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좋아하는 작가로 전작주의를 시도해 본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 명인 올리버 색스는 한번씩 신간을 내는지 아무래도 연로한 탓에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 하고 관심을 가졌던 인물이다. 최근에 너무나 슬프게도 그가 안구 흑색종이 간으로 전이되어 죽음을 앞두고 있고 <뉴욕타임스>에 이러한 자신의 상황과 죽음을 앞둔 소회를 기고한 것을 알게 됐다. 내가 아무리 연로하고 중병에 걸려 있더라도 죽음과 쉽게 화해하지는 못할 것 같은데 그는 역시나 그의 저작들에 드러난 세상이나 사물 앞에 위트 있고도 진지하고 사려깊게 다가갔던 그 모습 그대로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 감동을 주었다. 이제 여러가지 논쟁거리, 걱정거리를 던져주는 세상사에서 초연하게 물러나 자신의 지근거리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집중하겠다,는 거리두기도 인상적이었다. 다음 세대에 대한 긍정적인 신뢰도 그다웠다.

신경정신과 의사인 그가 환자들을 만나 겪은 실제의 임상사례를 활용하여 인간이 삶에서 급작스럽게 결핍이나 퇴행, 장애의 상황을 겪어도 어떻게 적응해 가며 새로운 지도를 그려나가는 지에 대한 이야기는 픽션이 아님에도 환자 하나 하나가 작품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듯한 설득력과 몰입도를 보여준다. 스스로를 과학적인 것과 낭만적인 것 모두에 빠져 있다고 한 표현은 올리버 색스를 어느 정도 그려내는 데에 긴요한 힌트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성향은 그가 인간과 질병에 기울인 관심이 과학적인 것과 낭만적인 것 모두를 아우르며 아름다운 글을 완성시키는 바탕이 되었다.
평생 독신으로 산 그의 사적인 삶에 개인적인 궁금증이 일었지만 그 자신의 어린 시절만 <이상하거나 멍청하거나 천재이거나>에 드러날 뿐이다. 그런데 최근에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글에 자신이 자서전을 마무리지었다는 이야기가 언급되어 있어 불현듯 궁금해 아마존을 검색하니 정말 며칠 전에 그의 자서전이 발간되었고 더불어 발빠른 리뷰가 3건 보였다. 스스로가 죽음에 다가왔음을 이야기한 그의 죽음이 현실화될까 싶어 기분이 가라앉았다. 오토바이 위에 앉아 있는 젊은 남자의 사진 표지. 올리버 색스일까? 자서전 발간은 곧 그의 죽음이 정말 멀지 않았음을 이야기하는 걸까? 우리나라에 그의 자서전이 번역되어 내 손안에 들어올 수 있을까? 도저히 영문원서로 삼백 페이지가 넘는 분량은 읽어낼 자신이 없는데... 하면서 이런 저런 상념들이 지나간다. 나도 늙어서 죽겠구나.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도 다 이렇게 죽어가겠구나, 하는 그 단순하고도 분명한 진실 앞에서 서늘해졌다.
부재중 전화. 엄마는 삼십 년을 함께 했던 이웃 아주머니의 죽음을 알린다. 청명한 하늘. 아이의 운동회. 반에서 제일 작은 아이가 달리기를 하며 자꾸 뒤돌아 본다. 나도 그랬었는데. 적어도 나보다는 더 잘 달리니 다행이다. 눈을 한번 깜빡이니 나는 엄마만큼 늙어버렸고 아이는 나만큼 커버렸다. 그러니 어쩌면 죽음도 늙음도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빨리 순식간에 다가올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아연해진다. 그 뒤로는 항상 어떤 깨달음도 다짐도 아직은 이르다.
사람들은 자신이 늙어갈 거라는 걸 믿지 않습니다. 얼마나 빨리 늙어갈 것인가도 깨닫지 못합니다. 시간은 정말 빨리 지나갑니다.-도리스 레싱 <작가란 무엇인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