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마 행려 세계문학의 숲 46
잭 케루악 지음, 김목인 옮김 / 시공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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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히치하이크로 미대륙을 횡단하는 <길 위에서>의 잭 케루악은 언뜻 불교의 윤회 사상에 대한 이야기를 비추었었다. 약과 여자, 방랑, 재즈에 취해 있던 젊은이의 목소리로는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그의 일면이 여기에서는 전면에 부각된다. 여기에서도 작가인 그와의 경계가 거의 희미한 작가 레이 스미스, 그의 불교 수행의 동반자이자 가이드의 역할을 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시인 제피 라이더가 등장하여 마치 <길 위에서>의 불교 수행 버전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더 농축되어 있고 군데 군데 시인 앨런 긴즈버그가 얘기했듯이 하이쿠 같은 간명한 아름다운 문장들이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잭 케루악은 누구나의 마음 속에 잠자고 있는 젊은 시절의 방황, 우정, 꿈을 소환해 내어 손을 맞잡게 한다. 참으로 영묘한 지점이다. 분명 누구나 대학을 그만두고 대륙을 히치하이크로 여행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처음 보는 사람과 인생 이야기를 나누고 산정에서 산불 감시원으로 일할 수 있는 것도 아님에도 그의 여정은 무언가 낯설지 않은 것들을 환기한다.

 

 

하지만 제피, 너와 나, 우리는 영원히 알고 있지. 오, 언제나 젊고, 언제나 눈물겨운 무언가를.

-p.347

 

 

지나간 것들은 특히 잃어버린 것들은 얼마간 눈물겨운 것이 사실이겠지만 사실 가장 비실제적으로 살아도 통과가 되는 젊은 시절의 모든 그 무용하거나 헛된 시도들은 더욱 그러하다. 책의 뒷편으로 가 그가 이 책을 쓴 나이를 확인해 본다. 삶의 철학자가 되고 눈 앞에서 휘황하게 빛나는 것들의 그 얄팍한 휘장을 걷어내는 게 과연 젊음과 만날 수 있을런지. 오히려 젊기에 더 가능한 것인지를 확인해 보고 싶었다. 서른 다섯 정도. 스물은 아니고 아직 마흔도 아닌 나이. 그럼 그럴 수도 있겠다. 너무 어리면 이 이야기 속의 레이가 그랬던 것처럼 "커다랗고 맛있는 허쉬 초콜릿 바"를 포기하기 힘들고 그렇다고 너무 늙어버리면 그것을 포기하고 더 큰 의미와 본질에 전적으로 삶을 바칠 수 있다는 환상을 갖기 힘들테니 말이다.

 

우리는 무가 곧 무라는 게 믿기 싫어 하늘에서 떨어진 천사들인 걸까. 그래서 사랑하는 것들과 사랑하는 친구들을 하나하나 잃고, 마침내 자기의 인생마저 잃어버린 뒤에야 그것이 사실이라는 걸 알게 되는 걸까?

-p.340

 

아버지의 생신, 식사 자리에서 언제나 그렇듯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담담히 부지런히 하는 당신의 모습이 왠지 눈물겨웠다. 이게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이제는 순간 순간 의식하게 된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나조차도 당연히 '무'로 갈 것이다. 여기 지금에서 오십 년의 시간만 흘러도 많은 것들은 달라지고 스러질 것이다. 당연히 믿어야 하는데 사는 일은 그런 것과 쉽게 불화한다. 아직 자신 안의 이상, 신뢰에 크게 배신당하지 않은 레이 스미스 무리들의 항상 허무와 무를 의식하며 그럼에도 삶과 사람에 대한 아름다운 전망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귀엽게 때로 지나치게 순진하게 느껴지면서도 그냥 믿어버리고 싶어지는 건 나도 사실은 이 모든 게 무라는 걸 머리로는 인정해도 마음으로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들이 결국 무로 가더라도 그 존재 존재마다 의미가 있고 지금도 지나가는 시간들이 충만하다고 그래서 내가 사는 일이 내가 태어난 것이 참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이라고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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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5-11-16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lanca님^^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지금 제가 있는 곳은 새벽인데.. 와인 한 잔 하면서 blanca님 글과 함께 하는 시간이 참 좋습니다. 그러면서도 내가 사는 일이 내가 태어난 것이 참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이라고 라는 대목에서 그만 뭉클ㅜㅜ 정말 그럴까요? 정말 의미있는 일이겠지요?ㅜㅜ

blanca 2015-11-16 20:50   좋아요 0 | URL
달밤님, 아, 어디였을까요? 저는 오늘 와인 일잔을 위해 치즈를 미리 사두었답니다. ^^ 그래서 무슨 느낌인 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아요. 저는 이런 생각까지 해 봤어요. 제가 필립 로스를 좋아하는데 이미 그는 완연히 노년이고 절필을 선언했잖아요, 그 나이까지 살아보니 삶이 어떠한지, 죽는 게 두렵지는 않은 지 물어보고 싶어진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