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이 시험문제를 낼 때는 ‘이원목적분류표’라고 해서 구체적인 문제출제계획서를 우선 작성해야 하는 것이 권장된다. 어떤 단원에서 어떤 능력을 알기 위해서 어떤 난이도로 출제할 것인지를 사전에 정하고 그에 따라서 문제를 내는 것이 좋은데 사실 이를 준수하는 교사는 많지 않다. 우선 시험문제를 내고 그에 맞춰서 이원목적분류표를 사후에 작성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다.
나로 말하자면 출제를 먼저하고 이원목적분류표를 사후에 작성하는 부류에 속한다. 반성하면서도 여간해서 이를 바로잡기가 어렵다. 책을 집필할 때도 마찬가지다. 내 생각에는 기획서와는 별도로 ‘작가의 말’이 원고에 우선되어야 할 것 같다. 장군이 전쟁에 나서기 전에 출사표를 던지듯이 작가는 원고를 집필하기 전에 작가의 각오나 계획을 밝히고 그대로 원고를 써나가야 한다고 본다.
역시 불행히도 작가로서의 나도 ‘작가의 말’을 사후에 작성한다. 여러모로 ‘야매’ 인생이다. 오늘 연말에 나올 신간에 대한 최후 일정으로 ‘작가의 말’을 썼다. 한 권의 책을 내면서 최악의 ‘창작의 고통’을 겪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제목과 작가는 기억나지 않지만 ‘머리말’만 따로 모아서 한 권의 책으로 나온 경우가 있었던 것 같다. 그건 그렇고 새 책에 대한 <작가의 말>을 소개하면 이렇다.
보물찾기 놀이를 좋아했다. 기민하지 못해서 보물을 한 번도 발견한 적이 없지만 보물찾기 놀이는 언제나 즐겁고 작은 스릴이 넘쳤다. 평소에는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한적한 모퉁이가 보물찾기 놀이가 시작되면 그곳은 보물섬이 되었다. 보물을 숨겨둔 사람도, 보물을 발견한 사람도 모두가 행복해지는 놀이다.
나는 고전 읽기를 보물찾기 놀이로 생각한다. 고전이란 주로 남들이 좋다고 해서 읽는 책이다. 선생님이 숨겨둔 보물을 발견하기 위해서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야산의 한 구석을 자세히 살펴보듯이, 우리는 고전을 읽으면서 이 책의 어떤 점을 사람들이 좋아하고 감동하였는지를 찾게 된다. 시작은 수동적이었지만 고전을 읽으면서 부모 세대가 느낀 감동을 고스란히 발견한 독자도 있을 터이고, 보물찾기 놀이에서 보물을 찾지 못했던 나처럼 남들이 좋다는 고전에서 감동이나 공감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남들이 다 찾은 보물을 찾지 못했다고 실망할 일은 아니다. 세상에는 고전이 많고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고전이 태어나고 있으니까 말이다. 자기에게 맞는 고전을 아직 만나지 못했을 뿐이다. 한 번의 보물찾기 놀이에서 보물을 찾지 못했다고 다시는 보물찾기 놀이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할 필요는 없다. 또 다른 보물섬이 언제 어디라도 우리에게 나타나니까 말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고전에 대한 정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요리의 재료가 요리사에 따라서 다른 요리로 태어나듯이 고전은 독자에 따라서 여러 가지 다른 감동과 공감이 발견된다. 이 책은 내 개인적인 경험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그저 딱딱하고 어렵다고 생각하기 쉬운 고전이 이토록 다양한 형태와 시각으로 읽힐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주고 싶었다. 책 읽기에 정답과 정도가 있다면 얼마나 시시한 일인가?
가능한 각 고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고 싶었다. 흔한 요리 재료로 남다른 요리를 선사하는 요리사가 되고 싶었다. 이 책을 이런 시각으로 볼 수도 있겠다는 신선한 자극이면 충분하겠다는 생각에 될 수 있는 대로 토론이나 논의의 주제가 될 만한 주제를 끌어내려고 애썼다. 독서의 다양성을 고려해서 잘 알려진 고전과 낯설게 생각될 고전의 목록을 안배했다. 누구나 알 법한 고전에서 흔치 않은 주제를 끌어내고 싶었고, 아는 사람이 드물 것 같은 고전에서 누구나 알 법한 주제로 친근함을 주고 싶었다. 이 책으로 한 권의 고전이라도 더 읽고, 한 가지 생각이라도 더 해진다면 저자로서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