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친일 인명사전이 발간되었다.
설왕설래 말들이 많은 모양이다. 그 시대에서 친일은 생존의 방편이었다느니, 친일 인명사전을 발간한 단체가
좌경이라느니. 생존의 방편이었다는 어설픈 자기변명은 십분양보해서 그렇다손 치더라도 
그 발간 단체의 색깔논쟁을 들이미는 데는 유구무언이다.

친일 인명사전에 수록된 몇 유명인에 대한 이슈는 거론할 생각도 없고 거론할 필요성도 못느낀다.
슬픈 것은. 왜 아직까지도 우리는 자유로울 수 없을까, 인 것이다. 이념의 재단에서.
걸핏하면 들고 나오는 붉은 이념에 대한 논쟁.
일제치하 우리나라의 특수했던 상황과 독립투쟁이 공산주의 이념과 맞물린 지점에 대한
그 어떤 이해나 용인도 다 잘라내 버리고 우리는 그저 그 이념의 구획 안에 편의대로 상대를 몰아넣고
우격다짐으로 따귀를 때려대며 자신의 불안감을 감추는 그 양태들을 언제까지 용인하고 혹은 방조해야 하는 것인지.
그건 약하기 때문이다. 두렵기 때문이다.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1930년대 초반 만주 항일유격근거지에서 벌어진 '민생단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소위 항일투쟁과 공산주의가 만난 그 지점에서 외롭게 배회하던 이들이 결국은 분열로 서로를 죽이고 죽는
비극의 그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들이다. 진보는 분열로 망하고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고 했던
그 진부한 표현이 사실은 이런 처절한 역사를 기반으로 피어난 문장이다. 적에 의하여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동족끼리, 그것도 한 때 같은 이념을 공유했던 같은 이상을 꿈꾸었던 이들이 각자 자신이 살기 위해, 아니 죽음을 늦추기
위해 미친듯이 서로를 죽이고 만 이야기이다.  

역사적 사건의 무게가, 그 심각성이, 그 비극의 점도가 너무 진해서 그러했는지, 작가는 개별적 역사적 사실과
자신이 얘기하고 싶어하는 진실의 교차 지점에서 멀미를 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 엄중한 사실 앞에서 지나친 감상과
문학적 세련됨을 드러내려 했던 약간의 욕심은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한계를 주고 만 것 같다.
만철의 조선인 측량기사 김해연이 공산당 활동을 벌인 이정희와 조직의 연락선인 여옥과 사랑에 빠지는 장면 등은
그 개연성이 부족해 보이고 지나치게 감정의 과잉이 보인 것 같아 몰입이 어려웠다.
또한 이러한 일련의 일들이 일본인 기업에 파견나와 있는 그가 갑자기 공산주의 조직에 투신하게 되는 계기로
작용하는 것도 지나치게 작위적이다.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소설적 장치로 소화해 내려하다 보니
독자들에게는 약간 불친절해지고 마는 한계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사실을, 그것도 너무 처절한 사실을
하나의 내러티브로 다 풀어내려니 그 누가 했더라도 결국은 이렇게 됐을 것 같다.
   

그럼에도 극현대사에 무지몽매한 나에게 외세의 교란 작전에 휘말려 결국은 그 이국 땅에서조차
서로를 미친 듯이 일본인 첩자로 낙인찍고 죽일 수밖에 없었던 우리 민족의 그 비극을 목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김연수 그에게 감사하고 싶다.
인간이 세계에 던져지는 것은 그 이후에 삶의 의지를 발현한다고 해도 결국은 극도의 우연의 응축이다.
내가 하필 용케 이 시대의 나로 태어난 것. 내가 그 시대의 그로 태어나지 않은 것. 그러니, 가정이라는 것은
언제나 덧없는 것이지만 일제치하의 그 기댈 곳 없는 곳에서 살아나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면.
누군가를 죽이지 않고는 누군가를 배신하지 않고는 내일을 약속받을 수 없었다면.
나도 결국은 어둠 속에서 그 어둠 속에서 그 모순과 투쟁이 가득한 세계 속에서 잔혹해지지 않을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에 이르면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고 만다.
산다는 것이 갑자기 너무 잔혹하고 너무 두렵고 너무 불확실하게 느껴져서.
나의 날숨이 흩어지는 공기 입자 하나하나에 나의 생존이 확실하게 들어가 있다고 막 손으로 꽉꽉 눌러 담고 싶어져서.
너무 초라하게 느껴진다. 인간이라는 것이.
그래도. 사는 것은 인간이라는 것은 아름답다고 결론지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언제나 그렇듯 비관주의적인 리얼리스트보다는 대책없는 낙관론자가 되고 싶었으니까. 

나는 원래 뭔가를 간절히 원하면 온 세계가 그 열망을 도와준다고 믿으며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다. -작가의 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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