 통해 지속적으로 그 일을 다시 왕성하게 해보고 싶네요. 

 

소위 논객의 시대가 끝났다, 는 말들이 많지만, 여전히 선생님과 격론을 펼친 논객들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그 판에서는 한 발짝 물러나 계신 느낌인데요. 관련한 시대 상황의 변화에 대한 생각 그리고 개인적인 소회를 들려주신다면.

실은 한 발짝이 아니라 두어 발짝 물러나 있지요. 제가 <안철수의 힘>이라는 책에서 소개한 “멘토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탄 멘티들”이라는 논지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이 되겠네요. ‘멘토’ 대신 ‘논객’이란 말을 넣어도 무방한데, 이런 내용이었지요.
  “나는 일부 정치적 멘토들의 경우엔 겉으론 리더인 것 같지만 실은 편가르기 구도의 졸(卒)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멘티들이 멘토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타 있다는 것이다. 물론 멘토들은 멘티들에게 진한 감동과 더불어 행동을 하게끔 자극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마저 멘토가 프레젠테이션(presentation)을 잘했다는 것을 의미할 뿐, 멘티들은 이미 듣고 싶은 메시지를 자신이 갖고 있었다는 걸 잊어선 안된다. 멘티들은 멘토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보내다가도 멘토가 자신이 애초에 갖고 있었던 구도나 틀을 넘어서는 발언을 하게 되면 하루 아침에 무시무시한 적으로 돌변해 돌을 던질 수 있다.”
  이건 제 경험담이지요. 논객은 치어리더라는 것이지요. 물론 그 역할도 소중하긴 한데, 전 제가 치어리더였다는 걸 깨닫고선 흥미를 잃었지요. 다만 논객의 의미를 넓게 잡는다면, 이젠 좀 다른 방식으로 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지요. 예컨대, “멘토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탄 멘티들”이라는 논지도 저의 다른 방식의 논객 역할일 수도 있다는 거지요. 

 

<김대중 죽이기>와 <노무현 죽이기>의 출간과 두 대통령의 당선으로 “강준만이 죽이면 그 정치인은 산다.”는 말이 떠돌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안철수의 힘>인데요. 대선에 대한 분석과 평가 그리고 전망의 방식이 달라진 까닭은 무엇일까요.

이 또한 “멘토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탄 멘티들”이라는 논지의 연장선상에서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이른바 ‘시대정신’이라는 말을 쓰는 분들마다 각기 다른 의미로 말씀을 하시니 혼란스럽긴 합니다만, 어떤 특별한 시대적 상황은 정치인이건 지식인이건 한 개인이나 집단의 통제 밖에 놓여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이론으로 풀 수 있는 것도 아니지요. “한국정치, 이대론 안된다”는 대전제에 만인이 동의하면서도 그것이 개탄의 수준을 넘어섰던 적이 있었던가요? 그 수준을 넘어선 것처럼 보였던 시도도 없진 않았지만, 그건 정략이나 한풀이를 앞세웠던 탓에 실패로 돌아갔구요. 이런 시대적 상황이 안철수를 만들고 키운 게 아닐까요? 그런 시대적 상황을 무엇으로 보느냐 하는 해석의 차이가 존재하는 가운데, 저는 그걸 시대정신으로 보는 쪽에 선 것일 뿐이지요.

 

 


 

 

 

 

 

 

 

 

 

 

 

 

<안철수의 힘>에서 안철수를 지지하는 세 가지 이유를 증오시대의 종결자, 공정국가 실천자, 패러다임의 변환자로 꼽으셨는데요. 그때는 안철수 후보가 아직 출마를 선언하기 전인데, 선거 운동이 시작된 지금 시점에서도 그 생각이 유효하신지요?

김지하 시인 말씀이 떠오르네요. 김 시인께선 ‘지난 7월에는 안철수 후보가 가장 자질이 뛰어나다고 했는데 지금도 그런가’라는 질문에 “그때는 잘 몰랐다”며 “정작 후보가 돼서 하는 걸 보니 근 열흘 동안 아무것도…, 깡통이야”라고 비난했다지요. 그러면서 “무식하단 뜻이 아니다”라면서 “처음엔 뭐 있는 줄 알았는데 아직 어린애”라고도 했다는 말씀 말입니다. 저는 김 시인의 말씀을 존중합니다만, 내심 “아 이렇게 보는 눈이 다를 수 있구나!”하고 좀 놀랐지요.
  하지만 ‘깡통’이니 ‘어린애’니 하는 말에 너무 주목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실제로 출마 선언 이후의 안철수에 대해 실망한 분들도 적지 않을 것인 바, 그런 분들의 생각을 좀 거칠게나마 대변하신 걸로 볼 수 있겠지요. 그런데 제가 볼 때에 그런 분들은 안철수에게 확실하게 ‘준비된’ 무언가가 있기를 바랐던 거 같아요. 전 그게 엄청난 과욕이자 착각이라고 보는 거구요.
  맞아요. 안철수는 어린애지요. 우리는 보통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론을 말할 때 “어린애 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그러지요. 그런 점에서 안철수가 어린애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지요. 그런데 이상론엔 두가지가 있지요. 실현이 불가능한 이상과 실현이 어려운 이상이지요. 정치의 정상화는 후자지 전자는 아닙니다. 모든 국민이 원하는, 엄청난 빽이 있는 이상입니다. 실망을 한 분들은 팔짱 낀 자세로 그 이상으로 가는 일정표를 평가해보겠다는 자세였던 것 같아요. 전 그런 자세가 모든 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보는 데에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전 안철수 후보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 하고 있다는 데에 놀라는 쪽이지요. 조국 교수가 평소 말하곤 하던 ‘정치적 근육’이 만만치 않다는 걸 보면서 앞으로 국민과 같이 더불어 해나갈 수 있는 일이 많다는 쪽에 기대를 거는 편이지요. 안 후보 비판 가운데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게 많은지 아실른지 모르겠네요. 예컨대, 준수한 용모를 가진 어느 신문 논설위원님은 각종 방송토론회에 단골로 출연하시면서 안 후보의 ‘청와대 이전’ 검토를 최대의 망발이라며 줄기차게 공격하시던데 그 분은 신문도 안 읽나봐요. 청와대를 ‘후진국형 권위주의 공간’으로 규정하면서 확 뒤집어 바꿀 것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얼마나 높았는데, 그땐 잠자코 계시다가 이제 와서 그러시는지.

 

대선을 앞두고 2013년 체제 등 새로운 시대를 구상하고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오늘 한국의 시대정신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승자 독식으로 인해 악화된 내부 갈등 비용을 줄여야 합니다. 안철수를 지지하건 반대하건, 설사 그가 대통령직 도전에 실패하더라도, 그가 던진 메시지에 우리 모두 계속 주목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는 "우리 정치권은 승자 독식이 반복되기 때문에 결국 증오의 악순환에 빠진다"며 "여(與)나 야(野) 누가 이기면 국민의 절반이 절망한다"고 말했지요. 또 그는 “상대방을 지지하는 국민 절반을 적으로 돌리고, 국민을 반으로 갈라 놓는, 낡은 프레임과 낡은 체제로는 아무런 사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말했지요. 전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오늘 한국의 시대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대선을 코앞에 둔 지금 유권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아무리 잘못된 관행일 망정 익숙한 것과의 결별에 따르기 마련인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용기와 패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용기와 패기를 치기(稚氣)로 돌리면 일순간 마음은 편해지겠지만, 우리 대한민국이 그렇게 안주하길 바라진 않겠지요? 지도자에 대한 신뢰 못지 않게 우리의 국민적 역량에 대한 신뢰를 가지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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