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초부터 갑자기 겨울이 온 것 같더니 다시 날씨가 조금 풀린 듯하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의 더위는 그새 기억도 나지 않으니 인간이란 참... 추운 겨울이 될꺼라는데 그래도 마음만은 따뜻했으면 좋겠다.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몇 권의 좋은 책들을 만났다.

 

이 책을 평일에 새벽 세시까지 읽다가 엉엉 울고 출근했더니 엄청나게 피곤했다. 결말이 슬플 것이라는 것을 예상했는데도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계속 울면서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진실한 마음으로 죽음을 용기있게 대면할 수 있을까.

폴의 말처럼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반드시 죽게 된다. 그것이 언제가 될지 모른다. 그 죽음의 시기를 안다면 우리는 하루하루 더 값지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냥 모르는채로 하루하루 해피하게 사는 것이 더 좋을까. 죽음이란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 죽음의 반대가 삶이라면, 그 한번 뿐인 삶을 어떻게 살아야할지에 대해서도 더 진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루시와 나는 고통을 피하는 것만이 삶은 아니라고 느꼈다.

몇 년 전, 나는 다윈과 니체가 한 가지 사실에 동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물을 규정짓는 특징은 생존을 향한 분투라는 것이다. 삶을 이와 다르게 설명하는 건 줄무늬 없는 호랑이를 그리는 거나 마찬가지다. 수년을 죽음과 함께 보낸 후 나는 편안한 죽음이 반드시 최고의 죽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p.174

 

 

수박 겉핥기라도 한번 가 본 도시는 어쩐지 친근함이 생긴다. 그 짧은 며칠은 하루하루가 아주 깊이있기 때문에 일상의 10배쯤 되는 농도로 기억속에 남아있다. 김이듬은 파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파리라는 도시를 사랑하게 만드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 책을 읽다보면 어렴풋이 알게 되는 것 같다. 파리에 유학간 한국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재밌었다. 파리 노숙인들의 인터뷰도 재밌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터뷰를 한 장소가 자세히 나와있는데, 여행정보 책에는 잘 나와있지 않은 숨은 명소를 발견한 양 흐뭇해한다. 다시 가보고 싶구나.

나는 에두아르에게 " 참 잘 생겼다"고 말했다. 몇 살인가도 물어봤다. 그러지 말걸. 내가 만난 파리 사람들은 나에게 예쁘다거나 잘생겼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단지 옷이 잘 어울린다거나 기분이 좋아 보인다든가 그렇게 표현했다. 그들은 자신의 잣대로 미추를 구분하여 직접적으로 말하는게 일종의 성추행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걸까?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면서 예쁘시네요. 참 미인이십니다. 피부가 고우세요. 외모 가지고 그러지 말기. p.85

 

 

 

연애부터 결혼, 일상에 이르기 까지의 감정변화를 철학적으로 제 삼자의 시선에서 서술한다. 이 책을 읽는 독자가 이 과정의 어느 지점에 있든 맞아맞아 하며 재밌게 읽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보통의 글은 역시... 그런데 이런 일련의 과정에 좀 심드렁해진 나이라 아주 재밌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제목만으로 많은 이들이 읽을 것이라 예상된다.

 

 

 

 

 

 

 

 

윔피키드는 아주 유명한 모양인데 내가 이 책을 영문판으로 세트로 사놓고 읽고 있다. 이제 4권... 아주 어렸을 때 꼬마 니꼴라가 그렇게 재밌더니, 또 해리포터가 그렇게 재밌더니, 이제 윔피키드가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의 일상이 이렇게 재밌다. 나름 머리를 굴리지만 소심하기도 하고, 가족들의 일상이 어처구니 없이 그려지기도 한다.

이런 어린 시절이라면 다시 한번 돌아가보고 싶다.

 

 

 

 

나오코 씨는 정말 마라톤을 꾸준히 하나보다. 해외의 생경한 풍경을 달리는 기분은 어떨까. 마무리는 거의 포상맥주로 이어진다. ㅋㅋ

자주 출간되는 나오코 씨의 만화책은 꼭꼭 챙겨본다.

일어를 몰라서.. 먼저 볼 수 없는 안타까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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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할 권리 - 품위 있는 삶을 위한 인문학 선언
정여울 지음 / 민음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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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부를 오랫동안 했다. 그 공부로 무엇을 얻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그야말로 그냥 했다. 하나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공부가 자의적인 공부였다는 것. 지금도 공부를 하고 있는가? 학교에 적을 두고 있지는 않지만 오랫동안 책을 읽고 있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만났다. 공부하는 내가 좋아지는 책 말이다. 정여울씨의 책은 앞서 몇 권 읽었는데 다소 감성적인 문장이 맘에 들때도 있고 맘에 들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너무나 좋구나.

이 책을 통해 인문학적 지식을 얻었는가, 이런 것 보다 공부를 하는 이유, 공부를 하는 자신을 좋아하는 마음이 읽혀서 가슴이 찡하면서도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품위를 잃지 않으며 살아가기 위해 공부를 한다는 저자의 말에 조금더 깨어나서 체계적으로(?) 공부를 해야겠다는 다짐이 들었다. 이 어수선하고 험난한 세상에 나의 주관을 잃지 않고 내 뜻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공부를 해야겠다. 무엇보다 다양한 책들을 소개하고 있어서 포스트잇 엄청나게 붙여가며 책을 읽었다. 또 다른 책의 세계로의 안내, 그 책을 만나는 순간 내 삶도 조금 더 깊어지길.

 

여러분은 가장 끊어 내기 힘든 열망이 무엇인가요. 제 경우는 자기애입니다.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다른 사람의 아픔을 발견하지 못할 때가 여전히 많습니다. 삶을 돌이켜 보면 자기애의 굴레를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을 때 진정한 자유가 찾아오곤 했습니다. 때로는 권력이나 재물에 대한 욕구보다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지요. p.189

 

 

나는 누구에게 강요받으려고

태어나지 않았다.

나는 내 방식대로 살아가리라.

누가 가장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

참다운 인간은 집단이

강요하는 대로 살지 않는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시민 불복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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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1 15: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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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1 2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을에 더 좋은 책들이 발견되는 건 왜 일까?

그렇다고 발견되는 책들이 가을에 막 출간된 것들은 아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하나 둘 내 곁으로 오는 책들.. 두어권 아주 좋은 책들을 발견하고.. 세달 남겨둔 10월의 초입에..  2016년에도 좋은 독서를 했구나하고 안심을 하게 된다.

 

  <스톤 다이어리>와 <몸의 일기>를 읽었다. 우연히 연달아 읽고 보니 여자와 남자의 일대기를 그렸다는 점에서 매우 비슷한 듯 보인다. 시대적 배경도 1900년대이니 정말 비슷하다.

<스톤 다이어리>에서 주인공 데이지는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듯한 인생을 살게 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데이지의 탄생에서부터 어떤 인생을 살다가 죽음에 까지 이르는지 알 수 있게 된다. <몸의 일기>와 다른 점이라면 데이지를 둘러싼 인물들에 의해 데이지의 삶을 옅보게 된다는 것. 내 인생이 내 가족을 비롯하여 주변인들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겠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서문에서 저자가 말하듯 우리가 자신의 삶을 알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대답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의 삶 가운데 실제로 기록되는 것이 어느 정도이며, 이 정확한 기록이란 것이 사실상 없기 때문에 꾸며내거나 상상되거나, 기억되거나 지워진 것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 그래서 나의 삶은 내 것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삶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그 인생들의 중첩을 이 소설을 통해 알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비슷한 소설 <스토너>도 떠올리게 된다. 데이지의 남편 바커 플렛이 스토너랑 비슷한 캐릭터인 것 같다. 작년 이즈음에 읽었었는데 참 좋았다.

 

 

그러한 반면 <몸의 일기>의 주인공 처럼 자신의 몸을 철저히 기록한 사람도 있다. 우리가 흔히 일기를 쓸 때는 내면일기를 쓰게 마련인데 이 사람은 외면일기를 썼다. 그래서 하다못해 주인공의 직업조차도 대충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노화의 과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데 우리가 자신의 몸 만큼 끝까지 적응안되고 두려워하는 것도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나이드는 과정. 그 과정을 내 자신과 비교해보며 조그만 위로를 받기도 한다. 우리가 몸 그 물질이 아니면 무엇이랴.. 재밌고도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게 된다.

 

 

 

 

  49세 20일    1972년 10월 30일 월요일

 

 우리의 병이라는 게,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데도 자기 혼자서만 알고 있다고 착하는 '웃기는 얘기들' 같다. 이명에 관해 얘기하면 할수록(이 병을 앓고 있다는 걸 감추기 위해 이 말의 뜻도 모르는 시늉까지 해가며),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된다. 예를 들어 어제 에티엔도 그랬다. 네가 먼저 물어봐줘서 고맙다, 실은 나도 그 증상이 있는데 깜빡했네! 그에 따르면 이명은 아주 적응이 잘 되는 병이라고 한다. 아니, 더불어 사는 거라고 봐야지, 그가 말을 고쳤다. 그래도 어쨌든 고요함은 포기하는 수밖에 없어. 에티엔도 나와 마찬가지로 처음엔 엄청난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 그러면서 나와 똑같은 비유를 했다. 꼭 내 몸이 켜진 라디오에 연결돼 있는 것 같더라고. 스피커 신세로 살아가야 한다는 게 정말 달갑진 않더군   <몸의 일기> p.281

 

 

 

난다 출판사에서 나온 여행 시리즈물을 거의 다 읽어서 김이듬 시인의 <모든 국적의 친구>를 찾아 읽으려다가 이 책 먼저 읽게 되었다. 슬로베니아라... 거의 정보가 없는 나라인데 이 책을 보니 정말 살고 싶은 편안한 마음이 드는 그런 나라인 것 같다. 뒷부분에 시인이 되었을 때 (등단하였을 때)의 감정을 표현한 부분에서 가슴이 저릿했다. 내게는 등단이 재생이나 부활처럼 느껴졌다. 피폐하고 부정적인 자아가 죽고 새사람이 되어 다시 태어난 것 같았다. p.270

사람은 살면서 어떤 계기에 의해 새사람이 되기도 한다. 간절히 원했던 것을 이루었을 때 어떤 기분이 들까...

 

 

 

 

 

 

 

 

 

 

 

 

 

 

 

 

 

 

 

 

 

 

 

 

 

 

 

 

윤필이라는 만화가를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 분의 만화를 특히 <흰둥이>를 꼭 보시기를....

밤에 본다면 펑펑 울 수도 있겠다.

세상의 어두운 곳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흰둥이처럼 번쩍!하고 힘내는 날들이 오기

를 ..

 

참 오랫만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읽었다. 문화재청장으로 재직하고 언론에도 자꾸 나오는 것이 내심 못마땅하여 외면하고 있었던 것 같다. (도대체 내가 왜?)

그러다가 읽어보니.. 문화재청장 재직 시절의 에피소드도 간간히 나오고... 재미있긴 하다. (살짝 그 부분이 과도한것도 같지만)

여전히 우리 국토를 사랑하시는 마음 만큼은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 사람이구나,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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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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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키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젊다는 것이다. 어느덧 그의 나이가 60대 중반을 지나가고 있지만 글의 어느 구석에서도 늙은이의 자세를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서 언제나 그의 글은 하루키의 글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오롯이 서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그런 하루키에게 직업이라는 글쓰기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글을 어떻게 쓰는지에 대해서 상세히 나와있다. 글을 쓰려는 사람에게는 물론, 그냥 하루키라면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준다.

 

어떤 일을 몇십년 동안 꾸준히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하루키는 소설을 꾸준히 쓰기 위해 달리기도 꾸준히 해왔는데, 사람들이 너무 열심히 뛰는 것이 아니냐는 말에.. 매일 같이 복닥거리는 지하철로 출근하는 사람에 비하며 뛰고 싶을 때 한 시간쯤 뛰는 것이 뭐가 힘드냐고 대답한다. 이렇게 직업으로서의 일조차도 힘들이고 하지 않는 것 같아(실제로 그가 얼마나 힘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므로) 좋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 그가 어느 누구보다도 성실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실하되 여유가 있는 사람이랄까.

 

소설가라는 직업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이렇게 자유롭게 살 수 있는 하루키가 부럽다. 나도 나의 일을 안달복달하지 않으며, 너무 애쓰지 않으며 설렁설렁 하고 싶은데 자꾸 마음을 쓰게 된다. 그렇게 마음을 쓰는 동안, 육체의 노화와 함께 마음도 늙어가는 것 같다. 만사가 재미없는 요즘, 하루키의 글에서 조금 자극을 받는다.

 

하루키와의 공통점을 찾으려고 노력해본다. '청춘의 나날을 즐길'여유 같은 건 거의 없었던 때에도 틈만나면 책을 읽었다는 것! (물론 나는 청춘의 나날에 엄청나게 여유로웠다...)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먹고사는 게 힘들어도, 책을 읽는 일은 음악을 듣는 것과 함께 나에게는 언제나 변함없는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 기쁨만은 어느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p.43

저도 그렇습니다. 하루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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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로인 것은 나의 것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홀로인 것은 나의 것.

  내 영혼에 존재하는 나라.

  나는 나의 모국에서처럼

  여권 없이 그 나라에 입국한다.

  그 나라는 나의 슬픔과 고독을 바라본다.

  그 나라는 나를 채워주고

  향기로운 돌로 나를 덮어 준다.

 

  나의 내부에는 꽃이 만발한 꽃밭이 있다.

  내 꽃들은 내가 만든 것들이다.

  거리는 모두 나와 관련이 있지만,

  그곳에는 집이 하나도 없다.

  그곳은 나의 유년시절 이후 파괴되었고

  주민들은 살 집을 찾아 공중에서 떠돌아 다닌다.

  그 글은 내 영혼 속에 산다.

 

  내가 미소를 짓는 것은 나의 태양이 빛날 때이다.

  내가 눈물을 흘리는 것은 밤에 보슬비가 오는 것과 같다.

  한때 나는 머리가 두 개였다.

  한땐 그 두 얼굴들이 사랑의 장밋빛으로 물들었고,

  장미의 향기처럼 갑자기 사라졌다.

 

  지금 나는 뒤로 물러설 때조차도 높다란 대문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다.

  그 문 뒤에는 벽에 죽 이어져 있는데

  그 곳에는 소리를 죽인 천둥과

  빛이 꺾인 번개가 잠들어 있다.

 

  홀로인 것은 나의 것.

  내 영혼에 존재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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