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여행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 지 더이상 알 수 없을 때
그 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 지 더이상 알 수 없을 때
그 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Nazim Hikmet(1902~1963, 터키)
이 아름다운 시는 터키의 한 저항시인에 의하여 투옥중에 씌어졌다. 그는 고급관리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모스크바 유학 후에 공산주의에 경도되어 냉전시대 덕택으로 10여년 간 감옥생활을 하다 결국 모스크바로 망명해 폴란드인으로 죽는다. 그의 국적은 빼앗기고 53년이 지나서야 수많은 사람들의 청원과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무크의 글 등을 통해 비로소 회복된다. 터키에서 태어나서 폴란드인으로 러시아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그의 비감어린 삶 속에서 그의 고백은 더 절절하게 공명을 얻는다.
류시화가 치유시(healig poem)라는 장르 안에 담아 국내에 소개한 이 시는 무언가 지나치게 심각한 효과를 기대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읽는 개개인마다 가장 약한 부분을 뚫고 들어와 어루만져준다. 불행한 가운데서도 그럭저럭 살만 하다 싶을 때에도 무언가 더 기대할 최상의 순간들이 아직 앞에 남아 있다는 기대는 우리를 살게 한다. 내일이 고통스러울 지도 모른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죽음으로 뻗어 있는 내일 속 군데군데에 아름다운 순간들이 그것도 미처 경험해 보지 못한 최상의 순간들이 숨어 있다는 자각은 누가 일깨워 주기 전에는 쉽사리 할 수 없다. 이 순간 시인은 걸어들어온다. 그리고 우리는 저마다의 상처가 완전히 치유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그 상처가 더 심해지지 않을 것이라는 안온한 느낌에 내일도 일어나 삶으로 뛰어들 용기를 얻게 된다.
이 시의 저자인 Nazim Hikmet 의 시집을 읽고 싶지만 구할 길이 없다. 국내에 번역본이 없다. 김연수가 인터뷰때 시의 치유 능력과 함께 자주 언급하는 시인 메리 올리버의 시집도 구할 수 없다. 시가 안 팔리는 시대다. 구태여 외국시를 번역하여 내놓을 필요성을 못느낄 만치 그 시장이 열악하고 협소하다. 치유받고 싶어도 치유받을 수 없는 시간들 속에 우리는 산다. 누가 건드려 일깨우기 전에는 절대 보고 듣고 알 수 없는 것들은 그렇게 우리 앞에 죽은 듯이 엎드려 삶을 더 고달픈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 사물의 그 내밀한 곳을 관통하는 예리하지만 다정다감한 그 시선은 시인만이 가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