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취미 발레를 잠깐 배운 적이 있다. 거의 나와 비슷한 또래의 발레를 전공한 사람들이 가지는 그 특유의 우아한 아름다운 모습으로 취미 발레 교습임에도 열정을 가지고 가르쳤던 그녀들이 기억에 남는다. 목이 길고 선이 가녀리고 움직임 하나 하나에서 특별한 매력이 뿜어져 나왔다. 지친 나는 어울리지 않게 발레를 배우는 여자가 되어 피로와 스트레스로 뭉친 근육은 덤으로 풀고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의 세계의 그 매혹적인 경계에 잠깐이나마 발을 딛게 되었었다. 석달 천하로 끝나버린 그 기억이 떠올랐다.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통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주인공이 발레리나는 아니고 학창 시절 발레를 배운 경험으로 무용원에서 성인과 유치원생을 대상으로 하는 발레 교습을 잠깐 맡게 되면서 떠오른 유년과 청소년기 시절의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특히나 주인공 예정이 무용원에 단체로 온 유치원생들이 발레복을 갈아입고 용변을 보는 일 등을 도와주며 그 아이들과 비슷했던 나이에 낯선 남자로부터 당했던 성추행의 아픈 기억을 이야기하는 장면은 읽기가 힘겨웠다. 아이들은 지극히 무력하다. 쉽게 자기보다 힘도 세고 상황을 악용하기 쉬운 성인들로부터 학대나 성추행을 당할 상황에 놓인다. 문제는 그러한 비극적 상황이 발생했을 때조차도 주변의 어른들의 조력은 지극히 한정적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특히나 그것이 가족이나 지인들로부터 일어난 경우의 일일 때 그것을 은폐하고 축소하고 부정하려는 움직임에 아이들은 재차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기는 상처를 받게 된다. 많은 평범한 겉으로는 지극히 상식적인 어른들이 정작 그러한 사건이 일어나면 그것을 외면하고 싶어했다. 비겁해진다. 그러면 아이는 그러한 기억을 가진 자기 자신조차 부정하고 믿지 못하게 된다.

 

진실은 대부분 편하지도 편리하지도 조용하지도 않다. 뼈아프고 시끄럽고 불편한 경우가 많다. 어떤 관성으로 밀고 나가고 싶어질 때 마치 과속방지턱처럼 '타닥' 걸리는 소리에 주춤하게 되기도 한다. 그냥 전속력으로 달리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 속에서 자란 예정은 치유받는 감동적인 대목을 보여주지 않는다. 발레 교습을 받았지만 연결된 발레 동작을 구사하지 못하는 예정이 그랑주떼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는 이야기는 해피엔딩이 아니다. 여전히 많은 것들이 그녀 안에는 부정되고 억압되고 은폐된 채로 있다.

 

미완인 것처럼 느껴지는 결말이지만 진지한 질문을 어렵지 않게 하는 이야기가 혹시 나도 그러한 방관자적 어른이 되어 가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 보게 했다. 상처 받은 아이는 상처 주는 어른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아이를 구해 주는 지켜 주는 어른이 되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장일 것이다. 그 성장의 길목에서 방황하는 예정의 이야기의 여운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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