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결핍이 강하게 느껴질 때 방법론적인 결론을 기대하며 각종 심리책들을 뒤적거리게 된다. 그러니까 심리에 관련된 책을 많이 읽을 때 나는 행복하지 않은 상태인 것이다. 종종 치유의 효과도 경험한다. 당연한 얘기들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인간의 그 미묘하고 비정형적인 영역을 실증적으로 탐구해 가고자 하는 그 무모하지만 뻔하지 않은 시도가 신뢰를 준다. 많이 힘들 때는 타인의 조언을 듣는 것보다 내가 그 상황을 받아들이며 쏟아 내는 감정들의 실체를 확인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직시하게 되면 그 상황이 내가 감정의 덧칠로 이지러져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니까.

'천개의 공감'은 제목이나 내용이 너무 알려져서 저평가된 책이 아닌가 한다. 작가 자신이 심리전문가는 아니지만 다양한 상황에서 여러 번 정신분석을 받은 경험을 토대로 각종 상황에 대한 분석 및 상담을 해주고 있다. 아마추어적인 것 같으면서도 오히려 그 면이 치열한 공부와 진지한 공감으로 빛난다.
그랜트연구는 하버드 대학의 성인 발달 연구로 하버드생 268명의 삶을 76년간 종단 연구한 것으로 이 책은 주로 '노화'라는 관점에서 조망한 몇 몇의 삶에 대한 일종의 보고서 형태를 띠고 있다. 삶 자체가 가지는 그 드라마틱함은 다이나믹한 단편 소설을 읽는 듯한 착각 마저 들 정도이다. 그 어떤 책보다 삶에 대한 통찰이 돋보이는 책으로 생활 속의 사소한 것들이 주는 자극에서 조금 초연해질 수 있는 통로가 되지 않을까 한다.

'천 개의 공감'에서 빌려온 책들이다. 정신분석은 사실 유년시절에 묻혀져 있는 수많은 아픈 결핍들을 발굴하는 작업들이다. 두 책 모두 약간 전문적인 임상 사례 중심이라 읽기 쉽지는 않지만 유아들이 주양육자인 엄마와 형성해 가는 애착들의 강도와 양태가 뒤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 지를 찾아가다 보면 안풀리던 매듭이 풀리듯 나의 현 결핍들을 이해해 나갈 수 있다. 갑자기 무릎을 탁 치며 내가 그래서 이런 거구나, 하고 눈이 번쩍 뜨인다. 아이를 양육하는 엄마들도 읽으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재미 그 자체만을 놓고 본다면 조금 서운한 책들인 것은 사실.

'아이의 사생활'이야 EBS에서 방영할 당시의 폭발적 반응이 뒷받침 된 책으로 아이의 발달을 뇌생리학적 측면에서 진지하게 살펴 보고자 한 시도와 또 그 성취가 놀랍다. 더 나아가 남아, 여아의 성 차이가 단순히 사회적으로 학습되는 것이 아니라 타고 나는 여러 본질적인 것이 있다는 것. 남녀 성차이를 다룬 책이야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위시하여 봇물처럼 밀려들어왔지만 사실 이 책 한 권으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남자가 왜 감정의 표현에 미숙한지, 여자는 슬픔 속에 몸을 담그고 있는데 정작 남자는 어떻게 회사에 출근하여 묵묵하게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는지 그 수수께끼의 해답이 나와 있다. 꼭 아이 교육에 대한 관심이 아니더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아이가 나를 미치게 할 때'는 제목이 지나치게 선정적이어서 오히려 책 내용이 가라앉는 것 같다. 저자가 직접 딸을 키우면서 가졌던 시행착오의 경험들과 그것을 전체적 맥락에서 재조망할 수 있는 식견을 얻을 수 있다. 제목과는 달리 젠 체하지 않고 엄마이기 전에 감정에 흔들리는 하나의 인간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또 이해해 주는 그녀의 용기와 이해가 번역서의 한계를 뛰어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