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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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는 법이죠. 세월이 흐르면 다 잘 풀릴 겁니다.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에요."

 이 말을 하고 나자 갑자기 그것이 정말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순간적으로 자기 말에 담긴 진실을 느낀 그는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자신을 무겁게 짓누르던 절망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그동안 자신의 절망이 그토록 무거웠다는 것조차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마음이 들뜨다 못해 현기증이 날 것만 같고, 금방이라도 웃음이 터질 것 같은 기분으로 그는 다시 말했다.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 p.264


여기 사람들이 실패라고 규정짓는 한 남자의 인생이 있다. '실패'라고 거창하게 말하기에도 너무 평범한 어느 누군가의 인생. 대학을 졸업하고 책과 공부가 좋아 교수가 된다. 잘 맞지 않는 여자와 살지만 이혼은 하지 않는다. 불륜이라 일컬어지는 순간의 사랑으로 잠시 살아나기도 하지만 어느 덧 나이를 먹고 병에 걸려 죽고 만다. 하나 있는 딸은 불행한 가정에서 자라 역시 불행의 시작이 보이는 인생을 걷기 시작한다. 겉으로 보면 이렇게 실패한 스토너의 인생이지만 이 인생을 어느 누가 실패라고 함부로 말할 수가 있는가. 책에 대한 조용한 열정. 인생의 순간순간에 보여지는 신중하고 가치있는 선택들. 고통스러운 일상을 하루하루 견뎌내는 강인함.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어느 타인이 알 것이며, 어느 누가 내 행동에 뭐라고 하느냔 말이다. 문장이 아름다워 영문판을 사서 비교하며 다시 읽고 있다. 오랜만에 마음에 쏙 드는 소설을 만나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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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작은 책이 어떤 책인지 궁금했는데 이탈리아어 사전이었다. 외국어를 배우면서 느끼게 되는 애증의 심리를 그려놓았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를 너무나도 정복하고 싶은 그 욕망을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 숨어있었던 영어 공부 본능(?)이 읽는 내내 살아났고, 그걸 넘어서 스페인어를 한번 배워볼까하는 긍정적인 욕망까지 불끈불끈...

언어란 무엇일까. 우리는 어찌보면 우리의 모국어안에서 사고하고 행동한다. 가장 편안하고 아주 미묘한 뉘앙스까지도 알아챌 수 있다. 하지만 외국을 여행하다 보면 그 나라 말을 몰라서 좋았던 점도 많았다. 온전히 풍경에만 집중할 수 있다던지 하는...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는 뜻이겠지? 생각만 해도 두근두근하다. 역시나 줌파 라히리 답게 훌륭한 에세이였다.

 

 

 

무쿠라는 떠돌이개를 집안에 들여와 죽을 때까지 키우면서 겪게 되는 일화를 그린 만화이다.

개에 대한 얘기들도 재밌지만 무엇보다 그림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고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과정이 짠하다. 이십대 중반에 무작정 도쿄로 상경해서 여러가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자리를 잡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마치 나의 젊은 시절을 보는 것 같았다. 몇 번 울컥하기도... 불안하고 불투명한 미래를 헤쳐나가는 젊은이의 모습에 이래서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말이 있는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꿈대로 직업도 갖게 되었고 여러 권의 책도 냈으니 저자는 참 행복하겠구나.

 

 

 

 

계속 해서 툴툴대는 할머니지만 왠지 속이 다 시원하다. 거침이 없는 노년의 모습을 재밌어 하며 읽는데 알고보니 저자는 암에 걸렸고 몇년전에 돌아가셨다는 것도 책날개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나약해지는 것이 인간인데.. 내 삶을 당당하게 이끌어줄 무언가가 내게도 있다면 죽을 때까지 이렇게 거침없이 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무언가를 찾고 싶어 고민인 요즘이다.

에이구.. 정말 사는 게 뭐라고!

 

 

 

 

 

 

 

이 소설을 읽노라니 얼마전 겪은 메르스가 생각난다. 전염병에 대처하는 당국의 태도가 그 당시의 우리와 많이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또 그것에 대응하는 개인의 태도들을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인생개선 도서목록이라니...

수년간 독서를 해왔지만 그래서 인생이 개선되었을까?

독서를 하여 어떤 효과가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므로, 독서를 해서 나에게 남은 것은 읽은 책의 목록뿐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 목록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특히 고전들) 뿌듯하다.

몇년동안 읽어야지, 하면서 시작하기가 엄두가 안났던 책들의 목록을 저자처럼 수시로 작성하곤 있지만 실행에 옮기기란 어럽다. 언제나 말랑말랑하게 읽히는 신간들이 유혹하고 있기 때문이다. ㅋ

마음을 다잡고 적게 읽더라도 꼭 읽어야할 것들을 읽는 해를 언젠가 정해서 실행에 옮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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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없이 걸었다 - 뮌스터 걸어본다 5
허수경 지음 / 난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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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과 지하에 마련된 작은 식당에서 이미 식어버린 채소 수프 한 그릇에 빵 한 조각을 먹고 나와서는 불이 켜진 도서관으로 다시 돌아가는 이들의 뒷모습에서 나는 책 읽기가 노동인 인간의 슬픔 같은 것을 느낀다. 읽기와 쓰기를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작은 항의 같은 것도 들어있겠다 싶다. 빠른 시간 내에 최대의 결과를 얻어내야만 하는 시대정신에 맞추어 살아가지 못하는 인간의 우울도 분명 드리워져 있을 것이다. 빨리빨리 해치우지 못하는 일이 진득한 책 읽기이다. 한두 장에 지나지 않는 글을 일주일 이상이나 붙잡고 있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어쩌랴. 저 별 같은 이름 모를 수많은 책들이 누군가 와서 읽어주기를 기다리는 도서관. 내가 발굴하지 않으면 도서관이라는 무덤 속에서 사라질 책들. 그리고 책 읽기가 끝나도 다시 열을 지어 기다리고 있는 책들. 책 노동자들이 자주 우울한 건 그들의 노동으로도 책 읽기는 영원히 끝나지 않으리라는 예감에서 나올지도 모른다. p.204

아호수를 바라보며, 이 시를 읽으며, 내 일생에 있었던 불가능한 사랑을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거의 죽을 것처럼 차오르던 열정과 실망 뒤의 아픔으로 얼마나 오랜 세월을 살았는지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사랑의 순간에, 또한 사랑이 떠나가고 난 뒤에 저절로 솟아오르던 시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 사랑이 나를 떠난 것이 아니라 사랑의 마음이 내 속으로 들어와 거대한 물 흐름을 만든다는 것도 생각했다. 그러니 떠난 사랑들이여, 당신들이 남기고 간 물은 인공 호수가 되어 언제나 변함없이 내 마음에 머물고 있음을 아시라. 어떤 사랑도, 비참하게 배반된 사랑마저도 사랑이었으므로 그 사랑의 마음이 물처럼 흐르던 동안 우리는 얼마나 아름다웠고 삶은 살 만했는가. 물은 흐르고 사랑은 그 밑에 고여 흐르지 않는다.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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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야간비행 - 정혜윤 여행산문집
정혜윤 지음 / 북노마드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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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줄지 모른다.

I know not what tomorrow will bring.

-페르난두 페소아

 

이상하게 나는 경어체(~ㅂ니다)로 쓰이거나 편지 형식으로 쓰여있는 책을 싫어한다. 몰입이 안된다고나 할까. 게다가 이 책은 시작부터 미스 양서류라는 들어본 적도 없는 표현까지 나와... 아예 기대가 없었다. 서두에 이상하면 그냥 읽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형식이 불편함에도 어느덧 이 책에게 스르르 마음을 열고 있는 나를 보았다. 필리핀 보홀의 사람들 이야기 때문에 그랬을까. 가난하지만 순수한 사람들의 마음이 전해져와 마음을 조금씩 이 책에게 주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페르난두 페소아와 리스본 이야기가 나오니 어쩔 수가 있겠는가. 한번 유럽여행을 하게 되니 두번은 더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 유럽으로 스페인을 생각하면서 그림 한장 없는 이 책을 더듬더듬 읽어가며 소리없는 감동을 느낀다.

저자처럼 리스본에 가게 된다면 <최후통첩>을 고할 것들의 목록을 써 가서 그 장소에서 읽어보리라 다짐해본다. 아주 작게 중얼거리게 될지라도. 내일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줄지는 알 수 없다. 특히 여행지에서의 경험은 더욱 그렇다.

당시에 제 마음은 어두웠지만 내가 사는 세상도 어두웠지만 저는 빛과 함께했다고 느낍니다. p.275

이 부분을 읽다가 왈칵 눈물이 나올 뻔했다. 힘들었던 시기에 어렵게 떠난 여행이라면 그 시간이 인생 전체에서 보았을 때 작은 빛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해 본 자만이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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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을 보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

그래서, 책은 별로 못 읽었다;;

쓸쓸한 이 분의 감성이 나는 참 좋다.

따뜻하고 포근한 글 보다 외로움이 묻어지는 글에서 찾아오는 따뜻함이 나는 더 진하게 느껴진다.

제목도 참 좋구나.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돌아보게 되는 글들.

 

무구한 눈빛은 사람을 사로잡는다. 그 눈빛과 마주하는 순간 살고 싶어서 일순간 발바닥에 힘이 들어가기도 한다. 그 눈빛이 내가 잃은 지 오래된 것이기도 하고 그 눈빛으로 내가 씻겨지는 기분마저 들기도 해서 마치 좋은 바람 앞에 서 있는 것만 같은 것이다.

커피를 맛있게 내리는 사람은 커피콩을 갈고 뜨거운 물로 커피를 내리는 동안 그 옆을 떠나지 않는다. 좋은 눈빛으로 주시하고 집중한다. 그런 사람이 내주는 커피는 이미 마시기도 전에 맛있다는 생각을 머릿속 가득 채워준다. 어떻게 보면 그 좋은 눈빛이 커피에 닿아서일 거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음식도 그렇고 일도 그렇고, 좋은 눈빛을 가진 사람은 잘되게 되어 있다. 잘하겠다는 그 마음이 눈빛으로 옮겨가면서 마침내 좋을 수밖에 없는 결과에 힘이 실리는 것이다. 눈빛은 그 사람을 가장 절묘하게 드러내주는 설명서이자 안내서 같다.

-인생에 겉돌지 않겠다는 다짐은 눈빛을 살아 있게 한다

 

저번에도 그랬던 것 같은데 이 책은 쪽수가 없다.

좋은 눈빛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책을 살 때는 거의 어떤 이유가 있는데, 이 책을 언급한 어떤 책은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 우연히 일기장을 들추어 보다가 발견 ^^;;; 근데 다시 찾아보니 또 못 찾겠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실제로 유형생활을 했을 때의 경험을 살려 쓴 것이라 한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발목에 쇠고랑 같은 것을 차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과 목욕탕에서 씻는 장면이다. 마치 지옥을 연상시켰던 장면. 그리고 체형이라는 벌을 받는데 한번에 다 맞을 수가 없어서 나누어 맞는다는 이야기. 상상도 할 수 없는 감옥생활을 읽노라니 그 지옥같은 곳에서도 삶은 계속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오랫만에 김형경의 책을 읽는다. 한때는 심리학에 관심도 많고 나를 넘어서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 때문에 이런 책을 열심히 읽기도 했다. 자기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할 수 있을 때 더 큰 나가 되는 것 같다. 어디선가 읽었는데 그 나의 이야기를 한 사람에게만 할 수 있어도 정신적으로 건강한 것이라 한다. 나는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인가?

 

'박해감'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젊은 직장여성들이 상사가 나만 미워하는 것 같다는 말을 많이 한다고 한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을 자주 하곤 하는데.. 그런 감정이 드는 것은 어렸을 때의 분노를 부모가 잘 받아주거나 조절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론은 우리들의 상사님들은 나를 미워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으며 중년인 그들의 삶의 무게를 버텨내느라 너무 힘드시기 때문에 그럴 여유조차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 이외에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관심이 없다! 기억해두자.

독서모임을 통해 성장, 치유(너무 식상한 말들이지만)를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책이다.

 

노석미의 글을 읽고 싶어 검색하다가 발견한 책이다.

'너머학교'라는 출판사에서 시리즈로 나온 것 같은데 다른 책들은 청소년용인 것 같은 느낌. 그런데 이 책은 어른들이 읽기에도 괜찮다. 특히 전공은 아니지만 그림이나 예술분야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읽는다면 흥미로울 것 같다.

우리는 밥만 먹고는 못 살아서,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미술관에도 관다. 내가 의미 두는 것들에 대해 아마추어이지만 조금씩 만들어보고 끄적대는 것. 그런 것들이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 같다.

 

 

 

 

 

책 제목이 쓸데없이 긴 것 같지만, 내용은 참 좋다.

헤세가 사랑을 가득담아 쓴 책에 대한 기사문들.

이렇게 애정을 담아 서평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책에서 다음에 읽을 책을 여러 권 건졌다.

 

 

 

 

 

 

 

 

 

 

감성이 뚝뚝 묻어나는 도시에 대한 사랑을 담은 아름다운 글을 찬찬히 읽는다.

이방인이 되어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고 싶을 때 이 글들을 읽는다면 참 좋겠다.

 

 

사람은 그저 몇 가지 익숙한 생각들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법. 두 세 가지의 생각들을 가지고, 이리저리 떠돌며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면서 그 생각들을 반들반들해지도록 닦아 지니거나 변모시킨다. 이것이 바로 나의 생각이라고 제대로 내놓고 말할 수 있는 자기 나름의 생각을 갖는 데는 10년이 걸린다. 이렇게 볼 때 사실 다소 절망적인 느낌이 들 만도 하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게 함으로써 세계의 아름다운 얼굴과 어떤 식으로 낯이 익어지게 된다.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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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25 00: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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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25 12: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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