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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 ㅣ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평점 :
여주인공 계나보다 몇 살은 어렸을 때였다. 서울 집에서 신도시로 출퇴근하는 길은 사실 일반적인 사람들의 출퇴근 경로와 반대여서 곧잘 자리가 나곤 했다. 잘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씻고 지하철 빈 자리에 앉으면 젖은 솜뭉치럼 졸다 목적지 방송에 용케 뛰어 나가곤 했다. 매일이 똑같이 고단하고 때로 고통스러웠다. '생각'이란 걸 할 때는 자학하게 되었고 일요일 오후만 되면 마음에 먹구름이 밀려왔다. 행복하지 않은 생각들은 그것의 원인보다 그것으로 향하는 출퇴근 길에 더 또렷해졌다. 지하철이 들어오기 전에 때로 '사는 것은 지옥 같구나.' 라고 느끼고 그러한 생각에 멈칫 안전선 뒤로 물러난 일도 있었다.
오랜만에 그러한 시간들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였다. 이십 대 후반의 계나는 가난한 집의 장녀다. 그러한 배경 속 그녀가 흔히 연상되듯 가족 모두를 부양하거나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고전적인 유형은 아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유명한 금융 회사에 취업도 했으니 흔히 말하는 '삼포 세대'도 아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떠올리는 전형적인 청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그녀에게는 직장이 있고 예의바르고 건실한 중산층 출신의 남자 친구도 있다. 하지만 그녀가 출퇴근 지옥철에 시달리며 느끼는 단상들과 직장 회식에서 부딪히는 일들에 대한 감상은 이미 다 나눠 먹어버려 더 이상 나눌 부분도 없는 사라져 버린 파이에 오늘의 젊은 아이들의 가지는 전반적인 비애감을 뿌리부터 공유하고 있다. 계나가 다른 것은 어떤 명쾌함이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주하는 이곳에서 그녀는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 장면에서 이야기는 시작되고 끝난다.
왜 한국을 떠났느냐.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지.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p.10
그녀의 결행은 대단한 명분이나 체제 저항적인 것이 아님을 유념해야 한다. 그 지점을 포착하지 못하면 이야기는 오히려 지나치게 가볍게 어그러진다. 호주로 떠나 그녀가 겪는 일련의 실패, 오해들도 거시적인 차원에서 비판하거나 그녀의 결단 자체를 방해하지는 못한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이야기다. 작가는 이 개인주의에 천착한다. 집단주의나 체제에 대한 거창한 해석이나 비판 지점에 대한 집착은 그것 자체가 폭력으로 다가올 만큼 작가 장강명이 그려내는 이야기는 그것의 허위에 염증을 느끼는 듯하다. 젊음이라는 대물 렌즈 밑에 들어오는 것들은 어쩌면 가장 진솔한 속살들이다. 결국 누구나 그럴듯한 명분 아래에 각자가 가장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누리고 싶어하는 것임을 부정하지 않는 데에는 어렵지는 않지만 커다란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래야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견디는 것들이 정당화된다. 때로 한국이 싫은 것은 국가라는 울타리가 든든한 방책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추구하는 그 소소한 행복들마저 자본주의의 견고한 서열 아래 가능한 것으로 전락시킬 때다. 이 서열은 내가 추구하고 싶어하는 것들마저 구속한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나뉘는 지점에는 분명 돈으로 추구 가능한 쾌락과 안정이 있다. 계나도 이러한 것들 앞에서 경쟁력 없는 자신을 조소한다. 그러니까 그녀가 다수가 추구하는 것들 자체를 상큼하게 외면할 수 있었다거나 사회가 주입한 그 지리멸렬한 가치들에 무감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녀가 떠난 것은 일종의 도피이기도 하다. 그러나 적어도 그녀는 그녀의 친구들처럼 계속 주저앉아 불평하고 불행해하지만은 않는다. 계나는 외부의 시선을 거두어 내면으로 향한다. 자신을 읽.는.다.
잘 읽힌다,는 것은 분명 문자 텍스트가 외면 받는 이 시대의 작가로서 무시못할 장점이다. 잘 읽히는 것이 어떤 심오함과 상충되는 지점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깊이가 밀려나갔다고 해서 산만하지는 않다. 시종일관 경쾌한 리듬으로 우리가 순응하고 불평하며 견디는 사회 체제 바깥으로 뛰어 나가 시원한 서사를 구축하는 젊은 여자의 이야기는 왠지 여기에서 언젠가는 꼭 들었어야 할 이야기인듯 반갑다. 그 날 그렇게 지옥철 아닌 지옥철을 기다리며 무서운 상상을 했던 내가 걸어나간 자리에서 불혹을 맞았다고 해서 내가 그 체제에서 탈출한 것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다른 형태의 또다른 불평 거리를 주워섬기며 여기를 배회한다. 그러한 관성에 이러한 이야기는 날카롭게 아프다. 더 나아갔어야 한다고 생산적이고 체제적인 대안을 모색했어야 한다는 그 꼰대스러운 조언을 남발하기에 이 이야기는 너무 현실적이다. 사는 건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니까. 당연히 들었어야 하고 당연히 결행했어야 할 일들이 신선하게 들리는 이 사회의 그 이미 결정되어 버리는 모든 것들에 일침을 가하는 가장 자기다운 방법을 작가는 잘 실행했다. 이 이야기는 왠지 자랄 것 같다. 조금 더 깊어지고 넓어지고 유연해지길 바라 본다. 그것은 나 또한 그래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