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읽으며 내도록 참 즐거웠다. 참, 오랜만에 로맨스 소설 읽는 재미로 생활이 아기자기해지는 느낌이 좋아 내처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에 도전했다.

 

 

 

 

 

 

 

 

 

 

 

 

 

 

 

샬럿 브론테의 로맨스는 제인 오스틴의 그것과는 또다른 격정과 어둠에 대한 배려가 있다. 그리고 여자 주인공과 남자 주인공의 용모가 객관적인 미남, 미녀가 아님을 강조하고 나름의 태생적  결함이나 숨기고픈 과거가 있는 것 등으로 설정하여 어떤 핍진성을 얻는 부분이 분명 있다. 남녀가 사랑에 빠져 나누는 대화나 심리적 역동에 대한 묘사가 거칠고 힘이 있어 여성 작가의 한계를 뛰어넘는 비범한 에너지가 돋보인다. 한동안 소설이 가지는 비현실적인 부분에 대한 어떤 염증 같은 것이 생겨 읽기를 그만뒀던 적도 있는데 학창 시절 축약본으로 읽어 제대로 그 감동을 맛보지 못해 다시 읽고 돌아가 느끼는 즐거움, 깨달음이 알차다. 다음 번에는 샬럿의 자매 에밀리가 쓴 <폭풍의 언덕>도 제대로 읽어 볼 참이다. 그리고 소년 같았던 캐릭터가 상큼했던 둘째 딸 조를 만날 수 있는 <작은 아씨들>도. 그냥 '읽는다'는 그 행위에 충실했던 그래서 제대로 그 맛을 볼 수 없었던 거친 독서들을 이제 제자리로 돌려 놓으며 그 시간들을 다시 곱씹다 보니 한없이 그 시간들이 그립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다.

 

내가 읽는 것들 속에서는 불가능할 것 같았던 사랑도 이루어지고 모든 과하고 그릇된 것들은 제자리를 찾아가는데 현실은 대비라도 되듯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서글프다.

 

나는 언제라도 열네 살로 돌아가고 싶다. 삶 전체를 흔드는 어떤 중대한 갈림길의 선택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나를 둘러 싼 여러 상황이 완벽했던 것도 아닌데 '나'라는 주어는 그 시점에 가장 어울리고 가장 울림이 있는 듯한 느낌. 그러니 그 나이 전체를 지배했던 '신해철'이라는 존재가 갑자기 사라지는 것은 큰 상실과 다름아니다. 아직도 기억난다. 나는 그의 사진을 오려붙여 스크랩북을 만들었고 엄마와 함께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려 퍼지는 신세계 백화점에서 그의 음반을 사들고 고속버스 터미널 건너편에서 터질듯한 가슴으로 행복하게 버스를 기다렸다. 그 마음은 정말 불꽃놀이가 막 시작되기 전의 그 설렘과 닮아 있었다. 옆에는 엄마가, 내 품 안에는 나의 우상 '그'가 있었다. 대학에 가면 나는 그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이 드는 것이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즐거웠다. 나는 점점 더 꿈에 그리고 '그'에 가까워져 가고 있었으니까.

 

날렵했던 턱선에도 살이 붙고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의 애수 어린 눈빛도 아빠 미소의 그것으로 변한 그의 나이듦에 때로 실망하고 자기 관리 운운하며 이야기하기도 했던 그 시간들이 후회스럽기도 하고 그립다. 모든 변화와 모든 이지러짐을 인간의 힘으로 거역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오만이 아직도 나에게는 남아 있었나 보다. 배움의 시간은 끝없이 연장된다. 어제 우연히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여름 그의 휴가 자리를 채워주고 마지막으로 인사를 했던 신해철의 목소리가 나왔다. 언제나 그렇듯 주저리 주저리 심지어 선곡 음악의 자리까지 파고드는 그의 길고도 정리되지 않았지만 언제나 물 흐르는 듯이 꼭 상대 1인을 향해 이야기하는 듯한 이야기들...은 마침내 끝내고 "이제 정말로 작별해야 할 시간"이라는 그의 마지막 멘트에 그만 울어버리고 말았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눈물 없이는 열네 살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 나의 열네 살을 채워주었던 이가 작별을 고했으므로 다시 돌아올 자리가 없으므로. 안녕. 이젠 정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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