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어 사전
나탈리아 긴츠부르그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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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의 <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에서 알게 된 책이다.

책의 서문에서 밝히지만 이 책은 상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작가 자신의 진짜 이야기다. 물론 어린 시절부터 추억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로지 기억이란 것에 의존하지만 말이다. 가계도가 나와있고 등장인물도 모두 실명이다. 게다가 등장인물은 거의가 유명한(?) 사람이 된다. 이야기가 펼쳐지는 시대는 이탈리아 현대사에서 가장 격동의 시기인 무솔리니의 등장, 파시즘, 인종법, 반파시스트 운동, 제 2차 세계대전이라 명명할 수 있는 때이다. 등장인물이 매우 많아 나는 수첩에 정리까지 하며 읽었다.

가족어 사전은 부모의 자녀들이 결혼하면서 점점 확장된다. 무거운 현대사적 배경과 개인사적 배경들이 겹쳐져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죽음과 같은 비장한 이야기도 아무렇지 않은 듯 무덤하게 그려지는 것이 더 슬픈 듯한 느낌을 준다. 가족만이 아는 단어, 사건, 밀어들... 가족이라는 무게가 양 어깨에 한없이 내려앉지만 작가는 유머스럽게 덤덤하게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그 점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서경식 교수가 왜 이 책을 언급했는지 알겠다.

 

 우리 형제는 5남매다. 우리는 각기 다른 도시에 살고 있으며 어떤 형제는 외국에 산다. 그리고 편지 왕래도 자주 없다. 만났을 때도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신경을 쓰지도 않는다. 하지만 우리들끼리는 단 한 마디면 족하다. 단 한마디, 한 문장, 우리의 어린 시절에 수도 없이 듣고 반복했던 그 오래된 말 한마디면 우리들의 옛날 관계를 단숨에 되찾는다. 이렇게 말하기만 하면 된다. '우린 베르가모에 소풍 온 게 아니오'라든지 '황화수소산 냄새는 어떤지.' 우리의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는 떼려야 뗄 수도 없게 이런 문장, 이런 말과 연결되어 있다. 이런 문장 하나 혹은 이런 말 중의 하나는 우리 형제들이 어두운 동굴 속이나 수백만의 사람들 틈에 섞여 있어도 서로를 찾을 수 있게 해준다.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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