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여행법 - 소설을 사랑하기에 그곳으로 떠나다
함정임 글.사진 / 예담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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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전에 함정임의 유럽묘지예술기행서(?)라는 에세이를 읽었던 게 생각나서 집어 들었다. 소설을 사랑하는 소설가... 따지고 보면 나는 요즘 인문과학서도 잘 읽지 않고(정확하게는 못 읽겠고) 결국엔 소설을 많이 읽고 있다. 한때 사랑했던 소설가 폴 오스터의 소설이후로 전작을 다 읽을 정도로 사랑하는 소설가는 없지만, 이 책을 읽고 르 클레지오의 재발견이랄까.. 그래서 <허기의 간주곡>과 다시 추억속으로 들어가고픈 마음에 폴 오스터의 <뉴욕3부작>을 주문했다. 아마도 <뉴욕3부작>인지 <빵 굽는 타자기>는 누군가에게 줘 버린 것으로 기억된다. 책 곳곳에 르 클레지오의 아름다운 문장에 대한 예찬이 나오는데 전에 <조서>를 읽으려다가 말았던 게 기억이 난다. 여행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여행을 가도 누군가와 함께 가기 때문에 여행을 가서 책을 읽은 기억은 별로 없다. 책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무겁기도 하고 해서 요즘 생각하는 것은 전자책이 그런 면에서 좋은 점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다. 그러고보니 아프리카에 관한 책을 읽은 것이 없다. 알고 지내는 남아공 처자와 아프리카에 대해서 논해 보고 싶으나 아는 소설가도 없고, 짧은 영어로 인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 책에서 나오는 장소중에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브룩클린! 내가 좋아하는 후드티에도 브룩클린이라 쓰여있지.. 말하자면 부산이나 서울 같은 지명이 옷에 써있는 셈인데, 나는 브룩클린이라는 발음이 웬지 모르게 좋다. 물론 폴 오스터 때문이기도 하고. 그래서 우끼지만 그 후드티를 겨울마다 꺼내 입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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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無等)을 보며 

 

                                             서  정  주


가난이야 한낱 남루(襤褸)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靑山)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에 없다.
목숨이 가다 가다 농울쳐 휘어드는
오후의 때가 오거든
내외(內外)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애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놓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靑苔)라도 자욱히 끼일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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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순례의 길과도 같아서 그 길을 통해 자기가 완성되어야 한다는 이기적인 속성이 있다. 아니 그 속성만 있다. 그 속성으로 구원받고자 함이 사랑이라면, 사랑한다는 말은 대단한 말이 아니라 구원받겠다는 말이다.

 

 

한 사람은 내가 메고 다니는 배낭의 브랜드를 힐끗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와, 너, 콜롬비아에서 왔구나." 나는 한국에서 왔고 이건 단지 가방 브랜드일 뿐이라고 했다. 안 그래도 '요즘 왜 이렇게 콜롬비아에서 온 여행자들이 많지?'싶었다면서 그는 알려줘서 고맙다고 했다.

(중략)

그런 사람들을 만날 적마다 이상하게 속이 시원히 뚫리는 기분을 느꼈다. 한 점 티 없는 것은 찬물처럼 가슴을 씻어내준다. 진짜로 많은 것을 몰랐던 오래전의 나로 돌아가는 마음이 되면서 심장까지 맑아지고 순해졌다. 조금 안다고 뭐 그리 대수겠는가.

많이 아는 체하는 날들은 고개 숙이지 못하게 한다. 고개를 숙이지 못하면 남보다 먼지를 더 들이마시게 되고 그 먼지는 씻겨나가지 못하고 몸안에서 굳어지고 딱딱해져서 생각과 함께 돌이 된다. 조금은 바보 같기로 한다. 눈을 감고 잠시만이라도 모르기로 한다.

 

 

- 우리는 시작에 머물러 있을 뿐. 충분히 먹은 것도 마신 것도 사랑한 것도, 아직 충분히 살아본 것도 아닌 상태였다.

나의 퇴락은 어쩔 수 없겠으나 세상에 대한 갈증과, 사람에 대한 사랑과, 보는 것에 대한 허기와, 느끼는 것에 대한 가난으로 늘 내 자신을 볶아칠 것만 같습니다. 이 오만을 허락해주십시오.

 

 

 

 

밑줄긋기를 하려다가..

다 읽고 나서야 이 책에는 쪽수가 안 적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바람이 부는 11월이 좋다. 쓸쓸해서 좋다. 덤으로 주어진 달 같아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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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간이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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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에는 눈에 띄는 세명의 아이들이 등장한다. 총각 사키치가 돌봐주는 조스케, 얼렁뚱땅 관리인 헤이시로가 양자로 삼으려고 하는 꽃미남 유미노스케, 그리고 마사고로의 짱구...  특히 측량이 취미(?)인 유미노스케는 열세살의 나이지만 사건을 해결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다. 하지만 똑똑한데 비해 몸은 아직 어린지 밤에는 이불에 실례를 하기도 하는 오줌싸개다. 마흔이 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자 조카인 유미노스케를 양자로 삼으려고 하는데 아이들에게 관심없는 헤이시로도 금새 아이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짱구는 정말 대단하다. 생김새는 짱구같은 모양인데 기억력이 굉장히 뛰어나 마사고로를 위해 모든 일을 줄줄이 기억한다. 한번 토해내면 경을 읽듯 리듬을 붙여 줄줄줄 읉어내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 머릿속에 사건들을 입력할때는 눈알을 도로록 굴리며 기억하는 모습이 재밌다.

 나가야의 세입자들이 자꾸 떠나자 상실에 빠진 사키치에게 조스케가 위안이 된다. 아이를 돌본다는 것, 그건 책임을 지는 일이다. 책임은 때로 누군가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게 한다.

이 소설은 얼간이 헤이시로가 주인공이지만 어른들의 캐릭터 못지않게 아이들의 활약이 눈에 띈다. 정녕 미래의 희망은 순수한 아이들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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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암살자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0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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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버지는, 글쎄, 하늘만이 그 가능성의 한계가 되겠지. 부자, 가난뱅이, 거지, 성자, 수십 개의 국가, 수십 개의 취소된 지도, 수백 개의 파괴된 마을들. 네 마음대로 고르렴. 그로부터 네가 물려받은 유산은 무한한 추론의 영역이다. 너는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스스로를 재창조할 수 있단다. (2권, p.387)

 

처음과 끝이 이어지는 고리같은 이 이야기를 무어라 말해야 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나의 아버지가 누구인가는 명백하다. 소설속에서 아버지를 찾아, 다시 말하자면 자신의 탄생의 근원을 찾아가는 일은 아이리스, 로라의 두 자매의 인생사를 넘어 자식 에이미에게로 손녀 사브리나의 인생까지로 나아간다. 우리가 우리의 가정배경을 삭제한다면 나는 무한한 추론의 영역속에 있게 될까. 아니면 근본이 없기 때문에 더욱 흔들리게 될까.

소설은 세가지 이야기로 나뉜다. 책속의 책속의 책. 삼중구조가 서로 얽혀 끝으로 갈수록 한군데로 모아지며 비밀을 밝혀나간다. 아이리스는 소설의 말미에 말한다. 우리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거나, 우리가 하는 행동이 가져올 결과를 미리 알 수 있다면 파멸할 것이라고, 말이다. 소설의 결과를 알고 다시 읽는다면 로라의 행동과 말이 아마도 다시 읽혀질 것이다. 이 책은 아주 더디 읽혔다. 감정묘사를 많이 해서 이기도 하고. 하지만 언제나 운명에 맞서는 자매들의 이야기는 재밌다. 이 소설을 읽고서는 나는 트위터에서 마거릿 애트우드를 팔로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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