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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인 김승옥 - 김승옥의 문학과 예술에 바침
백문임 외 지음 / 앨피 / 2005년 11월
평점 :
김승옥을 알게 된 것이 언제였던가.열심히 공부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국어교육과 학생인데 현대문학 작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승옥의 주옥같은 작품들을 언제 읽었던가. 소설지도론을 배우면서? 아니다 문학비평 수업을 들으면서? 아니다. 아마 내가 처음 김승옥의 작품을 읽게 된 것은 4학년 들어 임용고사를 준비하면서였을 것이다.
1960년대 황무지와 같았던 한국문학계에 내려진 축복같은 존재. 감수성의 혁명. 한글세대로서 이상 이후 뛰어난 귀재의 작가라는 찬사를 받으며 혜성같이 나타난 그의 유명한 작품 '무진기행'과 '서울1964년 겨울'을 나는 임용 준비를 위해 읽었던 것이다.
뛰어난 찬사를 받은 그의 작품들을 80년생의 대학생이 2000년대에 읽으면서 어떤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그저 아아... 그렇구나. 무진의 의미가 무엇이고, 1960년대 당시의 현실이 이랬구나 정도만 느꼈다. 내게 중요한 것은 시험에 나올 법 한 것을 집어내고 외우는 것이었으니까.
어느 순간이었을까? 김승옥의 글들이 예사로 느껴지지 않았던 순간이. 그의 문장 하나하나가 가슴에 내리 꽂는 순간이 있었다.
그리고 60년대 문단의 찬사를 받으며 젊은 나이에 동인문학상까지 수상한 그가 다작하지 못한 채 사라진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무얼하고 지내는 걸까? 그는 왜 소설쓰기를 그만 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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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들아. 너희들의 이성(理性)을 과시하며 나를 조롱하지 말아다오.
벗들은 교과서의 가르침대로 한 번쯤은 내게 충고를 하고 그리고 내가 우쭐우쭐하고 있는 사이에 그들은 토라진 계집애들처럼 홱 돌아서서 어깨를 아주 나란히 하고 총총히 떠나 버린다.
너의 의견과 나의 의견이 있을 뿐―우리들이 내리는 공통된 결론.
딱한 친구를 보는 것은 내 자신을 보는 것보다 더 괴롭다. 내게 점심을 사준 어느 친구에게 답례(答禮)로 음담(淫談)을 하나 들려주었더니 내게 잘 보이려고 그 순진하기 짝이 없는 친구. 자기도 그쯤은 예사라는 듯한 태도로 기상천회의 음담을 이마에 심줄을 세워 가며 하는 그 모습. 억지로 따라 웃어 주긴 했지만 서글퍼서 나는 죽고만 싶었다.
안색(顔色)을 팔고 국화(菊花)를 사는 노인을 보았다. 저렇게 늙고 싶은데.
"당신네 같은 처녀들보다는 닳아진 창녀(娼女)를 난 더 좋아합니다."라고 말하여 한 처녀를 울려 보냈다. 왜 나는 거짓말을 했을까? 창가(娼家)는 구경도 못한 놈이.
경계하면서 사랑하는 척. 시기하며 친한 척. 기뻐하며 슬퍼해 주는 척. 저는 너그럽습니다. 라고 표시하기 위하여 웃으려는 저 입술의 비뚤어져 가는 저 선(線)이여 <모나리자>같은 선생님. 만수무강하십쇼.
"이걸 안 하면. 넌 굶어 죽어. 알겠어?"
"네."
"이걸 안 하면. 넌 동지를 배반하는 거야. 알겠어?"
"네."
"남들이 그걸 할 때 그걸 구경하고 있는 네가 아무렇지도 않은 심정으로 그들을 구경하듯이. 이번에 네가 한다고 해서 거리를 지나가는 너를 특별히 너만 바라보며 웃거나 할 사람은 없어. 알겠어?"
"네."
<데모>에 한 번 참가하는데 자신에게 몇 번 다짐해야 했던가. 알고보니 <데모크라시>가 팽개쳐 버릴 도련님이였구나.
돈이 있었으면 좋겠다. 상냥한 여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담한 방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것들만 있으면 문학도 버리겠다고 장담해 본다. 쓴다는 것도 결국은 아편(阿片). 말라만 가고 헛소리를 하게 되고. 아아.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파이프를 물고 소파에 파묻혀 앉은 독자가 되고 싶다. 물론 고뇌를 사랑하는 사람을 존경한다. 그렇지만 그들을 존경하기만 하면 그걸로써 의무감이 해방을 느끼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그럼. 돼지가 되라고요? 맞습니다. 돼지가 됐었더라면……
제게도 역시 사는 편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때가 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인생 전체를 훑어 생각할 때가 아니라. 음식을 맛나게 먹을 때나 밤거리에서 불빛이 밝은 쇼 윈도우를 구경할 때나 맘에 드는 옷을 입을 때 나와 같이 뭐 여럿 앞에서 큰 소리로 얘기하기엔 창피할 정도로 시시한 일을 하고 있을 때 말입니다.
박수 받고 싶어서 철봉대를 붙들고 다섯 바퀴 돌고, 집에 돌아와서 껍질이 벗겨져 쓰린 손바닥을 호호 불다.
치한인가보다. 나는 정말. 좀 <쌘치>한 치한인가보다.
서울 역전(驛前) 광장의 남쪽에 있는 공중변소엘 들어가다. 먼지가 앉고 때낀벽에는 희미한 연필글씨로 편지 서두(序頭)의 낙서(落書)가 있었다. ―<아버님 보옵소서>
누더기를 입고 머리가 산발한 지게 품팔이꾼이 손가락 만한 연필에 연방 침을 칠해가며 울면서 이 편지의 낙서를 하고 있는 게 상상되다. 고향에서는 예의바르게. 매일새벽. 아버님의 방문 밖에서 아침 문안을 드리던 아들. 금의환향(錦衣還鄕)을 맹세하고 상경했지만 이제는 돌아가기도 부끄럽고 편지 올리기도 괴로워서 ……아, 왜 맹세했던가. 왜 맹세했던가.
일본(日本) 어느 엉터리 시인의 단가(短歌) 하나를.
<웃기 잘하던
그 청년이 죽으면
세상도 조금은 쓸쓸해지겠지.>
오늘 새벽 나는 유서를 고쳐 썼다. <나는 착한 사람입니다>라고. 단 한가지 남은 거짓말만이라도 철저하고 싶다는 마음에서이다. 이미 죽어 버린 사람에 대해서는 그 사람을 조금이라도 미화(美化)시켜 주려는 선의가 세상엔 아직 있기 때문에 나의 이러한 유서는 어쩌면 액면(額面) 그대로 받아들여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마각(馬脚)이 드러나면 그때는. 오늘 오후에 나는 유서를 찢어 버렸다.
가엾다. 가엾다. 가엾다. 가엾다. 가엾다. 가엾다. 가엾다. 이젠 됐나. 김군?
천번만 먹을 갈아 보고 싶다. 그러면 내 가슴에도 진실만이 결정(結晶)되어 남을까? ―한 <카타르시스>신봉자의 독백.
어느 날. 고향의 어머니께 보내고 싶은 마음 간절했던 편지의 한 구절―<실은 의사(醫師)가 되고 싶었는데 병자(病者)가 되어 버렸어. 라고 힘없이 말하며 병들어 죽어 간 친구를 오늘보고 왔습니다.>
누이에게 쓰고 싶던 편지의 한 구절―<도시에 가서 침묵을 배웠던 네가. 도시에서 조리에 맞지 않는 감정의 기교만을 배운 나보다 얼마나 훌륭했던가.>
별도 보이지 않는 밤에. 고향의 논두렁이 그리워서 중량교쪽 어느 논두렁에 가서 서다. 개구리들이. 거꾸러져라 거꾸러져라 거꾸러져라 거꾸러져라. 고 내게 외쳐대다.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중 5. 일지초(日誌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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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개인주의와 군중 속에서의 고독. 그 속에서 침묵을 배웠던 누이가 감정의 기교만을 배운 자신보다 얼마나 훌륭한가.... 그 속에서 느끼는 자괴감을 김승옥은 개구리가 거꾸러져라 거꾸러져라 거꾸러져라 거꾸러져라. 고 자신에게 외쳐댄다고 표현했다.
나는 무진기행에서 당신은 무진을 떠나고 있습니다.라는 표지판을 보자 얼굴이 붉어졌다는 표현보다 이 말이 더 가슴에 와닿았다. 그리고 김승옥의 작품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김승옥의 작품은 60년대의 작품들 몇편. 그리고 그 후의 삶은 전혀 알 수 없었다. 어느 참고서에서 기독교에 헌신하고 있다는 사실만 잠깐 보았을 뿐.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르레상스인 김승옥>이라는 책을 보았다. 다른 책을 사려고 했지만 그책을 보고 선뜻 사버렸다. 김승옥을 존경하는 여러 젊은 학자들이 김승옥의 문학과 영화, 만화, 그리고 그의 인생 전반에 관해 고찰한 글들을 모은 책이었다. 김승옥의 젊은 시절의 모습이 표지에 드러난 책. 조심스럽게 그 책을 펼쳤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내가 궁금해하던 김승옥의 삶이 펼쳐졌다. 소설가로서 등단을 했지만 그 전에 파고다 영감이라는 만화를 통해서 만화가 활동도 했으며, 소설이 크게 히트를 치고 단편집도 출간이 되었지만 출판사와의 마찰로 인세를 받지 못했다는 것 그로 인해 생활고에 시달리고 좀 더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 대중들과 가까이 가기 위해 영화를 선택하게 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얼마 전에 뇌를 다쳐 이제는 말을 잘 하지 못하고, 다시 언어를 배우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김승옥의 작품들을 읽고 그의 삶을 생각해보면 이상이 떠오른다. 물론 이상과 김승옥의 삶과 문학은 판이하게 다르지만 젊은 날 뛰어난 작품을 쓰고 그 이후 짧은 생을 마감했거나 작품활동이 멈췄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의 대표적인 작품들이 생생하게 살아남아 젊은 작가들을 가슴 뛰게도 하고, 좌절하게도 만든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들의 젊음은 어떻게 그리 찬란한 글로써 남았는지... 작품들을 읽고 있으면 질투심에, 부러움에, 가슴이 두근거릴 뿐이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군중 속의 고독과 개인주의적인 삶, 그리고 그 속에서 감정의 기교만 늘어가는 우리들. 우리 자신에게 반성의 의미로, 또는 새로운 세대에 대한 희망의 메세지로서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는 그 빛을 발하고 있다.
-06.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