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빈 추천도서] 아직도 가야 할 길
M.스캇 펙 지음, 신승철 외 옮김 / 열음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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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난 여름으로 가는 문턱 어느 날 나는 기차 안에 있었다. 통로를 사이에 두고 맞은 편의 앞에 앉은 여자가 이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았는데 인상이 너무도 강렬해서 집에 돌아와 이 책을 주문하기에 이르렀다. 책 사이사이에 많은 포스트잇을 붙여두고 하이테크펜으로 글귀를 적는 것인지 혹은 자신의 느낌을 적는 것인지 열심히 무언가를 적는 모습이 참 좋아보였다. 그런 식으로 책을 읽을 수 있는 기쁨을 맛보기란 쉽지 않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한 2주에 걸쳐 읽은 것 같다. 두툼한 분량에 비해 생각 외로 술술 읽혔는데 좀더 음미하면서 읽으려고 일부러 하루에 조금씩만 읽었다. 책은 크게 훈련, 사랑, 종교, 은총의 네 부분으로 나뉜다. 이 책에서 말하는 바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우리 모두는 자신의 영적 성장, 진화를 목표로 노력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영적성장을 위한 방법은 다름 아닌 ‘사랑’이다. 개인적으로 훈련 부분을 가장 열광하며 읽었고, 사랑 부분에서는 다른 책에서도 많이 본 내용들이었고 마지막으로 종교와 은총은 기독교인이 아니라 크게 공감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이 책에 의하면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이 자신의 영적 성장을 위해 노력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성장을 위한 노력은 수많은 고통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변화와 모험을 거부한채 늘 자신의 울타리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그 순간에는 편하게 삶을 영위할 것 같아보이지만 정신적으로 건강한 것이 아니다. 이 책에서 인용되는 수많은 임상사례를 통해 어느덧 나와 비슷한 경우를 발견하고 그것이 나의 성장과정 특히 부모와의 관계속에서 발생된 문제임을 발견하고 놀라곤 했다.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 책의 전반을 통해 느끼는 바이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똑같은 역경이 주어질 때 누군가는 그것을 극복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반면 누군가는 아주 극단적으로 자살로까지 이르게 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을 은총에서 찾을 수도 있겠지만 결론적으로 저자 자신도 아직 답을 구하지 못했다고 한다. 영적으로 성장하여 더 나은 사람이 되면 현실의 삶을 고수하는 것보다 더 큰 삶의 기쁨을 얻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안주의 달콤함은 나를 끊임없이 게으르도록 유혹한다. 사랑의 반대는 악이 아니라 게으름이라는 저자의 생각이 재밌다. 주옥 같은 구절이 너무나 많아 나 역시 포스트잇을 책에 많이 붙여놓았다. 하지만 다음의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당신이 사랑할 수 있고 부지런하다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 아우구스티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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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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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삼미슈퍼스타즈이후로 박민규의 소설은 나오는 족족 다 읽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박민규의 세상을 보는 방식은 그의 초기이후로 여전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삼미를 읽었을 때는 정말 진한 감동이 몰려왔었다. 그런 류의 소설을 어떤 작가에게서도 보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을 때는 그때만큼의 감동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재밌고, 믿을 만한 작가라고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나름대로 결론지었다.  

 못생긴 여자(못생긴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는 게 핵심이다.)와의 사랑은 숭고한가? 예쁜 여자와의 사랑보다 더 깊은 사랑인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미모가 최대의 무기가 된 자본주의사회에서 이 책의 주인공처럼 박색인 여자는 살기 힘든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우선, 이 소설속의 박색의 여인이 얼마나 박색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도.대.체. 얼마나 못생겼기에 이렇게 찌질할 수 있는가를 초반에 느끼며 잠깐의 울화통을 참아야 했다. 그런 캐릭터가 현실성이 있는가를 생각한다면 아직도 의문이다. 설령 그렇게 괴물같은 (못생긴이 아니라 이 소설속의 주인공정도 라면 괴물은 되어야 할 터이다.) 여자가 있다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자기 비하감에 살아가는 건 미모지상주의인 이 사회의 탓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디까지나 그건 본인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 있어서 박민규의 인물설정에는 그다지 공감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못생긴 여자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에는 공감을 할 수 밖에 없다. 친한 친구 중에 걸핏하면 말끝에 누군가를 향해 "못생긴 게.. "라고 말하는 친구가 있다. 이 말 뒤엔 아무런 대꾸를 허용치 않는다. 그만큼 못생겼다는 건 그 사람의 어떤 약점보다도 강력한 헛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이에 대해 어느 정도는 수긍하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누군가의 외모를 비하하는 것, 남자 잘만나 인생을 바꿔야 한다고 부르짓는 여자, 학벌 컴플렉스를 갖고 있는 사람 등은 본인이 못났기 때문에 그에 대한 열등감으로 오히려 더 그렇게 행동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런 일들의 원인은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고 남을 부러워하는데 있다는 것이 박민규의 생각이다. 한마디로 당당할 수 있는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그릴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사분의 삼 분량부터 소설은 급속도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그 둘은 만났는가? 어라, 갑작스런 사고는 무엇인가.. 게다가 예상치 못한 두가지 결말까지.. 역시 재밌다!  

 다만 거슬렸던 부분은 말 사이사이에 ... 점 세개를 찍어대는 것, 인터넷 글쓰기라면 모를까 책에서 이런 것을 보면 나는 화가 난다. 흑. 어쨌건 주변에서 뭐 재밌는 소설을 추천해달라면 이 책을 추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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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1 06: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01 17: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 잔의 차
그레그 모텐슨.데이비드 올리비에 렐린 지음, 권영주 옮김 / 이레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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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읽고 있는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에 보면 대개의 사람들이 자신의 가족들에 대해서 책임감을 가지며 사랑을 나누고 살아가는데 반해 어떤 사람들은 그 사랑의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가지고 있어 이를 분출하며 살아가기도 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마더 테레사 수녀나 이 책의 주인공은 그레그 모텐슨 사람이 아마도 그런 사람일 듯하다. 평균 수명 팔십 정도에 이르는 인간이 자신의 생애동안 이 세상을 얼마나 바꾸어놓을 수 있을까.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것 같은 절망 속에서도 모텐슨은 희망을 잃지 않고 히말라야, 파키스탄, 아프카니스탄의 오지에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세우는 일을 한다. 젊은 날 K2 등정에 실패하지만 우연히 그곳의 아이들이 건물 아닌 바깥에서 공부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인생의 행로를 결정한다. 모텐슨이 그러한 인생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병원과 학교를 세우는 일을 하였던 부모님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내가 만약 그런 광경을 보았더라도 일시적으로 불쌍하다고는 생각할지언정 인생을 바꿀 결심을 못했을 것 같다.  


 학교를 세우는데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600여통의 편지를 보내는 고생부터 시작하여 오십살에 이르기까지의 온갖 고생은 말로 할 수 없다. 지금은 다행히 CAI라는 재단을 마련해 넉넉한 자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재정적인 부분보다 더 큰 장애는 전통사회에 외부인으로서 융화될 수 있는가 라는 과제였다. 그 사회의 언어를 배우려고 노력했고, 가끔은 이슬람교도 행세까지 하는 진땀 흘리는 광경이 그려지는 듯하다. 가장 맘졸였던 일화는 탈레반에게 억류되었던 며칠 동안의 일이었다. 그때가 9.11사태이전이라 다행히 풀려날 수 있었는데 읽으면서 어찌나 땀이 나던지.. 아내 타라의 걱정이야 말로 해 무엇하리.   


 9.11사태 이후 탈레반에 대한 미국의 감정이 고조되던 시기, 미국사회에 모든 이슬람교도가 미국의 적은 아니라는 모텐슨의 호소는 감동적이다. 무력대응에 무력으로 나서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통한 점진적인 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모텐슨은 지적한다. 읽고 난 후 가슴이 참 따뜻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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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베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7
서머셋 모옴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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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처음으로, 말하자면.. 세계문학전집류의 소설 중 가장 처음 읽은 소설이 <달과 6펜스>였다. 그때가 중1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중고등학교 시절 중 중1때의 기억들이 강렬하게 남아있다. <제인에어>,<테스>,<개선문>,<죄와 벌>과 같은 소설을 읽었는데 그 의미는 당연하게도 제대로 알아내지 못했다. 다 커서 고전소설들을 읽고 있는데 읽으면서 이래서 고전이구나!를 외치게 된다. 이 소설 역시 그랬다.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주인공 키티의 감정에 금방 몰입하게 된다.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키티의 삶과 대조되는 삶은 월터를 따라간 중국에서 콜레라환자들을 돌보는 수녀들의 삶이었다. 살면서 목숨을 거는 대상은 사람마다 다르다. 키티처럼 누군가는 사랑에 목숨을 건다. 세상을 유배지로 생각하며 희생과 고통의 삶을 통해 진정한 평화와 자유의 기쁨을 누리는 수녀들과 같은 사람들도 있다. 키티의 인생을 통해 내가 목숨을 걸고 있는 대상은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불륜의 사랑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보다는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강렬한 느낌으로의 끌림과 마음의 고통을 이 소설을 통해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기분이다.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이 어느 순간 멋대가리 없는 돼지로 보일수도 있음을 확인하면서 키득거리게 된다. 오히려 키티는 힘든 사랑의 격류를 지나오면서 진정한 자유애의 의지, 동정심과 인간애를 배우는 삶으로 자신을 성장시킨다.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에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가 믿을 수 있는 몇안되는 진리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소설의 말미에서 키티는 자신이 임신한 딸이 태어나게 된다면 자신과는 다른 인생을 살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는 희망을 품는다. 숱한 여성들이 자식들을 자신의 삶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기를 희망하지만 사실 자식들의 삶 역시 그들 부모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새로 태어나는 생명에게 자신의 인생노하우를 그대로 전수해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본인이 겪고 느끼지 않는 한 그러한 조언들은 무용지물이 될 때가 많은 법... 이것이 인생의 신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소설의 제목처럼 인생의 수많은 결 속에서 어떤 점을 느끼고 중요하고 가치로운 것으로 받아들일지는 각자의 몫이다. 이 한편의 소설을 통해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다양한 감정들, 그리고 그로인한 한 인간의 성장을 지켜본다는 것이 가슴벅차다.

“도(道). 우리들 중 누구는 아편에서 그 ‘길’을 찾기도 하고 누구는 신에게서 찾고, 누구는 위스키에서, 누구는 사랑에서 그걸 찾죠. 모두 같은 길이면서도 아무 곳으로도 통하지 않아요.” p.235

과거는 끝났다. 죽은 자는 죽은 채로 묻어 두자. 너무 무정한 걸까? 그녀는 온 마음을 다해 자신이 동정심과 인간애를 배웠기를 바랐다. 어떤 미래가 그녀의 몫으로 준비되었는지 모르지만 어떤 것이 닥쳐오든 밝고 낙천적인 기백으로 그것을 받아들일 힘이 자신의 내부에 자리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러자 갑자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무의식의 심연으로부터 그들이 떠났던 여정이 추억처럼 떠올랐다. p.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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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 책 때문에 인생을 망쳐 버린 사람들과는 달리, 그는 책을 철저하게 건강한 방식으로 소화해서 평온하면서도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즉시 그를 혐오하게 되었다. 나의 모든 세계를 바꾸어 놓고, 내 운명을 뒤흔들어 버린 책이 어떻게 이 사람에게는 비타민제처럼 작용할 수 있었을까? p.267

가족의 영향으로 그 역시 어린 시절에는 신앙을 가졌었고, 금요일마다 사원에도 가고 라마단 기간에는 금식도 했다. 그러다가 한 여자를 사랑하면서 믿음을 잃었고, 그 뒤에는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이 모든 폭풍이 흔적만 남기고 지나가 버린 후, 그는 영혼에 빈 공간을 느꼈다. 그러나 한 친구의 책장에서 가져온 이 책을 읽자 모든 것이 ‘제자리’를 잡았다. 그는 이제 죽음이 우리의 인생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는 죽음을 정원에 없어서는 안 될 나무, 거리의 친구처럼 받아들였고, 거부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또 그는 어린 시절의 중요성도 알게 되었다. 과거에 스쳐 갔던 사소한 것들. 가령 풍선껌이나 만화책 같은 것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법도 배웠다. 첫사랑이나 그가 읽었던 첫 번째 책도 모두 그의 인생 안에서 자리를 잡았다. 황량한 그의 나라도, 그 거리를 달리던 난폭하고 슬픈 버스들도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었다. p.267

“모든 것의 원천에, ‘근원’에, 원류에 도달하고 싶은 거지, 그렇지?”라고 물었다.
“순수한 것에, 변하지 않는 것에, 진실한 것에 이르고 싶은 거지? 그렇지만 그런 근원이나 시작은 없어. 우리 모두가 모방하고 있는 어떤 진실, 어떤 열쇠, 어떤 말, 어떤 기원을 찾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야.” p.303

"어렸을 때, 독서는 내게, 모든 다른 직업과 마찬가지로, 언젠가는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직업의 하나로 느껴지곤 했어.“
“악보를 베끼는 일을 했던 루소도, 다른 사람들이 창작한 것을 거듭하여 쓰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았어.” p.303

나는 책을 아주 많이 읽었다. 단지 내 온 인생을 바꾸어 버린 책뿐만이 아니라 다른 책들도. 그러나 책을 읽을 때, 나는 상처 입은 내 인생에 깊은 어떠한 의미를 주려고도, 위안을 찾으려고도 절대 시도하지 않았다. 체홉에게, 폐렴에 시달리는 그 재능 있고 겸손한 러시아인에게 사랑과 경탄 이외에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그러나 헛되이 지나 버린 상처받고 슬픈 인생을 체홉주의라는 감성으로 미화시키고, 인생의 빈곤함에 대해 으스대면서 아름다움과 숭고한 감정을 느끼는 독자들에게 안타까움을 느낀다. (p.321)

나는 르프크 아저씨가 그랬던 것처럼, 누구에게도 내가 읽었던 책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책들이 내게 대화를 하고 싶게 자극을 불러 일으켰지만, 나는 이를 주로 머릿속에서 책들끼리 하도록 내버려두었다. 때로, 계속해서 여러 권을 읽으면 그 책들끼리 속삭이는 게 들렸고, 이렇게 해서 내 머릿속이, 모든 구석에서 각각의 다른 악기가 소리를 내는 오케스트라 연주장으로 바뀌어 버린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내 머릿속의 이 음악 때문에 내가 인생을 견디며 산다고 인식했다.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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