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좋은 사람
줌파 라히리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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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중요하다. 루마야. 경제적인 안정도 주지만 정신적인 안정도 있다. 내 평생, 열여섯 살 때 부터 난 쭉 일을 해왔다."-50쪽

그는 다시 가족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 복잡함과 불화, 서로에게 가하는 요구, 그 에너지 속에 있고 싶지 않았다. 딸 인생의 주변에서, 그 애 결혼 생활의 그늘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아이들이 커가면서 잡동사니로 가득 찰 커다란 집에서 사는 것도 싫었다. 인생은 어느 시점까지 규모가 불어난다. 그는 이제 그 시점을 넘겼다. -68쪽

자신의 떨리는 품에 안겨 있던 연약한, 생존을 위해 아버지를 필요로 하던, 부모밖에 모르던 존재였다. 하지만 결국 부모는 아이들에게 있으나 마나 한 존재가 되었고, 때로는 관계가 끊어질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루마도 결국 그런 식으로 자식들을 잃어갈 터였다. 아이들은 점점 남처럼 멀어지고 제 엄마를 피할 것이다. 하지만 루마는 그의 딸이었고 평생 그래 온 것처럼 그런 사실에서, 결혼 생활이라는 건 어쩔 수 없이 나빠진다는 사실에서 딸을 보호하고 싶었다. -69쪽

인생의 짝을 찾는다고 그렇게 헤매고서, 그 사람과 아이까지 낳고서, 아밋이 메건을 그리워한 것처럼 매일 밤 그 사람을 그리워하면서도, 그렇게 절실하게 혼자 있길 원한다는 건 끔찍하지 않은가. 아무리 짧은 시간이고, 그조차 점점 줄어든다 해도 사람을 제정신으로 지켜주는 건 결국 혼자 있는 시간이라는 사실이. -140쪽

그는 오랫동안 혼자 살았지만 때가 되니 기꺼이 삶을 오픈할 줄도 알았다. -1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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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 장영희가 남긴 문학의 향기
장영희 지음, 장지원 그림 / 샘터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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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영희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난뒤에 그녀의 여러 책들에서 일부의 글들을 모아서 낸 책이다. 마치 선생님이 살아계신듯한 글들을 읽으며 아마 살아계셨으면 이 책의 모양이 마음에 드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읽었을 글들이건만 또 이렇게 새 책으로 대하니, 아니면 나의 마음결이 세월이 흘러 달라져서인지 글들은 내게 새로운 의미들을 건낸다. 그 중 '자선의 참의미'라는 글의 일부를 옮겨본다. 이 인용이야말로 장영희 선생님의 글이 다양한 소재로 반짝반짝 빛날 수 있는 힘인것 같다.  

 영작문을 가르칠 때 내가 자주 인용하는 미국의 유명한 수필가인 E.B.화이트는 "인류나 인간에 대해 쓰지 말고 한 사람에 대해 쓰는 것"이 글을 잘 쓰는 비결이라고 했다. 즉 거창하고 추상적인 이론이나 일반론보다 각 개인이 삶에서 겪는 드라마나 애환에 대해 쓸 때만이 독자들의 공감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p.78) 

 책의 뒤에 박완서씨가 그녀에게 부치는 편지는 인상적이다. 건강하고 당당하고 아름다운 그녀를 만들어 낸 것은 영미문학속의 좋은 시와 문장이었다는 걸 깨닫는다면서 좋은 시는 아름다운 구도자에게나 그 진정한 속살을 드러내지 아무에게나 보여주는 게 아니로구나,하는 걸 느꼈다는 말이었다. 사진으로 추억하는 장영희선생님의 사진을 보며 깜짝놀랐다. 늘 책 안쪽표지에나 있는 사진만 보아서 인지 그녀의 젊었을 적 모습은 처음보았는데 선생님, 이렇게 미녀셨다니!! 몇번이나 다시 보았다. 이제 더이상 선생님의 새 글은 볼 수 없지만 그녀가 소개하는 무수한 문학의 세계가 내 눈앞에 펼쳐져 있다는 것이 그나마 위로라면 위로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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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의 몸값 1 오늘의 일본문학 8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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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좋아하는 오쿠다 히데오의 이 책! 아, 너무 재밌어서, 혹은 너무 분해서 마음이 진정이 되질 않는다. 오쿠다 히데오의 책들 중에 <남쪽으로 튀어>를 재밌게 읽은 사람이라면 이 책도 분명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제목만 보고는 올림픽의 몸값이라니, 선수를 인질로? 이런 생각을 했더랬다. ㅋㅋ 아, 내용은 생각보다 좀 무겁지만 저자 특유의 통통 튀게 서술하는 능력으로 여러가지 생각을 하도록 했다.  

주인공 구니오는 가난한 집안에서 공부를 잘해 도쿄대에 들어간 한마디로 개천에서 용난 경우의 인물이다. 도쿄대 대학원생이라는 배경은 가만히만 있어도 상류층의 평온한 삶을 보장한다. 그런데 이런 인물이 막노동판에서 일하다 약물중독으로 숨진 형의 죽음을 겪게 되고 인생의 방향을 틀게 된다. 프롤레타리아는 왜 혁명을 일으키지 않는가. 형의 죽음을 뒤좇게 되면서 그는 스스로에게 수없이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리고 자본만 내세우고 민중의 삶에는 관심도 없는 정부에 맞서고자 올림픽 개최를 불발시키겠다는 작전을 세운다. 인생의 방향이 한번 틀어지면서 경험하게되는 것들.. 그의 길을 그대로 걸어갔더라면 결코 경험하지 못했을 것들을 겪는 과정에서 구니오는 성장하게 된다. 필로폰에 중독되어 가는 과정은 안타까웠지만 그것이 구니오라는 한 개인의 몰락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의 대의가 끝내 이루어지길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은근히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결론! 두둥...   이런 식으로 끝나리라곤 예상치 못해 조금 분하다. 하지만 저자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었을 것 같기도 하다. 소설의 어딘가에서 나오는 말. 혁명은 프롤레타리아가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브루주아지의 이질분자가 일으킨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구니오가 계획했던 혁명은 끝내 불발되어 오늘날의 일본을 만들어놓았다. 이 소설을 통해 성공이라는 미명하에 희생되었을 무수한 죽음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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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 서영은 산티아고 순례기
서영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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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에 관련된 책을 여러권 읽었고 이 책은 다른 책들과 비교해볼 때 조금 다르다. 다른 책들이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가 되었다면 이 책은 저자 자신과 동행인 치타(물론 닉네임)와의 갈등이 주를 이룬다. 물론 그 갈등 속에서 종교적 영성을 얻고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는 측면에서는 그녀가 그렇게 불렀던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었까하는 생각을 한다. 절대적 가치를 찾아 떠난 길에서 하나님의 부르심도 받고 제2의 인생을 찾게 되었다니 한편으로 나도 한번 떠나볼까,하는 마음이 들게도 한다. 노란 화살표는 마치 인생의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표가 되어 그녀에게 나타났다.   

치타라는 동행과의 마찰은 여행 내내 끊이지 않는다. 글에 서술되어있는 방식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대부분은 겉으로 다투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치타보다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속으로 중얼거리는 형태로 쓰여있는데 나중에 이 책을 대할 치타(?)의 마음이 어떨지 짐작이 되지 않는다. 그녀의 느낌을 이런식으로 책에 기술하는 건 글쓰는 사람의 일종의 권력이라고 까지 생각된다. 그녀는 혼자 떠났어야 했다. 이러한 태도에 내가 읽는 내내 불편했던 것은 어쩌면 상당부분 저자의 성격이나 행동이 내 것과 많이 닮아있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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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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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언 매큐언의 작품 중 두번째로 읽는 얇은 소설이다. 소설은 그냥 그렇게 시작되는 듯 했다. 엄청 재밌지도 그만 읽게 만들지도 않는 평이한 수준.. 하지만 작가는 <속죄>에서 그랬던 사건의 구석구석에 말하고자 하는 바를 숨겨놓는 듯했다. 클라이브가 산속에서 우연히 목격한 장면은 <속죄>에서 우연히 한 장면을 목격하는 관찰자의 기분을 떠올리게도 했다. 기품있게 죽을 권리가 무엇이길래.. 버넌, 클라이브는 그런 약속을 했던 걸까. 모든 사람에게 죽음은 한번뿐이다. 고로 그것이 무엇인지 알수 없다. 다만 누군가의 죽음을 가지고 그것이 어떨지 상상해보는 것일뿐. 다행이라면 서로가 서로의 죽을 시점을 비슷하게 파악했다는 것. 나는 이런 부탁을 내 가장 친한 친구에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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