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의 웃음판 - 한시로 읽는 사계절의 시정
정민 지음, 김점선 그림 / 사계절 / 2005년 5월
절판


自述(자술) - 이옥봉

近來安否問如何(근래안부문여하) 근래의 안부는 어떠신지요
月到紗窓妾恨多(월도사창첩한다) 사창에 달 떠오면 하도 그리워.
若使夢魂行有跡(약사몽혼행유적) 꿈 속 넋 만약에 자취 있다면
門前石路已成沙(문전석로이성사) 문 앞 돌길 모래로 변하였으리.

-13쪽

시조 - 무명씨

사랑이 거짓말이 님 날 사랑 거짓말이
꿈에 와 뵌단 말이 그 더욱 거짓말이
날같이 잠 아니 오면 어느 꿈에 뵈리오.
-14쪽

춘일(춘일) - 서거정

金入垂楊玉謝梅(금입수양옥사매) 버들엔 금빛 돌고 옥빛은 매화 뜨니
小池春水碧於苔(소지춘수벽어태) 작은 못의 봄물은 이끼보다 푸르도다.
春愁春興誰深淺(춘수춘흥수심천) 봄 시름과 봄 흥이 어느 것이 더 깊은가
燕子不來花未開(연자불래화미개) 제비도 오지 않고 꽃도 아직 안 피었네.
-17쪽

好鳥一聲(호조일성) - 신석정

갓핀
靑梅
성근가지
일렁이는
향기에도
자칫
혈압이
오른다.

어디서
찾아든
볼이 하이얀
멧새
그 목청
진정
서럽도록
고아라.

봄 오자
산자락
흔들리는
아지랑이,
아지랑이 속에
청매에
멧새 오가듯
살고 싶어라.
-19쪽

病餘吟(병여음) (첫째 수) - 강희맹

楊柳凝煙翠幕低(양류응연취막저) 버들에 엉긴 안개 푸른 장막 깔렸는데
新荷出水葉初齊(신하출수엽초제) 새 연꽃 수면 위로 잎들이 나란하다.
滿庭綠樹重陰合(만정록수중음합) 뜰가득 푸른 나무 그늘과 하나 되자
忽有黃鸝來上啼(홀유황리래상제) 꾀꼬리 날아와 올라앉아 우누나.
-23쪽

九曜堂(구요당) (첫째 수) - 이제현

溪水潺潺石涇斜(계수잔잔석경사) 시냇물 잔잔하고 돌길이 비탈진 곳
寂廖誰似道人家(적료수사도인가) 적막하기 도인 사는 거처와 비슷해라.
庭前臥樹春無葉(정전와수춘무엽) 뜰 앞에 누운 나무 봄인데 잎은 없고
盡日山蜂咽草花(진일산봉열초화) 진종일 산벌만 풀꽃에서 잉잉대네.
-33쪽

九曜堂(구요당) (둘째 수) - 이제현

夢破虛窓月半斜(몽파허창월반사) 빈 창서 꿈을 깨니 달은 반쯤 기울었고
隔林鐘鼓認僧家(격림종고인승가) 숲 저편 쇠북 소리 절 있음을 알겠네.
無端五夜東風惡(무단오야동풍악) 뜬금없이 새벽녘 봄바람 고약하니
南澗朝來幾片花(남간조래기편화) 아침에 남쪽 시내엔 몇 점 꽃잎 져 있으리.
-34쪽

龍門春望(용문춘망) - 백광훈

日日軒窓似有期(일일헌창사유기) 약속이나 있는 듯이 날마다 들창가에
開簾時早下簾遲(개렴시조하렴지) 주렴 걷기 일러지고 내리기는 더뎌지네.
春光正在峯頭寺(춘광정재봉두사) 봄빛은 하마 벌써 산 위 절에 왔건만
花外歸僧自不知(화외귀승자불지) 꽃 밖으로 가는 스님 저 혼자만 모르누나.
-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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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이 2005-08-30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자 일일이 찾아서 쓴 시. 미친 짓일지도.... 시간나면 더 써야지.
 
시는 붉고 그림은 푸르네 2 - 알수록 흥겨운 대화체 풀이 중국 명시, 명화 100
황위펑 외 지음 / 학고재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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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연꽃 향기만 남고(一翦梅)>
- 이청조

붉은 연꽃 향기만 남고 아름다운 돗자리도 가을이라 찬데
紅藕香殘玉簟秋
조심스레 비단 치마 벗고 홀로 목련나무 배에 오른다.
輕解羅裳 獨上蘭舟
구름 너머로 누가 아름다운 편지를 가져올까
雲中誰寄錦書來
기러기 돌아갈 때 달이 서쪽 누대에 가득 차네.
雁字回時 月滿西樓
꽃은 절로 떨어지고 강물은 혼자 흘러가며
花自飄零水自流
그리움은 서로에게 슬픔이 된다.
一種相思 兩處閑愁
풀 길 없는 이 그리움은
此情無計可消除
눈살이 펴질 때쯤 다시 마음에 차 오른다.
才下眉頭 却上心頭

- 이청조가 남편 조명성과 헤어진 후 극도의 그리움과 이로 인한 슬픔을 표현한 시


-242쪽

<꽃행상에게서 봄꽃을 사다(減字木蘭花 감자목란화)>
- 이청조

꽃행상에게서 봄이 막 피어나는 꽃을 한 가지 샀네.
賣花擔上 買得一枝春欲放 (매화담상 매득일지춘욕방)
점점이 맺힌 눈물은 붉은 아침 햇살에 빛나는 새벽 이슬이구나.
漏梁輕勻 猶帶彤霞曉露㾗 (루량경균 유대동하효로량)
신랑이 내 얼굴이 꽃보다 못하다고 할까 봐
怕郎猜道 奴面不如花面好 (파랑시도 노면불여화면호)
머리에 비녀처럼 꽂고 괜스레 신랑에게 비교해보라 하네.
雲鬢斜簪 徒要敎郞比幷看 (운빈사잠 도요교랑비병간)


- 신혼부부의 아기자기한 생활의 즐거움이 넘쳐나는 애정시
-249쪽

<여름날 짓다(夏日絶句)>
- 이청조

살아서는 응당 사람 중의 호걸
生當作人傑
죽어서는 또한 귀신의 영웅이네.
死亦爲鬼雄
지금에야 그립구나
至今思項羽
강동을 건너지 않으려 했던 항우가.
不? 過江東
-2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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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이 2005-08-30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나 한자 일일이 찾으며 맘에 드는 시 옮긴 것. 아직 더 있는데...
 
가을 풀잎에서 메뚜기가 떨고 있구나 - 이야기 조선시대 회화사 2
조정육 지음 / 고래실 / 2002년 7월
품절


"지자요수(智者樂水) 인자요산(仁者樂山)"

"......어진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은 그 기상이 마치 산의 높고 중후함이나 물이 통하여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것에 부합되기 때문에 좋아할 뿐입니다. 언제 산을 좋아하고 물을 좋아한 연후에 어진 사람이 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까?"
- 관아재 조영석 -212쪽

모름지기 그림은 서릿발 같은 사대부의 기상을 표현할 수 있어야 했다. 가슴 밑바닥에 아무리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다 해도 그 피를 차갑게 식혀야 한다. 몸이 병들었다 해서 죽는 소리를 치고, 벼슬길에서 물러났다 해서 울분을 토로한다면 그것은 이미 그림이 아니었다. 내면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는 감정을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최대한 절제해서 표현하는 것. 그것이 그림이었다. 어쩌면 다른 사람의 시선 같은 것은 필요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붓을 들면서 자신이 먼저 순화되고 정리되어야 한다.
- 능호관 이인상-259쪽

"메뚜기가 가을 풀잎에서 떨고 있구나!"
5~6월에 왕성하게 활동을 하는 메뚜기는 가을이 되면 알을 낳고 죽는 곤충이다. 그런데 어느 가을 날 바위 틈에서 자란 풀잎을 보니 메뚜기 한 마리가 붙어 있었다. 그때 심사정은 가슴 한켠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여름의 싱싱한 풀 위가 아닌 찬 이슬 내리는 가을 풀 위에 힘겹게 앉아 있는 메뚜기가 왠지 자신의 모습 같았다. 풀잎에 곧 떨어져 내릴 것 같은 모습, 그것은 그림 하나로 이 험한 세상에서 떨어져 내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자신과 하등 다를 바 없었다.
- 현재 심사정-2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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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풀잎에서 메뚜기가 떨고 있구나 - 이야기 조선시대 회화사 2
조정육 지음 / 고래실 / 2002년 7월
평점 :
품절


  이야기 조선시대 회화사1권인 “꿈에 본 복숭아꽃 비바람에 떨어져”책이 무척 맘에 들어서 2권도 사서 읽었다. 1권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한달음에 읽혔다. 미술교과서에 실려서 눈에 익은 김명국의 ‘달마’, 윤두서의 ‘자화상’, 정선의 ‘금강전도’를 비롯해 좋은 그림들이 눈을 즐겁게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왜 하필 표지그림과 제목을 이렇게 했을까 좀 궁금했는데, 책을 읽고 알았다. 내 개인적인 취향에 부합하는 그림은 그 메뚜기 그림이 아닌 다른 것들이지만, 은근히 내 가슴 한구석을 시리게 만들고 뒤돌아보게 하는 건 그 ‘풀잎 위의 메뚜기’ 그림이었다. 한 평생 불우하게 살다 간 심사정의 분신인양 가을 풀잎위에서 떨고 있는 메뚜기. 험한 세상의 세파인양 가을 바람이, 이슬이 얼마나 찼을까? 메뚜기 한 마리에 자신을 대입시켜 나타낸 심사정의 필력이 놀랍다.

  그리고 새삼 느끼는 거지만, 화가들의 삶과 정신세계를 참 정성스럽게 재구성해서 이야기로 풀었다. 그들에게 애정이 없다면, 수박겉핥기 식으로 밖에 모른다면 절대 이런 글이 나올 수 없을 듯 하다.

  벌써 3권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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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본 복숭아꽃 비바람에 떨어져 - 이야기 조선시대 회화사 1
조정육 지음 / 고래실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아마 7월 중순 정도였을 것이다. 간만에 도서관에 들러 책을 고르는데 이 책이 눈에 띄었다. 동양화쪽은 영 까막눈인지라 읽고 싶은 마음과 함께 제대로 읽을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그랬는데...... 별로 한가하지 않은 날이었는데도, 틈틈히 읽은 것이 어느새 하루 일과가 끝나기도 전에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

 조선의 이름난 화가들의 삶과 작품세계가 나같은 까막눈에게도 쏙쏙 들어오게 참 쉽게 잘 썼다. 그 전엔 동양화를 봐도 그 가치를 제대로 몰랐고, 서양화에 길들여진 내 눈에 '이게 그렇게 대단한 작품인가?'라는 생각도 했었다. 동양사람인 내가 서양화보다 동양화에 거리감을 더 느끼다니.... 생각해 보니 좀 씁쓸하기도 하다.

 맨 처음 '안견'의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조속'이야기까지 한달음에 읽고 난 후, 그 중에서도 내내 탄은 이정의 '대나무 그림'이 떠올랐다. 바람을 맞고 있는 '풍죽'그림이........ 탄은이 풍죽을 그릴 때와 지금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 별로 달라지지 않아서일까? 모사품이라도 하나 구해서 걸어두고 싶을 정도로 내 마음을 끄는 그림이다.

  요전에 정민 선생님이 쓴 ‘꽃들의 웃음판’으로 한시의 아름다움에 눈을 떴었는데, 이번엔 이 책으로 인해 우리 옛그림에 눈을 뜨게 되었다. 정말 고맙고도 귀한, 소중히 간직할 책이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책이 탐나서 결국 사고 말았다. 좋은 책은 역시 내 서가에 꽂혀 있어야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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