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를 말하기 - 제대로 목소리를 내기 위하여
김하나 지음 / 콜라주 / 2020년 6월
평점 :
품절


연휴 끝자락에서 김하나 작가가  <말하기를 말하기> 읽었다연휴가 시작되자 편집자가 혼신의 마무리를 해서 넘겨준 초교 교정지를 제일 먼저 만졌고이은혜 편집자가  <읽는 직업> 읽고 나서미시마 유키오의 <봄눈> 공을 들여서 읽었다급하게 해야  일을 하고빨리 읽고 싶은 책을 읽고 나서야 <말하기를 말하기> 펼친 셈이다사반세기를 말하는 직업으로 살다 보니 말하기 지겨워졌고 나이가 들수록 말보다는 글이  재미나며말보다는 행동을 신뢰하는 습관이 쌓여간다.

 

학교라는 좁은 사회에서만 살아온 나에게 김하나 작가가 거쳐온 카피라이터라든가 팟캐스트 진행자는 재미있는 직업이다매력적인 일을 하는  분은 어떤말을 하는지 궁금했다우선 김하나 작가가 어린 시절 굉장히 내성적인 성격이었다는 것이 놀랍다광고를 만들고 대중들이 읽을 책을 쓰고 강연을 하는 분은 외향적인 성격을 타고난 것으로 생각했는데 말이다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을 무서워  사람이 말을 하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니 신기한 반전이다 책에 빠져들기 시작했다글은 모름지기 이렇게 써야 한다독자들이 생각지 못했던 의외의 사실로 독자들에게 선빵을 날려야 한다.

 

걷는 방법 가르쳐야 한다는 말에 감탄을 했다그러고보니 얼마나 중요한 기술인가걷는 방법에 따라서  사람의 감정이나 건강상태가  눈에 보이고 걷기는 인간의 처음이자 마지막 운동이다다른 사람에 대한 인상의 상당수는 걷는 방법에 기인하지 않는가어떻게 걷는지를 보면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같다걷는 방법을 가르치는 학교는 상상만 해도 가슴이 벅차다바르게 걷는 학생이 바르지 않는 삶을 살기 어려운  같다

 

자전거 타기와 말하기를 가르쳐야 한다는 말에도 동의한다학교에서 자전거 타기를 배운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교사는 학생들에게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훈계를 하지만 정작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지에 관한 교육과정은 없다교무실에서 말을 못되고 버릇 없이 하는 학생을 뒷담화 하지만 학교는 말하는 방법 가르치지 않는다시험을  치는 방법이 아니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실제로 부딪치는 문제와 익히면 인생이  행복해지는 실생활 기술을 가르치는 학교가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책의 부록에는 김하나 작가가 직접 그린 마인드 맵이 실려 있는데 사실은 본문에서 마인드 맵을 이야기 하길래 궁금했던 차였다에리히 프롬은 소유형 인간과 존재형 인간을 구분하는데 강연을 예를 들자면 소유형 인간은 발표할 내용을 그대로 원고로 만들었다가 읽기만 하는 사람이다원고를 소유하려 드는 사람들이다김하나 작가는 말하자면 존재형 인간인데 강연을  내용을 원고보다는 머리속으로 그린다키워드 중심으로 이미지를 그리고 강연할 주제와 관련된 배경자료도 중요하게 여긴다강연을 마치고 나면 자기 성찰을 하며 이런 과정을 통해서 창의력을 키운다

 

소유형 인간은 원고를 처음 부터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강연이 조금만 틀어져도 횡설수설하게 되고 유연한 대처를 하지 못한다물론 준비한 원고가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청중들은 아무런 감동이나 공감을 얻지 못한다김하나 선생같은 존재형 강사는 키워드 중심으로  틀을 생각하기 때문에 지엽적인 문제가 생기더라도 매끈하고 공감을 주는 강연을 한다마인드 맵을 그리기 귀찮다면 키워드 중심의 짧은 메모만으로도 좋은 강연은 가능하다 넓게 자료를 준비하고 읽고 나서 키워드를 써보면 실제 강연장에서는 키워드만 보아도 이야기는 술술 풀린다물론 천재가 아닌 이상   마디 잊어버리는 경우가있지만 대세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

 

쪼란 무엇인가라는 꼭지에서도 배울 점이 많았다성우 교육과정에서 들은 말이라는  라는 명령조부탁조에 쓰이는  말한다나아가 아나운서조뉴스 앵커조영업사원조도 존재하는데 나로 말하자면 선생조 해당되겠다그러고보니 강연을   청중들을 마치 학생처럼 여기고 말끝마다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버릇이 있었던  같다 강연을 들은 청중들이 불쾌했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얼굴이 화끈 그린다

 

말을 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이해할  까지 말을 정확하게 해야 한다는 의무가 있다는 말에 무릎을 쳤다눈치가 발달된 우리나라는 눈치 빠른 사람이 많지만내가 겪어본 바로는  눈치가 틀린 경우가  많았다다른 사람의 속을 눈치로 알아차린다는 것은 매우 확률이 낮은 게임이다오해와 문제가 생길  밖에없다나는 글을   항상 내가 생각하고 그리고 있는 상황을 독자들이 궁금증이나 오해를 가지지 않고 이해할  있도록 쓰기 위해서 노력한다가령 시장에서 몹시 재미있고 황당한 장면을 보았는데  장면을  글을 읽는 사람이 내가  장면과  같이 이해할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 애쓴다

 

글을 쓰거나 말을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상황을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으면 독자나 청중들은 되묻기 마련이다내가 분주하고시끄러운 시장에서  웃긴 사건을 글이나 말로 다른 사람에게 정확히 전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그걸 해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이자 강연이라고 생각한다독자들의 이해는  쓰는 사람의 책임이다.

 

설득은 매혹을 이기지 못한다’ 

<말하기를 말하기> 끝내 덮지 못하고  참을 공감하고 여운을  구절이었다영어교사로서 나는  영어를 공부해야 하며 어떻게 해야 잘하게 되는지에 대해서만 이야기 했지 영어를  하면 인생이 얼마나  즐거워지는지에 대해서는 소홀했다강연자로서 나는 고전을  읽어야 하는지 잔소리만 해댔지 고전이라는 것이 얼마나 재미난 것인지 충분하게 이야기 하지 못했다.

 

나만 읽고 싶다는 욕심을 가지게 하는 책이 있다. <말하기를 말하기>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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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10-04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득은 매혹을 이기지 못한다. 이 아침에 확 와닿는 말이네요. 아 그런데 설득보다 매혹이 훨씬 더 어렵잖아요. ㅠㅠ 미모를 닦는게 빠를까요? 말을 닦는게 빠를까요? 좋은 글에 잠시 쓸데없는 말을 던집니다. ^^

박균호 2020-10-04 11:26   좋아요 0 | URL
그냥 재미가 최고다 뭐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덜 어렵지 않나요 ? ㅎㅎ 미모를 닦는다..ㅎㅎㅎ 한 참 웃었습니다. 이미 댓글이 재미나고 매혹적입니다 !!
 

오늘 책 한 권 원고를 마감했다. 올 11월에 나올 원고에 이어 내년 상반기에 나올 원고를 마쳤다. 이제 내년 하반기에 나올 원고를 시작하면 된다. 한결 여유가 생겼다. 원고를 마쳤다는 것은 내가 읽고 싶은 책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얼마간의 시간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글을 쓰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것은 즐거움이 아니라 고역 일 때가 많다. 무심하게 5만원권을 세는 은행원의 심정이랄까. 책을 읽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는 얼마나 큰 축복인가.
주위 사람들이 종종 대단하다고 말을 해주는데 사람마다 관심사와 취미가 다르고 글쓰기는 내 흥미거리 일 뿐이다. 내가 잘 하지 못하는 것을 잘 하는 사람을 존경한다. 베스트셀러 작가도 아닌데 어쨌든 11권째 계약을 한 것은 내가 생각해도 미스테리다. 감사한 일이다.
내가 아무리 잡문을 쓰고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지만 내 글쓰기에도 창작의 고통이 아주 없지는 않다. 그렇다고 해도 글을 쓰는 시간은 골프처럼 내가 가진 고민과 짐을 잊게 해준다. 언성을 높이고 다툴 때도 있지만 편집자와 함께 나누는 일을 한다는 것 또한 즐겁다. 편집자는 골프장의 캐디와 비슷한 것 같다. 모름지기 편집자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출간이라는 외로운 여행의 유일한 동반자이며 나침반이니까.
글을 쓸 때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세 가지가 있다. 우선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이 글쓰기에도 적용된다. 일단 쓰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첫 문장만 쓰면 반은 쓴 것이나 다름없다. 써야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고 쓰겠다는 결심을 다지는 10년은 무의미하지만 첫 문장을 쓰는 5분은 황금이다.
좋은 글은 끊임 없이 줄여나가는 작업의 소산이다. 하고 싶은 말을 다 쓰고 나면 퇴고를 거듭하면서 필요 없거나 중복이 되는 말을 줄여 나가야 한다. 줄일 수록 좋은 글이 될 확률이 높다. 눈을 시뻘겋게 뜨고 내 글에서 쫓아낼 구절을 색출해야 한다.
글쓰기는 책상에 앉을 때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틈만 나면 머리 속으로 구상을 하고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글의 전개를 그려 보아야 한다. 책상에 앉아서는 주로 머리 속으로 정리된 구상을 옮겨 적는 시간이다.
글쓰기를 논할 자격은 없는 무명 글쟁이의 잡소리다. 한 달 간 압박이 심한 글쓰기에 매진했다가 해금이 되어서 홀가분한 기분에 긁적거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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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9-25 14: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능력자이십니다. 짝짝짝. 축하드립니다.

박균호 2020-09-25 14:56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0-09-26 16: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해 앞으로 남은 기간에 책을 한 권 더 출간하시는 거군요.
그리고 내년 원고까지 쓰셨다니, 놀랍습니다.
진짜 능력자이십니다. 하반기 출간될 책도 기대 많이 하겠습니다.
좋은 좋은 주말 보내세요^^

박균호 2020-09-26 16:09   좋아요 1 | URL
아이고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20-09-29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쌤. 가족과 함께 즐겁게...
그리고 달콤한 휴식이 있는 추석 연휴가 되시길 바랍니다.

박균호 2020-09-29 15:59   좋아요 0 | URL
아 은경님도 즐거운 연휴 되세요
 

증평군립도서관에서 고전에 관한 강의를 하는 날이다. 준비는 대충했다. 강의 자료라고 준비 한답시고 한 것이 A4용지 한 장 분량. 게으른 성격 탓이 큰데 이 버릇이 은근히 장점이 있다. 자료를 너무 철저하게 준비를 하면 그 자료에 매몰되어 유연성을 발휘하기 어렵다. 대충 준비하면 어차피 자료가 대충이니 상황에 맞게 대처를 잘 하게 되더라. 애드리브도 가능하고.


강의 업무 담당자 선생은 통화를 하면서 ‘군립’도서관임을 여러 번 강조하셨다. 비슷한 이름의 도서관이 있으니 헛갈리지 말라는 배려다. 비대면 온라인 강의인 줄 알고 갔는데 강사를 배려해서 소수의 몇 명의 청중이 참석하게 조치했단다. 리액션이 있으면 아무래도 강의하기 편리하니까 천군마마를 얻은 듯 했다. 수려한 외관에다 편리하고 독특한 내부 구조가 아름다운 도서관인데 행정력이 뛰어난 도서관임을 알겠다.


행정력이 뛰어난 기관은 거창한 기획으로 표시가 나는 않는다. 사소한 사항을 자세히 친절히 안내하는 것이 우수한 행정 능력의 표상이다. 증평도서관은 그런 기관이다. 관료사회가 추구해야할 이상형의 정점이랄까. 문제는 나다. 고전을 이제 겨우 읽는 처지에 강의라니 암담하다. 자신이 없는 주제임에도 선뜻 강의를 맡겠다고 수락한 것은 하도 오랫동안 공부를 하지 않으려는 학생들과 씨름하다보니 ‘제 발로’내 강의를 늦겠다고 나서는 분들의 얼굴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강의 시간이 1시간 30분인데 어떻게 메꿀지가 관건이다. 고전에 대해서 내가 뭘 안다고 강의를 한 단 말인가. 잘 할 욕심도 의욕도 없었다. 그저 시간만 때우고 가자는 심산이었다. 문제는 그것마저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응시하는 분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하품을 하게 될 운명이라고 생각하니 동정심이 샘솟았다. 뭐랄까. 30분 뒤에는 횟감으로 도마에 오를 물고기가 천연하게 수족관에서 노니는 모습을 보는 느낌이랄까. 


내 이력을 소개하고 책과 관련된 이런 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최대한 보내자는 전략을 세웠다. 담당 선생님은 서두가 너무 긴 것을 우려하는 듯 했다. 울려는 표정을 짓는데 어찌 모르겠는가. 애써 무시하기로 했다. 나도 내가 이토록 이기적인 사람인지 미처 몰랐다. 사람이 극단적인 상황에 빠지면 원래 이렇다. 나부터 살겠다는 심정으로 뚝심 있게 잡답을 계속했다. 나의 목표는 ‘이제 더 할 말이 없는데 어떻하죠?’라고 자백하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잡답을 이어가다가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공간이 없게 되자 할 수 없이 고전이야기를 시작했다.


빅토로 위고의 <레미제라블>, <파리의 노트르담>, 도스토옙스키의 <악령>그리고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을 주제로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고전이 이토록 재미나다는 것을 강의하러 갔다가 고전 강의가 이토록 재미난 것이었다는 것을 체감한 날이 되었다. 지금 발화되고 있는 이 말들이 과연 내 입에서 나온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고급 진 정보와 지식이 나오더라. 내가 이토록 박식한 사람이었나 깜짝 놀랐다. 나는 그냥 책에서 읽은 재미난 부분을 이야기 했을 뿐인데 내가 인문학자라도 된 것처럼 내 스스로가 멋짐이 폭발하더라. 물론 내 혼자만의 생각이다.


고전의 힘은 대단하다.  지금까지 내가 한 강의는 가볍고 또 가벼운 잡담 수준이었다면 오늘 내 강의는 강의라고 해 줄 만 했다. 청중은 모르겠고 나 혼자 도취되어서 시간을 아끼게 되었다.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시계를 보아도 내가 언제 마쳐야 할지 계산을 못하였다. 내가 강의를 시작한 시간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 머릿속엔 오직 재미난 고전이야기만 가득했다. 결국 준비한 자료를 반만 이야기 하고 서둘러 마쳐야했다. 무능한 강사였고 청중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시간이 부족해서 이야기 하지 못한 내용 중에 이런 것이 있다. <모비 딕>의 한 구절이다. 


“사람은 무언가에 잘못될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생기더라도 어떤 것에 깊이 들어가면 무의식중에 자기 의심을 은폐하는 경향이 있다”


 이슈마엘이 모비 딕을 추격하다가 침몰할 운명인 피쿼드호를 승선하기로 결정하기 전에 선장인 에이헤브를 보았다면 그 배를 타지 않았을 것이다. 에이헤브는 오직 모비 딕을 잡겠다는 욕망에만 감금된 사람이니 그것을 알아차린 이슈마엘이 그 배를 타지 않았을 것이고 이슈마엘에게 승선할 배를 선택하도록 위임한 절친한 친구를 잃지 않았을 것이다.


이슈마엘은 포경선을 타고 싶다는 생각에 너무 빠져서 예사롭지 않은 피쿼드호의 위험을 본능적으로 감지했지만 애써 그 의심을 무시했다. 바다에서 자신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선장을 직접 보지도 않고 승선을 결정한 것이다. 일등항해사 스타벅은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애원했지만 에이해브는 모비 딕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올라서 추격을 계속했고 결국 배가 침몰되었다.


역시 고전은 오래된 미래다. 나는 담당 선생님의 울 듯 한 표정을 보고 내가 서두가 길다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라고 ‘의심’은 했지만 어쨌든 시간을 죽여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그 의심을 은폐하고 잡답을 이어나갔던 것이다. 담당 선생님에게 정말 감사하고 미안하다. 도서관측의 코르나 예방 안전 수칙을 잘 따라주고 우왕좌왕했던 내 강의를 참을성 있게 끝까지 들어준(그분들께는 고난의 행군이었으리라) 증평군민 독자분께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위안이 되는 것은 강의가 마치자 재미있었다는 칭찬을 받았고 EBS라디오에서 스팟 취재를 했는데 내 강의 목소리를 ‘인문독서아카데미 광고’에 넣겠다고 한다. 그 분들도 재미나다는 칭찬을 하신 모양인데 이 영광은 오로지 빅토르 위고, 허먼 멜빌 선생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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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상 차림을 위해서 시장을 갔다. 마침 밥 때가 되어서 초밥을 먹기로 했다. 세 식구가 앉아서 초밥 세트를 시켰는데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딸아이는 느닷없이 다이어트를 한다고 먹지 않겠단다. 다이어트를 선언했다가 음식 앞에서는 금방 다짐이 무너지는 것을 하도 많이 보았기 때문에 막상 초밥이 식탁에 오면 숟가락을 들 줄 알았다.
먹지 않는다. 아내가 내가 온갖 감언이설로 유혹했지만 철옹성이다. 먹방 방송하는 사람처럼 맛나게 먹어도 꿈쩍하지 않는다. 조바심이 나서 몇 번이고 권했다. 딸아이가 먹지 않으니 그 맛나던 초밥이 모래알처럼 느껴진다. 집요하게 권하다가 문득 우리 어머니가 생각난다. 요양원에서 나에게 음식을 자꾸 권하시던 어머니. 작은 냉장고에 억지로 구겨둔 간식인데 내가 축낼 수 없다고 거절했었다.

어느 듯 어머니가 나에게 권하던 횟수를 훨씬 넘겨가고 있었다. 이런 마음이었구나. 그때 어머니가. 나보다 어른스러운 딸아이는 내가 아무리 권해도 짜증을 내지 않고 웃는 얼굴로 상냥하게 사양한다. 그때 나는 어머니에게 짜증을 버럭 내고 말았다. 그때 그 짜증이 오늘 딸아이 앞에서 비수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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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0-09-11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족들 이야기를 들으면 집집마다 다른데도, 가깝고 따뜻하고 재미있지만,
가끔씩은 살짝 눈물 날 것 같은 이야기도 있는 것 같아요.
박균호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2020-09-11 2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20-09-14 13: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돌고 도는 인생입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에게 자꾸 먹으라 하고
또 친정에 가면 우리 어머니가 저에게 자꾸 먹으라고 권하시고...ㅋ

박균호 2020-09-14 13:25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2020-09-14 1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14 15: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리의 노트르담 아셰트클래식 3
빅토르 위고 지음, 성귀수 옮김, 장 미셀 파예 그림 / 작가정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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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출근만 하지 않는다면 밤새 읽고 싶은 소설이다. 아주 오랜만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늦은 시간을 걱정하면서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파리의 노트르담>이 대충 어떤 내용인지 모르는 사람이 여간해서 있을까? 그런데도 교수형을 선고 받고 지하 감옥에 감금된 집시 처녀를 구하기 위해서 주교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오금을 저려가면서 읽었다. 


세상에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어린 시절에 축약본 고전을 읽는 일이다. 출판사에서도 그런 책은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린 시절 요약본 <파리의 노트르담>을 읽고 평생 저 책을 읽었다고 생각하다가 생을 마감하는 것은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원전에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는데 말이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14세기에 완공되었는데 <파리의 노트르담>의 무대이기도 하지만 나폴레옹 황제의 대관식이 열린 곳으로도 유명하다. 2019년 화재가 발생해서 13세기부터 있던 목조 지붕과 19세기에 축조된 중앙 청탑이 유실된 비극을 겪었지만 파리 전체를 통틀어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모여드는 관광 명소다. 


프랑스 혁명전에는 기득권층의 상징과 같은 건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혁명이 발생하자마자 성난 민중들에 의해서 여러 조각이 훼손되는 시련을 겪었다. 위고가 <파리의 노트르담>을 집필 할 당시 노트르담 성당은 과거의 명예를 뒤로 하고 낡고 훼손되어 방치되어 있었다. 심지어 철거하자는 여론도 등장했다. 


위고는 <파리의 노트르담>을 통해서 노트르담 성당이 얼마나 아름답고 중요한 유산인지를 상당한 분량을 할애해서 강조하였다.  위고의 눈물겨운 노력 덕택에 여론은 반전되었다. 10년 뒤에 성당 복원 공사가 시작되었고 1864년에 마무리되었다. 노트르담 성당을 재건하기 위해서 <파리의 노트르담>을 집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오늘 날 우리가 감상하는 노트르담 성당이 모습은 그 상당수가 빅토르 위고 덕분이다. 소설 제목 자체가 성당이름인데 달리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사랑이야기에 웬 건물 이야기를 왜 주저리 주저리 적어놨어?라고 불평하지 마시라. 빅토르 위고에게는 이런 속사정이 있었다. 영화는 원작 소설을 온전히 담을 수 있는 매체가 아니라는 것은 이 소설을 통해서 명확해진다. 빅토르 위고가 심혈을 다해서 쓴 파리의 건축물 이야기는 영화로 담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닌데 정작 위고가 생각한 소설의 정수는 건축이야기다. 


그러면서도 독자를 급격한 긴장감으로 몰아가는 서사 능력을 생각하면 빅토르 위고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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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09-09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약본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 동감!그렇죠.영화는 감독의 시선이고 책은 저자의 사유와시선이죠

박균호 2020-09-09 10:21   좋아요 0 | URL
네 그럼요...

막시무스 2020-09-09 1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뮤지컬로만 봤는데 읽어보고 싶어지네요!ㅎ 레미제라블은 책도 뮤지컬도 정말 위대했는데!

박균호 2020-09-09 11:22   좋아요 0 | URL
네 네 일독을 권합니다

moonnight 2020-09-09 20: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미제라블>에 하수도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은 덕분에 지금도 연구자료로 잘 이용되고 있다고 작가님께서 쓰셨지요. 이번엔 건축이로군요. ^^ <파리의 노트르담>은 아직 못 읽었네요. 저도 읽고 싶어요♡

박균호 2020-09-09 20:21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그냥 역사학자라고 봐야 할 듯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