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한 글감옥 - 조정래 작가생활 40년 자전에세이
조정래 지음 / 시사IN북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태백산맥'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오는 길은 참으로 스산했다. 끝 간 데 없이 갈피를 못잡고 흔들리는 마음과
더불어 세상을 보는 눈은 달라져 있었다. 이데올로기의 그 편벽한 구획 안에서 난도질 당하고 있는 인간 본연에
대한 한없는 연민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조정래라는 작가의 얘기를 들어보고 싶어졌다. 역사를 문학 속에
용해시키고 그 속에 잠들어 있는 민중을 하나 하나 일으킨 그의 저력에 감탄했고, 그 추상성을 구체화한 그의 작업이 궁금했다. 

이 책은 그렇게 나에게 왔다. 감옥이 황홀할 수 있다는 그 역설의 중심에는 글을 쓰다가 책상에 엎드려 숨을 거두는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작가의 문학에 대한 사위지 않는 열정과 역사 속의 민중에 대한 따사로운 애정이 있었다.
문학 인생 사십 년을 회고하는 자전에세이는 출판사를 차린 <시사IN>에 대한 맞춤한 호의와 더불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인턴기자 희망자인 대학생들의 500여 가지 질문들에서 84가지를 추려 문학론, 작품론, 인생론으로 분류하여 그의 웅변을
들려주고 있다. 

소설에 대한 그의 정의인간의 총체적 탐구이다. 그것이 역사를 포괄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며, 모국어에 은혜 갚기 작업이라 한다. 따라서 단어 하나 하나가 어법에 맞게 용례에 맞게 적절하게 쓰여야 하며 사전을 적극 활용할 것을 권장하는 대목은 그가 질문자들의 질문을 문법에 맞게 정정해 주는 것으로 구체화된다. 항상 어휘가 문법에 맞게 제대로 쓰이고 있는 지 자신 없어지곤 했었는데 책을 읽다 당장 국어사전을 주문하게 되었으니 그에게는 독자를 감화시키는 묘한 힘이 있는것이 분명하다. 또한 소설을 읽고 나서는 항상 전체적 감상을 정리하되 좋은 작품은 좋다고 인정하면서도 한 가닥 곤두서는 자신감을 챙기라는 조언은 '태백산맥'을 읽고 기죽어 버린 나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백 번 죽었다 깨어나도 이렇게 쓸 도리가 없다, 고 비애를 곱씹는 작가 지망생들에게 용기를 북돋어 주는 자상함이 고맙다. 인물 창조에 있어 개성과 전형성을 두루 갖출 것을 독려하면서 요즘 1인칭 시점의 유행을 비판하는 대목은 기억해 둘 만하다. 개성적인 인물을 많이 창조할 수 있기 위해서는 다른 인물들을 '나'를 통해서만 움직일 수 있는 1인칭 시점을 경계하라고 한다. 무심코 읽어내려갔던 1인칭 시점 소설들의 한계가 바작바작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아 움찔했다. 그가 '태백산맥','아리랑','한강'에서 창조한 1천 2백여 명의 등장인물들의 그 생동감은 여기에 빚진 부분이 있을 터이다. 또한 그가 가장 애정을 갖는 등장인물은 바르고 굳센 민중성을 갖춘 인물이라고 한다. 이것은 곧 역사의 주인이고 원동력인 민중을 독자 앞에 바로 세우고 싶었던 그의 의도와 부합한다.

대처승인 아버지 밑에서 보낸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은 하나의 소설 같아 아련하다. '태백산맥'에도 등장하는 겨울의 머슴방의 
그 오밀조밀한 재미는 조정래 자신이 어린 시절 자주 다닌 머슴방 마실에서 태어났고, 초등학교 5학년 때 반공교육의 일환으로
강제로 볼 수밖에 없었던 사살당한 빨치산 시체들의 모습은 또 '태백산맥'의 결말에서 비감어리게 재생된다. 그 자신은 상상력의 고갈을 경계하며 직접 경험을 피한 소재를 소설에 활용하려고 애쓴 시절이 있었다지만, 결국 그의 역작 속에서 그의 경험은
새로운 의미부여를 받고 재점화 되고 있었으니 아이러니하다. 

겨울방학 두 달 동안 집에 틀어박혀 그린 링컨의 초상화로 평생의 동반자 시인 김초혜에게 구애한 대목은 더없이 낭만적이다.
그 초상화가 아리랑문학관에 전시되어 있다니 기회가 되면 꼭 그 배고픈 낭만의 응집물을 확인해 봐야 겠다. '태백산맥'에서
사회주의나 빨치산을 '인간'으로 바꾸는 작업을 했던 시도가 국가 보안법 위법으로 11년의 세월을 시달려야 했을 때에는
영욕이 반반이라는 그의 아내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삶의 고달픔과  글감옥 밖으로 나온 작가의 열정이 사회의식과 역사의식으로 무장할 때 어떤 댓가를 치루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슬픈 방증 같아 안타까웠다.

하루 16시간씩 20년 동안 글감옥에 갇혀 자기 학대적 노력을 기울여 그가 이루어 낸 찬란한 성취는 그 감옥 안에
머물지 않고 역사 속에 잠든 민중을 깨워 일으키고 민족의 중차대한 통일의 염원을 두드려 시민들을 각성시키고 응집시켰기에
더없이 황홀할 수 있었다. 그 황홀함에 취해 작가에게 감사를 보내고 싶다. 아즘찮이  또 아즘찮이지요.

 

 


댓글(3)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09-11-29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태백산맥에 이어 '활홀한 글감옥' 읽으셨군요~~~~
예약주문으로 받아두고 아직 펼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리랑 문학관에 두번 갔는데 링컨초상화를 찍어온 것 같은데 찾아봐야겠습니다.^^
아츰찮이~~ 그 뉘앙스를 정확히 알기가 쉽지 않더군요.

blanca 2009-11-29 20:11   좋아요 0 | URL
아주 고맙다는 얘기인 것 같아요. 황홀한 글감옥 너무 좋더라구요. 눈물도 찌익~ 아리랑도 읽고 싶은데 내년에 읽으려구요. 순오기 님은 제가 가보고 싶은 곳을 다 가보셨군요.

순오기 2009-11-30 00:05   좋아요 0 | URL
남도에 사는 덕분에 호남의 좋은 곳은 여러곳을 가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