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6
에밀리 브론테 지음, 김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등장인물들의 대화가 마치 귓전에 들리듯이 생생하게 꿈틀댔다. 한번에 다 읽어버리기 아까워 그리고 한번에 다 감당할 수 없는 격정의 양에 질려 되도록 음미하듯 읽고 싶었다. 분명히 어렸을 때 이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러나 축약본에다 아직 그것들을 듣고 보고 느낄 깜냥이 안 되었던 터였던지 막연하게 음침하고 괴이한 느낌만을 받았었다. 이제 나와 나의 삶이 충분히 숙성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아니 죽을 때까지도 그것은 불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이 악덕의 화신 같은 사내와 당당하고 도발적이었던 여인이 나누었던 불멸의 사랑을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지켜볼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폭풍의 언덕>의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사랑은 날것으로 묘사되는 것이 아니라 캐서린의 친정집에서 함께 자랐다 그녀가 린턴가와 결혼함으로써 그 집에 함께 와 그녀의 딸까지 돌보게 되며 한 가문의 영락에 얽힌 사연을 지척에서 지켜보고 때로는 그 사건의 중심에 뛰어들어 결정적 증언을 하기도 한 나이 든 하녀 넬리 딘의 회고담 속에 녹아 있다. 넬리 딘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나'는 록우드라는 런던의 신사로 린턴가의 오랜 저택 '티티새 지나는 농원'을 폭풍의 언덕에 사는 히스클리프로부터 세낸 청년이다. 4마일 정도 떨어진 '폭풍의 언덕'의 히스클리프를 위시한 세 남녀의 기묘한 동거와 우연히 그 집에서 묵게 되어 비몽사몽 간에 만나게 된 캐서린의 유령으로 인해 록우드는 이웃집의 내력을 하녀장 넬리 딘에게 조르게 되고 그녀는 담담한 어조로 폭풍의 언덕의 어쇼가에 업둥이로 들어오게 된 히스클리프의 사연을 풀어내게 된다.

 

집시의 외모로 거리를 헤매던 히스클리프가 어쇼 남매와 맺게 되는 인연은 파국의 전조가 된다. 사내애 어쇼는 히스클리프가 아버지의 사랑을 찬탈했다고 여기고 그를 몹시 미워하게 되고 캐서린은 히스클리프와 붙어 다니며 가망 없는 사랑을 키우게 되나 이웃집 '티티새 지나는 농원'의 반듯한 도련님 에드거와 결혼하며 히스클리프와 '폭풍의 언덕'을 떠나게 된다. 캐서린이 당시 하녀 넬리에게 독백처럼 내뱉는 히스클리프에 대한 사랑은 하나의 시 같다. 어쩌면 캐서린의 이야기는 우리가 젊은 시절 소진해 버리는 그 많은 실패하는 첫사랑에 대한 하나의 소고 같아 가슴이 저릿하다. 누구나 그 때는 '그 아이'가 없는 세상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에 유리 조각이 박히는 듯한 아픎을 느끼지 않았던가.

 

내 삶에서 가장 큰 슬픔이 그 애였여. 모든 것이 사라진다 해도 그 애만 있으면 나는 계속 존재하겠지만, 모든 것이 그대로라 해도 그 애가 죽는다면 온 세상이 완전히 낯선 곳이 되어버릴 거야. 내가 이 세상의 일부라는 느낌이 없을 거야. <중략> 그 애는 내 마음속에 항상, 항상 있는 거야. 기쁨을 주려고 있는 게 아니야. 내가 나 자신에게 항상 기쁨을 주지는 않잖아. 그 애는 기쁨을 주려고 있는 게 아니라, 나 자신으로 있는 거야.

-p.132

 

히스클리프는 지금까지 보고 들어 왔던 숱한 로맨스의 남자 주인공과는 사뭇 다르다. 그는 집시 같은 겉모습에 욕설과 악담과 폭력 그 자체다. 사랑하는 캐서린과도 격앙되어 저주와 폭언을 주고 받는다. 심지어 캐서린에 대한 애증은 그녀의 시누이와의 사랑없는 결혼의 강행과 그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학대하는 것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는 상식적이지도 않고 연민을 자아낼 구석도 없다. 에밀리 브론테는 끝까지 히스클리프의 개과천선을 기대했던 독자의 기대를 배신한다. 그는 여전히 그다. 그와 사랑에 빠졌던 캐서린 또한 자신은 천국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21세기에도 이러한 이야기는 쉽게 용인될 수 없을 것 같다. 하물며 국교회 목사의 딸로 목사관을 평생 거의 벗어나지 못했던 19세기 초의 에밀리 브론테가 그려낸 이러한 인물형이 그 당시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켰을 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그녀가 얼마나 위험한 도발적인 이야기를 해내었는 지 상상이 가 섬찟했다. 에밀리가 그려낸 두 남녀는 로맨스의 주인공들로도 현실의 인간형으로도 적절하지 않다. 그런데 이러한 광포한 그들의 사랑이 결실을 맺지 못하고 마침내 그들이 낳은 딸과 아들이 사랑하게 되는 과정에서 그려지는 저간의 이야기들은 얼마나 격정적이고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애잔한지 책장을 뚫고 나올 것만 같다. 에밀리 브론테는 '죽음'에 세상의 '관습'에 고착된 '도덕관'에 도전장을 준엄하게 내민다. 그것은 억지스럽지도 않고 역겹지도 않다. "온 세상이 그 애가 한때 살아 있었지만 이제 내 곁을 떠나버렸다는 사실이 적혀 있는 비망록"이라고 되뇌이며 죽음을 맞는 히스클리프의 죽음은 늙은 충복 앞에서 희화화되기도 하지만 흔히 '끝'이라고 여기는 '죽음'도 뛰어넘어 간직하려는 그 무모하고 무력한 '사랑'에 대한 힘과 소망을 보여주는 것같아 울림이 크다. 밝은 곳만을 이야기하고 듣는 일은 쉬운 일이다. 어둡고 음험한 곳에서 벌어지는 질투와 욕망의 잔재를 끌어모아 잉걸불을 피어 낸 그녀의 위대한 펜 끝에서 가슴이 떨렸다.

 

위대한 이야기는 감히 불멸을 꿈꾼다. <폭풍의 언덕>은 그 어떤 모든 지평과 한계를 뛰어넘어 저 너머에 살아 스스로 생명력을 발한다.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온몸으로 반기고 천천히 다다가는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담대함은 에밀리의 실제의 삶, 죽음과도 닮았다. 그렇다면 그녀의 메시지는 시공간을 가르고 우리라는 과녁에 적중했다. 그녀는 우리가 감히 꿈꾸는 것들, 감히 밖에 내어 표현하지 못했던 것들을 싸안고 펼쳐 보여준다. 그녀 앞에서 '감히'는 무력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